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숟가락
윤실비
노인들이 놀다간 정자에 덩그마니 쪼그리고 앉아 회색 밤하늘에 박힌 선
홍빛 십자가를 바라본다.
왼 종일 복잡한 도로를 굽어보던 가로등과 네온사인도 차들이 한적함을 틈타 잠들고
오가는 이조차 없는데, 왜 저렇듯 십자가는 잠시라도 눈 부칠 안식마저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그러나 평온함으로 가장된 이 정적의 시간에도, 괴로움과 아픔을 하소연하며
그에게 매달린 수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십자가는 조금도 싫은 기색
없이 그들을 어르며 감싸고 위로하느라, 남들이 잠든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다.
빈 밤하늘의 십자가, 어디선가 그 자애롭고 근엄한 음성은 내 지난날을 돌이켜 보게 한
다.
몇 년 전 치매와 중풍까지 든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면서부터 자유롭던 내 삶의 고리는
가정의 울타리로 옮매인 처지가 되었다. 내 건강한 손과 발을 빌어 그렇지 못한 환자의
것으로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여지없이 그 대가를 치
를 수밖에 없는 암담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발병 일년 후, 부부라는 백년해로의
약속도 잊은 듯, 아버님을 내게 남기고 다시올 수 없는 먼 길을 뜨셨다.
마음의 짐을 채 풀기도 전에, 이번에는 시아버지마저 중풍으로 이어져 외며느리인 나
는 두 번째의 어둡고 긴 터널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하루를 생산의 대가나 보람 없이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것, 그것은 어깨 위에 무거운 돌을 얹고 방향을 잃은 사막을 떠도
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현실을 탈피하고 싶다는 유혹과의 싸움을 이기고, 다시 두 번
째의 병 수발까지 그만큼 버틴 것은 가족들의 하나같은 도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
을 새삼스레 말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식사나 빨래는 며느리인 내가, 몸을 씻기고 청
소를 하는 일은 남편과 시누이가, 심부름은 아이들이 분담을 했다. 특히 셋째 시누이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일요일을 틈타 목욕을 시키러 먼 길을 달려와 주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그 무렵 시아버지의 절친한 고향친구 한 분이 문병 다녀간 일이 있었다. 그 분의 얘기
로는 주변의 잘 아는 팔 십 노인 한 분이 중풍 든 아내의 병 수발을 혼자서 감당하지 못
하고 의사, 박사학위까지 받은 자식들을 원망하며 음독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
런 불행을 막기 위해 지금은 건강하지만 뇌졸중이 어느 날 발생했을 경우 가족의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몸에 극약을 지니고 다닌다는 말은, 젊은 내게도 무척이나 충격적이었
다. 하물며 당사자의 입장이 된 아버님의 심정인들 오죽했으랴.
그 친구 되는 분이 고향으로 돌아간 날 밤, 아버님이 가족들 몰래 신경안정제를 한꺼
번에 다량 음복한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리고 혼수상태의 잠 속으로 하루가 이어
지고, 이튿날이 되자 둥지 안의 새끼 제비처럼 필사적으로 마음을 받아 드셨다. 봉지 속
의 약이 남아있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자살보다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을 무언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병들고 늙었다는 이유로 이 땅에 누울 자리하나 변
변히 없는 노인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초겨울의 문풍지 틈새로 싸하게 밀려오는 찬바람
이 내 가슴에 밀려든다.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는 가족들마저 모두 나가버리고 때늦은 시간에 홀로 남아 맛없
는 밥 한술 뜨는 일이 잦아지면서 언제나 했던 것처럼, 씽크대 서랍 속에 넣어둔 플라스
틱 숟가락을 찾는다. 당뇨와 고혈압, 복부비만까지 겹쳐 식이요법이 필요함에도 먹는
것만큼은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는 아버님.
하루 종일 누워서 낙이라고는 먹는 일밖에 없는데, 식욕절제는 고문이나 다름이 없을
건 너무도 뻔한 일이다. 언제부터인지 내게는 소리가 나지 않는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숨죽여 밥을 먹는 버릇이 생겼다.
'거지도 얻은 밥을 자유롭게는 먹을 터인데......'
불현듯 서글픈 마음이 들어 고개를 숙이는데 벌거숭이의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낸 식
탁 위의 플라스틱 숟가락이 빤히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마치 건물위에 떠있는 근엄한
십자가이듯, 모든 걸 팽개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생로병사(生老病死)로 가는 길을 당신인들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하려
는 것이었을까.
이년 동안의 병마를 끝으로 아버님은 다시올 수 없는 먼 길을 뜨셨다. 사십 구제를 끝
내고 돌아오던 날. 평소 쓰시던 유품을 자루에 담아 조용한 산자락에서 태워 보냈다. 그
속에는 플라스틱 숟가락이 먼 길동무가 되었다. 무겁고 칙칙한 연기가 드넓은 창공 속
으로 유유히 배회하는 곳을 한동안 망연자실 바라보았다. 살아생전에는 내 설움에 겨워
눈물 짖게 하던 일회용 숟가락의 이별. 가시처럼 가슴속에 수 없는 생채기를 낼 줄이야.
이 시간, 발병 당시의 여름처럼 십자가의 붉은 빛은 여전히 변함없는데 두 분 모두 내
곁에 아니 계신다. 이제 아픈 마음으로 저 십자가의 불빛 속에 고백한다. 그때, 힘든 일
을 덜어보리라는 내 중심적 사고방식과 이기심이 없었는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머리
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2005/23집
첫댓글 살아생전에는 내 설움에 겨워
눈물 짖게 하던 일회용 숟가락의 이별. 가시처럼 가슴속에 수 없는 생채기를 낼 줄이야.
이 시간, 발병 당시의 여름처럼 십자가의 붉은 빛은 여전히 변함없는데 두 분 모두 내
곁에 아니 계신다. 이제 아픈 마음으로 저 십자가의 불빛 속에 고백한다. 그때, 힘든 일
을 덜어보리라는 내 중심적 사고방식과 이기심이 없었는가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머리
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