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세시간을 훌쩍 넘겨 영동고속도로에서 내려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탔다.
동해 내륙을 달리던 버스가 옥계와 망상 해변으로 다가섰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보며 몇몇 산객들이 "와 바다다!"하고 환호한다. 햇빛을 받은 바다가 갈치 비늘처럼 은빛으로 반짝인다.
동해 시가지를 비껴지나고 삼척 IC에서 내려선 버스는 구불구불 굽이도는 오십천변을 지나고 이내 28번 지방도로 갈아탔다. 가파르게 내리달린 산줄기 사이 좁은 논에서 백로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며 두타의 품 댓재로 향하는 산객을 반긴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보행로 댓재 고개 위로 지금은 2차선 아스팔트가 지난다. 고갯마루는 해발 810m로 832m 대관령 못지 않게 높고 험하다. 구불구불 좁은 산길을 따라 오르는 버스에 실린 몸도 좌우로 흔들린다. 도로 가장자리에 황색 콘크리트 안전벽이 줄지어 섰고 그 너머 눈 아래 산군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황룡의 등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느낌이다. 우측에 두타산을 끼고 도는 길이니 왼쪽 창가 좌석이면 금상첨화다.
소금장수 등짐 지고 넘던 고개
산새도 고개를 넘자고 울고
저 아래 구릉지로 산비 질러가네
......
오늘 이 고개를 넘는 사람아
구름도 나그네와 함께 쉬었다 가네
- 정일남 詩 <댓재> 中 -
백두대간 줄기가 지나고 두타산과 남쪽 황장산 능선이 만나는 곳 산행 들머리 댓재에 도착했다. 너른 댓재 고갯마루는 백두대간 표지석, 도로 개통기념비, 호랑이와 대나무 조형물 등과 함께 멀리 겹겹 산군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거침없는 조망을 산객에게 선사한다. 죽치, 죽령 등으로도 불렸다니 어딘가 산죽 군락을 품고 있을 것이다.
댓재 옆 두타산 자락에 자리한 소담한 산신각을 찾는 산객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50년 전부터 삼척 정월 대보름제 전날에 성균관유도회 하장지회 주관으로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벌써 태양은 중천이다. W, D 두 산악회 산객을 비롯 개인 산객까지 대략 4~50명이 산행을 시작했는데, 산신각과 댓재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앞서 산행을 시작한 대부분의 산객들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달리기하듯 서둘러 참나무숲 녹음 속으로 뛰어 들었다.
들머리 평탄하다 싶던 길이 오르막을 내놓는다. 한참을 걸어서 '햇댓등'이란 이정표를 만났다. 산행대장의 우려대로 초입부터 평탄한 우회로를 두고 해발 963미터 봉우리 쪽으로 알바를 한 셈이다. 시간상 빠듯해 보이는 청옥산까지 간다는 산객도 있으니 두타산에서 하산한다면 이쯤 알바는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다.
운동선수처럼 체력훈련을 하러 온 것도 아닌 터에 '종주'라는 타이틀에 홀려 미친듯 산길을 내달려 지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세상 대개의 길은 옛 사람들이 먼저 지나간 길이라 '지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새로울 것도 없으니, 길을 걸으며 무엇을 어떻게 스스로 몸소 보고 듣고 느끼고 깨우쳤는지에 의미를 둘 뿐이다.
해발 900미터쯤에서 푹신한 흙길 옆으로 산죽 군락이 모습을 보인다. 햇댓등에서 만난 부부 산객과 얘기를 주고 받으며 한동안 걸음을 맞추었다. 서울 노원에서 이른 아침 차를 달려 왔다는 부부는 일년 반쯤 전부터 매주 산행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백대 명산 가운데 벌써 70여 곳을 다녀왔다고 하니 꾸준히 이어간다면 금년 중에 100곳을 채울 수 있지 싶다.
통성명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알고보니 동갑이라 취미 자식 등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앞서 걷던 그의 아내가 안부에서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리며 건네는 얼음 과일차 한 잔이 기분까지 개운하게 채운다.
긴 능선은 오르내림이 있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다. 걷기에 한결 편한 내리막도 그 건너로 다시 올라야할 능선이 있기에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비탈을 오르내리는 고통도 그 끝엔 산정에 서는 희열을 선사하니 달게 감내할 뿐이다. 산기슭을 타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좋다.
정상으로 가는 긴 능선길을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예닐곱 산객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산을 찾는 DNA는 타고나기도 하지만 경험이라는 씨앗에서 발아할 수도 있지 싶다. 이 거친 산을 오르는 저 젊은 산객들은 오늘 산행이 씨앗이 되어 앞으로 수많은 산을 다시 찾게 되리라. 어쩌면 인간도 아득히 먼 베링해에서 본능에 따라 수 만리를 헤음쳐 남대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해발 1273미터 능선마루에 '유인 김해 김씨 ㅇㅇ'라 적힌 묘비명과 함께 무덤 하나가 자리한다. 무슨 연유로 이 높고 외딴 곳에 홀로 영면하게 되었는지 의아하다. 앞서가거나 뒤로 처진 산객들거 떨어져서 한동안 홀로 호젓하게 솔바람을 쐬며 걸으니 눈과 귀가 트이며 산새들 소리가 들리고 나무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뒤틀린 줄기로 의연히 선 고목은 굵은 힘줄을 내보이며 나약한 산객의 의지를 채근한다.
고지대의 비바람을 견뎌내느라 줄기가 뒤틀리고 굽은 신갈나무 군락과 철쭉 등 관목 지대를 지나며 정상이 가까워온다. 시야가 트이며 남쪽으로 먼 산군이 모습을 보인다.
해발 1353미터 정상에 올라서니 동해시와 삼척시에서 각각 세운 표지석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자리하고 있다. 정상부에도 큼지막한 봉분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무덤의 후손은 5대에 이르러 왕조를 창업할 것이라는 한 도승의 예언에 따라 댓재 동쪽 능선자락에 부모를 안장한 이성계의 선조 목조처럼 무슨 원대한 꿈이라도 품었던 것일까.
산객들은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거나 정상 가장자리 나무 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아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박달령 너머 3.7km 거리의 청옥산이 눈앞에 보이지만 시간에 쫓기느니 욕심을 버리기로 하니 마음이 느긋하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갖게 된 영화 '캐쉬백'의 주인공은 여성들 옷을 벗기고 누드를 그리지만, 오늘 하루 몇 시간만이라도 시간을 멈출 수 있다면 두타산 정상을 지나 백두대간 주맥을 찬찬히 짚으며 청옥산까지 올랐을 것이다. 또 좀 더 여유가 된다면 두타계곡 폭포들, 바위에 패인 50개 우물이 있다는 쉰우물, 이승휴가 은거하며 <제왕운기>를 저술했다는 천은사 등도 둘러보고도 싶다.
옛날에 비해 비약적으로 좋아진 교통과 늘어난 수명은 현대인들이 일생 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넓은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인생은 짧고 살면서 힘에 겨워 미처 듣고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을 아쉬워 하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그늘이 졌지만 자갈과 깨진 바윗돌이 널브려진 길이라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관목 숲 사이로 미로처럼 좁게 난 길은 왼편으로 가파른 비탈을 끼고 무릉계곡 쪽으로 내려가며 청옥산에서 뻗어 내린 힘찬 줄기들을 간간이 보여준다.
바위와 어우러진 노송들이 곳곳 길 옆에 산객을 호위하듯 도열해 있다. 지리한 비탈길은 해발 550미터쯤에서 두타산성 줄기와 만나며 계곡 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해발1060여 미터쯤에서 애매모호한 이정표를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산성능선 옆 능선을 타고 산성 시작점으로 내려선 것이다.
두타산과 청옥산의 여러 줄기들이 하나로 수렴하면서 멈추어서는 곳에 곧추 선 절벽과 너른 두타계곡이 어우러지며 지리하던 하산길을 보상하듯 일대 장관을 펼친다. 두타산성은 신라 파사왕 때인 102년에 축성하고 조선 태종 때인 1414년에 수축한 것이라 한다. 지난 4월 추읍산 산행 가는 길에 스쳐 지나간 여주의 파사성이 얼핏 떠오른다.
박달령 쪽 1km여 지점 계곡에 있을 용추폭포와 쌍폭포, 관음사, 관음폭포 등을 알리는 이정표를 지나치며 무릉계곡 옆 길을 따라 내려간다. 길 옆에 보이는 학소대를 외면할 수 없어 하늘에 맞닿은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폭포줄기를 올려다보며 그 아래 비스듬히 누운 너럭바위 위로 뛰어올라 연신 감탄사를 토해냈다.
이십여 년만에 삼화사에 다시 들렀다. 철조노사나불이 좌정하고 있는 적광전 앞 너른 마당 축대 아래 감로수로 갈증을 달래고 경내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약사전 보살 한 분은 코로나19로 꼭 한 달간 연기되었던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가 오전에 열렸다고 귀뜸하며 걸래질을 멈추지 않는다.
일주문을 빠져나오니 금란정 옆 계곡 운동장처럼 넓고 평평한 너럭바위 주변에서 행락객들이 때이른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계곡 바위 바닥을 한지삼아 수많은 이름과 문구들이 한자로 빼곡히 적혀 있다.
금란정 옆에 서있는 안내문을 곁들인 김홍도의 '무릉계' 그림은 흐릿하다. 단원이 44세 때인 1788년 정조의 명을 받고 금강산과 관동8경 지역을 돌아보며 그린 그림을 모은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에 실려있는 그림이라 한다.
"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무릉계곡 초입 유불선(儒佛仙) 사상을 담고 있다는 '무릉반석 암각서' 옆을 지나 안내소로 내려서며 산행을 맺는다. 두타(頭陀)는 산스크리트어 두타(Dhuta)의 이두식 표현으로 “의식주 탐욕과 세상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수행한다.”는 불교적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스스로 의연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인 자연(自然)을 특정 사상이나 이념에 붙들어 매려는 것은 한낱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릉도원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은 한동안 산객들이 주고받는 산행 무용담으로 웅성거리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죽전에서 탄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하늘 높이 상현달이 산행 얘기를 들려달라는 듯 말간얼굴로 산객을 졸졸 따라온다.
#산행 #두타산 #댓재 #동해 #삼화사 #무릉계곡
첫댓글 두타산.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햇대등에 두타산 방향과 댓재
이정표 있는데 두타산 이정표가 떨어져 있어서 날씨가 안 좋을 때 초심자들 알바구간입니다.
동해시에 건의 했는데 아직까지 정비 되지 않았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산행 전 산행대장의 당부에도 막상 들머리에 들어서면 보이는 길만 따라가기 쉽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