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는데... 딱히 단정을 할 사인은 아니나 한가지를 구태여 말하자면 이런 경우를 보게 된다. 그전에 가까운 친구들부터 해부한다.[여기서 끝까지 안읽고 길다고 도망가면 반드시 추적한다..곤장 1000000000대 집행함...함 시작했으면 문지방에 풀칠만 하마 뒤진다..끝까지 잘 마무리해야 되니께..ㅋㅋ] A친구~~ 나완 동향 친구인데 많이도 보지않았다. 53년을 본 친구다. 이 친구는 학교를 다닐때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다. 44명중에 44등을 늘상 고수했다. 집도 가난해서 초등학교때 도시락반찬은 늘 김치아니면 신기[경상도발음..시퍼런풀]뿐이었다. 초등 6년동안 과자하나라도 입에 물고 다니는것을 보질 못했다..[장남의 기질때문인지 친구들에게도 잘 얻어먹지도 않았다.] 비록 내가 4학년이었지만 친구들을 겪으면서 빈부의 차이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그 친구는 중학교 입학시에는 모습을 볼수가 없었다. 거두절미하자.. 지금 그 친구는 대구 성서에 60억대 건물을 갖고 있다. 외제차를 타지만 고향친구들을 만날땐 꼭 택시를 타고온다. 초등학교동창회에 오면 모임의 뷔페부터 2차까지 깔끔하게 쏜다. 덤으로 서슴없이 찬조 100만원한다. 그렇다고 행세도 없다. 조용하고 과묵하다. 한번은 총회때 회장으로 추대를 시도해본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나도 적극 얘기한적이 있지만 그ㅡ는 고사한다. 그때 그의 유명한 일성.. [나는 몬한다..아는것도 없고 나는 돈만 내께] 친구들의 경조사 단한번이라도 빠진적이 없다. 한마디로 그는 성공한 케이스다. B친구로 넘어가자. 공부는 늘 상위권... 아버지는 70년대초반부터 대구에서 섬유업을 하셨고 부동산까지 엄청 소유한분이었다. 부자집 아들인데다 공부도 잘하니 선생님은 특혜[?]를 부여했다. 수업을 하다가 친구아버지가 학교에 오시면 그 친구는 교실밖으로 나갔고 학교가 파할때까지 돌아오지않았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느끼며 그렇게 보냈다. 난로위의 벤토중 그 친구의 것이 제일 먼저 올려졌다. 서로 나누어먹을만큼의 맛있는 반찬이 늘 수북했기때문이었다. 우리한테는 우상같은 친구였던것이다. 경찰서장이 부임하면 그의 집으로 제일 먼저 문안오고 한마디로 떵떵거리며 살았던...그리고 영민했던 친구였는데.... 부친한테서 물려받은 그많던 재산까지 사업으로 몽땅 날려버리고 교도소에서 1년을 보내더니만....지금은 소식조차 오리무중이다. 내가 교도소에 면회를 가서 마주했을때 그의 말..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나의 부덕이 지금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발상인가~~~진복아! 인자 내보고 돈돌라 카지마래이~~줄돈도 없다~~~하하하!] 과거 내가 힘들때 편지한장 보내면 꿉지않고 도와줬던 소중한 친구~~~~ 면회장에서 나는 그 친구와 오히려 자리가 바뀐것처럼 울고 통곡을 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신사중에 신사였던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 특히 어릴적의 자란 바탕은 평생을 지배한다고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나는 막내다. 4남1녀중의.... 우리집은 낮엔 식육식당...밤엔 아가씨버글버글하는 요정으로 둔갑. 냉장고문을 열고 바나나를 주머니에 한개 손에 하나 들고 동네마당을 가면 친구들이 침을 많이 삼키고 입에다 한모금씩 먹여주며 정국을 주도하며 살았다. 골목대장이었고 반장만 했었다. 마실나가서 동네형들한테 맞고 돌아오면 우리 아버지는 이랬다. [진복아! 힘으로 안돼면 돌삐로 찍어! 알겠어 인마! 아부지가 다 책임질게] 그렇게 돌아가실때까지 나의 후원자셨던 아버지는 지금 영천호국원에 영면해계신다. 또 나는 가끔씩 어머니앞에서 과시한게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늘상 그랬다. 바지를 내리고 이런다. [엄마~~내 고추 크제? 단단하제~~만지봐라~~~완전히 못겉제?] [오냐~~내새끼~~왕자지데이....호호호!] 그런 어무이를 내가 곁에서 17년을 모셨는데..돌연 미국에서 날라온 누나가 84세되신 당신을 이 조진복이가 사는기 부실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달랑 모시고 가버렸다. 4년전 27살된 내딸까지 어무이와 함께 데리고 가더니만 내한테 일언반구없이 현역미군과 동거를 시켜버렸다. 그것도 백인과...[데리고 갈땐 재미교포와 선보인다더니..쓰벌] 나는 어쩔수없이 딸의 전화를 받고 동사무소로 번역소로 변호사공증사무소로 우체국으로 가야했다.[혼인신고때문] 4년전.. [아빠~~내일 신랑집이 있는 애라주나주로 간데이~~~아빠! 영주권나오면 미국으로 온네이 잘모시께 알았제? 아빠 사랑해] [니나 잘살면 된다...] 어무이가 벌써 미국에 가신지가 4년이 넘었다. 2주전 국제전화가 왔다. [야야~~~애비야~~밥은 제대로 묵나~~~[여기서 어무이 울먹울먹]] 나도 목이 메여온다. 하지만 강건한 모습을 보여야한다. 콧등이 시큰해오지만 난 이빨을 깨문다. [어무이예~~저는 아무걱정할기 없심더~~이번에 대박날수있는 멋진 책도 썼심더. 조만간에 라디오에도 신문에도 난리날끼고예. 테레비에도 방방 뛰뎅길낍니더. 그라이 어무이만 건강하시마 모든게 일사천리입니데이~~하하!] [아이고~~야가 뭐라카노~~또 책을 썼다말이가~~고마 쓰라 안카더나~~니가 책써가 자꾸 힘들어졌는데~~쓰지마라 지발 쓰지마라~~알겄나~~야가 아직도 정신을 몬차리고] 어무이는 말을 잇는다. [야야~~애비야~~내년 6월에 내가 집에 가이 쪼매만 고생해라~~내가 우야든동 너거 누나한테 집한채 살돈 빼앗아갈테이~~알것제? 으이!~~아이고 내새끼~~으흐흑] 나는 어무이 말씀 듣고 숨이 턱턱 막혀온다..눈물이 볼을 타고 삽시간에 줄줄 흘러내린다. 당신에겐 아직도 이 불효막심한놈밖에 없는것이다. 주체할수없는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말을 또박또박하기위해 난 안간힘을 쓴다. 턱이 덜덜 떨린다 [어무이예? 은주말들으니 4킬로나 몸무게가 불었다면서예?] [그래~~나는 건강하고 편하다~~니도 밤에 마이 묵지말고 운동 마이 해래이~~배도 좀 넣고 다리는 인자 완전히 나았제?] [예에~~인자 100% 건강합니데이....] [오냐~~그라마 내 고마 전화 끊는데이~~~으흐흑]
나도 어느덧 오십하고도 몇살더 먹었다.[마음은 무쇠도 녹일것같지만..ㅋㅋ] 이제 나는 다른 소원이 없다. 내년 6월에 미국에서 돌아오시는 연로하신 어무이를 잘 모시는것말고는............ [어무이~~~사랑합니더~~~~~~~~~]
첫댓글 한20년후라면
마쉬멜로님에
정점을 기대해봅니다
잘 보고갑니다
잘보았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