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소리
임순이
해마다 폭염이 기염을 토해내는 8월에 접어들면 유난스럽게 더위를 타는
체질이기에 가을의 전령인 입추를 손꼽아 기다렸으며 숨이 콱콱 막히는 말복과 처서의
막바지 노염 속에서 헐떡거리면서도 내 마음은 어느 덧 이십사절기의 오묘함과 천지 만
물의 조화에 감복하면서 소리없이 다가오는 가을의 발소리에 가슴이 설레었다.
아테네 올림픽의 막바지 경기를 나홀로 거실에서 무심히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악을
쓰듯 토해내는 매미의 처절한 울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랬고 고막이 찢어질 듯이 아프
더니 한동안 귀가 멍멍했다. 어제에 이어 연 이틀째 그것도 똑같은 한나절의 같은 시간
대여서 신기했으며 예삿일이 아닌 듯싶었다. 아파트 5층의 베란다 창문 밖에서 마치 한
많은 이 세상을 고별하듯 혼의 마지막 절규였으며 한 치의 벌레에도 닷푼의 넋이 있다는
속담이 번뜩 뇌리를 스쳐갔다.
한 여름의 매미소리는 그 동안 나의 인생행로에서 무심히 지나쳤거나 때로는 한가롭
게 감상에 젖기도 했건만 오늘 따라 측은지심으로 매미의 한 살이를 뒤돌아보게 했다.
무덤 같은 칠흑의 땅속에서 만 5령이 지나 땅밖으로 나와서 다섯 번째 허물을 벗은 매
미는 그것도 수컷만이 한 여름에 요란스럽게 울어대며 가을에 오는 쓰름매미(寒蟬)도
매미들은 밝은 세상에서 고작 열흘 정도 밖에 살지 못하며 여름매미는 봄과 가을의 계절
을 가을매미는 봄과 여름의 계절을 알지 못하니 그 얼마나 짧은 수명인가… 비록 미물일
지언정 온몸으로 토해내는 한 맺힌 처절한 절규였다. 空蟬(우쓰세미) 매미의 허물을 뜻
하며 일본에서는 허탈한 상태와 덧없는 인생의 비유로 쓰이며 和歌(와까)의 枕詞(마무
라고도바)첫머리 수식어로 쓰인다. 무슨 연유인가. 이틀 동안 마지막으로 토해내고 간
매미의 단장의 울음소리는 종족을 보존하고 순명하는 거룩한 삶의 본보기로 인간의 영
혼에게 영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으로서 됨됨이가 부족한 나에게도 운명의 분에 넘치는 홍복을 주셨건만 기나긴
인생여정에서 나는 과연 몇 번이나 거듭난 삶을 살아왔는지.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전전긍긍 알지 못하지만 앎에는 끝이 없음을 안다. 청량
한 청솔바람에 은은하게 실려오는 신선 같은 매미소리를 올 여름에는 아름다운 음악으
로 듣고 싶다.
2005/23집
첫댓글 사람으로서 됨됨이가 부족한 나에게도 운명의 분에 넘치는 홍복을 주셨건만 기나긴
인생여정에서 나는 과연 몇 번이나 거듭난 삶을 살아왔는지.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전전긍긍 알지 못하지만 앎에는 끝이 없음을 안다. 청량
한 청솔바람에 은은하게 실려오는 신선 같은 매미소리를 올 여름에는 아름다운 음악으
로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