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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운하백지화 종교환경회의 원문보기 글쓴이: 장작가_Run
<매일 매일이 새롭습니다>74일째 순례길은 강경읍 논산천 합류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순례길은 어제의 숙박장소였던 강경읍 강경젓갈축제장에서
논산천 건너편으로 출발장소를 변경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논산천 합류부분이 출발 예정장소 바로 인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류로 약 3km를 상류로 돌아오는 거리였기 때문에,
출발 장소 자체를 건너편 지점으로 변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좁은 제방길에 강경읍 분뇨처리장을 출입 차량이 분주하게 오가는 상황에서
“잠시 자리를 비웠었습니다. 항상 이 자리로 오고 싶었던 것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마음들이 이어져 생명을 살리는 기도 되기를 바랍니다”
라는 최상석 신부님의 기도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순례단은 강경읍 채운리 논산천 합류점을 출발하여
제방을 이용하여, 개척리, 우곤리, 부여군 석성면 봉정리, 파진산 강변 오솔길, 현북리 배수장을
오전에 통과하였으며, 오후에는 장청나루를 거쳐, 중정리, 왕포리에 도착하여 일정이 종료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경천과 논산천, 석성천과 현내천, 북고천, 금내천이 금강과 합수됩니다.
오늘 진행한 구간의 금강은 사실 백마강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백마강은 일반적으로 금강 줄기 중에서
‘부여읍 정도리 앞 범바위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의 약 16km를 백마강이라 부른답니다.
이 구간의 백마강은 백제의 흥망성쇠를 기록한 역사가 산천에 기록되어 있는 곳이며,
오늘 순례를 시작하여 만난 반조원은 지명 자체가 백제의 멸망과 관련된 지역입니다.
오늘 진행한 구간과 내일 예정된 구간은 백마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구간입니다.
오늘 오전에 지나간 파진산 일대 산자락에서 천정대와 범바위에 이르는 상류구간은
백제의 고도 부여를 휘감아 흐르고,
그 물결이 흐르는 곳곳마다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고 있습니다.
강을 따라 형성된 우리 문화의 원류를 볼 수 있는 지역이며,
곳곳마다 전설과 신화의 땅이기도 합니다.
<길에서 나무를 만났습니다>
오늘 순례길에서 앞으로도 잊지 못할 한 나무를 만났습니다.
나무가 살아온 수령이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주보고 있으면 세월을 느낄수 밖에 없고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슨 말로 그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을까요. 참 아름다웠습니다.
순례단이 하루길을 시작한 지점에서 얼마 멀지 않은 성동면 개척리에는 제방길에 매우 큰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는 한 그루의 나무가 넓은 대지를 덮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가까이 가니 2그루의 나무가 서로를 벗삼아 금강이 내려오는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순례단은 오늘 가야 할 길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에 참배를 하고 그늘 아래 쉬며 너무나 잘 자란 나무에 감사를 해야 했습니다.
수경스님은 나무에 절을 하면서,“부디 운하 때문에 국민들이 싸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기원하였습니다.
순례단 모두 이명박 정부의 운하 추진 정책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갈등을 겪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금강과 함께 한 개척리 공동체를 지켜온 것처럼,
운하에 위협받는 생명의 강을 지켜주고,
이 강과 함께 해 온 우리 공동체가 소모적인 논쟁으로 흔들리는 일이 없기를 기원합니다.
<잊지못할 오솔길을 만났습니다>
강경을 넘어서 부여 관내로 들어서니 대부분의 지명 자체가 역사와 관련된 장소가 많았습니다.
오늘 걸었던 석성천 건너편 지점의 명칭은 반조원(頒詔原)이라 하는데,
이곳은 과거 신라-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당할 당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가림성으로 진격하면서,
가림성(부여군 임천면 성흥산.270m) 동쪽 세도면에 휘하 군병을 집합시킨 가운데
「백제 정벌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밝히는
당고종(唐高宗)의 조칙(詔勅)을 낭독했다 해서 생긴 지명이라 합니다.
지명 자체가 백제의 흥망을 기록하고 있는 지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가는 걸음마다 역사와 관련된 장소를 만나며,
그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시점에서
순례단은 잊지못할 강변 오솔길을 만났습니다.
강경읍내에서 부여읍 왕포리에 이르는 구간은
순례단이 그동안 걸었던 수많은 강변 중에서 손에 꼽히는 아름다운 강길이었습니다.
순례자들뿐만이 아니라 하루 순례길 참여자들도
금강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하였고,
특히 찾는 사람 하나 없는 파진산 일대 봉정리에서 현북리로 가는 강변길은
그 자체로도 매우 아름다움 강변길이며,
지는 석양과 어우러진 금강의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어느덧 순례단에게 창녕 남지의 ‘개비리’길이 아름다운 강변 길의 기준이 된 상황에서,
모두 ‘제2의 개비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예쁜 강변길이었습니다.
파진산 산자락이 금강을 향해 엎드려 있는 지점에 나 있는 강변 오솔길은
한 명의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았으며,
아차하는 순간 강에 몸을 담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길 자체도 역시 지나간 사람의 흔적만을 이용하여 길을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름다웠고, 눈에 담아 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파진산을 끼고 돌아가는 강변 오솔길 중간 쉬어가고 싶은 마음을 드는 지점에
빈 의자 하나가 강변 풍경의 주인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순례단은 흐르는 강을 따라 오솔길을 걸으며 눈으로 세월과 함께 커온 나무를 기록하고,
마음으로 굽이쳐 역사와 함께하는 금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갑니다.
<역사의 도시 부여에 도착한 순례길>파진산 일대의 강변 오솔길 같은 경관이 우리 국토 곳곳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도처에 넘쳐나는 도로가 많습니다.
앞으로 국토 어디서라도 30분만 이동하면 고속도로를 만나게 된다 합니다.
그 도로에서 차량을 이용하여
그 빠른 시간에 많은 자연을 눈에 담고자 하는 편리를 추구한 것이
우리가 그동안 국토를 대하였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기에 지나고 나면 오고 간 사람의 흔적만이 요란하게 남는 것이 슬퍼서,
아직도 우리에게 속살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수많은 강산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길을 걸으면서 국토를 몇 조각으로 나누는 운하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우리 국토 곳곳을 살펴보고,
산천이 바람을 따라 우리에게 전해오는 수많은 생명과 역사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운하라는 계획 자체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재 일부 정치인들과 정부는 속도전에 가깝게
아무런 계획과 내용도 없이 운하를 추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흐르는 강물처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생명의 속도로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이 기록하는 억겁의 세월이 더 무겁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의 세월을 거슬러 순리를 바꾸려는 모습이 두려울 뿐입니다.
오늘 걸었던 파진산 일대 금강변에는 과거 임강사(臨江寺) 터가 있다 합니다.
한때 번창하였을 절터만 남아 있고, 발굴시에 백제 연화문화당, 금동제 장신구가 나왔으며,
인근에 백제 기와를 굽던 가마터와 조선시대 가마터도 확인되었다 합니다.
그렇듯이 흐르는 강을 따라 길을 걷노라면 우리의 역사속에서 생성하고 소멸되었던 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인들의 역사와 문화,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백마강 강물은
운하에 의한 갑문과 시멘트 콘크리트가 아니라 순리에 따라 흐르는 우리 사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강경읍에서 출발한 여정은 역사의 도시 부여에 도착하였습니다.
부여 백마강가를 걸으면서 백마강이 전해주는 역사의 소리가 기대됩니다.
오늘 여정은 부여읍이 바라보이는 왕포리에서
“하느님 오늘 74일째 강을 걸었습니다. 수천, 수 만년이 된 강이 흘렀고 또 건너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오순도순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모든 만물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생명을 존중하고 잘 모시는 세상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오늘 한마음으로 걷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라는 최상석 신부님의 기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하구둑. 금강. 운하>
오늘 순례단이 출발하였던 강경은 과거 금강 하구둑이 막히기 이전에는
바닷물이 민물과 교차하던 지역입니다.
그리고 그 바닷물은 세도면 반조원리 혹은 일부의 기록과 증언에 의하면 부여 낙화암에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짠물이 조석차에 의해 민물과 교차되는 기수역에 해당하던 이 지역이 지금은 하구둑에 의해 막혀있습니다.
하구둑을 막고나서 강물은 탁해지고 더러워지고 있습니다.
과거 강의 생명력을 유지하며 스스로 흐르며 금강물을 맑게하던 금빛 모래사장이
하구둑을 막고나서 다 파냈기 때문입니다.
강은 깊어지고 탁해진 것입니다.
주민들에 의하면 강경은 우어회와 황복요리로도 유명하였으나,
지금은 모두 금강 하구둑 밖에서 잡힌다 합니다.
하구둑으로 강 생태계와 바다 생태계가 만나는 기수역이 사라지고
강변의 모래사장이 사라진 금강.
그 강이 이제 운하 계획에 의해 갑문이 만들어지고,
물 흐름 조차 차단되는 상황이 벌어진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오늘 길에서 만났던 지역 주민은 석성천 인근 지역의 강물을 바라보며,
“여기 참 좋았지. 옛날에 여기에서 황새기, 황복, 농어, 숭어, 우에, 참게, 장어 등을 잡았어.
조개 같은 것은 가마니로 잡았지. 금강하구둑 막고나서 강 배러버렸어.
지금은 장어한마리 나오지 않는다”며 한숨을 쉽니다. 그러면서
“농민들도 알고 있어. 운하를 하면 금강이 더 망가질 것이라는 것 잘 알아.
하구둑 봐. 우리한테는 금강 지켜야 한다고 화학비료 쓰지 말라고 해서 퇴비 사용하고 있는데,
어떻게 운하를 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지금 금강에게 필요한 것은 운하가 아니라,
강의 생명력을 유지하게 하는 하구둑 개방이 필요합니다.
강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하는 운하가 아니라
강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흘러 바다와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과 내일 금강 구간 안내와 설명은 금강유역환경청의 금강지킴이인 윤상기님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윤상기님은 “금강을 지키는 사람인 만큼 우리 지역의 강을 지키고 길을 안내하고자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농사를 짓는 우리도 땅을 파헤치면 경작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하물며 운하건설을 하면 심각한 수질 악화와 지형변화로 농사를 짓는 우리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합니다. 당연히 강이 썩지 않습니까. 자연은 자연그대로 두는 가장 현명한 생각이다”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부여지역 농민들은 대부분 운하를 반대합니다“라며 현정부가 운하 건설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몇일전부터 순례길에 참여하고자 전화로 일정을 확인하였던 노현숙, 장현정(명동성당)님은 “운하 건설을 반대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 참여 했다”고 합니다. “청계천이 성공한 사업처럼 포장되고 있지만 현재 인공적으로 수량을 조절함으로써 그 비용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운하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사람의 참 본성이라고 생각해요. 이외에도 경제적 실효성도 불확실합니다. 개발으로 인한 이익형량으로 보더라도 오히려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하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가 5년 안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에 무리하게 큰 업적을 세우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경제적 가치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였습니다. “오늘 걸어보니 강이 흐르고 나무, 바람의 움직임 속에 생명이 살아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고 하루 순례길의 소감을 말씀하였습니다.
지리산 실상사에서 오신 응묵 스님은 “예전에 실상사 토론회 때 운하에 대해 반대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물은 삶의 근원이자 귀결점이기에 물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한 여러 가지 믿음으로 참여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운하 건설로 연쇄적인 개발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옹벽에 물을 가둬두면 농업용수, 식수 등의 문제가 생길 것이고 이것을 해결하기 또 다른 댐과 도로, 그리고 수중보를 증설해야 할 것”이라며 운하의 비효율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라면 소외계층, 빈민계층을 보듬어 주고 포용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 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사회가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고도의 산업화등에 의해 부유하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고착화 되어 있는 것 같다”며 사회전반적인 문제의 근원을 말씀 하셨습니다. 하루 순례길을 정리하면서 “오늘 걸어보니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도 정리되고 운하에 대한 폭 넓은 사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연, 강, 산에 대한 고마움도 느끼게 되었다”며 순례에 대한 소감을 말씀하셨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오늘 순례단에서는 단장이신 이필완 목사 / 문정현 신부 / 최상석 신부/ 김규봉 신부 / 김현길 교무 / 수경스님 / 도법 스님 / 연관 스님 / 지관 스님이 참석하였습니다.
하루 순례길 동참자로는 오두희(평화바람) / 호선, 스님, 응묵 스님(지리산 실상사) / 박현규 목사(군산 / )양용석 목사(전북 완주) / 장경훈(화성) / 윤재학(서울) / 노현숙, 장현정(서울 명동성당) / 윤상기, 정용설(금강유역환경청지킴이)님이 참석하였습니다.
● 제75일 / 4월 26일(토)
금천 합류점 - 부여읍 저곡리 서원 양수장(일정 종료 후 부여읍 저곡리 서원양수장 ~ 공주시 검상동 약 16km 차량으로 이동하여 27일 오전 출발)
● 제76일 / 4월 27일(일)
보흥천 합류점 건너편(검상동) - 곰나루(오후 1시. 정토회 행사 참여) - 도로이동 - 공산성 맞은편 둔치도착(=우안)
● 제77일 / 4월 28일(월)
휴식 및 개인정비, 구간정비
* 정확한 출발 장소 및 시간은 도보순례단에게 전화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금강환경지킴이 윤상기 선생님이 길안내와 설명을 후원해주셨습니다.
* 부여 비로사에서 식사와 숙박장소를 후원해주셨습니다.
* 도보순례 1일 참가 일정과 수칙은 www.saveriver.org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공주금강순례길에 함께하고 돌아왔습니다^^ 순례단원이 쓰신 글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느끼던 것의 실체를 현장에 가서 맞닥뜨린 숙연함, 경이로움, 가슴저림,,,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썩은강가를 걷는 날은 걷는 이의 몸도 썩는 것을 느낀다던 순례단원분의 말에 가슴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댓글에 담기엔 너무나 벅차네요^^ 시간이 나는대로 그날의 감동을 담아 미숙하게나마 스크랩글 아닌 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600년된 숭례문 소실에 울던 나라. 천년 만년 흘러왔고, 천년 만년 흘러야 할 강에 운하라뇨! 이건 후손들에 대한 죄악입니다. 이름 보다도 더 아름다운 금강은 흘러야 합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이름보다 아름다운 강이더군요. 그 곳을 보고 온 이상 저는 이제 운하에 관한 한, 결코 무관심해질 수 없습니다. 알고서도 외면한 죄는 더욱 용서받기 힘들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