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여수 가서 돈 자랑 말라는 옛말이 있다. 여수에 돈이 많은 것은 밀수 때문일까? 다 옛날 얘기다. 비옥하고 수려한 바다 때문이다. 여수의 바다는 돌산도, 금오도, 백야도 등의 많은 섬이 큰 바다의 물결을 막아주어 잔잔한 것이 특징. 그래서 호수 같이 조용한 바다는 별미의 창고다. 동백과 진달래꽃 향기가 흥건해지는 사월, 푸지고 운치 있는 남도의 맛을 찾아 여수로 떠나보자.
|
해남, 강진, 보성과 마찬가지로 여수에서는 아무 음식점에나 들어가도 괜찮다. 백반만 시켜도 반찬이 대개 15가지 이상 나오니 이런 호사가 없다. 양재기에 담아 낸 냉이와 쑥국으로 봄을 마시고 꼬막무침에 아귀찜까지 음미하는 즐거움! 5000~6000원만 내면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상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여수다. 바다가 비옥한 뻘을 품고 있고 물결도 온순하니 조개, 굴, 낙지, 우럭 등 먹을 것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 굴 구이로 유명한 화양면이든 돌산도든, 여수의 기나긴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육지에 둘러싸인 바다 전체가 부표투성이임을 알 수 있다. 뱃길만 빼고 다 양식장이다. “우리는 태풍이 불어도 배를 띄운당께라.” 그래서 촌사람이 더 잘산다는 말이 나온다. 해물 중에서도 여수를 대표할 만한 것은 서대회다. 서대는 서대기의 준말로 참서댓과의 납작한 바닷물고기다. 지금은 어획량이 줄어들어 중국산이 많지만, 아직도 여수에서 제대로 된 국산 서대회를 맛보기란 어렵지 않다. 서대는 주로 회무침으로 먹는다. 어른 손 한 뼘 만 한 서대의 껍질을 벗긴 다음 살을 떠서 미나리, 상추, 깻잎 등의 야채와 고추장 등 갖은 양념에 버무린 것이 서대회무침이다. 서대회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식초다. 재래식으로 발효시킨 막걸리 식초로 버무려야 제맛이 난다. 그윽하고 웅숭깊은 막걸리 식초의 맛은 일반 화학 식초가 따라올 수 없다. 쌀 막걸리를 병 따위에 담아 뚜껑을 열어둔 채로 며칠 두면 시큼한 식초가 만들어진다. 용기 아래쪽에 고인 덩어리에서는 하얗게 뿌리가 나며 이것을 초알(식초의 알)이라고 한다. 초알은 먼 옛날 새색시가 시부모의 방을 식히지 않기 위해 애면글면 다뤘던 불씨와 같다. 초알만 있으면 식초 만드는 일은 쉽다. “초알 뿌리가 아랑아랑하게 컸을 때 다른 병에 나눠 넣고 막걸리를 부어놓으면 금세 식초가 되어불지라.” 여수시 문수동 소문난식당의 김삼엽(58세) 씨는 전통 식초 만드는 비결을 이렇게 알려준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싹이 죽기 때문에 초알을 분양 받아가도 건성으로 키우면 실패하기 십상이라고 한다. 서대회의 맛을 좌우하는 또 다른 요소는 껍질이다. 보통 여수에서도 서대의 양면 껍질을 다 벗기는 음식점은 많지 않다. 대개 한쪽 면만 벗긴다. 다른 한쪽 면의 껍질이 질겨 손질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돌게간장게장’도 별미다. “돌게 뚜껑에 밥 한번 비벼 먹어보시요잉. 둘이 묵다가 혼자 죽어도 모른당께요.” 여수 사람들이 이렇게 자랑하는 돌게는 ‘민꽃게’의 방언이며, 충청도에서는 ‘바카지’라고도 한다. 돌게는 꽃게보다 작고 살도 적어 주로 게장으로 먹지만, 곰삭았을 때의 담백한 맛과 향은 꽃게에 뒤지지 않는다. 가격이 저렴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돌게간장게장 백반은 보통 5000원이다. 돌게는 통발로 잡거나, 뻘이 있는 바다의 돌 밑에서 직접 잡기도 하는데, 돌처럼 딱딱한 집게발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 몸통에 비해 유난히 큰 집게발은 매우 힘이 세 행여 손가락이라도 물렸다가는 ‘큰일’ 나는 수가 있다. |
|
생선회, 조개, 돌게 다 여수를 빛내는 음식이지만 여수의 대표적인 푸성귀인 돌산 갓을 빼놓을 수 없다. 입 안을 알싸하게 하는 돌산 갓의 맛과 향은 대단해서 입맛 돋우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해남 등지에서 나는 돌갓에 비해 자극성이 덜해 처음 맛본 사람도 잘 먹는 것이 돌산 갓이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도는 돌산갓김치! 이 별미는 일부러 찾지 않아도 눈에 띈다. 여수 시내에서 40분쯤 걸리는 돌산도 향일암 입구에 가면 음식점마다 갓김치를 먹어보라고 유혹한다. 서로 자기 집 김치가 맛있다고 자랑하는데 색깔 좋게 버무려진 갓김치는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다. 가게마다 굴과 홍합을 널찍한 건조대에 말리고 있어서 입맛은 더욱더 다셔진다. 홍합이나 굴은 쪄서 건조시킨 다음 즉석에서 팔기도 하고 택배도 해준다.
내가 봄볕 나긋나긋한 4월이면 어김없이 여수로 떠나는 이유는 이런 풍성한 먹을거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동도 동백꽃의 순정과 영취산 진달래꽃의 눈부심이 내 마음을 봄마다 포로로 만들기 때문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일부인 향일암 역시 춘삼월이면 동백꽃의 정염으로 불타오른다. 돌산읍 임포리 금오산의 아찔한 절벽에 자리한 향일암은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4대 관음성지의 하나다. 관음성지란 ‘관음보살에게 소원과 복을 비는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이다.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과 장엄한 일출, 특히 동백꽃 향기가 상록수림을 감싸는 봄의 경치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아까울 정도다. 특히 푸른 잎과 붉은 꽃이 어우러져 녹의홍상을 연상케 하는 동백나무는 아열대 고목들과 뒤섞여 찬란한 봄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토록 붉게 타오르던 동백꽃도 봄비 한 보지락에 송두리째 떨어지고 말아 때로 깊은 애수를 자아내곤 한다. 동백이 통째로 낙화하는 특성은 흔히 절개 있는 여인의 마음에 비유된다. 그래서 별명이 ‘여심화’란다.
향일암은 백제 시절 신라의 원효가 지은 절이다. 당시는 원통암으로 불렸으나 조선 숙종 때 인묵대사에 의해 ‘해를 바라보는 암자’라는 뜻으로 ‘향일암 向日庵’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주민들은 ‘거북을 닮은 산에 있는 암자’라는 뜻에서 ‘거무암’이라고도 부른다. 임포마을 식당가에서 암자까지는 약 15분, 암자에서 산 정상까지는 20분도 채 안 걸린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금오산의 거의 모든 바위에는 거북 무늬가 돋을새김이 돼 있다. 금오산 정상에서 보면, 육지가 바다를 향해 거북이 목처럼 쑥 나와 있고 향일암은 거북 등에 얹힌 형국이다. 거무암의 뜻이 쉽게 이해된다. 그 잘록한 부분은 ‘거북이 목’이라고 한다. 셔틀버스의 종점이 있는 자리다. 향일암 뒤편의 관음전은 원효가 수도를 했다는 암자다. 절간이 아찔한 바위에 기대어 있는데 갈치 비늘처럼 반짝이는 물결이며 하얀 포말을 그으며 나아가는 어선이며 꿈같은 청해의 풍경이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곳이다. 이 풍경 하나를 보기 위해서라도 향일암에 오를 가치는 충분하다.
|
|
1. 여수의 바다는 호수같이 조용하다. 여러 만과 섬에 둘러싸여 평화로운 여수 앞바다에는 파도 대신 바다의 별미로 가득하다. 2. 1 여수 앞바다의 비옥한 뻘에서 채취한 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꼬막무침. 이것이 바로 남도의 맛이다. 2 돌산읍 임포리 금오산의 아찔한 절벽에 자리한 향일암에는 봄이면 붉디붉은 동백꽃이 만발한다. 3 해를 바라보는 암자 ‘향일암’ 가는 길.
| | |
오동도는 동백꽃 군락의 원조다. 194종의 희귀 식물이 들어찬 숲이 원시림처럼 무성하며, 섬의 가장자리는 거의가 기암괴석이다. 그래서 검은모래찜으로 유명한 인근의 만성리 해변과 함께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동백나무는 오동도 등대 아래에 가장 많다. 일제히 꽃이 떨어진 숲 그늘은 빨간 물감을 찍어놓은 캔버스처럼 현란하다. 매표소에서 승용차나 동백열차를 타고 들어가면 오동도의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768미터의 방파제를 따라 걸어 들어가야 제격이다. 울창한 숲에는 200여 미터에 이르는 산책로가 있고 대나무 군락도 넓게 형성돼 있다. 오동도의 대나무는 동백꽃과 함께 여인의 절개를 상징한다. 전설에 따르면, 남편이 고기를 잡으러 나간 사이에 부인이 자신을 겁탈하려는 도둑을 피해 달아나다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 여인의 무덤에서 자라난 것이 대나무다. 오동도 등대 전망대에 올라가면, 빽빽한 열대 숲을 연상케 하는 상록수림과 여수항, 유람선이 떠가는 바다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동백꽃의 우아함보다 훨씬 발랄하게 봄의 향취를 내는 것이 영취산의 진달래다. 4월 초가 되면 영취산 정상 주위의 약 15만 평이 분홍 물결로 출렁인다. 김소월의 ‘영변의 약산’보다 더 아름다운 화원이다. 영취산 기슭의 흥국사에서 약 40분쯤 더 올라가면 봉우재라는 안부 능선이 나온다. 그 오른쪽 사면에 눈을 휘둥그렇게 하는 진달래 밭이 펼쳐져 있다. 여수 여행은 기나긴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겨도 좋고, 비교적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명소들을 둘러봐도 좋다. 동백꽃과 진달래꽃 그늘 아래서 봄빛에 취하고 맛에 취하는 고을. 4월, 여수는 여러모로 우리를 취기에 오르게 한다.
Travel Note 가는 길 자가용 :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서 순천 IC로 나와 17번 국도를 타면 여수에 도착한다. 고속버스 : 서울 센트럴시티에서 여수 시외버스터미널(061-652-6877)까지 고속버스 19회 운행, 5시간 소요. 기차 : 서울 용산역에서 여수역까지 하루 11회 운행. 현지 교통 오동도 여수역 인근에 있으며 시내버스가 많다. 향일암 : 여수역이나 여수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버스(101,111, 111-1번) 하루 16회 운행. 영취산 : 여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흥국사까지 52번 버스 이용 50분 간격 운행, 약 40분 소요. 관광정보 여수시청 관광홍보과(061-690-2036), 오동도 관리사무소(061-690-7301), 영취산진달래축제 추진위원회(061-691-3104). 진달래 축제는 매년 4월 초 · 중순에 2~3일간 열린다. 숙소 여수시청 부근의 모텔들이 깨끗한 편. 3만5000원 선. 향일암 아래도 숙소가 많다. 2만5000~3만5000원. 먹을거리 칠공주집(061-661-1580, 장어 전문), 한일관(061-654-0091,한정식 전문), 소문난식당(061-652-8594)은 남도의 전통 미각을 느낄 수 있는 허름한 맛집으로 강력 추천. 주인 아저씨는 서대회 껍질 벗기기의 달인이며, 막걸리 식초로 만든 국산 서대회(한 접시 1만원)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푸짐한 양념에 버무린 멧돼지 삼겹살(1인분 8000원)과 제육볶음(한 접시 1만원)도 천하의 별미다. 멧돼지는 산에서 방목해 쫄깃쫄깃하고 고기의 누린개가 거의 나지 않는다. |
|
1. 1 여수 시내에서는 돌보다 많이 채는 것이 해산물 가게. 가게마다 널찍한 건조대에 말리려고 내놓은 홍합에 입맛이 다셔진다. 2 입 안을 알싸하게 하는 돌산 갓의 맛과 향은 해남 일대의 어느 돌갓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3 어느 식당이든 들어가서 5000원짜리 백반을 시켜도 풍성한 해산물이 곁들여 나오는 유난히 후한 남도의 음식 인심. 4 여느 꽃처럼 꽃잎이 하나하나 지는 것이 아니라 꽃 전체가 통째로 투신하듯 지는 동백꽃. 바닥에 떨어진 꽃들이 다시 꽃밭을 이루는 오동도의 동백꽃은 사뿐히 즈려밟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곱디곱다.
| |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