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박정아가 신나게 욕을 먹고 있다만 패한게 죄다 박정아 탓이라 할 수 없죠. 문제가 한 두 군데가 아니었거든요. 물론 박정아를 주전으로 기용한 게 납득이 안되긴 했습니다. 어차피 윙리시버 두명을 주공과 보공으로 나누는 구식 배구를 할거면 차라리 수비력이 좋은 선수를 넣어서 김연경의 수비부담을 줄여주는 게 당연한 전략인데 박정아는 리그에서도 수비 나쁘기로 유명한 선수거든요.
하지만 박정아의 리시브가 털리기에 교체로 들어간 이재영도 리시브가 털리긴 매한거지였고 김연경도 그날은 별로 였습니다. 똑같이 리시브가 안된다면 차라리 신장이 더 큰 박정아를 넣어서 사이드 블록을 높이는 게 나으니 결국 박정아가 다시 나왔고 전부 뒤집어 쓰게 된거죠.
네덜란드의 서브가 잘 들어가긴 했다만 주로 목적타였고 한국팀이 못 받을 수준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리시브가 좋다는 평가를 받던 이재영과 리베로 김해란 마저 리시브가 흔들리는 건 반발력이 큰 미카사볼이 낯설기 때문이죠. 국제대회 공인구가 미카사볼이 된 후에 세계 거의 모든 배구리그에서는 미카사볼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아주 꿋꿋이 스타볼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선수생활 내내 스타볼만 만지다가 국제대회 앞두고 갑자기 미카사볼로 훈련 좀 한다고 공에 적응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배구란 종목을 우습게 보는 거나 다름없죠.
그리고 리시브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걸 메꿔야 할 이효희도 부족했습니다. 이미 카메룬전에서 체력이 떨어진게 드러났고 그 때문에 발이 땅에 붙어버려서 바로 머리 위로 리시브가 되지 않는 이상 공격 세팅이 거의 안되더군요. 국내에서 꽤 한다는 세터들도 국제경기만 가면 토스가 들죽날죽 해지는 건 빡빡한 경기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네덜란드 세터는 리시브가 어택라인 근처로 올 때는 오픈 외에는 다른 세팅을 못하는 걸 보면 기량은 세계 기준에서 그렇게 뛰어나다 볼 수 없지만 자기 범위 내로 올라온 공들은 거의 다 퀵오픈이나 백C로 쏴 줬습니다. 이런 빠른 공격을 김수지와 양효진은 제대로 따라가질 못해서 사이드 블록과 센터 블록 사이에 고속도로가 뚫리곤 했고 특히 김수지는 상대가 센터 공격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게 분명한데도 네덜란드 센터가 페이크 점프만 뜨면 항상 속더군요. 그래서 1세트에 이도희 해설위원은 보다 못해 '센터 블로커가 늦으니 사이드 블로커가 팔을 옆으로 기울여서 코스를 막아야 한다'고 말할 지경이었죠. '네덜란드 선수들은 직선 때릴 줄 모르냐'는 생각에 어이가 좀 없었지만.
결론은 배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가모바, 소콜로바, 아르타모노바라는 말도 안되는 윙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러시아도 2008년과 2012년에 노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선수 하나 때문에 이기는 것도 아니고 선수 하나 때문에 지는 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