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도자기
송 윤 호(宋允鎬)
오늘은 수필소재 발굴 차 무석도예를 찾았다.
무석도예의 무석(撫石)은 도공 이 용강(李龍江)선생 자신의 호를 따 작
명 했단다.
도자기는 도기(陶器)와 자기(瓷器)를 합쳐 부르는 이름이고 그 역사와
만드는 기법, 과정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듣고 처음 대하는 손 물레 앞
에 앉아 도자기를 빚는 체험에 들어갔다.
질흙을 뚝 떼어 손바닥으로 밀어 엿가락처럼 만들고 받침위에 말아
올려 아래 위가 하나 되게 붙이며 쌓아간다.
부부가 함께 빚으면 금슬이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서툰 물레질
을 해본다.
초등학교 이후 흙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 보기는 처음으로 그 맛은
돌아가는 물레 따라 동심 속으로 끌려간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동네 뒷산 사토배기 조데 흙을 파다 토끼
를 정성들여 만들어 이웃 방앗간 집 순이 에게 준 것이 여자에게 내가준
최초의 선물이다. 유난히도 수줍음을 타던 순이 는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
개를 외로 꼬고 비스듬한 자세로 선물을 받던 그 모습이 새롭다.
그때 안 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 ...
추억은 내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며 설레 임으로 다가온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속내를 들키지나 않았을까 귀 볼이 따끈
함을 느낀다.
나는 도자기 중에 자기(瓷器)보다는 도기(陶器)에 속하는 옹기와 질
그릇을 좋아한다. 옹기와 질그릇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자라오면서 가장 밀접하고 편하게 대한 것이고 시골 누구네 집에나 있
던 흔한 것이지만 어머니와 누이의 손길이 제일 많이 오고 간 옹기로 일
명 펀재기(퍼내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물을 이어 나르는 물동이로 보
리쌀, 감자 등을 닦거나 야채를 씻는 용기로 물건을 담아
두거나 나르는 기구로 그 용도가 다양한 것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그 진가를 발휘하는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여름날 저녁에 마당에 멍석 깔
고 쑥대 베어다 모깃불 놓고 자욱한 연기 속 희미한 달빛과 마루기둥에
걸린 호롱불빛에 모여앉아 상추, 미나리, 돌나물, 열무에 고추장 된장찌개
질펀하게 넣고 어머니께서 숟가락 두개로 휘 휘돌려 비벼주시던 푹 퍼진
보리밥
씹기도 전에 술술 넘어가던 그 맛은 옹기 특유의 투박함과 어우러져 지
금도 군침이 입안 가득함이 내가 좋아하는 원인 중 으뜸이다.
이렇듯 투박하고 서민적인 옹기나 질그릇에 비해 자기는 두터운 유약에
매끄럽고 외모가 화려하고 깔끔하다. 깍쟁이 같다고나 할까.
자기의 용도는 도기인 옹기나 질그릇과는 달리 꿀이나 참기름, 들기름
약 종류 등을 담아두는 고급스러움으로 대접받거나 역사성이 있어 값어
치가 있음직 한 놈은 진열장 속이나 농 위 안전한곳에 고이 모셔져
화초 노릇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도기인 옹기나 질그릇보다 자기를 잠재적으로 기피하게 되는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는 크고 작은 목단 꽃무늬가 선명한 뚜껑달린
백자항아리가 있어 항상 꿀이 담겨져 부엌 찬장 제일 높은 위치에 군림하
였다.
어머니께서는 깨트린다고 만지지도 못하게 하시며 당신은 하루 한번쯤
은 내려 조심스럽게 닦고 어루만지며 애지중지하시던 애물(愛物)단지 가
있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아끼시던 것을 딸을 시집보내며 잘 살아 주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주신 선물.
그래서 어머니의 정과 같은 달콤한 꿀을 담아놓고 어머니의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애틋한 마음도 함께 담아 놓으셨을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가 들에 나ㄱ ㅣ고 안
계신 것을 알게 되자 안방 다락에 있는 시루떡과 꿀 생각이 겹치며
또 회가 동하기 시작하였다.
몇 차례 해본 장단이 있어 그날도 나무토막을 놓고 까치발로 꿀 항아리
를 내리다 나무토막이 흔들리며 몸의 중심을 잃고 그만 산산조각으로 비산
나의 피는 역류하고 꿀맛이 아니라 소태맛으로 변한사건이 발생하였다.
평소 어머니께서는 우리 삼형제가 부엌에 드나드는 것조차 금기시 하셨
다. 남자는 부엌문턱을 넘거나 부엌에 들어가 여자들의 전유물인
솥이나 찬장을 열어보고 그릇 등을 만지면 안 된다는 유교적인 완고한
사고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하거늘 부엌에 들어가 찬장을 열고 애지중지하시는 그릇이상의 의
미를 아니 어머니의 마음 그릇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그 비참
한 심정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사람은 생각지도 않게 벌어진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오히려
심리적으로 대범하고 무감각 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 하도 어이가 없고 생각지도 않은
황당함에서인지 아무 말씀도 없이 비산된 파편들을 정성드려 한곳에 모
아 산태미에 담아 집 뒤 울안에 묻으셨다.
이때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 마음까지 함께 묻으셨는지도 모른다.
그 후 그 일에 대해서는 가족들에게도 일언반구 말씀을 하지 않으셨
다. 이는 난처해할 나의 입장과 새삼스럽게 아픔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서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셨을 것 이라는 생각이 철이 들어 깨달았음이다.
나는 매를 맞고 크게 야단을 맞는 것보다 더 큰 가슴 조임이요 죄스러
움 이였다.
이는 말없고 매 없음으로 천방지축인 나에게 크나 큰 잘못을 깨닫고 항
상 행동에 조심하도록 뉘우치게 하심 이였을 것이다.
어머님의 허망한 표정은 나의 가슴깊이 각인 되여 항상 죄스러움으로
돈 벌면 꼭 같은 것으로 만들어 드려야겠다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지인을 통해 여주에 있는 도예 촌에
특별주문 내가 보기에는 비슷하다는 생각에 어머님께 드리고 나무상자
에서 꺼내 놓은 자기항아리를 보시며 지난 세월을 생각하시는지 아무
말씀 없이 바라보기만 하시더니 공연히 돈을 썻 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
으시던 모습이 선하다.
하늘나라로 가시기 전까지 옆에 두고 아끼시던 주인 잃은 항아리는
지금은 형수님의 전유물이 되여 꿀 항아리가 아니라 삭힌 고추항아리로
불리 워 지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도자기는 언제나 꿀 항아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나는 도자기 중에서도 부담 없고 넉넉함이 있는
옹기와 질그릇을 좋아한다.
옹기나 질그릇으로 된 단지에 갈대 한 묶음 꽂아두고 바라봄도 또한 그
어울림의 여유요 멋스러움이다.
하루가 다르게 각박하고 약삭빠르게 변하는 현 세대를 살아가면서 가끔
씩은 예스러워 짐도 필요 한 것.
우리 생활에 한번쯤은 뒤 돌아 보며 옹기와 질그릇의 투박하고 넉넉함
을 닮아봄은 어떨까.
2005/2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