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4편. 동해로 떠나요
가슴 뻥 뚫리는 시원한 바다와 구름 벗 삼아 사는 산골 오지가 있는 곳.심심산골은 나에게 위로가 되고 근심 걱정일랑 망망대해에 떠내려 보내도 좋은 곳. 드넓은 동해의 품에 안겨 있는 ‘관동’이다.
산세의 초록과 바다의 푸르름이 선명해지는 이맘때야말로 다양한 매력이 축복처럼 터지는 시절. 이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는 동해 사람들을 만나본다.
1부. 바트의 오십천 따라 삼척 로드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백패킹 여행을 왔다가 이곳 매력에 푹 빠져 아예 정착해 버린 지 5년 되었다는 바트 씨. 그는 평소 자전거 주행을 즐기고, 도심보다는 한적한 시골을 누비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그의 이런 취향에 걸맞게 삼척의 젖줄 오십천을 따라 거니는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시원한 풍경을 자랑하는 죽서루를 시작으로 달리다 보면 천만 송이 형형색색 장미가 수놓아진 삼척 장미공원에 들를 수 있는데 향긋한 꽃 내음이 진동하고 사람들의 들뜬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그렇게 천을 거슬러 깊은 산골에 발길이 닿으면 수백, 수천 개의 돌탑들을 십여년 째 도를 닦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린 한 수행자가 있다. 어떤 인연으로, 어떤 마음으로 쌓아왔는지 그 세월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둘은 인생에 있어 또 하나의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다.
해가 뉘엿 뉘엿 채 넘어가기 전에 오십천의 끝, 동해에 다다르면 53년 만에 개방한 덕봉산 해안생태로가 자리하고 있다. 자전거를 잠시 세워두고 그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종일 누볐던 삼척과 푸르른 동해를 한눈에 마주할 수 있는데 그 풍경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 본다.
2부. 신기리 삼총사
삼척 신기면에 뿌리 내려 물줄기를 시원히 뻗쳐가는 무릉천.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곳간이었는데 그 주역이 바로 이곳에 사는 ‘뚜구리’. 동사리를 일컫는 이 고장 명물 민물고기로 머리가 크고 꼬리가 길게 생겼다.
족대와 낚싯대를 사이좋게 나눠 들고 이곳 무릉천 물가에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신기리 삼총사 이장수 이장님과 그의 선배 권복섭 씨, 후배 김주태 씨다.
초등학교 시절, 낚싯대를 구하기 힘들어 풀에 미끼를 묶어 잡았던 방식부터 바위틈에 낚싯대를 넣어 잡는 일명 ‘구멍치기’까지 갖가지 방법으로 뚜구리 잡기에 열을 올린다. 잡을 때만큼은 천진난만 어릴 적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듯한 세 사람.
다 잡은 뚜구리로 탕을 끓여 다가오는 여름철 대비할 뜨끈한 보양식을 해 먹을 계획. 이 또한 역시 옛 방법 그대로 돌미나리와 비린내를 잡아주는 제피잎 등 채소를 아낌없이 넣고, 집에서 직접 담근 고추장을 푹 퍼 넣어 펄펄 끓인다. 다 된 뚜구리탕 들고 식탁에 모여 앉아 각자 그릇에 덧장까지 하면 드디어 완성이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시원하게 국물 들이키면 기운이 절로 난다는데. 뚜구리로 몸 보양도 제대로 하지만, 추억으로 마음 보양도 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신기리 삼총사의 어릴 적 그 여름 그대로를 재현해낸다.
3부. 도시 어부의 동해 정착기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 속, 네모 속에 갇혀 살던 도시 남자. 네모난 사무실에서 네모난 모니터 안만 들여다보던 IT업 일을 접고 마음이 뻥 뚫리는 강릉 바다로 탈출해 온 권세만 씨.
아내와 아이 셋, 그리고 어머니까지 그의 어부로서의 인생 2막에 기꺼이 동참해 주었다. 아내 이한나 씨는 수도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도시 여자. 어머니 임명숙 씨 또한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아왔지만, 위험한 뱃일을 도와주기 위해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아들 배에 올랐단다.
이제 막 귀어 2년 차 된 세만 씨는 그동안 성실히 일을 묻고 배운 덕에 주문진항 선배들에게 이쁨을 받는다는데. 그들에게 그물 매는 법과 그물 놓는 포인트도 배우고, 새벽 경매장에 나가 새로 나온 어종 공부도 부지런히 한다.
이렇게 24시간이 모자라는 초보 어부의 삶이라 가족들을 챙길 시간이 부족하지만, 한창 잡히는 대구와 광어를 잔뜩 잡아 와 어부로서 최고의 선물을 한다. 그러면 한나 씨는 도시에서는 해본 적 없는 생선 손질과 정성 가득한 요리로 답례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행복을 만들어 가는 새내기 어부 가족의 정착기를 담았다.
4부. 동작골 음악 다방
삼척의 동작골은 본래 독을 짓는 가마터가 있어 독작골이라 불리던 마을이다. 여기 부는 바람은 살결에 와 닿을 때 보들보들하게 느껴지곤 하는데. 이곳에 산들바람과 싱그러운 들꽃 내음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는 김상아, 김민서 부부가 지내고 있다.
3년 전, 부부는 번잡하고 숨 가삐 돌아가는 도시를 벗어나 뭐든지 직접 해야 하는 일이 많아도 오히려 그게 더 큰 행복감을 주는 시골 생활을 택했다.
상아 씨가 건강하고 예스러운 맛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직접 만든 아궁이와 손수 호미로 물길을 내어 만든 연못, 함께 정성스레 가꾼 정원까지 이들 손을 안 거친 곳이 없다. 이렇게 내 손길로 작은 것이라도 해 내는 것이 큰 기쁨이란다.
이곳에 종종 찾아오는 지인들을 위해 라디오 DJ로 오랜 기간 활동했던 상아 씨는 LP 음악을 틀고, 민서 씨는 직접 산에서 뜯은 나물들로 전을 부쳐 진심을 담아 요리한다.
그들은 이렇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선물과도 같이 느껴지는 자연과 함께 행복을 만들며 살아간다.
5부. 두 지붕 한 가족
마을 안에 강원도 삼척과 경상북도 울진으로 뚜렷한 경계선이 존재하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 만큼은 가를 수 없는 ‘고포마을’. 1965년, 강원도였던 울진이 경북으로 편입되면서 나뉘게 되었는데,
현재는 두 지역 모두 합쳐 약 40가구 정도. 한 마을 시절에는 마을을 지켜주던 수호목, 할아버지 나무와 할머니 나무 앞에서 다같이 제사도 지냈지만 지금은 행정이 나뉘면서 이 두 나무도 헤어지게 되었단다.
이 마을에 정착해 6년째 살고 있는 삼척 시민 박영규 씨와 바로 앞집에 사는 고포 토박이이자 울진 시민인 박정낭 씨는 누님 동생 하는 사이이다.
밥때가 되면 정낭 씨가 종종 영규 씨를 불러 그의 한 끼를 해결해줄 한 상을 차려주곤 하는데. 단골 메뉴는 바로 임금님에게 진상되었다던 고포미역으로 끓인 미역국. 된장을 곁들여 끓여 영규 씨는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특별한 맛의 미역국이란다.
이곳 고포마을만의 특별한 이야기, 두 지붕 아래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