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란 마리아 도미니카(주한 독일문화원 교육협력부)
| ▲ 안미란 마리아 씨 |
하다 보니 한 달에 한 번꼴로 대학 병원에 가게 되었다. 더 자주 간 적도 있으니까, 지난 두 해 사이에 50번이 넘게 간 셈이다. 동선이 어찌나 몸에 익었는지, 순환버스 타는 곳과 택시 타는 곳의 위치가 서로 바뀌자 왼발 오른발이 꼬이려고 한다.
그렇게 내 집처럼 드나드는 사람이 병원에서 받는 느낌은? 내 경우, 거기 근무하는 분들이 유난히 친절하다는 것이다. 식탁 옆에 와서 쪼그리고 앉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와는 다른 따뜻함을 느낀다.
이 말에 공감하지 않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분들이 계시리라. 진찰실 앞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거기 걸려 있는 진료 순서를 세어 보면 15분 간격으로 일정이 짜여 있는데, 15분에 4명, 반나절에 70명 정도 예약이 되어 있다. 업무가 분담되어 있다지만 의사 입장에서 56번째 환자와 57번째 환자를 구별하기가 참 힘들 것 같다. 진찰실 밖은 어떤가. 어디가 불편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병원이다. 그러니 행정상 일이 마음대로 쉽게 풀리지 않으면 금세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다. 여기 가서 등록하고 저기 가서 번호표 받아 수납하고 이쪽 원무과에 가고 저쪽 검사실에 가는 절차가 익숙하지 않으니, 한 가지가 빠졌다고 그 다음 단계가 처리 안 되면 짜증이 날 수밖에.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무슨 일로인가 높아진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하지만 병원에 근무하는 분들의 언어는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주말에 검사하러 가서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고 있었더니 “그럼 당연히 물어보셔야지요” 한다. 치료 중에 생긴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의사는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이렇게 이렇게 해보란다. 필요하다면 조직이라도 떼어내야 하는 상황에 불편은 무슨…. 명령문을 안 쓰려고 “이쪽에 서시겠습니다”라고 하는 ‘-겠-’의 새로운 용법도 병원에서 처음 접했다. 그렇게 서서 검사를 마치고 나면 수고하셨단다. 누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인지 잠시 헷갈린다.
그렇지만 적응이 안 되는 표현이 한 가지 있는데, ‘고객님’이라는 호칭이다. 진찰실에서 그렇게 부르는 일이야 없지만, 예약 날짜를 옮기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나는 ‘고객님’이었다. 병원 노조의 현수막에 쓰인 문구에서도 정규직을 확충하여 ‘고객에게 사랑받는’ 병원이 되자고 한다.
아무래도 어색하다. 여기가 백화점인가 싶다. 왜 이렇게 부를까 생각을 해 본다. 우리말에서 ‘당신’, ‘그쪽’ 같은 대명사는 시비조로 들린다. 그보다는 직함을 사용하는 게 보통인데, ‘환자님’은 어떤가? 주차나 입원 안내 같은 인쇄물에 ‘환자와 보호자’라고 쓰기는 하지만, 마주 보며 그렇게 부르기는 또 이상하다. 사랑니를 뽑으러 온 사람, 까마득한 몇 년 전에 수술하고 지금 상태가 어떤가 보러 온 사람이 환자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남은 게 ‘고객님’인가 보다.
나름 설명을 찾아보고, 좋은 의도로 그 표현을 사용하리라고 믿지만, 나에게 이 단어는 치료가 필요해서 온 사람이라는 느낌보다 ‘소비자’,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라는 어감이 강하다. 병이 많을수록 좋은 고객이고, 몇 가지나 들어둔 의료보험이 든든하면 금상첨화. 서점이나 항공사에서처럼, 병원을 자주 이용할수록 포인트를 많이 쌓아서 요새 위험하다는 A형 간염 예방 주사 하나 정도는 무료로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좋을까? 우리는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해열제 한 알을 사듯이 그렇게 의료 서비스를 구매하러 병원에 가는 건 아니다. 건강은 선택 사양이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병원이 경쟁적으로 걸어오는 통신사 광고 전화에서처럼 그렇게 우리를 부르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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