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을 손가락으로 뜯어 소리를 내는 고대의 발현악기(撥絃樂器)에서 진화된 12 평균률 악기로서, 그 음역은 혼성합창(混聲合唱)시의 남성(男聲)의 가장 낮은 음부터 여성(女聲)의 가장 높은 음에 상당하고, 음빛깔이 고아 우미하여 모든 악기 중에서도 가장 섬세합니다.
그 성능은 발현악기 중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표현을 가지며, 선율악기인 동시에 화음악기여서 상당한 정도까지의 겹음연주가 가능합니다.
기타는 인류와 함께 태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래된 악기입니다. 인류와 함께 변화 발전해 오면서 인간의 희노애락을 표현해준 동반자가 바로 기타였던 것입니다. 슬플때는 은밀한 시정의 악기였고, 기쁠때는 쾌활한 노래와 춤의 벗으로 변함없이 우리의 곁에 있었던 만큼 우리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민중의 악기입니다.
기타의 종류(기능과 외양에따른 분류)
- 클래식 기타(Prim guitar or Spanish guitar) : 스페인이 본 고장이며 순수한 고전음악을 연주합니다. 나일론 줄을 사용하며 오른손 손톱과 손가락 끝으로 연주합니다.
- 플라밍고 기타(Flamenco Guitar) : 스페인 민속 춤과 노래 반주에 사용하는데, 근래에는 독주용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손톱으로 연주하며, 음색이 가늘고 날카롭습니다. 앞판에 셀룰로이드 골페(celluloid golpe)판을 부착하며, 카포타스토(capotasto)(사진)를 쓰기도 합니다.
- 레퀸토 기타(Requinto Guitar) : 라틴음악과 대중음악의 멜로디 연주에 사용되고, 나일론 줄을 사용하며 다른 기타보다 완전 4도 높게 조율됩니다. 크기가 조금 적은데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피크(thumb pick)를 사용하며, 카포타스토를 쓰기도 합니다.
- 피크 기타(Pick Guitar) : 재즈음악과 대중가요의 반주, 경음악 연주 등에 사용됩니다. 강철 줄과 피크를 사용하는데, 앰프를 장치하여 음색과 음량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전기 기타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 포크 기타(Folk Guitar) : 클래식 기타와 비슷하지만 주로 강철 줄과 피크를 사용 하는 점이 다르며, 가요 등에서 반주와 멜로디를 연주합니다.
- 하와이언 기타(Hawaiian Guitar) : 하와이 애들이 쓰나봅니다. 잘 모르겠네요 ^^;
기타의 역사
기타는 목(neck)이 있는 발현악기(撥絃樂器)로 류트(lute)와 함께 분류상 lute-guitar족(族)(혹은 류트족)에 포함됩니다. 혹자는 기타와 류트가 많이 닮았다고 해서 류트를 기타의 전신(前身)으로 보기도 하지만 류트 연구가들은 서로 다른 줄기로 발전해온 점과 오늘날 독립된 연주 악기의 형태로 남아있는 점을 들어 달리 분류하기도 합니다.
'guitar'(독/gitarre, 불/guitare, 이/chitarra, 스/guitarra)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이스 시대의 키타라(Kithara)라는 악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데 이 악기는 목이 없기 때문에 기타의 조상으로 보지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타'는 그 유래를 고대음악에서부터 찾을 수 있는데, 인류 역사에서의 출현 시기에 대한 정설은 없으나 대략 B.C.4,000~3,500년 경으로 보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고대 이집트, 아라비아 등지에서 발견된 고분, 벽화 등의 자료에서 기타와 모양이 닮은 여러 종류의 발현악기의 그림이 있는 것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B.C. 1400년의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유적에는 네퍼(Nefer), 혹은 오오드(Oud)로 불리우는 보다 더 진보된 발현악기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그 이전의 힉소스(Hyksos)시대에 서아시아의 침입자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여러 형태의 공명통이 있고, 이미 16 개의 프렛(fret)를 가진 것도 있는 가늘고 긴 넥크는 악기로의 형태를 분명하게 갖추고 있었습니다. 네퍼는 나일강의 음악생활에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네퍼로 반주된 노래는 주로 향락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발현악기로는 리라(lyre)와 키타라가 있었는데 이 중 키타라는 서아시아에서 수입된 무겁고 연주하기가 난해한 악기였으며, U자 형이며 무거운 공명통을 가지고 있었고 음량이 풍부했다고 하는데 7현으로 된 키타라는 종교제전이나 운동경기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류트는 그리이스나 로마의 예술에서 드물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판도라(Pandoura) 또는 판도로스(Pandouros)로 불리웠으며, 고대 조형예술에서 보이는 바에 의하면 하프와 리라가 주로 종교 제전이나 군대 행진에 사용된 반면 류트 연주자들은 종종 가정음악( household music)으로 여겨지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외로운 인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타의 정의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최초의 악기, 즉 기타의 직접적인 조상은 8세기경 사라센 제국의 스페인 지배 당시, 무어인들이 들여온 퀴타라(Quitara)라는 악기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무슬림(muslim)제국을 건립하기 위해 이집트를 거쳐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에 간 아랍인들이 이 기타의 기본형태를 서유럽의 악기 제작가들에게 전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훗날 lute의 조상이 된 '알-우드'라는 악기도 이때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페인에 살던 아랍인들에 의해 기타가 탄생하는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보며, 이를 아라비아 풍의 기타 (모로, 혹은 무어풍의 기타)라고 합니다. 아랍의 지배하에서 스페인의 예술과 과학은 번창하였으며 이는 기타와 기타리스트의 출현을 촉진시키고 최초의 기타 음악학교인 비울리스타스(Vihuelistas)를 낳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스페인에는 이미 라틴 풍의 기타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는 고대 그리이스의 키타라가 발전한 것으로 로마인에 의해 전래되어 여러 차례의 개량을 거쳐 훗날 16 세기 경의 스페인 비우엘라(Spain Vihuela)로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의 2악기(무어 풍의 기타와 라틴 풍의 기타)가 근대 기타의 직접적인 원조(元祖)로서 이들이 통일, 개량되어 전 유럽에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중세에는 많은 발현악기들이 있었지만 현대인들이 '기타'라고 부를 수 있는 개념과 구조나 성능을 같이하는 악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중세의 기타는 단음으로 합주에 참가해 하나하나의 성부를 맡았으리라 추측되며, 화음을 만들어 노래 반주를 하게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나 가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타에 근접한 악기는 키타라(Kithara)류와 기턴(Gyterne)을 들 수 있는데, 이 기턴은 시턴(Cittern)으로 발전하게 되며, 이것은 영국에서 잉글리쉬 기타(English Guitar)로 유행되었으나 스패니쉬 기타(Spanish Guitar)의 등장으로 소멸되었다고 합니다. 13 세기에 만들어진 '성모마리아 찬가'에 묘사되어 있는 바로는, 중세의 음유시인들이 무어풍의 기타와 라틴풍의 기타를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무어풍의 기타는 무어인들이 가지고 온 악기로 뒷면이 둥글고 목이 길며 알몬드(Almond)처럼 생긴 악기였는데, 음 하나하나를 뜯어서 연주하는 푼테아토(Punteato)주법으로 연주되었고 류트가 성행하게 되자 스페인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라틴풍의 기타는 지중해 지방의 고유한 악기였으며 이것은 세고비아 기타(Segovia Guitar)의 전신이라고할 수 있으며, 네크(neck)가 짧은 4현으로 표면판이 평평하고 허리가 들어가 현대 기타와 비슷한 외양을 가졌는데, 둘, 혹은 셋을 한 조(組)로 하는 여러개의 줄을 라스게아도(Rasgado) 주법으로 거칠게 연주하였다고 합니다.
무어풍의 기타가 고음의 가락을 연주하고 류트가 춤의 리듬을 맞추며 여기에 라틴풍의 기타가 더해져 3 개의 악기가 어울어져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대의 기타들은 대개 가장 높은 음을 제외하고는 모두 겹줄(코스;courses)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작은 음량을 크게 하기 위한 것으로 겹줄의 사용으로 표현되는 미묘한 음감과 뉘앙스는 당시에 성행되던 다성부(polyphony)음악형식과도 상당한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악기는 13 세기에 나타나 16세기에 크게 성행했던 비우엘라입니다. 표준적인 비우엘라는 6음현으로 되어있고 동음이나 한 옥타브 차이로 조율된 겹줄로 되어 있었고 맨 윗현만 한 줄이었습니다.
그 당시 다른 기타들에 비해 더해진 두, 세개의 현은 사회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비우엘라는 세레나데를 부르는 공작부인에 어울리는 귀족적인 악기가 되었고 기타는 서민이나 농민이 노래나 춤의 반주로 사용하는 대중적인 악기로 쓰였다고 합니다. 당시 이발소에는 손님들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타를 연주하며 기다릴 수 있도록 기타를 이발소에 놓아두는 것이 상례였다고 할만큼 일반인들에 의해 많이 연주되는 대단히 인기있는 악기였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16세기와 17세기는 피아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클라비코오드와 하아프시코오드의 전성기로 인식되어 있으나, 실상 이는 극소수의 귀족과 그들의 궁정악사를 위한 전용물로 연주되었으며 오히려 이 시대에 서민과 수많은 음유시인들 사이에 널리 통용된 악기는 비우엘라와 류트였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스페인에서는 비우엘라가, 유럽의 다른나라에서는 류트가 현대의 피아노만큼 중요하게 쓰였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비엘라는 16세기 후기에, 대륙의 류트는 17세기에 이르러 차차 그 빛을 잃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은 때마침 출현한 바이올린과 18세기에 완성된 피아노를 주축으로 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면서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기타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그러한 상황에서도 비센테 에스피넬(V. Espinel)과 환 칼로스 아마트(J.C.Amat) 두 사람의 노력으로 악기는 보다 합리적인 개량을 보게 되었습니다. 즉, 에스피넬은 5현 기타를 확립하였고, 아마트는 이 기타를 스페인 전역에 보급하는 한편, 조율도 현대 기타와 별 차이없게 완성시켜 놓았습니다.(현대 기타에서 6번 선이 없는 것과 동일)
당시 5코스 기타를 다루었던 음악가들은 화음을 울려주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폴리포닉(polyphonic)한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기도 했는데, 라스게아도 주법과 류트에서 배웠던 푼테아도(punteado)주법을 교묘하게 섞어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17세기 바로크의 5코스 기타는 18세기 들어와서도 얼마간 사용되었으나 차차 자취를 감추었는데, 이는 고전파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18세기 음악은 다성부에서 단성부로 옮겨갔으며 악보상으로도 타블라추어에서 새로운 5선 기보법으로 옮겨갔는데, 이러한 점에 숙달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기타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제 1쇠퇴기'라고 부릅니다.
근대에 들어서는 18세기 후반에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기타리스트가 아닌 보케리니, 힘멜, 플레이넬, 베라르와 롬베르크 등의 일반 고전음악 작곡가들이 기타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들 가운데에 복케리니가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다장조의 오브리가토적 기타 협주곡과 다, 라장조의 기타 5 중주곡, 마단조의 기타 5 중주곡은 현재에도 많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거의 현악기와 기타의 중주곡이었으며, 화려한 현악기의 기교나 가락에 비하면 기타는 너무 단순하고 여렸고 단지 아르페지오로 시종일관 반주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가면 쇠퇴기를 맞았던 기타가 다시 일어날 기미를 보이는데, 5선 악보에 의한 최초의 교칙본을 내놓은 안토니오 다실바와 페르난도 페란디에르와 같은 기타 작곡가들이 이같은 흐름을 주도하였습니다.
또, 이무렵 스페인에서는 기타 부활의 기운을 불어 넣어준 음악가가 나타났는데, 그는 바실리오 신부였습니다. 그는 페데리코 모레티와 디오니시오 아구아도에게 기타를 가르쳤습니다. 모레티는 바실리오의 이론과 주법을 이어받아 이를 발전시켰습니다. 우선 코스(겹줄)기타가 아닌 6외줄 기타로 바꾸었고 1799년 "6외줄 기타연주의 원칙"을 내놓았습니다.
이처럼 18세기말 기타는 역사상 가장 큰 전환기를 맞이하였는데, 이 전환은 이탈리아에서 먼저 일어나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페인으로 파급되었다고 합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호세 페르나스에 이어 안토니오 토레스(1817~1892)가 근대 표준형의 기타를 확립시켜놓았습니다. 이 성능좋은 기타로 고전파 기타리스트들은 단성부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으며, 고전적인 작곡기법과 악기특성을 그들 나름대로 연구하여 아름다운 고전기타의 명곡들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그리하여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기간은 기타의 황금시대라고 할만큼 위대한 기타리스트들이 속출하였습니다. 이 가운데에 이른바 "표현파"로 불리우는 위대한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소르와 아구아도, 이탈리아의 줄리아니의 활약은 고전기타 음악사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오늘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시 활성화된 기타는 19 세기중, 후기에 와서는 전 세기의 대가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한편, 그랜드 피아노와 확장된 오케스트라의 출현으로 음악의 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음량이 적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기타가 한 때 쇠락하는 제 2의 침체기를 맞게 됩니다.
그리하여 기타는 기타의 고장 스페인에서 조차 떠돌이 집시나 거리의 악사, 농부들만이 만지는 하류악기로 전락하게 되고, 기타리스트가 유명해질 수 있는 길은 술집외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여러 기타리스트들이 기타를 연구, 육성하여 기타 음악은 근본적인 재검토를 거침으로써 더욱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스페인의 프란치스코 타레가(F.Tarrega)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타 주법을 연구하여, 기타가 지닌 모든 가능성을 캐어낸 위대한 기타리스트로 오늘날 추앙받는데, 그에 의하여 기타는 명실상부하게 멜로디와 화음을 입체적으로 구사하는 동시에 보다 색감있는 표현도 가능하게 되었을 뿐아니라, 왼손의 운지법과 오른손의 탄현법에 철저한 개혁을 이룩함으로써 현대의 합리적인 주법이 눈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기타 음악은 하나의 예술로서 자리잡기 위한 기초를 갖게 되었으며, 아마도 타레가 이후의 기타리스트로서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타레가의 시대에 이르러 약 100년간 묵혀있던 스페인 음악이 되살아났습니다. 즉 스페인 곳곳에서 자신들의 음악으로 바깥세계에 스페인을 재해석해줄 세대의 작 곡가들- 알베니즈(Issac Albeniz,1860-1909), 그라나도스(Enrique granados, 1867-1916), 팔랴(Manuel de Falla, 1876-1946) -이 나타났습니다. 그들 모두가 기타의 열애가로서 기타를 좋아했고 기타적 형식을 지닌 그들의 작품들이 훌륭한 기타곡들로 편곡되어 오늘날 연주되고 있습니다.
타레가에 이어 그의 제자 미겔 로벳(M.Liobet;1878~1938), 에밀리오 푸홀(E.Pujol;1886~1980), 다니엘 포르테아(D.Fortea), 알베르토 오브레곤(Alberto Obregon)은 근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도 기타는 작은 음량과 인식 부족으로 보급되지 않아 살롱 음악에 불과했고, 타레가와 그 제자들이 발전시킨것 이상으로 더 나아갈 수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이러한 모든 약점을 일거에 극복시킨 금세기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출현하였으니 그가 바로 안드레스 세고비아(Andres Segovia)입니다. 타레가와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그 정신만은 선명하게 이어 받았다고 할 수있는 그가 선배들이 뿌려두었던 씨앗을 수확한 것입니다. 타레가, 료베트, 퓨홀 등의 음악가들은 세고비아를 선두로 하는 현대기타의 부활의 기반을 마련해준 셈이 되었습니다. 세고비아에게 남아있는 것은 오직 20세기의 새롭고도 매혹적인 음을 가진 기타에게 독자적인 지위를 마련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많은 작곡가들이 그를 위하여 기타곡을 작곡하고, 그는 기타를 음악의 한 장르로 정착시키고 예술적인 연주회의 악기로 인식시켜 주었으며, 다른 악기와 같이 훌륭한 독주, 중주,협주 악기의 반열로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출현은 많은 신세대 기타리스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주었습니다. 20 세기 제2의 기타 황금기는 세고비아를 정점으로 또 후광에 힘입어, 그가 영면한 후에도 많은 기타 아티스트들이 춘추전국의 군웅들처럼 종횡무진으로 활약하였고 또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로서 첫째로 예페스(Narciso Yepes)를 꼽을 수 있습니다. 세고비아 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10줄, 6줄 기타 및 류트로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곡을 정확히 소화 연주하였습니다.
한편 줄리안 브림(Julian Bream)은 존 윌리엄즈(John Williams)와 함께 영국 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플라멩코로 시작해 클래식 기타까지 연주 및 많은 디스크를 내놓은 로메로스(Los Romeros)중 페페 로메로(Pepe Romero)는 가장 뛰어난 연주자로서 가장 매끈하고 크리스탈과 같은 음으로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위에 적은 최정상급이외도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왔고 기타 보급에 공이 컸던 베렌트(Siegfried Behrend), 베네주엘라 출신 디아즈(Alirio Diaz), 부인인 프레스티(Ida Presti)를 잃어 외짝이 된 라고야(Alexandre Lagoya) 역시 무시못 할 대가들입니다. 이어 좀 젊은 쿠바의 브라우어(Leo Brower), 남미의 산토스 (Turbio Santos), 이탈리아의 길리아(Oscar Ghiglia), 페페의 동생 앙헬 로메로 (Angel Romero), 세고비아가 총애했던 파크닝(Christopher Parkening)이 바짝 뒤를 쫓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류 기타리스트들로는 손톱없는 연주로 유명한 타라고(Renata Tarrago), 발커(Luise Walker), 보이드(Liona Boyd), 아르츠(Alice Artz), 이스빈(Sharon Isbin) 그리고 우리나라에 여러차례 다녀간 랜돌프(Lauri Randolph) 등이 있습니다.
한창 인기가 오르고 있는 기타리스트로는 체코의 젤렌카(Milan Zelenka)와 <기타 리뷰>지에서 디스크를 내준 세르지오(Sergio)형제, 보넬(Carlos Bornell), 비잔틴(J.Byzantine), 스쿠데로(Mario Escudero), 페르난데스(Eduardo Fernandez), 피스크(Eliot Fisk), 러셀(David Russel), 바루에코(Manuel Barrueco), 라모스(Manuel Lopez Ramos), 실버만(Stanley Silverman), 샤이트(Karl Scheit), 토레(Jose Rey de la Torre), 독일의 11현 기타리스트 죌셔(Goran Solscher)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한편 불모지와 다름없는 동양권에서는 야마시타(Kazuhito Yamashita), 후꾸다(Shinichi Fukuda) 등 일본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첫댓글 흥미롭게 공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