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4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루카 4,38-44)
♡시몬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심♡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도 병고에 사로잡힌 이들을 해방하고 육신의 병고를 완치시켜 줌으로써 하느님의 능력을 알게 해주는 영적인 자유가 무엇인지를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통해서 알게 된다. 병 치유의 의미는 바로 하늘나라의 삶을 이 지상에서 이미 조금 체험하게 하여 주시고, 궁극적인 의미는 당신이 바로 참된 구원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임을 알려주시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집에 가셔서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가셔서 열을 꾸짖으시자 열이 가셨다고 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하느님으로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증거이다. 우리도 모두 죄의 열병을 앓고 있다. 이 열의 종류도 다양하다. 성을 내는 열, 죄악과 불륜이라는 열병의 종류도 많이 있다.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십사고 간청하자. 그러면 우리의 열병이 곧 가실 것이다. 이렇게 우리를 치유해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머리와 가슴으로 그분을 모시면 그분은 우리 안에 있는 쾌락의 열을 식혀주실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당신을 기쁘게 해드릴 일을 할 수 있도록 영적인 것들도 강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손을 잡도록 하자.
그래서 그분 손이 우리를 마음의 병과 마귀의 사나운 공격에서 해방해 주시기를 바라자. 군중들은 예수님을 쫓아다닙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듭니다. 그들에게 대접받으면서 편안한 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곳에 머무시면서 아쉬운 사람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병든 장모를 고쳐주시고, 질병을 앓는 이들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기 위해서는 시몬의 집에 가서 장모에게 직접 가까이 가셨습니다. 또 다른 질병을 앓는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왜 이렇게 불편하게 행동하셨을까요? 그냥 말씀만으로도 편하게 고쳐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냥 입으로만 “사랑해”라고 말한다고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의 말에 따른 행동이 있을 때, 그 사랑에 비로소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장모와 병자들이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만이 사랑을 세상에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삶 안에서 당신의 따뜻한 사랑을 계속 주고 계십니다. 나의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바라보면서, 우리 역시 사랑의 온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평불만을 줄이고 만족의 삶, 기쁨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