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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의미 / 김행숙
살갗이 따가워
햇빛처럼
네 눈빛은 아주 먼 곳으로 출발한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뒤돌아볼 수 없는
햇빛처럼
쉴 수 없는 여행에서 어느 저녁
타인의 살갗에서
모래 한 줌을 쥐고 한없이 너의 손가락이 길어질 때
모래 한 줌이 흩어지는 동안
나는 살갗이 따가워
서 있는 얼굴이
앉을 때
누울 때
구김살 속에서 타인의 살갗이 일어나는 순간에
잠 / 김행숙
눈을 감았다는 것
발가락이 꼬물거리며 허공으로 피어오른다는 것
발바닥이 무게를 잊었다는 것
감은 눈처럼
발은 다른 기억을 가지기 시작한다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
그곳에 속하는
시집 《타인의 의미》(민음사) 中
포옹 / 김행숙
https://naver.me/5K5xubxM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
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
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
1년 후에 / 김행숙
지구가 돌아왔으므로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그렇다면 좋겠어
나는 최초의 인간들이 떨면서 기다리던 봄처럼
1년 후에
또 시작하고 싶어
반복하고
그렇지만 네게 욕하지 않을 거야
식물을 기르고
분갈이를 해 줄 거야
죽이지 않을 거야
세상에서 제일 커다란 화분의 둘레를 알아?
네 질문은 언제나 난센스 퀴즈 같다
공원에 가자
산책로의 끝에서 내가 상상한 답을 들려줄게
같이 웃자
시장에 같이 가자
반복하고
반복해
1년 후에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지구를 또 비추는 햇빛은
또 찡그리는 너의 이마 위에도
그렇지만 나는 웃으며
꽁치 한 마리를 네 눈앞에서 시계추처럼 흔들지
그렇지만 너는
1년 후에는 외국에 공부하러 갈 거라고 말하지
https://naver.me/GpecfiVW
비평
‘사이’의 발견과 ‘큰 주체’의 물음― 김행숙 시집 <타인의 의미>
송승환
김행숙의 세 번째 시집 <타인의 의미>(민음사, 2010)는 미시 세계의 ‘사이’를 발견한다. 인간의 시선으로 구현되는 원근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의 거리를 미분하고 적분하는 미시 감각을 통해 미시 세계를 발명한다.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포옹」) 다가간 세계. 한없이 가까워짐으로써 너와 내가 거의 검정에 가까운 세계. 서로 껴안은 연인의 촉각과 호흡이 살아있는 세계. 껴안으면서 동시에 갈라지는 절벽의 세계.
“신체는 깎아지른 듯 절벽이 되었어/기도하기 좋은 곳/자살하기에 더 좋은 곳에서/나의 신체는 멈”춘다(「그곳에 있다」). 내가 너를 껴안는 곳은 다름 아닌 내 신체다. 내 신체의 피부를 통해 너는 느껴진다. 너는 내 피부의 감각 속에 살아있는 타자다. 내 피부 속으로 세계는 틈입하고 교차한다. 내 피부는 내 신체의 최전선이고 세계의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다. “세찬 물살처럼 거침이 없는 행인들을/전폭적으로 맞이하”(「투명인간」)는 장소다. 너무나 가까운 그곳이기에 시각은 흐릿해지고 촉각과 청각과 후각은 매우 또렷해진다. 윤곽과 “마지막 특징이 사라지는 순간”(「진흙인간」) 너는 ‘투명인간’이 되어 내 귀와 코와 피부 속에 나타난다. 피부 속에서 “당신의 몸은 없고 당신의 목소리만 있”다(「밤입니다」). 나는 너를 무정형의 물질로 만지고 맡고 듣는다. 너의 호흡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타자들은 내 피부 속에 살아있다. 보이지 않지만 내 피부 속에 나와 너, 당신과 우리 그리고 세계가 함께 있다.
호흡은 보이지 않는 그 타자들이 코의 구멍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가 밀려나가는 운동 형식을 보여준다. 호흡은 내가 타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치를 느끼게 하고 다시 타자들을 밀어낸다. 그 최대치에서 나는 “항상 끄떡없는 바위섬”이고 그들은 “맨 앞에서 희게, 희게 부서지는 파도”(「호흡 2」)다. 들숨에서 날숨으로 바뀌는 사이 나는 타자와 분리된다. 내 신체는 들숨과 날숨 사이 “깎아지른 듯 절벽이 되”어 타자를 밀어 떨어뜨린다. “가장 먼 곳에서 뛰어와서/포옹을 하는 연인들”(「공진화하는 연인들」)이지만 내 얼굴의 “구김살 속에서 타인의 살갗이 일어나는 순간”(「타인의 의미) 호흡은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한다.
여백이 곧 시의 전문인 「이 사람을 보라 ―호흡 3」처럼 코의 구멍은 모든 타자들이 틈입할 수 있는 장소이면서 모든 타자들을 기어이 밀어내고 ‘텅 빔’으로 만듦으로써 ‘나’라는 주체를 끝까지 존립시킨다. 김행숙 시의 ‘사이’는 그 여백의 풍경이다. 보이지 않을 만큼 가깝고 내 피부 속에서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나와 타자들의 공동체는 그 ‘사이’에 세워진다. 그러나 ‘사이’는 결국 “은빛 칼처럼 빛이 쑥 올라오는 틈새”(「어두운 부분」)로 갈라지는 나와 타자들의 정체성을 각각 만들어낸다. 틈새는 죽음의 심연이며 가능한 사랑의 완전한 불가능성이다.
사이의 발견 속에서 김행숙의 시는 묻는다.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포옹」)인가. 사이와 틈새와 여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가까워지면서 흐릿해지고 사라지는 나와 네가 함께 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음은 시집의 도처에서 제기되고 변주되면서 우리 모두에게 분배된다. 물음은 물음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구성원에게 의미가 있다. 물음은 나 자신의 몫으로 온전히 제기될 때 가장 큰 시적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워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절벽에 매달린 기분으로/너의 손을 잡았을까”(「그곳에 있다」).
그 물음 뒤에 ‘우리’를 호명하는 김행숙 시의 주체는 누구일까. 그 주체는 극도의 미시적 풍경과 비가시적 세계를 발견하고 초정밀 감각의 풍경을 직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인간의 감각을 초극한 ‘큰 주체’이다. <사춘기>에서 ‘우리’라고 호명하고 동일성으로부터 끝없이 달아나면서 분열하던 주체가 <이별의 능력>에서 무한한 분열과 변신이 가능한 주체로 거듭 태어나 “고양이를 초월하여 고양이”(「고양이군의 25시」)가 된 큰 주체. “얼굴로부터 넘친 얼굴”(「해변의 얼굴」)이 되거나 “나의 쌍둥이 동생”(「소수점 이하의 사람들」)을 0.5로 분열시킬 수 있는 감각의 큰 주체. 지금까지 이룩한 김행숙 시의 고유한 미적 성취와 시적 발명은 인간의 감각을 초극한 그 ‘큰 주체’의 무한한 감각에서 기원한다. ‘큰 주체’는 무한한 분열과 변신을 통해 과잉 주체들의 감각과 과소 주체들의 감각이 빚어내는 ‘우리’ 공동체의 미시 감각을 발명하면서도 결코 ‘큰 주체’의 동일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제 김행숙 시는 동일성을 훼손하지 않는 큰 주체의 분열과 변신을 통한 그 무한한 감각으로 미시 세계를 계속 발명할 것인가. 육체의 감각과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광물의 영원성을 추구하는 말라르메의 ‘에로디아드’(Hérodiade)와 극단의 인공미와 탐미를 추구하는 조리스-까를 위스망스의 ‘데 제쌩뜨’(des Esseintes) 같은 시적 주체로 거듭 태어나 데까당스 문학을 출현시킬 것인가.
<창작과비평> 2011년 봄호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4346874
김행숙 시집 ‘타인의 의미’… 감각과 느낌 엉뚱한 재발견
김행숙(40·사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타인의 의미’(민음사)는 감각과 느낌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다. 예컨대 시 ‘목의 위치’는 목이라는 형태 때문에 야기되는 기이하고 생경스런 감각을 재발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용없어요, 목의 길이를 조절해 봤자, 외투 속으로 목을 없애 봤자, 그래도 춥고, 그래도 커다란 덩치를 숨길 수 없지 않습니까.//그래도 목을 움직여서 나는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떠나듯이.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또 한 번 찾았듯이.”(‘목의 위치’ 일부)
목의 길이를 조절할 수 없는 몸의 불가능성은 그대로 사랑의 불가능성과 겹쳐진다. 목을 움츠릴 수는 있지만 줄어들게 하거나 늘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일시적으로 목을 외투 깃에 파묻을 수는 있지만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사랑의 길이를 일방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 목의 사건은 사랑의 사건이 되고 이별의 사건이 되기도 한다. 목을 움직이는 일이 함축하는 한계는 몸이 움직여 사랑을 하고 또한 사랑을 떠나가는 사랑의 한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목의 길이를 조절할 수는 없지만 목을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의 운동성도 움직이는 것 이외에는 조절 불가능하다. 이처럼 엉뚱한 감각의 재발견이 놀랍지 않은가. 한편으로 현대시의 위치를 찾아가는 천진한 투정처럼 들리기도 한다.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포옹’ 전문)
시인은 가까이 갈수록 상대방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포옹’이라고 말한다. ‘가까이’라는 부사는 시 속에서 ‘좀더 가까이’, ‘아주 가까이’, ‘틈새 없이 완전히 붙어버릴 때까지 가까이’로 점점 분화한다. 그러나 모든 ‘가까이’는 마지막 연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에 함몰된다. 가까이 갈수록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위태로움이 ‘포옹’에는 전제되어 있다.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포옹의 본질과 한계를 알면서도 포옹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존재의 비밀인 것이다. 사물 혹은 존재에 깃든 한계와 불가능성이야말로 감각의 껍질이자 내용물인 것이다. 김행숙의 시 세계가 2000년대 한국 시단의 뉴 웨이브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ttps://naver.me/GPXLARW7
시인 김행숙의 『타인의 의미』가 출간되었다. 특유의 시적 변이를 통해 2000년대 한국시 세계에 거부할 수 없는 뉴웨이브를 일으킨 저자의 세 번째 시집이다. 미의 논리를 만들어내는 대신 미식적 느낌의 도약이 만들어내는 언어의 매혹으로 가득한 시로 이루어져 있다.
김행숙 시인의 『타인의 의미』가 출간되었다. 특유의 시적 변이를 통해 2000년대 한국시 세계에 거부할 수 없는 뉴웨이브를 일으킨 저자의 세 번째 시집으로 미의 논리를 만들어내는 대신 미식적 느낌의 도약이 만들어내는 언어의 매혹으로 가득한 詩로 이루어져 있다.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2010년 12월3일 (금)
지난 1999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한 시인 김행숙의 『타인의 의미』. 특유의 시적 변이를 통해 2000년대 한국 시 세계에 거부할 수 없는 뉴웨이브를 일으킨 저자의 세 번째 시집이다. 존재와 언어의 개별화에 헌신하는 시 65편을 읽어나가게 된다. 특히 저자가 시로 발명 중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저자의 시는 서정적 관념이나 자아의 동일성으로부터 가볍게 이탈하여 미시적 장면으로 들어간다. 놀랍도록 천진하고 엉뚱하고 섬세하고 발랄하고 열렬한 느낌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한국 문학 세계에 낯선 미시적 감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마음’은 무정형이다. 그런 마음의 형상이란, ‘타인과의 관계’, ‘타인과의 만남’에서 빚어진다. 그 관계로 인해 나의 ‘마음’, 즉 ‘나’의 형상은 반응하고 느끼며, 유지된다. 그래서 김행숙 시인은 지금, ‘타인’을 이야기한다. 시집의 제목인 ‘타인의 의미’란 무엇인가. 사실 이 시집은 ‘타인의 의미’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시인은 타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존재론적인 감각을 말한다.
1999년 김행숙의 등단은, 황병승, 김경주, 하재연 등으로 이어지는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폭죽 같은 에너지를 촉발하였다. 기존의 시가, 서정적 자아의 실존, 혹은 그 자아가 느끼는 감각의 결과에 주목했다면, 김행숙의 시는 찰나의 감각 그 자체, 감각의 진행 과정에 주목한다. 그녀는 그저 어떤 대상을 마했을 때 그 찰나의 감정에 매달릴 뿐이다.
그녀의 이전 시들이 “‘세계’를 느낌의 조각들로 분해하고 ‘나’를 해체”하는 ‘미시적인 세계’를 그렸다면, 이 시집은 그 느낌의 세계 안에서 ‘나’와 ‘타인’이 만나는 찰나, 그 사이, 즉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그려낸다.
그런 그녀의 시는 낯설고 모호하지만, 우리가 일단 그 느낌의 영역, 그 느낌의 세계에 발을 담그면 더할 수 없이 은밀하고 끈끈한 연대와 공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그녀의 시를 읽으며, 놀랍도록 천진하고 엉뚱하고 섬세하고 발랄한 어떤 열렬한 ‘느낌’의 세계를 조우하게 된다. 그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 내 안의 무수한 타인의 살갗을 만지는 시간
“우리가 존재한다는 걸 무슨 수로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꿈꾸듯이」)라는 질문에 우리는 무언가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만지러 가고 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접촉하는 우리는 그 접촉과 동시에, 우리를 접촉하고 있는 ‘타인’을 만난다. “네 눈빛은 아주 먼 곳으로 출발한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라는 시구처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눈빛을 던지고 있는 타인은 여전히 아주 먼 곳에서 출발하는 자이다. 우리는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좀 더 가까이 접촉하길 원한다. 피부의 접촉은 아무리 가까워도 그 가까움에 만족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만지는 일은, 내가 너를 만나는 일은, 결코 “쉴 수 없는 여행”인 것이다.
그녀의 시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세계가 없고, 우리가 믿고 있는 그 자아가 없다. 그 둘은 분해된 채로 뒤섞였다가 나눠지고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 준다. 그녀의 시는 과도하고 격렬하고 잔혹한 방식으로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고 유연하며 자유로운 방식으로 다른 세계를 발명한다.
“잠든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발걸음 같은 것이 나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너만 보호하네.// 나는 보일 듯 말 듯. 들릴 듯 말 듯. 나는 티를 내지 않는다.”(「유령 간호사」)
그녀의 느낌의 세계는 이토록 따뜻한 배려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녀는 “지금 무척 아프고 헛것을 보고 있”는 너를 보호한다. “너는 예뻐. 너는 똑똑해. 너는 착해. 칭찬을 나누고.”그녀의 시는 “너의 전부를 물들”일 것이며, “언제라도 어디라도 너와 함께할 것이다.” 그녀의 시를 읽는 한 더 이상 “우리는 쓸쓸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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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으로부터 시작되어 김행숙에게로 흘러들어 간 시적 변이는, 이제 2000년대 한국 시단의 거부할 수 없는 뉴웨이브가 되었다. 김행숙의 시는 또 무엇을 발명 중인가? 김행숙은 지금 미시적인 세계를 타고 넘어서, 시각적인 것 너머의 세계로 다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면성의 시학을 거슬러 나아가는 숨과 표피의 모험. 가령 너무 가까운 세계의 초대 같은 것. 김행숙을 읽는 것은 그래서 시를 만지는 것. 당신과 내가 한없이 김행숙에게 가까워질 때, 김행숙이라는 이름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래도 이 포옹을 멈출 수 없다면?
ㅡ이광호(문학평론가,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김행숙의 시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 진화는 동일성을 벗어 나가는 시적 화자의 끝없는 탈피, 타자의 머리와 발바닥과 내장과 핏줄을 동시에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새로운 애무 방식의 고안, 시의 시간의 바로크적 응집과 투명한 확장을 통해서 진행되고 있다. 시는 누가 보아도 그러한 자리, 어떤 사건에서 피어오른 하나의 이행이다. 그 이행이 환기하는 하나의 세계다. 김행숙의 시는 일상적 일점, 사건의 추락 지점에서 촉발해 시간의 주름을 펼치거나 접음으로써 우리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전체의 풍경 안에 있게 한다. 이것이 김행숙 시가 내포한 윤리적 차원일 것이다. 이를테면 호흡을 하거나 서랍을 열거나 화분을 손에 올리는 그 하찮은 순간에 ‘지구의 골목길 전체’와 저 ‘파도 너머’, ‘호흡기관 너머’의 어떤 호흡까지 아우르는 어떤 총체성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순간의 착란, 투명한 분절이 그녀의 시의 이행이다.
그러기에 김행숙의 시들은 시간의 순간적 현현과 그 사라짐을 기리는 하나의 제단, 제사의 형식 안에 있다. 제사를 통해 이별의 파열을 춤추게 하고, 메아리치게 하고, 세 겹 네 겹 주름을 펼치게 하자 시들의 매 순간, 혹은 어떤 형상과 사건들이 늪으로 섞여 든다. 이 우주가 자아를 잃어버리는 동일자들의 작별의 소용돌이에 거한다. 그 후 안개 속에서 거대한 여성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한이 분출하여 세계를 뒤덮는다.
무릇 시인은 시적 화자의 진화를 통해 부재의 번성을 꾀하는 법. 김행숙의 시에는 단수/복수, 안/밖, 전/후, 성스러운 것과 상스러운 것들의 구별이 없을뿐더러 선악의 기준도, 현실/비현실의 경계도 없다. 그것은 시적 화자가 사춘기, 귀신 화자이면서 동시에 흔적 화자, 메아리 화자, 꿈 화자, 반면(反面) 화자, 잠으로 현실을 구축하는 화자, 출몰과 매몰이 자유로운 화자, 감각의 테두리를 버린 화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화자가 ‘물에 빠진 사람’처럼 총체적이 된 우리를,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를 순간의 무한 황홀 속에 이륙시킨다.
ㅡ김혜순(시인,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 목차
自序
1부
포옹/목의 위치/침대가 말한다/서랍의 형식/밤입니다/공진화하는 연인들/빈방/아침식사/타인의 의미/회화 수업/주택가/꿈꾸듯이/다른 동네/계단의 존재/가로수의 길
2부
발/여행에 필요한 것들/화분의 둘레/따뜻한 마음/찢어지는 마음/호흡 1/호흡 2/이 사람을 보라 - 호흡 3/진흙인간/가까운 위치/누군가의 호출/네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어떤 손님/유령 간호사/웨이트리스/하얀 발/투명인간/신발의 형식
3부
순간의 빛/머리카락이란 무엇인가/말굽에서 피어오르는 흙먼지/움직이는 자화상/귀/모자의 효과/보호자/떨어뜨린 것들/잠/그곳에 있다/우주 정거장처럼/머리를 쳐들며/커브/혼자 노는 아이가 아니다/세 자매/흐르는 강물처럼/허공을 물어뜯는 개들/가까운 곳/먼 곳
4부
너의 폭동/탁자의 유령들/네 이웃의 잠을 사랑하라/당신의 이웃입니다/하늘의 길/연인들/1년 후에/물의 친교/당신이 지진이라면/소나기/이 책/합창단/어두운 부분
작품 해설 / 이광호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
https://naver.me/IgDUrA6e
김행숙 - "타인의 의미"를 읽고.
도입부터 적혀 있는 강력한 단어들.
나는 걷다가 걷다가
지구에는 골목길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삶,
열렬하고 고독하고 게으른 삶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 시집은 분명히 강력한 함축을 담고 있겠다는 묵직한 뉘앙스가 느껴지는 시작점이었다.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머릿 속을 채우는 한 가지 생각이란, 이 시인은 여백을 미친듯이 활용한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은, 때로는 마음을 놓게 만드는 편안함일 수도, 때로는 애달프게 하는 두려움일 수도,
차분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일 수도 있다.
똑같이 사람과 사물 사이 공백, 혹은 시간의 공백을 활용하여 본인만의 색채를 과감없이 드러낸다.
심상을 시각화하기 위하여, 주로 색깔을 활용하지만, 수려한 부사구로 청각, 촉각 등
다른 감각을 맛보게 해준다는게 또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포옹 / 김행숙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 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
시집의 포문을 여는 시, 내가 느꼈던 감상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서로의 존재가 아득한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 각자는 검정이 되고 각자의 시간은 벌어진다.
가까워 졌던 그 순간을 교차해 나가는 서로를 검정으로 표현한 것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 같다.
가로수의 길 / 김행숙
땅이 조금 흔들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똑바로 걸을 수가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가로수와 가로수의 간격은 법으로 정해져 있을까, 발과 발을 모으고 서서
뾰족한 자세로 그런 생각을 해
가로수와 가로수의 사이는 다정한 곳일까
무서운 곳일까
달리는 자동차와 달리는 자동차의 사이에 대해 생각하고
치여 죽은 것들과
죽어가는 것들로부터 너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경적 소리가 되고 싶어
모두 빨리 대피해야 합니다
이 도시를 텅 비웁시다
미래에
유령이 되어 돌아오자, 다신 돌아오지 말자, 사이에서 유령의 감정을 생각해 내려 애쓰며
거울을 보다가 유리를 보듯이
너를 높이 높이 떠올리며 걸어갔어
유리창은 어떻게 박살이 났을까
유리에서 맑은 하늘까지
너는 참 길구나, 그렇게 생각이 길어져
맑은 하늘에서 물속에 잠긴 도시까지
화염이 애타게 포옹한 우리들의 도시까지
사이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냐에 따라 모든게 달라지는 추상의 세계.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를,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를 죽음으로 가득 채워 느끼는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
도시를 텅 비워 각자 행복하게 살다가, 유령으로 돌아오자는 진심어린 걱정이 왜 이리도 슬프게 느껴지는지.
골목의 구석에서 웅크려 울고 있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느낀다.
가로수 사이에 슬픔이 이토록 진하게 묻어있을줄은 몰랐다.
따듯한 마음 / 김행숙
얼어붙은 마음이 녹으면서
차츰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 외로워졌어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너의 얼굴에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
미소는
미소가 사라지는 순간은
회오리처럼
마음이 세차게 몰아닥칠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마음의 사막에
가득히
빛
수수께끼의 형상으로
우리의 포옹은
빛에 싸여
어둠을 끝까지 끌어당기며
서 있습니다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그 애틋한 순간에, 상대방의 미소 하나 조차도 이렇게 치명적일 수 있음을.
그렇지 않나,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 지,
내 마음이 어떤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든 것이 애매한 그 순간.
헤아려지지 않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빛으로 인해 눈이 멀고 얼마나 깊은 어두움이 찾아올지 모른 채
꼬옥 안고 있는 남녀는 어떤 심정일지.
마음이 녹아 사라지고나면, 외로움이 찾아옴을 첫 문단부터 알려주니 다행이다.
호흡1, 중 일부
어둠에 대해 파고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호흡의 가장 깊은
데서 더 깊이 들어가 틀어박혔으면...... 언제나 나는 쫓겨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잠시후면
태어날 우리 아기의 잇몸처럼 이빨 한 개도 없이.
그날 헤어진 연인들처럼. 아가의 첫 번째 호흡과 병자의
마지막 호흡처럼. 당신은 언제 숨쉬기가 어려운가.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 대체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헉,
정말 신기한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신체가 제대로 오작동을 일으킨다.
처음 연애에서 이별을 겪고, 한 4일간은 우느라 밥도 제대로 못먹었고,
이불 속에서 못나오는 나를 보고 부모님은 비웃었지.
그 때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는게 이런건가 싶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아픔의 순간엔 가장 당연한 호흡마저 힘들어지는게, 파고들어가봤자 쫓겨 나오기만 하는 호흡이라 그제서야 마주할 수 있는 기능인가 싶었다.
헉, 심장이 멈추질 않는다는 가정 하에, 가장 힘든 것은 숨쉬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른다는 것.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경험이라 참 와닿았다.
진흙인간, 중 일부
주근깨투성이 네 얼굴이 깜깜해진다. 뙤약볕 속에서
마지막 특징이 사라지는 순간에 네가 보였다. 특징이 없
는 사람에게 어떻게 아는 체를 할까.
그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얼굴이었다. 마음이
아주 복잡해졌다. 너를 본 후
이 시를 읽고, 한참을 생각했었다. 나는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맞았다. 당신과 타인을 분리하는, 소소한 특징들의 집합이 그 열쇠라는 것을.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도, 반대로 싫어하는 이유도 당신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다고.
뷰티인사이드의 여주인공은, 상대방의 외모가 바뀌자, 본인이 진정으로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결국 곁을 떠나게 된다.
외모가 바껴서 그 때 마다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은, 특징이 지워진 당신과 똑같지 않을까.
나만의, 아니 우리만의 기억이 사라진, 낯선 얼굴에는, 나는 복잡해지는 수준이 아니라 소름끼칠 것 같다.
까마귀 떼가 몰입하는 부위에서
상한 냄새가 났다
새들이 좋아하는 것을 우리도 좋아해서
남은 고기는 천국까지 남고
지옥까지 모자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어진다
이곳은 발가벗은 하늘의 아래인가
너의 위인가
핏물은 눈송이처럼 떨어지는가
샘처럼 무지개처럼 솟는가
고기라는 축제의 현장에서
움직이는 자화상, 중 일부
읽으면서, 떠오르는 단어 한가지, 쾌락.
잔뜩 에너지를 소진해, 하늘과 너의 사이에서 분간조차 하지 못할 정도일 때까지 나는 느껴본적이 있을까.
과연 그렇다면 그 순간엔 행복할까.
핏물이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들이치는 그 축제의 현장엔,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신념이고 가치관이라 그런지, 이 쪽으론 내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게 첫번째이다.
어느 순간 마주할 이 경험에 문득 드는 생각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 나는 어떤 형태의 쾌락을 좇아야 하나 싶다.
눈을 감았다는 것
발가락이 꼬물거리며 허공으로 피어오른다는 것
발바닥이 무게를 잊었다는 것
감은 눈처럼
발은 다른 기억을 가지기 시작한다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
그곳에 속하는
잠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완전히 색다른 시각이다.
잠들었을 때의 가벼운 그 느낌이, 온 무게를 받치는 발의 입장에선 더할나위 없겠지.
산책과 활동들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발에게 참 고마우면서도 많이 미안하다는 것.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순간이, 때로는 참 애틋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고,
자기 중심적인 시선에서 자주 탈피해보자는 다짐을 해본다.
+
발자국 하나는
시간을 끝없이 늘려 놓습니다
지워진 이야기는
다음번에 나타납니다
낮의 신발에서 벗겨진
밤의 발이 부어오르듯이
-우주 정거장처럼, 중 일부.
그치, 우리가 딛는 그 작은 순간들을 엮어낸 것이 억겁의 시간이니. 발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물을 움켜쥐고 싶었니? 물고기를 움켜쥐고 싶었니? 왼손도
오른손도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물이 뚝뚝 떨어져서
빈손임을 알릴 때.
손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목록을 손으로 쓰거나 손으로 꼽는다.
열 손가락으로 모자랄 때 그중에서 몇 개는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너의 손가락과 나의 손가락을 더하면 스무 개.
그러면 몇 개를 더 잊어버리겠지.
이런 이러다간 다까먹고 멍청이가 되고 말겠다.
우리는 강물에 손을 담그고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한다.
강물은 흐르고 손은 흐르지 않는다. 강물과 같은 것은 무엇일까.
지금은 나란히 나란히 물의 건반을 두드리는
우리의 손같이 희미한 것들은 무엇, 무엇일까.
흐르는 강물처럼
가장 인상깊었던 시를 꼽으라면 나는 이 시로 하겠다.
내 꿈과, 나 자신 사이의 그 공간에서 얼마나 거대한 무력감을 느낄 수 있는지, 한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시선에선, 어떤 일을 해내는 객체가 손이기에, 더욱이 절실히 다가오는 의미들이었다.
물을 움켜쥐고 싶어서, 인상을 잔뜩 쓴 얼굴로 물을 헤집지만, 결국은 빈손인데, 강물은 흘러가기만 할 뿐.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다는 말을 읊조리는 김광석의 목소리처럼 애절하게 표현한게, 물의 건반을 두드린다는 것.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떠날 수 없는 것을 삶의 굴레라고 하나.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움겨쥐려 그렇게 손가락을 째려봐도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만 같다.
참 허무하고, 억울하고, 텅 비어있다.
원하는게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화가 나 있었던 내 모습이 계속 생각나 괴롭다.
그 시절엔 너무나도 괴로웠고, 우울했기에 나는 탓을 돌리기에 바빴었다.
마치 나의 과거처럼, 아니 미래에도 이럴진 모르겠으나, 이제는 내려놓을려고 노력해야겠다.
아무리 욕심부리고 악을 써도 상대는 물인걸.
이럴 거면 나도 물이 되어야지.
문학은, 독자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감정을 전달할 때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집에서 나는 숱한 공백을 매꾸려고 나의 온갓 경험들을 이어다 붙여 시구를 완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이 비어있는 공간엔, 얼마나 깊은 감정이 숨어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더 아픈 사랑을 하고, 사물과 이별을 한다면 그제서야 다시 읽혀질 문장일까.
성숙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내게 이 시집은 어려우면서도, 무섭다.
내게 이런 묵직한 감정 또한 존재한다고 일러주기 위해, 선물해줬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물, 내게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무언가.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의미를 담는 그릇을 선물해준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 더 깊은 사람이 된것만 같아요.
인류애가 마음속에 깃드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