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기사
1
지난 주 토요일 우리 가족은 헌츠빌 인근 매디슨에 사는 지(池)장노 댁을 방문하였다. 초대를 받은 사람은 우리 가족 이외에 손 장노 부부와 손 목사 부부였다. 한 마디로, 교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고, 그 모임에, 교회 나간 지 한 달밖에 안 되는 우리 가족이 낀 것이다. 집 주인인 지 장노(70세)는 손 목사(60세)를 상석에 모신 후, 그 양 쪽 옆 자리에 손 장노(84세)와 나를 앉게 하였다. 그 전 주에는 손 목사가 부인과 더불어 1시간 반을 달려 플로렌스의 우리 집을 방문하였다. 손목사가 우리를 위하여 플로렌스에 온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두 달 전, 헌츠빌 공항으로 우리를 마중 나와 플로렌스로 태워다 주었으며, 그 일주일 전 같은 곳으로 내 큰 딸을 마중 나와 목사관에 대려가 먹여주고 재워준 후 플로렌스로 태워다 주었다. 손 목사는 예배 시간에 공개적으로 말하였다. 자기가 존경하는 노강국 목사라는 분이 있는데, 이 목사님이 조영태를 부탁하였을 뿐 아니라, ‘부탁에 부탁’을 하였고 ‘특별 부탁’을 하였다고 말이다.
우리 가족은 일요일마다 헌츠빌에 간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예배를 보고 12시에서 1시 사이에 교회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는다. 식사 후에는 ‘서울 식품’에 가서 쌀도 사고, 김치도 사고, 된장, 멸치, 배추, 무, 고추 가루 등등을 산다. 메모리알 파크웨이 7908 번지를 지나가면 한글로 쓴 ‘서울 식품’이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그 간판에는 작은 글씨로 ‘떡방아간’이라고도 쓰여 있다. 우리는 헌츠빌의 쇼핑 몰에 가서 옷과 생활 용품을 사기도 한다. 헌츠빌은 플로렌스보다 대처다. 운전하기가 약간 불편하다. 헌츠빌은 플로렌스의 동쪽에 있다. 아침에 햇볕을 마주보면서 갔다가 저녁에 석양을 마주보면서 돌아온다. 그러나 도로가 좋고 한산하며 주변 경관이 아주 근사하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일요일을 헌츠빌에서 보내는 것은 헌츠빌에 한국 사람들이 있고 한국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교회에 나간 날 우리 가족은 한 달만에 밥과 김치를 먹어보고 감격하였다. 그리고 편안하게 우리 말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하였다. 예배당 안은 마치 미국 속의 한국인 듯 구수한 한국 음식 냄새와 한국 말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래도 되나? 예배당은 예배 보는 곳이 아닌가? 한국 음식 먹고 한국 사람 만나 한국 말 들으려고 교회에 가는 것이 과연 허용되는 일인가? 교민 사회가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다.
2
우리는 때 맞추어 한국으로 귀국하는 (미사일 부대의) 양소령 가족으로부터 상당수의 가구와 가전 제품을 물려받았다. 짐을 날라주기 위해 마이클이 트럭에 트레일러를 달고 양소령 집이 있는 매디슨까지 와 주었고, 응원 차 손목사도 나와 주었다. 짐을 다 싣자 양소령이 한 구석으로 나를 불러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엄중하게 말하였다. 사람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도와주겠다면서 접근하는 사람을 조심하고 특히 한국 사람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회 사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가, 마이클이나 손목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꾸하자, 양소령은, 물론 그렇겠지만, 목사나 장로 가운데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없지 않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 말의 뜻을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손목사는 설교 중에 “교회에서 입은 상처는 교회에서 치료받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두어 차례나 하였다. 나는 이 말의 뜻도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1990년대의 재미 한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 가운데에, 한 장로의 비리로 인하여 교회가 무너지고 한인 조직이 분열, 와해되는 모습을 다룬 것이 있다. 그 장로는 경력이 불분명한 사람을 목사로 앉힌 후 목사를 내세워 교회 건물을 담보로 잡히고 주유공급권을 매입한다. 이 과정에서 그 장로는 자신의 전횡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협박하고 모함하여 축출하거나 스스로 물러나게 한다. 그러나 주유 사업의 실패와 내분으로 그 장로와 그가 이끄는 교회는 무너지고, 그로부터 핍박받은 사람들이 세운 작은 교회가 신앙심을 바탕으로 단단하게 일어서게 된다.
내가 나가는 교회는 작은 교회다. 그것은 작은 교회이며 정의로운 교회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만든 교회고 화목한 교회다. 특히 그 화목함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일요일 오전에 예배당에 들어서면 나는 장로님들을 비롯한 연장자들을 찾아가 인사를 한 후 내 자리를 찾아 앉곤 하였으나, 이것은 잘 하는 일이 아니었다. 예배의 공식적인 순서 가운데에 교인 상호간의 인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순서가 되면 모든 참석자들은 모든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주로 끌어 안아주는 것으로 인사를 한다. 정작 이 순서가 되면 나는 머쓱하여 한 구석에서 어색한 웃음을 짖고 서있게 된다. 역시 내가 문제다.
나와 내 가족은 두 번째로 교회에 출석한 날 ‘교인 카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으며 그 이후로 헌금도 하고 있으니, 우리는 단순한 옵서버가 아니라 정식 교인 -- 혹은 정식 교인 후보 -- 이라고 보아야 한다. 당연히 찬송가를 따라 부르고 기도에 참여하고 설교를 경청한다. 그러나 신앙심이 없다. 이런 사람이 찬송가를 부르고 ‘아멘’을 외치는 것이 허용되는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게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 전서 1: 12-15) 이 구절은 9월 12일 봉독된 것인데, 예컨대 이런 구절을 손목사가 소리 높혀 읽는 것을 듣는 것이 좋고, 우스운 이야기를 섞어가면서 그것을 해설하는 것을 듣는 것이 좋다. 그러나 기도 시간이 되면, 자기를 잃고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잃고 기도에 전념하는 신앙심 깊은 교인들을 물끄러미 관망하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예배당이 이런 옵서버에게도 열려있는 것일까?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면서 시험하고 있는 중인가?
3
나는 일요일 날 면도를 하고 교회에 간다. 이 때에는 양복을 꺼내 입는다. 넥타이까지 맨 적도 있다. 손목사와 목사 사모, 손장노 부부, 지장노 부부만 나에게 잘 대해주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교회에는 아주머니 교인들이 많은데, 아주머니 교인들은 하나 같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다. 예컨대 점심 시간에 배식할 때 나에게는 특별히 많이 퍼주며, 남은 음식을 싸주기도 한다. (딱정떼 아줌마가 한 분 있는데, 이 분만 조심하면 된다. 우리 집 작은 아이가 음식 투정을 하다가 이 분에게 음식을 빼앗길 뻔하였다. 내가 큰 아이에게, “실컷 먹어라”를 영어로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물었다가, 여기에서 무엇 때문에 영어를 묻느냐고 면박을 받은 적이 있다. 이상하게 자꾸 이 아주머니 곁에 앉게 된다.) 또 다른 한 가지 예에 불과하지만, 아주머니들은 나에게 다가와 이런 저런 말을 시키고, 이런 저런 조언과 충고를 해주곤 한다. 어째서 아주머니들이 나에게 이토록 잘해 주는가? 한인 교역자들과 한인 교회에서 노강국 목사의 영향력이 그토록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내 미모가 한 몫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머니 교인들 중 상당수는 우리보다 나이가 위다. 나는 여기에서 이른바 영계다. 나는 내가 여기에서 미모와 젊음으로 귀여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긍휼함을 받은 이여!" - "귱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함을 받을 것임이요.." 영태 교수 전화번호 좀 남기시게나.
그리고 박규섭이가 통화하기를 원하네. (206) 335-8592 (박규섭이 핸드폰). 나날이 행복하시길 비네.
집: 256-275-3335, 학교: 256-765-6734 (오전에는 학교에 있음). 큰 딸 핸드폰: 205-270-3455 (얘는 항상 받음.) 핸드폰을 썼었는데, 요즘은 안씀. 너무 자주 충전(전기 충전 및 요금 충전)을 해야 하고, 받는 데에도 비싼 요금이 나가는데, 심지어는 받지 않아도 (자동응답을 하기 때문에) 요금이 나가서. 규섭군에게 전화할게. 미국 친구들에게 인사해야 하는데, 그 동안 정신이 없었어. 미안. ㅎㅎ
지나는 길에 시간이 되면 들르시게~ 멀긴 하다만도... 잘 지내시구만 ㅎㅎ
미국이 넓기는 넓은 모양이더라고. 지난 주에는 스모키 마운틴에 갔다왔는데, 지도상으로는 손가락 마디 만한 거리지만, 6시간이나 걸리더라고. 그래도 시간 나는 대로 여기 저기 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