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린턱(McLintock)!'(1963)과 '그린 레베'(1968), '리오 로보'(1970) 같은 앤드루 V. 맥라글렌 감독 작품에 기용돼 존 웨인과 호흡을 맞춰 벼락 스타가 됐던 캐릭터 배우 에드워드 포크너가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고 할리우드 리포터가 8일(현지시간) 전했다. 고인은 지난달 28일 캘리포니아주 비스타의 건강돌봄 시설에서 자연사했다고 딸 레슬리 워즈워스가 매체에 확인했다.
191cm의 키에 상냥한 켄터키 출신인 포크너는 아래 TV 서부 영화에서 자신의 승마 솜씨를 선보였다. ' Have Gun—Will Travel'(1958~62년 13개 에피소드), '딜론 보안관'(Gunsmoke 1959~72년 6개 에피소드), '로하이드'(1959~64년 7개 에피소드), '보난자'(1961~66년 3개 에피소드), '버지니안'(1963~70년 11개 에피소드)이다.
그는 대형 스크린 데뷔는 '지아이 블루'(1960)였다. 그 뒤 엘비스 프레슬리의 다른 영화 'Tickle Me'(1965)에서 피트니스 강사 브래드 벤틀리를 연기했다.
포크너는 웨인과 함께 앞의 세 작품 말고도 '헬파이터'(1968), '무패'(1969), '치섬'(1970) 등에 출연했다. 그 중 두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맥라글렌이 연출했다. 그는 2019년 온스크린 인터뷰를 통해 "싸움에서 이긴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나쁜 사람이었다"고 씁쓸해 했다.
두 자녀 중 막내인 필든 에드워드 포크너 2세는 1932년 2월 29일 윤일(閏日, 양력에서 윤년에 더한 하루)에 켄터키주 렉싱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건축자재 회사를 소유하고 있었고 어머니 페리 준은 음악교사였다. 그는 헨리 클레이 고교에 다니는 동안 친구와 코미디 노래와 춤 공연을 연기했으며, 버지니아 대학과 켄터키 대학에 다녔고 1954년 졸업하기 전에 연극에 출연했다.
미 공군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2년을 보낸 후 포크너는 연기 활동을 위해 1958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그는 당시 CBS의 스태프 디렉터 맥라글렌을 소개받아 재빨리 리처드 분이 주연한 'Have Gun—Will Travel' 에피소드에 기용됐다. 일당 80달러를 받고서였다.
맥라글렌은 '딜론 보안관', '로하이드', 'Everglades!', '왜건 트레인', 'The Lieutenant' 같은 TV 드라마는 물론, 'The Little Shepherd of Kingdom Come'(1961), '셰난도'(1965), '발라드 오브 조시'(1967), 'Something Big'(1971) 같은 영화에서 그의 연기를 지도했다.
포크너는 웨인과 수백 번 체스를 뒀다며 "가끔 그가 이기게 놔두곤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비행기 기장이 게임을 방해하기를 망설여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공회전시킨 적이 있었다. 나아가 '무패'를 멕시코에서 촬영하던 중에 포크너의 세 딸 얀, 바바라, 레슬리가 옆에 있는 것을 발견한 웨인이 의상 담당자에게 소리를 질러 소녀들을 영화에 집어넣은 일도 있었다.
포크너의 이력에는 '아내를 살해하는 방법'(1965), '네이비 대 나이트 몬스터'(1966), '완벽한 사람은 없다'(1968), '서부에서 가장 흔들리는 총'(1968), '철인들'모자를 바람에 걸어라 (1969), 남자 (1972)와 TV 쇼 '드래그넷', '래시', '길리건의 섬', '모드 분대', '도망자', '도둑이 필요합니다', '대포', '아담-12', '600만 달러의 사나이' 등에 얼굴을 내밀었다.
1976년 포크너는 연기를 잠시 쉬고, 그 뒤 12년 동안 해상운송 산업에 화물 컨테이너를 임대하고 전 세계적으로 호텔을 소유 및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유족으로 딸들 말고 아들 에드워드 3세와 손자 타일러, 와이어트, 스티븐, 올리비아, 브룩을 남겼다. 고등학교 연인이자 손튼 와일더의 연극에 함께 출연했으며, 거의 60년을 함께 한 바바라는 2013년 5월 이미 세상을 등졌다.
유족은 "화면 밖에서 포크너는 마법에 대한 어린 시절의 사랑을 결코 잃지 않았고, 평생 동안 재주와 환상으로 친구와 가족을 기쁘게 했다"면서 "동료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그의 친절함과 진정한 따뜻함으로 기억한다"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