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1시 경 산더미같이 쌓인 체육관 남탕의 타올 뭉치를 보며든 생각이다. 약 1,500 장. 내일 17시까지 사용량이란다. 그럼 700명 분이다. 이후로 자정까지 250명 정도가 더 온다고 하면 하루 입장객은 천여 명이다. 여성회원까지 하면 2천 명이다. 사실 남성에 비해 여성 회원이 훨씬 많다.
남성 탈의실의 경우 옷장이 140번까지 있고 여성 탈의장은 178번까지 있는데 저녁에는 옷장이 빌 때까지 기다리는 대기자까지 있다. 한마디로 호황이다. 안오는 이들을 포함하면 대략 회원은 3천 명이다. 이 숫자는 대외비인듯 직원에게 물어도 미소로 답한다. 그래서 추정한 숫자이다.
1인당 평균 200만 원(1년에 170만 원하는 기구운동, 사우나 외에 골프, 운동복 등 모든 서비스를 다 이용하면 1년에 260만 원이다.) 회비를 내니 대략 1년 수입이 60억 원이다. 한달에 5억 원 수입, 계산이 딱 나오는 대박 사업이다.
3천평의 규모, 신형 운동기구, 최고의 사우나 시설이 소문이 나서인지 가입자는 줄섰고 80세 이상은 사절이다. 혹시 모를 사고 예방 차원이다. 동아수출공사 이우석 회장님의 불만이 보통이 아니다. "늙으면 죽으란 소리냐?" 이렇게 따져도 알짤없다.
임대료, 수도세, 전깃세, 기름값, 직원, 트레이너 월급, 비품비, 경상비는 넉넉히 잡아도 2억 원이다. 자, 체육관 사장이 입 벌어질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양재동, 종로, 관악구까지 체인점을 늘렸다.
여탕에서는 타올 소모량이 너무 많아 아예 카운터에서 2장씩을 지급한다. 여성 직원이 나르기에는 너무 량도 많지만 소비량을 감담할 수가 없어서란다. 즐거운 비명이 아닐수 없다.
내가 조감독을 하며 부업으로 50평짜리 사우나 헬스클럽을 하던 1983년에는 3개월에 7만 원을 받았는데 100명도 대박이었다. 개관하고 백명이 입관했는데 700만 원이 입금되었다. 외상으로 공사했던 대금들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40년 전 한달에 233만 원 수입이면 지금 가치로 2천만 원은 넘을 듯하다. 나는 체육관에 얽매일 수 없어 직원들 4명에게 맡기고 영화판으로 나갔다. 그렇게 영화계에서 활동하며 10년간 운영했으니 그나마 영화인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부업이 본업이 되며 영화계를 떠난 많은 이들을 보았다. 나는 체육관에 전력투구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했다. 당시 50편을 각본, 감독하였는데 5편의 시나리오를 빼곤 모두 내가 집필을 했고 15편은 타인이 연출했다. 그렇게 35편의 다큐멘터리 등 문화영화, 홍보영화를 각본, 감독했다. 체육관도 부친이 맡아 운영하고 사범 1명만을 두고 가격을 낮추어 2만 원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한 영화인이며 부모님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감사한다. 체육관은 1991년 EBS로 가며 폐업했다. 이미 소형 체육관은 시대에 걸맞지 않았고 구청 단위급으로로 중형 체육관들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지금은 대형 체육관만이 살아남는다. 부친은 체육관을 당구장으로 세를 놓았다.
그 시절 10년은 내 인생에서 특별한 경험이다.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으로 설악산 촬영 중 회원을 만난 적도 있는데 " 관장님, 뭐하고 계세요?" 소리도 들었다. 나의 사주에서 읽히는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것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체육관 사업은 제대로만 운영하면 망할 수 없는 사업인데 1년치 선금을 받기 때문에 경영관리가 중요하다. 해봤기에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