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 (風)
태초에 지구는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불덩이 기체였다고 한다. 불덩이가 점점 식어서 오늘날 지구의 모습인 고체가 되었다면, 지구의 첫 모습은 뜨거운 기(氣) 덩어리였을 것이다. 필자가 만물의 원소의 으뜸으로 풍(風)을 꼽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바람이 있었음으로 해서 불(火)이 당겨졌던 것이다. 불탄 자리에는 재가 남아 흙(土)이 형성되고, 재가 흙 속에서 굳어져 금(金)속이 되었으며, 어느듯 물(水)이 고이게 되고, 나무(木)와 같은 생명체가 지구상에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풍-화-토-금-수-목이라고 하는 6행을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 한의학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기(氣)를 강조하면서, 풍(風)을 빼먹고 화토금수목의 5행만을 논하는 것은 도대체 알 수 없다. 자연현상 가운데, 그것도 생명을 이야기 하면서 기의 성분인 바람을 빼먹는다면 숨쉬지 않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최초의 세포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세포는 단백질 등으로 이루어진 생명체다. 최초의 단백질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아미노산의 분자구조를 보면 수소, 탄소, 산소, 질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것들은 사실 공기 중에 무진장 있는 원소들이다. 20억여년 전 이런 것들이 물속이 녹아있다가, 어느 비바람 몹시 불고 번개치는 숱한 날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한데 엉클어지듯 모여 우연히 아미노산의 분자배열을 갖추게 된 것이 생명체의 시작이라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수많은 아미노산들이 만나 서로 조합되면서 다양한 생명체가 나타나게 된다.
우연히 만들어진 생명체가 생명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기(氣)의 영향이 크다. 생명체가 움직이고, 번성하려고 하는 것은 생명적 삶에 대한 신바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바람은 생명력의 원소다. 생명체는 이 바람의 힘으로 자신의 바램을 꾸준히 진화시켜 나갔다. 생명체의 가장 큰 특징은 몸을 움직여 나아간다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력이다. 그 힘은 기(氣)이고, 기의 원소는 풍(風)이다.
풍은 가볍고, 변화무쌍한 성질로 봐서 양(陽)에 속한다고 봐야겠다. 풍은 경쾌하고, 때로는 살랑이며 부드러운 것 같지만, 빠르고 기운이 세다. 풍이 기운이라면, 풍은 우리 몸 안에서 혈액순환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풍에도 음양이 있는데, 양풍(陽風)은 심장으로부터 몸 구석구석으로 나가는 동맥혈이고, 음풍(陰風)은 각 신체기관이나 말초조직, 피부 등으로부터 심장으로 들어오는 정맥혈이다.
그래서 양풍은 뜨겁고, 음풍은 비교적 차다. 한의학적으로 풍을 6장6부와 관련지어보면, 양풍은 심포(心包)라 할 수 있고, 음풍은 삼초(三焦)라 할 수 있는데, 동맥과 정맥을 하나의 장기로 이해하고자 함이다. 양풍은 하강하고, 음풍은 상승하면서, 음승양강(陰升陽降)의 기순환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풍(風)과 화(火)는 양(陽)의 파트너
풍은 운동량이 많아서, 다른 것들을 변하게 하고 서로 작용하게 하는 일을 한다. 이를테면 몸 안에서 풍(氣)이 열을 얻으면 영양분을 산화해서 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하고, 열을 빼앗기면 세포가 산화되어 소멸되기도 한다. 한편, 풍과 화는 짝이 되어 양체질을 나타내는 파트너가 된다.
양인(陽人)은 천성적으로 풍의 속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바람처럼 변화를 좋아해 변덕스럽고, 그래서 산만한 편이며,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가나 모험가들은 대개 양인이다. 소위 역마살이 낀 바람쟁이들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적응력이 빨라 임기응변에 능하며, 재주가 다양하지만, 전문성은 부족한 팔방미인이라면 양인이다. 양인은 말을 하다보면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는데, 감정이 풍부하고 즉흥적인 탓도 있지만, 중심이 안 잡혀서 그런 경우가 많다.
큰소리를 잘 치는 만큼 뒷마무리가 따르지 않아, 좋게 표현하면 용두사미, 나쁘게 말하면 책임감 없는 신용불량자가 되기 쉽다. 일을 할 때도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기 보다는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이다. 그래서 시행착오가 많다. 허풍쟁이가 되든, 신바람난 자유인이 되든, 양인은 바람처럼 어디론가 갈 데가 많고, 무언가 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다.
바람을 만나면 강해지는 것은 불이고, 바람을 막는 것은 철벽이다. 따라서, 풍은 화를 일으키는 상생의 관계를 맺지만, 금(金)을 녹슬게 하고, 또 금은 풍을 가로 막음으로써 서로 상극관계에 놓이는 존재가 된다.
이 풍을 잘 컨트롤 하려면 마음 한가운데 쇠덩어리와추를 달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