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우 기도가 끝날 무렵, 숲 속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진흙을 반죽하는 듯한 굉장히 많은 발자국 소리였다. 눈이 빠른 한 마고마는 숲가로 뛰어나가서 기마병이며 도보의 사람들을 어둠 속에서 확인했다. 하네피도 똑같은 만큼의 군중들을 그 반대편에서 보았다. 민경대를 끌고 온 러시아 기병장관 카르가노프였다. 약 100여 명의 병력이었다.
“할 수 없다. 우리도 감자뜨처럼 여기서 싸울 뿐이다.”
하지 무라트는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 무라트
... 4명의 부하들에게 재빨리 숲의 한가운데의 도랑가에 토루를 구축하도록 명하고, 하지무라트는 나뭇가지를 꺾고 단도로 흙을 파면서 일을 도왔다.
이윽고 동녘이 밝아 오고, 민경대의 대장이 숲 가까이에 말을 몰아와서 목청껏 소리쳤다.
“어이! 하지 무라트! 적당히 항복해라! 이쪽은 수가 많고, 너네는 별로 없지 않느냐!”
이에 대한 대답으로 도랑에서 둥근 연기가 솟았고, 민경의 말은 탄환에 명중했다. 곧이어 숲을 둘러쌓고 있던 민경들의 소총소리가 콩 볶듯이 터져나왔다. 탄환은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숲의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상하게 했지만, 하지 무라트와 부하들에게는 맞지 않았다.
... 하지 무라트와 체첸인들은 민경대의 누군가가 앞에 나섰을 때 이외에는 총을 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앞에 나서면 반드시 명중하였다. 벌써 세 사람의 민경대가 중상을 입었다. 그래서 다른 자들도 앞서지 않고 그냥 적당히 총을 쏴댈 뿐이었다.
이렇게 한시간을 끌고, 하지 무라트는 말을 달려 강쪽으로 협곡을 뚫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다수의 병력이 강쪽 방향에서 나타났다. 메흐뚤린의 하지 아가가 이끄는 200명의 병력이었다. 과거 하지 무라트와 함께 싸운 하지 아가는 그 뒤에 러시아 군으로 넘어간 것이다.
카르가노프처럼 그도 하지 무라트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망루에서 총성이 들릴 뿐이었다. 하지 아가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칼을 뽑아라!”
.... 수백명의 민병들이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망루 뒤에서 몇 발의 총성이 들리고, 3명이 나동그라졌다. 그러자 공격하던 쪽에서 멈추어서서 나무 뒤를 향해 사격을 하였다. 한발한발 좁혀들어갔다.
개중에는 용케 잘 빠져나가는 놈도 있지만, 하지 무라트가 쏘는 총은 한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감잘로도 똑같이 거의 빗나가지 않는 총을 쏘았다. 탄환이 적에게 명중할 때마다 기쁜 듯이 소리를 질렀다.
한 마고마는 도랑가에 걸터앉아서 ‘알라는 위대하시다!’라고 소리치며, 유유히 사격을 했지만 잘 맞지는 않았다.
엘다르는 단검을 뽑아 들고 적진에 뛰어들고 싶어서 하지 무라트에게 계속 간청하였다. 젊은 패기로 인하여 몸을 떨면서 망루 위로 몸을 드러내고 총을 쏴댔다.
털보 하네피는 양소매를 걷어올리고 충실히 하지 무라트의 종의 역할을 하였다. 묵묵히 하지 무라트와 한 마고마가 넘겨주는 총을 받아서 총알을 장전해서 돌려줬다.
..... 맨 먼저 부상을 당한 것은 한 마고마였다. 잎에서 피를 토하며 욕지거리를 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뒤이어 하지 무라트도 상처를 입었다. 탄환이 어깨에 맞았다. 그는 바지에서 솜을 뜯어서 그것을 상처에 쑤셔넣었다.
“칼을 빼들고 돌격합시다!”
엘다르가 말했다. 벌써 3번째 재촉이었다.
..... 결국 적진에 돌격할 결심이선 엘다르는 상반신을 망루 위에 내밀었다. 그 순간에 총알이 명중하여 그는 비틀거리며 하지 무라트의 발 위에 나동그라졌다. 하지 무라트는 힐끔 그를 바라보았다. 양처럼 아름다운 엘다르의 눈이 가만히, 진지하게 하지 무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처럼 내민 윗입술이 열리지도 않고 뻥긋거리며 움직였다.
.... 하지 무라트는 그의 시체 밑에 발을 뽑아내고 계속해서 러시아군을 향해 사격하였다. 하네피는 아직 쓰지 않은 총알을 엘다르의 몸에서 꺼냈다. 한 마고마는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 천천히 쏘아댔다. 점점 수백의 민경들과 러시아군은 망루를 향해 다가왔다.
.... 또 한발의 총알이 하지 무라트의 왼쪽 옆구리에 명중했다. 그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그는 자기의 죽음을 직감하였다. 갖가지 추억과 환상이 굉장한 속도로 차례차례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힘센 아부눈츠알 한의 얼굴이 지나갔다. 한은 잘려져서 너덜너덜한 그의 머리 절반을 한쪽 손으로 누르면서 다른 한손에 단검을 쥐고 적과 싸웠다. 하얀 얼굴을 한 러시아 공작 보론초프의 얼굴이 지나갔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다. 자기 아들 유수프와 아내 소피아를 보았고, 빨간 턱수염을 기르고 눈을 가느랗게 뜬 샤밀의 얼굴도 보였다.
이러한 추억이 미련도, 증오도, 희망도,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는 일 없이 그의 상상 속에 스쳐지나갔다.
.... 최후의 기력을 다해서 망루의 그늘에서 몸을 일으켜 자기에게 달려드는 놈을 향해 총을 쐈다. 총알은 명중했다. 얼마 후, 호 바깥으로 나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단검을 쥐고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그는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여러명의 민경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 카르가노프와 하지 아가, 아흐메트 한과 모든 민병들은 쏘아 잡은 짐승 곁의 사냥꾼처럼 하지 무라트와 그 부하의 시체를 둘러쌌다. 하네피와 한 마고마, 감잘로는 붙들려 포박되었다.
러시아군과 민경대들은 초연이 덮여 가는 숲 속에 서서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들의 승리를 자축하였다.
2009년도 3월의 체첸 서쪽 잉구세티야와 국경 지대- 순자 지역 - 에서 카디로비치에게 포위된 체첸 반군
대화를 정확히 해석하지는 못하지만 대충 정리하면
"우린 1,000명~ 1,500명에게 포위되어 있다."
"그 숫자는 돌파하기는 힘든 숫자지"
이런 소리를 하면서 웃으며 식사를 하다가 마지막에 전방을 살펴보면서
'우린 저 놈들에게 가서 한바탕 휘저어야 겠다."
라고 한 뒤에 영상 찰영을 끝냅니다.
정확한 그 뒤 상황은 알지 못하지만 아마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2013년 1월 23일 체첸 베데노 산악 지대에서 포위된 후세인 게카에프, 무슬림 게카에프 형제의 체첸 반군입니다.
현재 체첸 반군 중에서 가장 활동을 많이 하고 카디로프가 가장 꺼려 했던 형제들인데, 포로 1명을 고문해서 위치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나 봅니다.
1월 23일엔가 부대원 중 한명이 정보원에게 전화하길, '우린 현재 카디로비치에게 포위되었는데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고 했고 이틀인가 싸우다가 다음날에 부대원 10명 중 9명이 죽고 1명이 잡힙니다.
자세한 대화 내용은 해석할 수 없지만
"오늘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생일이다. 좋은 날에 순교를 하게 되서 너무 기쁘다'
"우리의 시간이 온 것 같다."
"카디로비치 놈들이 너무 시끄럽게 총을 쏴서 말이 잘 안들리는군"
역시 이런 소리를 하면서 씩 웃고 총을 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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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하지 무라드 소설을 읽을 때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평상시와 똑같이 여유를 갖고 전투력을 유지하며 버티는 모습을 보고 실제 가능할 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실제 체첸 반군들의 죽기 직전에 웃으면서 농담하고 싸우는 것을 보면 그냥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하지 무라드가 써졌던 시대랑 현재랑 그닥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 역시 놀랍기만 합니다.
첫댓글 오 오랫만이군요!! ㅋ 잘 봤습니다 ㅋ ㅎㄷㄷ하네요;;
야거님 오래간만이에요^^ 체첸인들 이야기보면 눈물이 ㅠㅠ 저 상황에서도 부모형제 생각하면 눈물날건데 ㅠㅠ
체첸...무섭다...
오... 이제 체첸항쟁사 다시 시작하시는건가요?
맨날 눈팅만 하는 처지지만.....정말 기대됩니다......
근데 무인비행기로 미국이 재미보고 있는데 다른 나라들도 따라하지 않을까? 게릴라전이 힘든 시대가 올지도. 게릴라들도 무인비행기 쓸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보를 통합적으로 운용하는 수준이 다를테니까
체첸인 답군요.
오랜만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인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