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의 어느 가정 정원에는 팔릉 지대석 위에 십이지 석등이 함께 서 있다. 이 석등은 흥륜사에서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널찍이 마련된 8각의 바닥돌 위에 서 있는 석등이다. 보통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들과 머리장식을 올리는데, 이 석등은 화사석과 지붕돌을 두지 않은 독특한 모습이다. 즉, 받침부분은 아래받침돌 ·가운데기둥·윗받침돌로 이루어져 있고, 그 위로는 마치 윗받침돌을 작게 줄인 듯한 2개의 연꽃받침이 각각 짧은 기둥을 갖추어 놓여 있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을 한 머리장식이 남아 있으나, 옆으로 살짝 비뚤어졌다. 대석은 네모난 형태로 된 지대석이며, 사면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의 좌상이 부각되어 있다. 지대석 상부에는 간주가 있고 또 그 위에 연꽃이 위로 솟은 듯이 표현된 모양 대석이 있다. 석등 밑에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예는 매우 드물어 주목된다.
석등 아래에는 인용사터에서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는 불상대좌의 팔릉지대석(八稜地臺石)이 있다. 불상대좌는 부처님이 앉으시는 연꽃 자리를 말하는 것이고, 팔릉이란 여덟모의 꽃잎 모양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상대좌는 8세기 후기부터 9세기 전반에 걸쳐 발달한 지극히 화려한 대좌에 속하는 것이다. 이 불상대좌의 지대석은 도라지꽃 모양으로 된 것인데 새긴 솜씨가 정교할 뿐 아니라 규모에 잇어서도 대단히 큰 석이다.
<2008. 6. 25>
첫댓글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등은 제일 하단의 사각형 받침돌(대석/하대석) 네 면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나누어 얕게 조각되어 있다. 각 면당 3구씩 총 12구의 좌상이 배치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석등에서 기단부에 십이지신상을 새긴 사례는 매우 드물어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
팔각 형태의 높직한 기둥돌이 기단 위에 솟아 있다.
기둥돌 위에는 위로 솟은 모양의 연꽃무늬(앙련)가 새겨진 대석이 부재를 받치고 있다.
석등 전체를 받치는 가장 아래쪽의 8각 지대석에는 면마다 2개씩 상각문(眼象)이 새겨져 있다.
신라 시대의 십이지신상은 주로 왕릉의 호석(둘레돌)이나 탑, 부도(승탑) 등에 조각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석등의 기단부 부재에 십이지신상을 새겨 넣은 양식은 한국 석조 미술사에서 이 석등이 유일하여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석등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긴 것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 호법(護法), 방위의 보호, 그리고 공덕의 도량 수호라는 깊은 종교적·사상적 의미를 지닌다.
십이지신은 본래 방위와 시간을 관장하는 신장(神將)으로, 불교에서는 약사여래의 십이신장(十二神將) 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神衆)으로 받아들여졌다.
석등에 십이지를 새김으로써 부처님의 진리와 진신사리를 모신 절터(도량)를 외부의 악한 기운이나 마귀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호법 신앙을 표현했다.
석등 기단부의 사방에 3구씩 12방위를 배치함으로써, 동서남북 및 모든 방향에서 밀려드는 재앙을 막고 세상을 평안하게 하려는 방위 수호의 의지를 담았다.
십이지는 12시, 12달, 60갑자 등 시간의 순환을 상징하고, 석등은 부처님의 지혜와 진리를 상징하는 불빛을 밝히는 구조물이다. 따라서 석등에 십이지를 새긴 것은 부처님의 지혜의 빛이 모든 시간과 사시사철(四時四節) 내내 그치지 않고 영원히 세상을 비춘다는 공덕을 상징한다.
신라 시대에는 왕릉의 호석, 석탑, 승탑 등에 십이지를 새겨 국가와 영토를 지키려는 호국 불교적 색채가 강했다.
유일하게 석등에까지 십이지를 적용한 것은 부처님의 지혜의 빛으로 나라의 모든 방위와 시간을 태평하게 하고자 했던 신라 사람들의 독창적인 불교 미술적 승화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