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다해 사순 제2주간 금요일 (3월 18일)
*독서: 창세 37,3-4.12-13.17-28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복음: 마태 21,33-43.45-46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찬미 예수님, 코로나 감염병 때문에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하셨을 겁니다. 저도 후평동본당에 부임하기 전 6개월 동안 안식년을 할 때 해외성지순례를 계획했었는데 하지 못해서 무척이나 아쉬웠습니다. 아쉬움을 달래려고 제주도에 다녀오긴 했지만 비행기를 타는 시간이 워낙 짧아 기분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저는 비행기를 타면 기분이 들뜨며 좋아지더라구요. 다들 비행기 한번 쯤 타보셨지요? 활주로를 내달리다 공중으로 확 떠오를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좋으셨나요? 아니면 아찔하셨나요? 승객을 백 여명 넘게 태운 거대한 비행기가 하늘로 높이 오르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그런데 거기엔 아주 의미심장한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공기역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가 숨어 있는데, 바로 “마찰이 없으면 비행기는 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속도로 활주로를 내달리는 비행기가 어느 순간 공기 저항을 최대로 받으면 “붕”하고 떠오르는 것입니다. 공기 저항이 없거나 약하면 결코 하늘 높이 나를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난과 역경이 없다면 위대함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요셉의 고난한 인생의 서막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형들의 질투로 노예의 처지가 되어 이집트로 팔려가게 된 요셉은 참으로 우여곡절 중에 온갖 시련과 역경을 거치면서 마침내는 하느님께서 주신 꿈쟁이의 능력으로 이집트의 재상에 올라 야곱 집안을 기근으로부터 구해 내는 하느님의 기적을 이룹니다. 꿈쟁이라는 요셉의 소질은 처음에는 형들의 질투를 불러일으켜 미움을 사서 죽임을 당할 고난의 원인이었지만 고통과 아픔의 성장 과정을 겪으면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는 ‘신앙의 토대’가 되었고, 최후에는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하는 ‘은총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형들의 미움, 노예 살이, 감옥 살이라는 인생의 거센 저항에 맞서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의 재능과 인생의 소명을 활짝 꽃피웠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아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세상 구원에 협력하도록 고유한 재능과 소명을 받았습니다. 거기엔 당연히 순탄하지 않는 저항이 뒤따릅니다. 가족 관계의 어려움,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의 어려움 등등. 그 모든 어려움과 고통이 최고조에 이를 때 주저 앉지 말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우리도 비행기처럼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복음의 진리를 전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스스로를 길가의 버려진 돌멩이처럼 절대 하찮게 여기지 말고, 하느님께서 쓰실 소중한 보석으로 생각하십시오. 깎고 다듬어지면서 보석은 그 가치를 발하는 법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고난과 역경, 현재 느끼는 고통과 아픔, 그 이유를 온전히 헤아릴 수 없지만 하느님의 더 큰 계획과 섭리 안에서 분명 가치가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움에는 맛이 있고 고통에는 값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의 값어치를 확신하는 신앙인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