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초하루
십이월 셋째 화요일이다. 새벽녘 잠 깨어 뉴스 채널을 켰더니 코로나 확산이 수그러들지 않아 걱정이다. 수도권은 물론 부산과 울산에서도 집단 감염 사례가 있단다. 경남에서도 연일 확진자가 끊이질 않는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될 듯하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예방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는 외신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내년 하반기나 되어야 접종이 가능할 전망이 나왔다.
아침밥을 이르게 해결하고 설거지와 세면을 하고 남은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재방송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날이 밝아오길 기다렸다. 여섯 시가 지날 무렵 출근 채비를 했다. 중부 산간은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닥쳤다. 휴대폰 기상 정보에는 내가 머무는 연초는 영하 4도를 가리켰다. 모직 헌팅캡을 쓰고 목도리를 둘렀다. 마스크는 방역과 방한을 겸하고 장갑도 꼈다.
여섯 시 이십 분 와실을 나서니 바깥은 캄캄했다. 동지가 곧 다가오는 때라 밤이 길어졌다. 내가 머무는 연사마을 와실 골목은 어둠을 밝혀주는 보안등이 없어 불편하다. 시골이지만 원룸이 들어서 인구 밀집도가 높음에도 당국에서는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유감이다. 어둔 길을 더듬어 학교로 향하지 않고 연사 버스정류소 방향으로 나갔다.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들판으로 갔다.
조선소 근로자들의 본격적인 출근 시간이 아니라 고현과 옥포 사이 거제대로엔 다니는 차량이 많지 않았다. 고현터미널을 출발해 각지로 흩어지는 시내버스는 승객이 없이 빈 차로 다녔다. 밤을 새워 달려온 물류 이동 대형 트럭이 간간이 보였다. 약수봉 산기슭과 효촌마을 교회 십자가는 붉은 네온이 선명하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조명이 반짝거렸다. 연사리에도 교회가 두 곳 있었다.
들녘 복판으로 나가 농로를 따라 걸었다. 저만치 연효교에는 밤 새워 불을 밝힌 조명이 켜진 채 새벽을 맞았다. 천변 둑길에는 낮게 켜둔 보안등 불빛이 점점이 보였다. 가로등처럼 자동점멸등이라 날이 밝아오면 절로 꺼지지 싶다. 연초다리 방향으로 걸으니 수월과 고현의 높은 아파트에서도 불빛이 비쳤다. 다들 아이 등교와 일터로 나갈 사람들이 하루가 시작되는 때지 싶었다.
날이 덜 밝아온 들녘 농로를 걷다가 문득 이 길도 한겨울 추위 속에 걸어볼 날이 그리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연말 겨울방학에 들기까지는 보름 남았다. 내년 한 해가 남아 있지만 그때 일은 그때 가서 볼 일이다. 연사 와실로 와 머물면서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고 근무지로 향하는 지가 이태 지난다. 이제 일 년만 흐르면 더 머물고 싶어도 머물지 못할 낯선 객지살이다.
들녘 농로에서 천변 둑으로 올랐다. 어둠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무렵이었다. 날씨가 춥고 이른 시각이라 산책객은 아무도 없었다. 연초천 물막이 보로 가두어진 수면은 살얼음이 살짝 얼어 있었다. 흰뺨검둥오리 녀석들이 보이질 않아 궁금했는데 어디선가 밤을 새고 수면에 내려앉은 소리가 첨벙 들렸다. 전날 다른 곳에서 먹이활동을 하고는 베이스캠프로 복귀하는 선발대인 듯했다.
연효교를 앞두고 맞은편에 자전거 페달을 저어오는 한 노인이 다가왔다. 그 양반은 어디 사는지 몰라도 매일 이른 아침 자전거로 들녘을 몇 바퀴 돌면서 건강을 다졌다. 모자를 눌러쓰고 허리가 구부정했는데 나이가 내보다 더 들어 보였다. 힘이 부쳐서인지 페달을 쉬엄쉬엄 저어갔다. 연효교를 건널 때 한 아주머니가 종종걸음으로 지나쳤다. 이른 시각 고현에 볼 일이 있는 듯했다.
연초삼거리를 앞둔 연사마을 입구 횡단보도를 건너 교정으로 드니 일곱 시였다. 배움터 지킴이는 자신이 근무하는 공간에 불을 켜 놓고 자리를 비워 보이질 않았다. 동료나 학생들이 나타나지 않은 이른 때였다. 야간 당직 노인은 늘 현관을 일찍 열어 놓아 고마웠다. 이층 문화보건부실로 들어 실내등과 난방기를 켰다. 책상 위 달력을 살피니 오늘이 음력으로 동짓달 초하루더구나. 2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