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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보다 못해서 억울했다는 이야기 몇
이홍사
누구라도 그러하겠다.
자신을 무시하거나 싫어하는
인간보다
저를 좋아하고 꼬리치는
개가
우선순위!
개보다 못한 놈은 그렇게 생겨나고
주어인 줄 알았는데
주어인 나를 빼버리고 의미가 통했을 때
똬리를 튼 바람은 남은 기지개를 마저 켰다.
*
비행기에 올라와 자리를 잡고 눈을 감기까지 한참을 헤매고, 타기까지 또 어지간히 실랑이를 벌였다. 개보다 못한.
Air Asia 이런 상표를 동체에 붙인 비행기가 있다. 특징이 빨간색인데 아시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상당히 큰 항공사다. 이 항공사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태국, 세 나라의 컨소시엄으로 생겨난 항공사인데 눈치를 보니 동남아를 주름잡고 있다. 항공사로서는 세계서열로 따지더라도 뒤처지지 않음이 분명하다.
이 항공사의 관계자와 잠시 몇 마디 주고 받았는데, 나는 그 아가씨가 개보다 못하다고. 최소한 지금 심정으로는 그렇다.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라 일찍 나왔는데 들고 온 캐리어가 문제가 된 것. 짐이 많은 게 문제였다. 캐리어 옆구리에 붙은 가방을 더 늘리는 지퍼를 열어서 가방을 확장해야 마땅할 정도. 예약한 탑승권을 끊으며 짐을 부치려는데 탑승권을 끊던 그 아가씨가, 가방 안에 혹시 라이트나 핸드폰이 없느냐고 물었다.
가스 라이트는 없지만, 핸드폰은 중고 두 개가 있는디유? 휴대전화 보조 배터리만 안되는 거 아녀라우?
그렇게 다시 물었는데 단호하게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부치는 가방이 컨베이어를 타고 검색대에 들어가면 바로 이름을 불러 가방 검사를 한다는 거.
난감했다. 가방 안에는 술이 들었다. 양주! 농협에서 보너스로 점수가 나와 구판장에 가서 받은 것인데, 더운 나라에 가서 거래처에 선물하려고 넣었는데 그런 가방은 기내로는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모든 액체는 100ml이 넘으면 기내 반입 제한이다.
술도 있고, 가방을 다시 정리해서 집으로 택배로 보내든지 어떻게 할 터이니, 그냥 탑승권만 끊어 주세요.
그렇게 탑승권을 받아서 공항 저쪽 구석진 데 가서 가방을 다시 정리했다. 다른 건 메고 있던 배낭에 좀 옮겨 담고 술과 몇몇 가지는 짐으로 보내려고 공항 저쪽에 붙은 택배 대리점을 찾아가니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은 상태.
난감했다.
다시 구석진 자리로 가서 짐을 풀고 술을 뺀 나머지는 배낭에 더 담고 양주는 마침 옆으로 지나가는 공항의 환경 미화원, 그 아저씨에게 못 가져가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고 줘버렸다. 공항에서 그런 물건을 주면 오해를 받는다. 양주라고 밝히고 주지만 어떤 내용물이 들었는지 모르기에, 그런 상황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꺼리겠지만 매일 공항에서 일하고 그런 루트를 빤히 아는 사람은 이해하고 받는다.
아까워서 어떻게 해요?
이거 때문에 짐 값이 더 듭니다. 상관없어요!
그렇게 가방을 반으로 줄여서 검색대를 통과하고 탑승해서 자리를 잡고 있으니 탑승권을 끊어주었던 그 아가씨가 기내에 내 자리까지 찾아왔다. 절대로 짐을 어떻게 부쳤는지 승객의 편의를 위해 찾아온 게 아니다.
손님 캐리어는 어떻게 하셨죠?
왜요? 집으로 택배로 보냈구만유!
실은 거 아니죠?
그 말을 들으니 짐을 세 번이나 다시 꾸리며 속이 상했던 게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다소 거칠게 나간 목소리!
이봐요. 아가씨! 실었으면 어떻게 하려고? 짐값 받으려고 온 거요? 참 지독하네. 에어아시아! 짐값 받으면 아가씨한테 수당이 더 나가나요? 검색대에서 물어보니 핸드폰은 상관이 없다는데? 아가씨가 잘못 알아서 집으로 부치지 못한 술 한 병을 그냥 버렸잖아요? 이 에어아시아가 사고가 자주 나서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다 드네요. 왜 그런지 알아요? 회사 망하고 아가씨 잘리라고! 알았어요? 짐값을 그렇게 받고 싶어 여기까지 찾아와 난리유?
부근에 앉은 다른 승객들이 다 들었고, 기내에 이미 다른 손님들이 다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아가씨가 승객과 맞붙어 싸우겠는가? 내 속이야 풀렸지만, 죽을상이 된 그 아가씨는, 그게 아니라 잘 다녀오시라고, 말을 흘리며 나갔다는 얘긴데, 이 에어아시아는 참 지독하다. 에어아시아는 매일 인천공항에서 취항하는 항공이기에 한국 처녀를 상시 직원으로 쓰고 있다.
서비스로 점수를 책정하자면 제로다. 물론 저가로 띄우니 기내식은 없는 게 당연하고 승객에게 물 한 모금도 그냥 주지 않는다. 기내에서 커피를 시키면 나오는 게 직접 끓인 고급 커피가 아니라 한국의 인스턴트커피, 200개들이 큰 통이 이만 원 남짓이니 하나에 백 원쯤 먹힌다는 얘긴데, 그걸 타서 종이컵에 한 잔 주고 4달러를 받는다. 백 원 투자해서 근 오천 원을 남기는 장사! 그걸 에어아시아는 서슴없이 항공사. 그리고 승객이 들고 타는 짐도 개찰구 앞에 저울을 놓고 무게를 달아서 짐값을 추가로 받는 고약한 항공사인데 한국의 인천 공항 공사에서 그게 다른 승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니 여기서는 하지 말라고, 계속 그 짓을 하면 취항 금지한다고 난리를 쳐 인천공항에서는 저울이 없는데 쿠알라룸푸르나 자카르타, 방콕은 다르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이나,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다른 항공사는 탑승구 앞에 저울이 없는데 에어아시아만 놓고 배낭의 무게를 측정하는 지독한 항공사다.
탑승권을 끊으면서 짐을 부쳤으면 방콕에서 갈아타더라도 짐은 자동으로 연결편으로 옮겨 실려 미얀마에 가서 찾으면 되는데 방콕에서 갈아타며 기어이 이 짐을 지고, 또 끌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일었다. 공항에서 짐을 세 번이나 다시 쌌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개보다.
짜증을 버리고 좀 진정하자고 생각하며 의자에 등을 묻고 눈을 감았다.
더듬어 보니, 시대의 요구가 많다.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규칙이나 법규가 많은 세상! 어떤 세상에 살더라도 가끔 황당하게 당하는 억울한 일도 더러 있는 법인데, 짧은 기간 머물다 돌아가며 내게는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다소 괴상해진 내 나라를 잠시 되짚어 본다.
거두어 갈 발자국을 불러 모으는 심정으로 지난 삼 주 간에 일어난 일을 찬찬히 짚어 보는데, 언성을 높였거나 말거나, 비행기에선 문을 닫는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고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은 사이 빨간 비행기는 활주로를 향해 서서히 동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여덟 시간 반 후면 비행기는 더운 나라에 도착할 테고 이미 도착할 나라의 시차와 날씨를 생각해서 윗도리 재킷은 벗어서 구겨지지 않게 잘 접어서 배낭에 넣어 선반에 얹은 다음이었다. 겨울 나라에서 여름이라는 계절로 날아가는데, 그것도 갈아타는 짬까지 포함해서 고작 여덟 시간 반, 세상 참 좋아졌는데, 맘은 그렇지 않다. 눈을 감고 한 달이 좀 못 되는 날을 머물며 보낸 시간을 들추어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말!
창백한 나라!
핏기를 잃은 인심!
인심이란 뭔가? 정말 사람의 마음인가? 본심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 단어의 의미나 어원의 의미를 파악하니 입안이 약간 떫다.
입국하기 전에 현지인들에게 주문 받은 것들은 다 채우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아주 오래전, 빛바랜 기억이 슬며시 밝혀지는데, 그 빛바랜 기억이 작금의 현실인 듯한 착각! 군에 있을 적에 선임들이 내민 500원짜리 동전이 눈에 어른거려서 지루할 정도 긴 비행시간에 잠이 제대로 올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고약한 기분이 먼저 든다.
군에 있을 당시에 선임들이 동전 하나를 내밀고 사 오라는 주문은 담배와 라면부터 시작해서 우표 열 장. 당시에 우표 한 장에 얼마였는지 금액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육군 일병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2700원의 월급은 그런 곳으로 쓸려 들어갔는데 지금 출발하는 비행기가 내리는 곳에서는 또 그 선임들의 그런 식으로 주문한 눈망울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
지적하고 싶은 게 상당히 많지만, 핸드폰의 얘기부터 하자.
이번에도 마찬가지지만,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가서 설을 쇠고 온다고 소문이 나면 주문이 들어온다. 직접 알게 된 놈,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여편네, 저쪽 거래처 매니저나 직원, 가정부로 일하는 에모의 친구 등 그런 데서 들어오는 주문은 바로 한국의 핸드폰!
물론 중고를 말하는데 인천공항에 내리면 그런 중고 핸드폰을 파는 가판대가 쫙 늘려 뒤져보고 고르면 된다는 듯이 주문하는 현지인들. 가격과 색상, 기종을 뒤지며 마구 고르면 된다는 듯이 주문하는 사람들. 한국에서 생산하는 핸드폰은 고장이 없고 배터리 수명이 길어 좋다는 건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천공항에 내리면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런 중고를 늘어놓고 파는 가판대는 없다.
어디서 찾아냈는지, 어떤 모델 핸드폰의 사진과 가격까지 보여주는데, 그건 어떤 특정 통신사에 가입해서 얼마짜리 요금을 계약했을 적에 살 수 있는 가격이고 그 모델의 공기계를 살 적에는 그 가격이 해당 사항이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 오천 원짜리 카드를 사서 카드번호를 핸드폰에 처넣어 오천 원어치 사용할 수 있는 통화 권리를 얻는 사람들에게 그 특정 통신사의 요금제와 보조금을 설명하기란 참 힘들다. 어렵게 얘기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고.
그런 주문은 이번에도 다섯 개를 받았는데, 구한 건 겨우 세 대! 그것도 주문과는 가격이나 모델에서 약간 차이가 나거나 색깔이 다른 물건들이다. 이걸 전하면 분명히 모델이나 핸드폰 색상으로 트집을 잡거나 가격에서 딴지를 걸 터이지만 지난번과는 달리 약간 진화된 방법으로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고 전달할 작정이다. 나랑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 미얀마인은 고마움이나 은혜를 모르는 족속인데, 왜 금전적인 손해를 봐? 말도 안 되지.
이번에는 주문한 다섯 명을 한꺼번에 전부 불러놓고 그대들께서 주문한 물건은 모델이 이미 단종되었거나 중고가 없고 가격도 상이하다. 하여 세 대를 준비했으니 절박하게 핸드폰이 꼭 필요한 인간은 눈높이를 바꾸어 이 물건에서 마음에 드는 걸 가져가라, 한국에서는 이게 인기가 있는 물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한국으로 가져가겠다. 수틀리면 나중에 물건을 돌려주겠다는 조건으로 산 것이다.
책상 위에 펼쳐놓은 핸드폰에 가져가는 조건을 그렇게 살짝 비틀며 구하러 다닌 기름값까지 얹어서 가격을 제시하면 쟁탈전이 일어날 게 분명할 터. 아마도 서운하다는 말은 쏙 들어가고 가져간 그 모델을 인터넷으로 또 찾아보겠지.
인천공항에 중고 핸드폰을 파는 가판대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런 곳이 없었기에 핸드폰 중고를 구하는데 상당한 애를 먹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건 비싸다는 말을 듣고 물건을 구하는데, 친구가 일러준 당근마켓이라는 새로운 구매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바로바로 거래되는 동네 사이트! 그런데 이 방식은 철저한 익명성을 요구, 인정머리라곤 없는 참말로 희한한, 희한함으로 수식할 수밖에 없는, 단절과 차단으로 얼룩진 상거래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하기도 했다. 자기 전화번호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당근마켓 거래 요강에 그런 수칙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걸 그 접촉 사이트의 문자 메시지로 주고받는다. 내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전화를 해달라고 하면 전화가 오지 않는다. 왜? 전화가 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당근마켓을 알려준 타이어 가게의 친구에게 물었더니.
거기서 전화하면 그 사람, 물건을 팔겠다는 사람의 전화번호가 네 핸드폰에 뜨잖아? 이 친구야!
그게 어때서? 그게 뭐가 잘못됐는데?
야! 이 등신아! 하는 눈빛을 보내는 친구의 설명을 들어보니 물건을 팔겠다는 사람의 전화번호가 사겠다는 사람의 핸드폰에 뜨기 때문에 그걸 싫어한다는 거. 누구인지도 모르고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물건에 하자가 있거나 맘이 변하면 교환이나 환불의 요구! 그게 곤란할 뿐만 아니라 생각하지도 못한 언어의 성추행이나 치근덕거림의 차단을 위해 번호를 일러주지 않는 완벽한 익명! 듣고 보니 그것도 이유가 될 거 같긴 한데 거래하려면 여러 번 메시지를 주고받아서 어느 아파트 앞 편의점 앞에 서 있다고 했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또 그 사이트로 들어가 판매자에게 다시 문자를 보내야 한다.
무슨 이런 거래가 다 있어? 여기 편의점 앞에 왔다. 그대가 보이지 않는다. 흰색 승용차다.
차의 기종까지 메시지로 보내는 기분이란, 이게 무슨 도둑놈 장물 거래나 간첩의 접선 방법이 떠오르게 되는데 내 거래 방식으로는 그게 허락되지 않고 이렇게 못 믿을 세상으로 변해버린 시대를 탓하며 다시는 이런 거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번호를 알면 성추행?
세상이 이렇게 변했나? 의심이 들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변하긴 했지!
인천공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높이를 살짝 조정해야 한다. 눈길을 줄 데가 없다는 얘기. 얼른 시선을 바닥으로 깔아야 한다. 가령 버스표를 끊으려고 줄을 서 있다가 다른 줄에 선 여성과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생기면 그게 죄악시된다.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변태를 쳐다보는 듯한 혐오의 눈빛, 나라가 미쳤지. 얼른 고개를 돌리는데, 픽, 가소롭다는 듯이 흘리는 미소란 내 눈길에 혹여 성추행이나 변태의 눈빛이 묻은 게 아니었나 돌아보게 된다는 말씀.
버스를 타면 그 순간부터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시선을 내 발등 위에 고정해야만 했다.
참 고약하게도 변했다.
픽, 고개를 돌리는 여자들의 눈빛. 그건 방어를 넘어서 공격용 무기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처량한 내 조국! 웅얼거리며 말의 파편을 씹고 또 씹어보게 된다는 말.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 단박에 비교하게 되는데 그렇게 줄을 서 있다가 다른 줄의 여성과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생기면 그게 왜 그대만의 잘못이야? 하는 투로 마주친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면서 고개를 까딱하고는 살짝 미소까지 날려주곤 머쓱해진 시선을 거두어 가는데 이 상황을 비교하면 여태 챙기며 자랑거리로 여기던 미풍양속은 어디로 갔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허구한 날 날아오는 보이스 피싱이나 성추행 예방법! 공익광고라곤 하지만 그게 사람 사이를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놓는지.
아무튼, 당근마켓이라는 그 거래는 추천할만한 상거래가 아니라는 점. 그토록 비정하게, 비인간적으로 무시를 당하며 핸드폰 세 대를 구했는데 이게 또 여름 나라에 가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고 원했던 사람들에게 넘겨줄 수가 있을지.
만약에 이번에도 맘에 안 든다. 비싸다. 질타나 원망이 약간이라도 묻은 소리가 들리면 바로 문을 닫아걸고 다시는 그런 주문은 아예 귀에 담지 않고 원천 차단할 터.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는데 비행기는 이륙 준비로 잠시 주춤하다가 서성이고. 관제탑의 지시를 기다리는가?
핸드폰을 내게 주문한, 상황을 모르는 현지인들이 뱉는 사소한 소리에 혹시, 내가 너무 민감한 거 아닌가? 그래도 지금 돌아가는 여름 나라는 인정머리로 따진다면 우리나라보다 후하다. 최소한 흡연자에게 그렇다.
한국에서 좀 불편하게 작용했던 게 흡연구역이었다. 흡연자들 입장에 서서 본다면 인정머리가 아니라 관대한 나라가 바로 돌아가는 나라다. 식당 어디를 가도 재떨이가 있다.
식당이나 찻집마다 재떨이라?
이걸 다소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번에 들어와서, 들어와서?
방금 이륙한 비행기 안이니 이제는 공간의 시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그게 잠시 헷갈리기도 하는데, 들어와서? 들어가서? 어느 게 맞나? 말이 좀 헷갈리는데. 아무튼, 지난주에 인천에 잠시 갈 일이 있었다.
서울이나 경인 지역에 갈 일이 있으면 나는 차를 가져가지 않는다.
첫째 이유는 운전이 피곤하고 기름값이 많이 든다는 사실에 그냥 구미역 뒤편 공터에 주차를 시켜놓고 구미에서 기차를 탄다. 다른 사람들은 서울로 가면 KTX를 탄다는데 KTX 역이 있는 김천 구미역으로 가자면 승용차로 거의 삼사십 분이 걸리는데 겨우 한 시간 빨리 가자고 그곳으로 가지 않는다. 그리고 KTX 역사는 주차료가 하루 만 원이다. 하여 구미역에서 무궁화나 ITX를 타는데 그날도 구미역에서 기차를 탔다.
기차 이야기를 하니 그날 생긴 불상사를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차를 타면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한다든지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방송이 나오는데 그걸 흘려들었던 모양. 아니 흘려듣지 않더라도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바꾸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만, 카톡이 온다고 울리는 카톡! 한 음절에 옆에 앉은, 적당히 늙은 작자가 힐끔 바라보는 경멸스러운 눈빛이란.
아저씨! 공중도덕 몰라요? 카톡 소리에 놀랬잖아요?
아저씨라는 하찮은 호칭도 마뜩잖거니와, 한번 날아온 카톡 소리를 흘려 들어버리는 배려 없이 무참하고 무안하게 바로 화살이 날리는 데 은근히 기분이 상했던가,
역시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좋아서 꼬리치는 개보다 나을 게 없는, 탁! 까놓고 다시 말하면 개보다 못한.
그 말을 웅얼거리던 잠시 후, 열차의 차장이라는 작자가 지나가길래 팔을 슬쩍 붙들었다. 왜 그러시느냐는 차장의 눈빛을 붙들고 주위에서 들리도록 목소리를 조금 높여 말했다.
다른 데 빈자리가 없나요? 이 아저씨한테 고약한 냄새가 너무 나서요. 하도 맡아서 머리가 다 지끈거리네요.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옆자리의 작자, 고스란히 들었는지 제 팔뚝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느라 끙끙대는 사이 다음 칸의 다른 자리로 옮겨 가버렸다.
제 몸에서 나는 냄새를 제 코로 맡을 수 있는가? 모르겠다. 무슨 냄새냐고 우기거나 따지면 맡는 사람이 난다는데 어쩔 거야? 내뱉는 말에 묻은 냄새가 고약하다고 하면 말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서울역까지 끊었는데 수원을 지나면서 생각하니 서울역까지 갈 게 아니라 영등포에 내려서 인천행 전철을 갈아타는 게 시간상 편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영등포에 내렸다. 서울역에서 만나 인천으로 동행할 김 선생에게 영등포에 내린다고 했더니, 김 선생이 서울역에 나왔는데, 거기서 1호선을 타고 영등포역 전철 플랫폼에 잠깐 내려서 만나 안내하겠노라 했다. 차를 가져가는 것보다 기차를 이용하면 드러나는 단점 하나.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고 애연가 수준을 넘어서 골초 반열에 드는 내가 흡연 욕구를 다스리는 일인데 잠시 짬이 생겼으니 영등포역 뒤편으로 나갔다. 그런데 담배를 피울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금연! 벌금 10만! 금연 구역! 금연! 전봇대와 가로등 허리마다 붙은 경고성 딱지가 얼른 들러보아도 열댓 개가 넘어 도배 수준.
그래도 그 광고 아래서 피우는 작자가 있긴 있더라만, 거기서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우면 담배 맛이 제대로 나겠는가? 맞은편 골목으로 한참 올라가서 전봇대 아래서 한 대를 피우고 내려왔는데 흡연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나라, 왜? 라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겠지.
당신의 건강을 위한 공익 홍보!
그래? 그렇게 국민 건강을 생각해서 금연을 외칠 바엔 화끈하게 담배를 생산하는 일을 국법으로 중단시키면 간단하지 않나?
뭘 붙이고 홍보를 하고 난리를 떨어?
법 잘 만들고, 법 좋아하는 국회의원들이 탕탕탕 나무망치 세 번만 두드리면 만사가 해결될 간단한 법치국가인데.
담배생산과 수입을 전면 중단하라! 국법으로 통과시키노라! 간단하잖아?
개고기를 처먹지 말라는 법도 통과되는 마당인데 그런 법이야 간단하게 통과될 터, 국법으로 금연을 차단한 나라가 없나? 세상에는 분명 그런 나라도 있지. 보르네오섬에 있는 브루나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낀 이 작은 나라는 국교가 이슬람이라 술탄국인 나라인데 국토 전체가 금연 구역이다. 그 나라에선 담배 판매는 물론, 수입하지 않으며 외국 관광객이 담배를 가지고 들어가다가 공항 검색대에 걸리면 압수하고 보관하다가 출국할 적에 돌려준다.
그 나라에 직접 가본 적이 있기에 자신 있게 말하는데, 어느 마트나 편의점을 가도 진열된 담배는 없었다. 국법으로 담배생산과 판매를 중지해도 아무런 부작용이나 병폐가 없이 나라가 잘 돌아가는데 영등포역 뒤에 도배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그 공익광고가 아니라 경고성 문구에 범법자가 된 기분으로 다시 역으로 향하는데 지독히 남을 배려하는 친절하고 경건한 인심은 그냥 두지 않는다.
저놈을 천당으로 보내야 한다. 지옥으로 떨어지면 곤란하다. 천당으로 가라고 팔짱을 끼며 역사 위에까지 따라 올라오는 아주머니!
잠깐만요, 지금 좀 바쁘게 인천 가는 길인데 갔다가 금세 천당으로 따라갈게요. 제발 따라오지 마시고 먼저 가서 좀 기다리다가 천당에서 만나요.
세계 어느 나라를 가고 그렇게 친절하게 사후의 세계까지 걱정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영등포도 그런데 서울역 앞에 나가면 정도는 더 심하다. 서울역에 내릴 일이 있으면 항상 그게 걱정. 걱정이라기보다는 귀찮기도 하고 눈으로 보기에 결코 즐겁거나 아름다운 일은 분명히 아니다.
비행기는 이륙을 위해 전속력으로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단시간에 가속 시키는지 관성의 법칙으로 몸이 의자 뒤로 딱 붙여진다. 몇 시간을 날아가서 두어 달 있다가 아들 녀석 결혼식 즈음에 다시 들어올 터인데.
청첩장이라는 고지서!
녀석의 결혼을 생각하다가 청첩장이 고지서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녀석이 며칠 전에 인쇄물이 나왔다며 가져온 건 청첩장이었다. 요즘은 카톡으로 청첩장을 보내는데 하기 좋은 말로 모바일 청첩장이란다. 우편으로 보내는 것도 그따위 말을 만들어 카톡으로 날리는데 몇 년이나 지나도록 전화는 고사하고 카톡 한 번 보내지 않던 놈이 불쑥 카톡이 날아왔는데, 누구와 누가 사랑하니 생을 함께 하겠단다.
못마땅한 건, 적당한 한마디 덧붙여 보내면 덜 서운할 것인데 딸랑 모바일 청첩이라는 사진만 보내니 고지서를 받는 듯한 기분. 그 안에는 당연히 축의금 받을 계좌번호가 들어 있을 거고.
그렇게 고약한 청첩장이라는 고지서는 보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녀석이 가져온 인쇄물 청첩장에 보내야 할 데 주소와 이름을 써서 책상 위에 두고 왔다. 아직 보내기에는 이르고 적당한 날짜에 아내에게 카톡으로 연락해서 사무실 책상 위에 써 둔 걸 우편으로 보내라고 하면 될 일이고 나머지 가까운 사이는 모바일 청첩장으로 대신해도 무방하게 장만해놓고 나선 길.
결혼식에 축의금으로 성의를 표시하며 축하하기? 아니면 돕기?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관행이다. 아주 있는 집에서는 축의금이나 화환 절대 사절이라는 문구를 넣은 청첩장을 돌리기도 하더라만 성의를 표시한 게 아니라 빼앗긴 기분이 드는 청첩을 받은 적도 있으니 그런 문구를 넣기도 뭣하고, 단 한 군데는 축의금을 사절한다는 연락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지역 종교 모임의 단톡방에 축하한다는 글이 줄줄이 쇄도했다. 아직 결혼식이 두 달이 넘게 남았는데 보통 멋쩍은 일이 아니라 분명히 축의금은 사절할 터이니, 부디 그날 참석하시라고. 맛있는 음식을 넉넉하게 주문하겠다는 답글을 달았다. 그 모임은 모두 연세가 지긋해 연금 이외에는 일정한 수입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 어쨌거나, 축의금이란 주지도 말고 받지도 않는, 꼭 성의를 표시하고 싶으면 간단한 선물 정도에서 그치는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는데, 너무 과분한 사회구현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바일 청첩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고부터 희한하게도 청첩을 받고, 묵언의 고지서를 받은 듯 심기가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도 오래 연락이 없어서 얼굴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한 친구나 이름조차도 기억에서 희미한 옛날 거래처 지인이 불쑥 카톡으로 보내는 경우, 이 친구가 내 아버지 돌아가셨을 적에 부조라도 했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정작 보낸 이의 이름조차 기억의 수면 아래로 내려가 더듬어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최소한 내가 보내는 청첩을 받는 이는 그런 생각이 들도록 하지 말아야 마땅한 터.
모바일 청첩을 날리기 전에, 친구야! 참 오랜만에 소식 전한다, 아들 장가가는데 자네한테는 연락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이런 문구나, 형님! 저도 이번에 딸 시집보냅니다, 최소한 이런 정도의 메시지를 먼저 날리고 그 뒤에 모바일 청첩을 날리면 그렇게 서운하진 않을 건데, 딸랑 청첩 파일 하나만 날리면, 이 친구가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나 싶기도 하고.
부고는 갑자기 당한 일이라 경황이 없다고, 쳐서 그렇게 날려도 이해를 하겠는데 청첩에서 그런 방식이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아무튼, 머지않아 아들 녀석이 만들어서 파일을 날리겠지만 그걸 전달할 때는 분명히 이 점을 주의할 터. 그리고 집에서 우편으로 보내는 청첩장은 아내에게 이미 주의사항을 얘기하고 나선 길이다. 어떤 경우라도 빠른 우편이나 등기로 보내지 말라고. 청첩을 그렇게 보내는 이가 있는데 청첩이란, 받거나 말거나, 오시거나 말거나 그냥 일반 우편으로 보내야 마땅하다. 등기나 빠른 우편으로 보내면 받는 이가 집에 없는 경우 집배원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날아가는 세상이다. 언제 다시 배달하겠으니 받을 준비나 하라고, 참 친절한 세상이 되어 그런 메시지가 오는데 누군지도 모르고 어떤 성격의 우편물인지도 모르고 신경을 잔뜩 써서 받았는데 그게 청첩장이면 어지간히 난감하더라는 말.
이륙한 비행기는 고도를 높이고 있다. 삐딱한 비행기의 작은 창으로 햇빛이 강렬하게 비치고 들었다. 잠시 후에 점심이라고 식사 주문을 받을 터, 아침이라기는 너무 늦고 점심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식사, 그걸 먹고 눈을 좀 붙여야 할 일이지만. 제공이란 다른 항공사에나 해당하는 일이고 이 비행기 적어도 에어아시아는 그런 게 없다. 갈아타는 곳까지 여섯 시간이 넘는 비행이 따분하기 짝이 없을 터. 집에서 새벽에 한 숟갈 뜨고 나왔으니 눈을 붙이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 도착하는 나라와 두 시간 반의 시차가 있으니 내리면 초저녁이니 가정부가 둘이나 있는데 집에 들어가서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달라고 하면 짜증이야 못 내겠지.
청첩장이라는 묵언의 고지서.
고지서라니 생각난 건데, 아내가 며칠 전 우편으로 날아온 고지서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당신 거유? 난 이리로 지나간 일이 없는 디?
아내가 내민 건 경찰서에서 날아온 우편물인데 속도위반에 대한 과태료 납부 고지서였다. 조수석을 까맣게 가린 승용차의 사진이 박혀 있는 고지서는 내 이름으로 된 승용차인데 외국에 머무는 동안 아내가 타고 있었다. 잠시 귀국해서 며칠 끌고 다녔는데 학교 앞 시속 30킬로라는 준수사항을 위반했다는 내용으로 단속 카메라에 찍힌 곳은 신평동 고갯마루 장안아파트 앞. 그곳에 학교가 있었던가? 생각하니 신평초등학교 뒤였는데 이건 억울하다. 위반한 속도는 13킬로라고 적혔는데 시속 43킬로에서 육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했다. 시속 43이면 요즘 차로서는 엉금엉금 기는 상태가 아니야?
억울하다.
어느 개새끼가 이런 법을 만들었어?
입에서 바로 쌍욕이 나왔는데 욕설에 아내가 깜짝 놀라는 눈치. 놀라거나 말거나. 일명‘민식이법, 이라고 했다. 정작 그 법을 제안한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는 음주운전 전과가 두 번이나 있는 야당 작자로 알고 있는데 국회 본회의장에서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뒤에 뿌리처럼 들러붙은 다른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학교 앞에서 아이들이 교통사고를 많이 당한다고 눈물로 피력했다. 그렇게 급하게 제조된 법이 만들어서 학교 담장에서 150 미터 이내는 시속 30킬로를 준수하라는 법. 전교생이 고작 12명인 시골 초등학교 앞에 일요일 밤 자정에 왜 30킬로를 준수해야 하는지? 만약 그 차에 위급한 환자가 타고 있다면 그래도 30킬로를 지켜야 하는 건지, 도로에서 보행자의 인권만 있고 운전자의 배려는 없는지. 그 고개를 넘으면서 내가 낸 속도는 시속 43킬로였는데 육만 원? 요즘은 차량 성능이 좋아 가속기에 발만 얹으면 시속 60은 가뿐하게 나오는데 43킬로라면 상당히 느린 속도인데 비정한 카메라에 찍혀 과태료 고지서가 날아온 거. 이런 고지서가 날아오면, 아이고! 내가 잘못했었구나! 반성해야 마땅한데 억울하다는 기분이 드는 건 뭔가?
함정 단속에 걸린 듯한 고약한 기분이란! 그 고갯마루에는 학교가 없다. 아니 있긴 있다. 사 차선 도로에서 한참 떨어져서 삐딱하게 학교 뒤쪽 담 모퉁이가 단독주택 뒤에 붙어 있는데 그게 도로로부터 150 미터가 되지 않는 모양, 학교 교문은 반대쪽 간선 도로에 붙어 있는데. 정작 그 간선 도로에는 과속 단속 카메라가 없고 과속 방지턱 두 개가 있을 뿐, 참말로 누구를 위해서 그런 카메라를 설치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호하며 억울한데 그렇게 거두어들인 과태료가 과연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되는지?
역대 어느 대통령 하나는 단 오 년의 임기에 500조의 국채를 지우는데? 그런 수준의 과태료는 조족지혈이 아닐는지? 생각하니 단 오 년간 나라 살림을 어떻게 했길래 오백조의 국채를 늘릴 수가 있는지. 오 년에 오백조라면 하루에 얼마야? 오백조를 아라비아 숫자로 적으려면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 미처 나는 그 동그라미 개수를 알지 못하고 있다.
과태료 납부 통지서를 펼쳐 들고 한참 들여다보니 13킬로 위반인데 육만 원, 20킬로가 넘는 위반이면 과태료는 더 올라간다고 밝히고 있었으며 운전자가 누구인지 경찰서에 찾아와서 소명하면 과태료를 20%를 감해주는 대신에 운전면허에 벌점이 15점 추가되며 군소리 없이 아래에 적힌 가상계좌로 송금하는 경우 10%를 감해서 오만사천 원만 내면 벌점 없이 깨끗하게 처리된다는 안내 문구!
10%를 차감해준다? 참 더럽게 국민을 생각해주는 복지국가네!
그런 욕설을 또 했었는지 모르겠는데 앉은 자리에서 폰뱅킹으로 가상계좌로 송금하고 고지서를 찢어버렸다. 정말 이래도 되는 일인가? 시골의 면 단위, 전교생이 고작 열한 명인 학교 앞을, 왜 일요일 밤 열두 시에 시속 30킬로로 달려야 하는지 그 카메라를 요일과 시간대에 따라서 조정할 기술이 정말 없는 건지? 가공할 정도로 발전했다는 IT 국가에서 정작 그런 정도의 기술이 없는지? AI 인공지능으로 운전자가 없이 시내버스가 자율 주행을 시험적으로 하는 시대에 누구를 위한 단속 카메라인지 정작 교문에서 생각 없이, 정말로 사정없이 튀어나올 초등학생들을 위한 건지?
그걸 생각하면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지 않고 견디는 이 나라의 성숙한 국민,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는 고도를 높여 구름을 뚫고 들어와 안전권에 들어섰는지 벨트를 풀어도 좋다고 머리 위의 사인이 켜졌다. 벨트에서 풀린 해방감 때문인지 승객 몇은 화장실에 가려는지 일어서는 이도 있었다.
커피라도 조금 마셔야지!
일러서 선반에 든 배낭을 내렸다. 기내에 액체 반입은 불가하지만, 검색대를 거치고 출국 수속을 마친 다음 면세점에서 파는 커피나 음료수는 기내 반입이 허용된다. 면세점에서 사는 커피나 음료에는 위험물을 절대로 담을 수가 없어 믿을 수 있다는 얘기. 이 항공사는 커피나 음료수 대접이 없다는 걸 알고 면세점에서 미리 준비했다.
성숙한 국민?
정말 복지국가의 성숙한 국민인가?
복지와 성숙을 생각하던 부분에서 보풀이 일기 시작했다. 좋은 기억을 안고 가야만 체류하는 동안 맘이 편한데, 왜 이리 입맛이 떫은지? 복지국가라고 하니 바로 건강 보험료가 떠오른다. 일 년이 넘도록 외국에 체류하며 한 번도 이용하지 않는 병원인데 건강 보험료 밀린 것까지 납부하고 가는 길. 아내는 늘 그 부분에서 못 마땅해하며 눈을 흘기곤 했다. 건강 보험료를 은행에 자동 납부 계좌로 등록하면 되는데 굳이 고지서가 날아오도록 한다는 데 대한 불평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건강 보험료가 나오고 나는 나대로 또 따로 나오는 건 주소가 같지 않은 까닭. 아내는 지금 사는 상가 건물로 주소가 되어 있고 나는 아직 농지가 남은 고향으로 주소가 되어 있다. 그래야 농지법에서 투기로 보지 않고 전답을 팔 적에 양도소득에 대한 세금이 절감된다는 희한한 법,
언제 병원을 급하게 찾을지도 모르는데 내야 마땅하죠! 보험이잖아요? 보험!
아내는 그렇게 말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상당히 불편한 제도다. 이 나라에서 건강 보험료를 많이 내는 사람은 한 달에 얼마쯤 낼까? 이천만 원이 넘게 내는 사람도 있다. 한 달에 건강 보험료 이천만 원? 놀라기도 하겠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 예전에 한국에서 잘 돌아갈 적에 나도 한 달에 150만 정도가 나왔는데 개인사업자로 소득이 상위권이고 재산이 많으면 그렇게 나오는 게 엄연한 현실. 그런 사람은 바빠서인지 몰라도 일 년에 병원을 한 번도 안 가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데, 라고 단서를 붙이면 반대쪽을 들먹이게 된다는 얘긴데, 그래도 이 말은 해야 하겠다. 정말 그런데, 전라도에 사는 어느 할머니는 한 달에 건강 보험료 만이천 원 내며 병원을 얼마나 다녔는지 일 년에 약을 만이천구백일 분 치를 타간 할머니도 있다. 건강보험 공단의 통계에 나온 사실이다. 전산으로 드러난 집계이니 거짓말이야 아니겠지. 이런 할머니가 건강 보험료 수가를 다 올린다는 이야기인데, 한 병원에서 같은 종류의 약을 석 달 치 이상을 주는 일은 드물다. 그렇다면, 이 할머니는 자고 나면 병원 두세 군데를 순례하는 게 일일 것이다. 천이백구십 일이 아니고, 일만이천구백! 그 숫자를 일 년, 365로 나누면 하루에 며칠 분의 약을 먹는다는 얘기야? 계산기를 꺼내 들지 않고는 계산이 되지 않는 숫자인데, 그 할머니가 무료라고 생각하는지, 과연 누구의 돈으로 자신이 먹을 약을 챙기는지 알기나 할는지?
그 할머니가 타간 약의 날짜를 생각하면 두통약이 필요할 지경인데, 그 문제로 병원을 찾아 약을 타면 전 국민의 보험료 수가는 더 올라갈 거고, 그 할머니 신약의 항생제 성분에 절어 죽으면 육탈이나 될는지, 그 할머니 죽은 다음 육탈 걱정을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먼 길 떠나며 왜 내가 해야 하는지?
복지국가의 성숙한 시민정신으로 무장한 그 할머니!
그 할머니가 건강보험의 선진화된 시스템을 명백하게 증명하는 셈이지만 그 통계를 알아버린 심기는 상당히 불편하다. 개보다 못할 수가 있다. 최소한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보다는.
보험이라고 하니 또 생각하는 게 있는데 바로 정비공장의 수리 중에서 보험 수가가 그렇다. 이건 들춰보면 상당히 비합리적. 비합리적이 아니라 비정상적 행위에 가깝다. 자동차 추돌 사고로 정비공장에 고치러 가면 공장의 책임자가 바로 묻는 말이 있다.
이 말을 하기 전에 한가지 밝힐 사실은 지나가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 두 대가 다 찌그러지고 부서진 현장을 보면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 사고에 내 돈이 묻어나간다면 이해가 되는지? 그걸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그 사고에도 반드시 내 돈이 묻어나간다. 손해보험이라고 하지만 보험회사는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법. 그런 잔챙이 사고들을 모아 일 년 단위로 집계를 내서 올해 보상해준 금액이 얼마이며 거두어들인 돈이 얼마인가를 셈해서 내년 보험료율을 책정한다는 거. 그렇다면 그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사고가 결국 내 주머니를 노리는 셈,
아무튼, 정비공장에 차를 수리하러 가면 묻는 말이 바로 보험으로 처리할 거냐? 일반으로 수리할 거냐고 먼저 묻고 견적을 뽑는다.
그걸 왜 물어? 제대로 고쳐주면 되지!
그렇게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 질문에는 돈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말씀.
동등한 기술로 같이 고치는데 보험으로 처리하면 통상적으로 30% 정도 금액이 더 나온다.
왜?
그게 뭔 소리여?
일반으로 고친다면 비싸다고 소비자가 다음에 안 오고 보험은 주인 없는 돈이니 수리하고 청구하면 항의할 사람이 없으니까, 괴상한 논리! 여기서 무슨 정비소의 양심이나 상거래에 도덕을 따져? 돈의 논리 앞인데!
건강에 이롭지 않은 생각을 너무 했나?
살짝 현기증이 인다. 비행 멀미인가?
아무튼, 개보다 못하면 참 억울하겠다. 눈을 감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어 본다. 버릴 건 버려야지. 버리고 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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