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배 잿털이가된 가로수
담배
陸羽茶經好(陸羽茶經好)―육우(陸羽)가 남긴 다경(茶經)도 좋고
劉伶酒頌奇(劉伶酒頌奇)-유령(劉伶)의 주송(酒頌)도 특이하거니와
淡婆今始出(淡婆今始出)-담바고(담배)가 지금 새로 나와서
遷客最相知(遷客最相知)-귀양살이하는 자에게 제일이라네.
細吸涵芳烈(細吸涵芳烈)-가만히 빨아들이면 향기가 물씬하고
微噴看裊絲(微噴看裊絲)-슬그머니 내뿜으면 실이 되어 간들간들
旅眠常不穩(旅眠常不穩)-여관 잠자리가 늘 편치 못하여
春日更遲遲(春日更遲遲)-봄날이 지루하기만 하다
위의 시는 다산(茶山)시문집 제4권에 있는 담배 애찬(愛讚)이다.
담배로 시름 막힌 사람들에게
遍告人間愁塞客(편고인간수새객)-인간 세상 시름에 막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願將此藥解憂脹(원장차약해우창)-이 약을 가져다 걱정스런 창자를 풀리라.
위의 시는 지 대전 대덕구 송촌동 198-4에 있는 동춘당 송준길의 손자며느리로
17세기에서 18세기에 여류문학사의 공백을 메꾸어 줄만한 여류 문인이며
生涯三尺劍(생애삼척검)-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
心事一懸燈(심사일현등)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는 시로 유명한 여류문학인 호연재 김씨의 담배 칭송의 글이다.
초창기에는 담배를 남령초(南靈草)라 하였다.
남령초(南靈草 담배)를 흡연(吸煙)하는 법은 본래 일본(日本)에서 나왔다.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담박괴(淡泊塊)라고 하면서, 이 풀의 원산지가 남양(南洋)의 제국(諸國)이라고 해서 남령초(南靈草)라 이름하였다.
남초(南草)가 우리나라에 유행된 것은 광해군(光海君) 말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세상에서 전하기로는,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담파국(湛巴國)이란 나라에서 들어온 것인 까닭에 속칭 담파(湛巴)라 한다는 것인데 이 “담파(湛巴)가 오늘날 담배”로 변한 이름이라 한다.
담배는 인간 세상에 접촉하면서부터 “피워도 좋은 것이다” “피워서는 안된다” 고 의견이 양분된 물질이었다.
중국에서는 남초(南草)를 연주(煙酒-술과 같은 담배)라고도 하고 연다(煙茶-차 같은 담배)라고도 하였다.
오래 전부터 세상에 두루 퍼져 있으며, 적비(赤鼻)를 치료하는 데 가장 효력을 발휘한다고 하였다.
적비(赤鼻)란 비위(脾胃)에 실열(實熱)이 있어 코가 붉은 것이다.
반대로
이 물건은 성질이 건조하고 열(熱)이 있어서 필시 폐(肺)를 상하게 할 것인데, 어떻게 코의 병을 치료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반론을 제기 했다
이에 찬성론자는
담배는 응체(凝滯)된 기운을 흩뜨려서 풀어 주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이다.
일리(一理) 있는 말이다.
南草之用於世殆將如中國之茶(남초지용어세태장여중국지다)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한다하여 연주(煙酒)로, 차(茶)처럼 피로를 해소시켜 준다고 해서 연다(煙茶)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다하여 상사초(相思草)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고, 근심을 잊게 해준다고 하여 망우초(忘憂草)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남초가 세상에 유행된 지 겨우 수십 년밖에 안 되는데도 벌써 이처럼 성행을 하고 있으니, 백 년쯤 지난 뒤에는 차(茶)와 라이벌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남초(담배)는 빈랑(檳榔)처럼
“술에 취하면 깨게 하고 술이 깨면 취하게 하며, 배고프면 배부르게 하고 배부르면 배고프게 한다.”
라고 극찬을 하였다.
빈랑(檳榔)이란 중독성이 있는 살충제 성분이 있는 열매이다.
초기 애연가(愛煙家) 중의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38)는 그의 저서 계곡만필(谿谷漫筆)에서
“우리나라에는 20년 전에 이 남초가 들어왔는데, 지금은 위로 공경(公卿)으로부터 아래로 가마꾼과 나무꾼, 목동에 이르기까지 피우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이다.”라 말했다.
담배를 가장 좋아했던 사람 중의 하나인 중국의 임어당(林語堂)은 담배를 ‘니코틴 부인’이라 칭하고 이 “니코틴 부인에 대한 충성을 끊으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한 바있다.
世之攻南草者(세지공남초자)
그러나 남초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는 공박하기를
남초가 만이(蠻夷오랑캐)에서 나왔고 본초(本草)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독초라고 하였다.
본초(本草)란 중국의 한약재를 기록한 의서(醫書)이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서는
남초(南草 담배)도 왜(倭)로부터 들어와서 1백여 년 만에 온 나라 안에 유포되어 해를 끼친 것이 적지 않은데, 이는 으레 금하였어야 했던 것을 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청초(淸初)의 정주학의 유학자인 육가서(陸稼書1630~1692)도
"대현(大賢), 군자(君子) 중에 담배 피우는 분이 없었으니 결코 좋은 물건이 아님을 알겠다."
손님을 대접할 때, 어린 자녀들로 하여금 담뱃불을 붙여 드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습관이 되어 담배를 즐기게 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저술총서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또한 평생 존경하는 분이 담배를 즐기면 그것을 본받아 피우는 자도 있는데,
이것은 습속(習俗)에는 본디 제거시킬 수 없는 것이 있도다.
그러나 담배 피우는 일만은 결코 풍속을 따를 것이 아니다.
부형(父兄)이 하는 것을 본받으면 자제(子弟)가 갑자기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자기의 기호에 따라 경전(經傳)과 성현(聖賢)을 함부로 끌어대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담배에 대한 논란은 담배라는 물건이 이 세상에 출현되면서부터 찬반이 뜨거웠다.
한편 이러한 ‘독극물’을 애용하면서도 비교적 장수한 사람도 있다.
“하루라도 남초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할 만큼 “담배에 벽(癖)이” 있었던 장유는 55년이라는 당시로서 보통의 삶을 살았다.
늘 파이프를 입에 물고 살았던 영국 수상 처칠은 92세까지 살았고,
세수할 때에도 한 손에 담배를 들었고 주례 설 때에도 담배를 피웠다는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시인은 하루에 담배 10갑을 피웠다는 그는 70세에 작고했는데 당시로서는(1963년 작고) 장수한 편에 속한다.
평생 담배를 즐긴 소설가 박경리 여사는 83세에 폐암으로 작고했고
담배의 대명사 임어당은 82세까지 살았다.
80을 넘겨 살았으면 비록 폐암으로 죽었더라도 그것을 굳이 담배라는 ‘독극물’ 때문이라 말할 필요가 있을까?
담배 끊기는 참 힘들다.
얼마전 까지는 담배를 끊는 사람에게 독한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담배를 계속 피우는 사람에게 독한 사람이라고 한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