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꽃
임준빈
바다는,
자신을 흔드는 폭풍을 미워하지 않는다.
바람이 거셀수록 바닥에서 밀어 올리는
심혼의 갈등과 따뜻한 사랑이 만나
새로운 물길을 튼다.
그 길은 묵은 때를 헐어내고 헹구어내는 고단한 작업
아니, 맑고 향기로운 수행이다
고통의 벽을 타고 허공을 거슬러 오르는 담쟁이
천둥과 벼락에 맞서 싸운 상처를 씻고 씻었다가
노을빛으로 물들여 가지마다 주렁주렁 훈장을 달아주는 대추나무를 보라
후려치는 빗줄기에도 아랑곳없이
대추 열매는 심장 안에 단단한 쇠벽을 쳤으리라
금방이라도 세상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하던 여름날
형님의 우산 속에서 하늘의 공포를 처음 느끼던 어린 시절
쏜살같이 먹구름과 빗줄기는 스러지고
무지개가 총천연색 꽃무늬로 하늘에 색칠하던 날
초라한 가슴에 작은 등불이 켜졌다
무서움도 지나가는구나, 지나간 그 길엔 다시 맑은 햇살도 뜨는구나.
지우개가 달린 연필심에 침을 묻혀 꾹꾹 눌러쓰던 일기장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 일기장이 바다였다
다 안아주고 함께 울어주는 따뜻한 어머니였다.
큰 소낙비가 지나가면 더 크고 긴 땅과 하늘을 연결짓는
칠 차선 무지개가 뜨겠지, 기다리던
어머니를 향한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나는 저 바다를 그냥 바다라 부르고 싶지 않다
큰 눈 뜨고 도저히 바라보지를 못하겠다
꽃향기요, 고통의 인내요, 기다림이요, 사랑이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흘린 눈물도 받아주고
슬픔에 젖은 하늘 가슴도 안아주고
산골짜기를 지나 흘러흘러 바다에 이른
가엾은 무명꽃의 서글픈 사연도 들어주는, 저 넓은 가슴아
수천 년을 말없이 기다려 주며 포용하는 저 지대한 눈물아
너는 지지 않는 만년 꽃,
이 세상에서 만난 가장 아리따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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