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미즈노
"(일본) 외부의 나이키와 아디다스, (일본) 내부의 아식스와 데상트만 경쟁자가 아닙니다. 집에서 플레이스테이션(가정용 게임기)에 빠진 아이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려면 그만큼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2005년 일본 최대 스포츠 업체 미즈노의 미즈노 마사토 당시 회장(현 이사회 부이사장)은 창업 100주년 기념회에서 경쟁 상대로 소니와 닌텐도를 지목했다. 당시 미즈노는 100주년을 맞았지만 기뻐할 상황이 아니었다. 일본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직원 절반을 해고해 4000명이었던 직원이 2000명으로 반 토막 났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되면서 주력 상품이던 야구 관련 매출은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 단가가 높아 효자 상품이었던 골프 관련 매출 역시 불황 여파로 뚝뚝 떨어졌다.
1988년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 회장 자리에 오른 마사토 회장은 매년 새로운 시도에 나섰지만, 실적은 나빠졌다. 스포츠 용품 주요 소비자층인 20~40대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지갑을 열지 않는 데다, 저출산까지 겹치면서 아이들마저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탓이다. 마사토 회장은 미즈노 창업자 미즈노 리하치의 친손자다. 가문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온갖 스포츠를 지켜봐야 했던 그는 스포츠 경기에서 마음이 떠난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려면 경기에서 마음을 뛰게 만드는 새로운 기록이 나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기록 달성의 두근거림이 불황을 겪는 소비자에게 대리 만족을 주고, 새로운 이정표에 도전하는 스포츠 선수들의 도전 정신은 소비자에게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힘을 보탠다는 것이다.
♧ 상어 가죽 본떠 '샤크스킨' 수영복 개발
1분 1초를 앞당기는 데 도움을 주는 제품을 만드는 건 스포츠 기업의 숙명이다. 여기서 돋보이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전략을 시도해야 한다. 미즈노는 이때부터 유달리 기술력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일본 국가대표 수영팀 기록 단축을 위해 첨단 소재 기업 도레이와 손잡고 상어 가죽을 본떠 '샤크스킨' 수영복을 만들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에 맞서 발볼이 넓고 발등이 두툼한 동양인 발 모양에 맞는 러닝화를 독자 개발했다. 불효자로 전락한 골프용품에는 사무라이용 칼을 만들 때 쓰던 연철 단조 기법을 그대로 적용했다. 망치로 철을 직접 두드려 만드는 이 방식은 녹인 쇳덩이를 틀에 부어 만드는 주조 방식보다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지만, 힘과 방향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전 세계 골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미국 스포츠 용품 업계에서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동남아와 중국 공장에 외주를 주곤 했는데 미즈노는 일본 특유의 '모노즈쿠리(もの 造り·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 제품을 만든다)' 정신을 살릴 수 있게 일본 생산을 고수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특정 제품을 오래 만든 직원은 장인으로 대접해 화가가 그림에 서명하듯 완성품에 본인 직인을 직접 새기도록 했다. 일종의 '품질 보증 제도'를 공장형 스포츠 업계에서 실시한 셈이다.
일본 야구의 '전설' 스즈키 이치로의 글러브를 담당했던 쓰보타 노부요시의 직인이 들어간 글러브는 여전히 시장에서 일반 제품의 3~4배가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마사토 회장의 바람대로 이치로는 이 글러브를 끼고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안타를 포함한 무수한 신기록을 만들어 냈다.
♧ 미즈노(Mizuno)
° 설립 : 1906년
° 본사 : 일본 오사카
° 설립자 : 미즈노 리하치·미즈노 리조
° 직원 : 5368명 ° 주요 사업 : 스포츠 신발·의류, 운동용품 제조
° 매출액 : 1조8200억원
° 영업이익 : 453억원
※ 매출·영업이익 2018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