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밸런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모든 사업은 반드시 위대한 사명(mission)을 갖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지속 가능한 가치를 구성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뉴밸런스는 1906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 윌리엄 라일리(Riley)가 만든 운동화 전문 제조업체다. 간판에 걸맞게 인체 균형을 바로잡아주는 기능을 강조한 신발을 만들어 명성을 쌓았다. 라일리는 마당에서 놀던 닭이 토실토실한 몸을 가냘픈 다리로 받치고 있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발을 안정적으로 지지해주는 아치서포트(arch support)를 개발해 팔았다. 아치서포트는 사람의 발바닥 중앙 볼록 들어간 부분을 세 갈래로 나뉜 밑창으로 받쳐줘 편안함과 균형감을 주는 제품이다. 닭발 모양에서 착안한 밑창은 변변한 운동화가 없었던 20세기 초반 선천적 족부 장애나 후천적 불편을 앓던 소비자에게 정형학적 치료 효과가 있다는 소문을 탔다.
뉴밸런스는 창립 초기 소비자가 직접 매장을 방문해 발 치수를 재고, 특수 설계한 밑창을 넣은 후 불편함이 줄어드는지 확인한 후에야 신발을 파는 맞춤 형태를 고수했다. 발볼이 넓거나 발등 높이가 제각각인 소비자를 위해 업계 최초로 발 너비가 다른 신발도 준비했다. 같은 280㎜ 신발이라도 발 너비에 따라 '아주 좁음'에서 '아주 넓음'까지 6단계로 구분하는 식이다. 초기에는 소수 소비자만 상대하다 보니 당연히 성장이 더뎠다.
그러나 1930년 미국에 대공황이 닥치자 상황이 뒤바뀌었다. 경쟁사가 줄줄이 도산하는 와중에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뉴밸런스는 살아남았다. 오히려 대공황이 끝나자 뉴밸런스는 이 시기 쌓은 소비자 데이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장애인용 밑창에서 시작한 회사라 발 모양이나 사이즈 다양성에 일찍부터 주목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다.
♧ 틈새 시장을 큰 시장으로 키우다
이후 뉴밸런스는 미국 경제 호황기를 맞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사람들은 건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세계적으로 달리기 붐이 일었다.
미국 유명 마라토너 톰 플래밍은 뉴밸런스 320을 신고 뉴욕 마라톤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세계적인 육상 잡지 러너스 월드(Runner's World)는 이 신발을 최고의 달리기용 신발로 꼽았다. 여기에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발표회마다 같은 신발을 신으며 뉴밸런스 전도사를 자청하자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껑충 뛰었다. 1991년 9500만달러였던 뉴밸런스의 연 매출은 지난해까지 28년간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 2018년 매출 추정치는 45억달러로 27년 사이 50배 가까이 늘었다.
1906년 작은 점포로 시작했던 뉴밸런스는 이제 전 세계 120여 나라에서 팔리는 세계 3위 운동화 브랜드로 성장했다. 창업자 윌리엄 라일리가 혼자 연구하던 족형(足形)은 이제 별도로 지은 스포츠 리서치 연구소에서 매사추세츠 애머스트 대학의 신체운동학과 박사과정 학생들과 협업한다.
뉴밸런스의 3대 경영자 짐 데이비스 회장은 2006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자리에서 "경쟁자들이 모두 한길로 나가 싸울 때 그 속에서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시중에서 잘 구할 수 없는 사이즈와 발볼 너비를 가진 소비자의 주문을 충실하게 소화하면서 뉴밸런스만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 뉴밸런스(New Balance)
° 설립 : 1906년
° 본사 : 보스턴
° 설립자 : 윌리엄 라일리
° 직원 : 5287명
° 주요 사업 : 신발 제조
° 매출액 : 4조5500억원
° 영업이익 : 비공개
※ 매출 2018년 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