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일기 / 차주일
신은 생명을 가진 존재를 경쟁자로 생각한다.
수태 순간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다.
신의 첫 번째 일은
모든 씨앗에 숨어들어 배아의 미동 횟수를 감찰하는 일.
신의 하품을 틈타 태어난 개체는 동물성 필기도구를 가진다.
생명 이전에서 갖고 온 내 심박이 누구와 내통인지 궁금한 신은
생각에서 가장 먼 발끝에 그림자를 매달아 둔다.
저녁은 신이 내 그림자를 펼쳐 일기를 엿보는 시간.
신이 찢어낸 일기장을 겹쳐 쌓으면 밤이 깊고,
내 발끝이 펜촉의 각도로 디디면 아침이 시작된다.
새벽 그림자에는 신이 필사해 간 자국이 남아 있다.
‘사랑해’란 말은
어제 하루 세상에서 가장 많이 발음된 말이었으나
신에게는 유일하게 해석 불가능했던 말.
신이 필사한 자국이 내가 한 말인 양 느껴질 때
누군가 내 그림자를 밟고 지나간다.
신이 내게서 목숨을 거두지 못하는 건
내가 발자국 주인을 끝내 찾아낼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발자국이 내 그림자의 절반을 채운 날
나는 걸음 멈추고 누군가와 첫 대면을 하게 된다.
그때 사랑 고백은 생명 이후 첫 박동을 빌려 오는 것이어서
신은 또다시 의문에 빠져 필사를 하게 된다.
신을 제압한 사랑을 품고 감찰하는 나 또한
발걸음과 입소리 사이에서 일평생 미동하는 배아이다.
사랑은 신성성에게 한 번도 해독된 적 없는 생물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