김영수 도서관을 소개합니다 / 송덕희
비행기에서 내리자 시원한 바닷바람이 뺨을 스치고,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지난주에 ‘온마을 이음 학교’ 관리자 연수가 제주에서 있었다. 여러 일정 중에 ‘김영수 도서관’에 가는 것이 기대됐다. 처음 들은 곳인 데다, 교육과 마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했다.
제주북초등학교에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본관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학교이지만, 넓은 운동장에는 천연 잔디가 깔려 있고, 화단 곳곳에는 노란 백묘국꽃이 활짝 피어 있어 활력이 느껴졌다.
왼편으로 아담한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에 놓인 안내판을 읽으며 궁금증이 조금씩 풀려갔다. 제주북초등학교는 1907년에 개교했고, 20회 졸업생인 고 김영수 님이 1968년 학교에 도서관을 지어 기증했다. 8년 뒤에는 2층으로 증축하고, 도서와 비품도 추가로 기부했다. 일본에서 중소기업을 일구며 모은 재산을 배움의 공간에 아낌없이 나눈 것이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법인데, 그분은 참 귀하게 쓰셨다. 도서관은 학생들에게 책을 읽고 꿈을 키우는 공간이 되었고, 김영수라는 이름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현재는 제주시의 도시 재생 사업으로 리모델링하여, 학생뿐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도 개방하고 있다. 학생들이 있는 시간에는 학교에서, 그 외 시간에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도서관 내부는 서까래와 들보, 한옥 창호 등 전통적인 요소를 살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세월의 흔적이 스민 원목 서가는 낮게 배치되어 있어 시선이 편안하고, 계단은 칸마다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꾸며졌다. 노랑, 주황, 녹색의 의자들이 공간을 넓고 밝게 했다. 벽면에 제주북초등학교의 오랜 역사가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2층에는 왼편에 서가가 있고, 오른편에는 20여 명이 둘러앉을 만한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넓은 창을 통해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창밖으로 제주목 관아의 기와지붕이 내려다보인다. 과거를 품고, 현재를 가꾸며, 미래로 나아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마을과 학교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마을 도서관은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것이 아니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경험이 부족한 데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먼저 사람을 모으고 역량을 기르는 일이 시작되었다. 마을 활동가, 대학생,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 후원 회원들이 힘을 모았다. 이들과 함께 노하우를 키우고, 역할을 나누며 8년째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제주를 주제로 한 책을 직접 만들어 낸 점이다. ‘책 보따리’ 강사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출판하여 일부는 팔기도 한다. 지역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제작했다. 제주의 자연을 소개한 《곶자왈》과 《한라산》, 인물 이야기 《만덕과 푸른 항아리》, 해녀의 경험을 담은 《미역 따러 독도까지》, 제주 말을 살린 《똥돼지》, 신화를 다룬 《설문대할망》과 《흑룡만리》 등 책마다 이 지역의 자연과 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출판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모든 과정에서 교육청 관계자와 긴밀하게 협력했다. 교사들은 연수에 참여하고, 마을 강사들은 학교 현장에서 직접 수업한다. 고장의 자연과 문화 자원을 살리는 일은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서관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마을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것이다. 학생들은 놀이터처럼 자주 찾아와 편히 놀고 책을 읽는다. 주말이나 방학에는 마을 체험장으로 직접 데리고 나간다. 재미있게 배우며 다음에 또 오게 하려면, 교육 자료와 프로그램을 매번 고민하여 준비해야 한다. 자기 시간을 기꺼이 내고 몸으로 부딪치며 아이들을 키워 가는 공동체의 모습은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답다.
이러한 활동을 계속하려면 사람들이 자주 만나야 하는데, 도서관이 지역 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모이다 보면 원도심 탐방, 생태‧환경 교육, 제주의 말 살리기 등 지역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여러 의견이 오간다. 함께 배우고, 더불어 사는 삶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어지는것이다.
김영수 도서관은 이제 다른 지역에서도 주목 받는 ‘온마을 이음 학교’의 모범 사례가 되었다. 학교 관리자뿐 아니라 지역 활동가들까지 찾아오는 이가 많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마을과 학교가 손잡은 작은 움직임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제주를 여행하게 된다면, 이 도서관에서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곶자왈>>의 푸른 색감에 빠져 보기를 바란다. 아주 오래전, 한 사람이 정성껏 뿌린 씨앗이 지금은 튼튼한 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고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바다와 도서관. 왠지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이 떠오르네요.
덕분에 저도 좋은 시 한 편 읽었습니다.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 만년필로 잉크 냄새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각 지역에 폐교가 많은데 이렇게 도서관 등 그 고장에 필요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어요. 김영수 도서관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작은 도서관이 곳곳에 생겨서 아이나 어른이나 마음 둘 곳을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어릴 때 이렇게 도서관에서 어른들이 놀아 준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요?
부러운 요즘 아이들입니다.
정말 멋진 공간이 제주에 있군요.
찾아 보렵니다.
이팝나무님은 지금도 충분히 좋은 사람, 나은 사람인걸요? 하하하. 마을 곳곳에 이런 도서관이 차차 늘어날 거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