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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농구 기자, 농구 관계자 셋만 모여도 ‘그 이야기’다. 되도록 안 듣고 싶고, 물어도 답하기 싫은 그 이야기. 한참 연락 안 되던 친구들까지도 전화해서 물어본다. 어차피 나는 사회부도 아니고, 경찰서 출입기자도 아니라 해줄 이야기가 많지 않다. 시간이 조금 지난 거 같은데도 “했대? 했어?”라는 질문이 계속된다.
어서 이 분위기가 바뀌길 바랄 뿐인데, 좀처럼 농구는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6~7월 동안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박신자컵 서머리그,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게임, MBC배 대학농구, 주말리그 등 꽤 많은 대회가 열렸는데 대중들 기억에는 남아있는 장면이 별로 없다. (인터넷 중계는 있었지만, PC나 휴대폰 화면에 집중시키기에는 전체적인 매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진천선수촌으로 향하는 길은 꽤 막혔다. 평소 1시간 30분 거리가 3시간 걸렸다. 정체된 고속도로 위에서 옆 차들을 둘러보니 다들 피서라도 가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요일을 잘못 택한 것 같다.
명분은 ‘인터뷰’이지만, 내심 나도 피서 기분을 내본다. 잠깐 이슈를 돌릴 곳이 필요했다. 그게 대표팀이다. 우리 농구대표팀은 2013년부터 진천선수촌을 사용해왔다. 그래도 진촌에 온 이래 마무리는 늘 기분 좋게 됐다. 2014년 FIBA 월드컵은 많이 아쉬웠지만, 2013년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취재하는 입장에서도 농구 기자임이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아니 우리 농구팬들은 과연 올 가을에도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진천선수촌 숙소 앞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농구대표팀도 막 오전 훈련을 마쳤다. 김동광 감독과 김상식 코치, 조상현 코치가 먼저 문을 나선다. 이들은 진천선수촌을 사용하는 두 번째 코칭스태프다. 유재학-이훈재-이상범 체제가 2년을 끝으로 종료되고, 새로이 코칭스태프가 구성됐다.
구성되는 과정은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 김동광 감독은 안 좋은 상황에서도 앞장 서 지휘봉을 잡았다. 지원도 열악하고, 부상자도 많은 상황이다. 작년 같은 경우, 남자대표팀 매니저나 여자대표팀 매니저를 통해 섭외 전화를 했으나 올해는 전화 돌릴 곳이 없었다. 휴일에 급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도 그는 흔쾌히 받아줬다. 아마 영어도 가능한 동시에 매니저일도 가능한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것 같다.
9월 23일 중국에서 개막하는 2015 FIBA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 출전을 준비 중인 남자대표팀 김동광 감독의 인터뷰다.
▲ 부상자 많지만, 젊은 세대 기대 커
“현역으로 뛸 때는 국가대표 선수도 오래 했고, 대표팀 감독이나 코치도 많이 경험해봤습니다. 저는 항상 유니폼에 태극마크를 달 때는 자긍심을 갖고, 개인 소속팀에서 할 때보다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들어옵니다. 저는 현역 때 중국의 무태추(238cm) 때문에 항상 우승을 못 해봤어요. 1997년에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해봤지만, 그 뒤에는 우승을 못해봤기에 아쉬움도 많이 남아있고요. 다행히 지금은 선수 구성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높이에서 많이 밀려서 지곤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높이도 보강됐기에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필리핀이 좋은 선수를 귀화시키긴 했지만 1명이 들어와서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 한 명으로 인해 전력이 많이 보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선수 5명이 뭉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야 팀이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감’을 부탁하자, 오랜 해설위원 경력답게 잘 정돈된 문장의 답변이 쏟아졌다. 나중에 질문할 내용도 있었는데…. 어쨌든 첫 질문부터 비장함이 가득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Q. 유재학 감독에 이어 진천선수촌에서 지내는 두 번째 남자대표팀 감독이 됐습니다. 태릉선수촌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었을 것 같은데요. 두 곳을 비교해보면 어떤 것 같나요?
이쪽이 연습 환경이 더 좋은 것 같아요. 태릉은 면회 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시내와도 가까워서 나갔다 들어오기도 편했고요. 하지만 진천선수촌은 서울에서 좀 떨어져 있잖아요. 친구들도 잠시 면회 왔다 가기에는 애매한 거리이고요. 그러다보니 선수들도 집중해서 연습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습니다. 할 게 없으니까 야간에 훈련도 알아서들 나가더군요(웃음).
Q. 감독, 해설위원뿐 아니라 연맹에서도 행정업무를 맡으셨던 입장이니 여쭈어보겠습니다. 감독 선임과정이 사실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지원자도 많지 않았고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글쎄… 여러 이유가 있겠죠. 하나는 지원적인 부분이겠죠. 지난해까지는 스포츠토토 자금 덕분에 대표팀 지원이 많이 됐었지만, 올해는 정책이 바뀌면서 대표팀 지원이 많이 줄었습니다. 또, 지난해에 아시안게임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둔 상황에서, 이번에 성적이 안 나왔을 때 그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겠죠.
게다가 프로농구가 한 달 빨리 개막하게 된 것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실, 유재학 감독은 그동안 애를 많이 썼으니 고사할 만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프로팀 감독이 맡아주었다면 좋았겠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죠. 결국에는 대표팀 감독을 공모하게 됐는데, 한 명만이 지원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한 명도 자격심사에서 아쉽게 되면서 ‘붕 뜬’ 상황이 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강화위원회에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최부영 감독, 저, 이민형 고려대 감독 등으로 추려졌습니다. 그 중 제가 가장 연장자이다 보니 총대를 메게 됐습니다. 어쨌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일단 맡았으니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말씀드리는 부분이지만, 선수가 좋다고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쁘다고 성적이 안 나는 것도 아닙니다. 선수들끼리 뭉치고, 분위기가 잘 조성되어 최선을 다한다면 성과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부상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MBC대회에 차출된 선수들도 많고요.
처음에는 협회에서 12명만 뽑으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16명을 요청해 구성했습니다. 그 중 대학선수들이 지금 MBC배 대회 때문에 빠지고, 프로선수 12명이 지금 선수촌에 들어와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상자가 많다보니 훈련이 원활치 않은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정규리그,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못 쉬고 부상이 누적되다보니 회복이 여의치 않았겠죠. 그 상황에서 다시 훈련을 시작하다보니 부상이 다시 찾아오게 됐고요. 오세근(발목), 양희종(발목) 등이 대표적이고요. 김태술(어깨), 하승진(장딴지) 같이 잔부상이 있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훈련에 참가할 수 있는 선수가 적습니다. 최소 8명 정도는 있어야 훈련이 제대로 되는데, 부상자가 많아서 지난 토요일 훈련에는 5명만이 운동을 했습니다. 제가 지도자 생활을 30년 넘게 했는데, 5명 데리고 본 훈련을 해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선수들에게 “이번 주까지는 그렇다 쳐도 다음 주까지도 (공백이) 길어지면 안 될 것 같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무리해서 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니까요.
이번 주 목요일에는 대학생 선수들이 대회를 마치고 합류할 예정입니다. 이 선수들이 합류하면 프로선수들도 자극이 좀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2주 정도 손발을 맞춘 뒤 12명을 추려낼 계획입니다. 그 12명으로 존스컵에 출전할 예정이며, 그 중에서도 미흡하다 생각되면 예비로 발표됐던 명단에서 선수를 차출할 생각입니다.
Q. 대학선수들에 대한 느낌은 어떠십니까?
가드 중에서는 눈에 띄는 선수는 없었습니다. 포워드 라인이 눈에 띄더군요. 최준용(연세대), 문성곤, 강상재(고려대), 한희원(경희대) 등을 지켜봤는데, 생각보다는 기동력이 좋더군요. 움직임도 나쁘지 않고, 신장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죠. 이 선수들이 합류한다면 좀 더 빠른 농구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대표팀은 언젠가는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Q. 신인 시즌을 마친 이승현 선수도 각오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이 팀에서는 무조건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현 선수는 확실한 3번(스몰포워드)는 아니지만, 4번(파워포워드)과 5번(센터) 포지션을 오가면서 외곽슛까지 가능한 선수이기에 활용도가 있습니다. 게다가 대표팀 합류한 뒤에 하루도 안 쉬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실하고, 도전 의식도 있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를 이야기해줘도 빨리 습득하고자 하는 자세도 좋았고요. 이런 부분은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팀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열심히 하는 선수가 있으면 팀 분위기에도 분명 도움이 되니까요. 아직 더 지켜봐야겠지만, 점수를 따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Q.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선수가 있다면?
양동근과 조성민은 항상 언급되어야 할 선수죠. 꾸준하고, 자기 몫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니까요. 문태영 선수가 중요한데, 과연 KBL에서 해주는 것만큼 해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 생각합니다. KBL과 달리 아시아선수권대회에는 본인만큼의 높이에 스피드를 갖춘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이 선수가 KBL에서만큼만 해준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죠.
▲ 그때, 그 이야기
현역시절 김동광 역시 세대를 아우르는 스타였다. 기업은행 에이스로서 많은 인기를 독차지 했다. 동아일보에서는 그를 ‘인간탱크’ 혹은 ‘코트의 마술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국가대표 활약도 대단했다. 아시아선수권대회에만 5번 나갔고, 아시안게임에도 2회 출전하는 등 태극마크와는 연이 깊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아쉬움이 있다면 바로 우승 경력이다. 무태추에 의해 늘 가로 막혔다.
“무태추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배꼽밖에 안 보이는 거야. 고개를 한참 들어서 봤더니, 사람이더라고.” - 2008년 '서민교의 올드스쿨' 인터뷰 中
전(前) 국가대표 박인규는 무태추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야오밍보다 크고, 넓었다. 큰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모습이었다. 스피드는 떨어졌지만, 워낙 컸기 때문에 리바운드는 엄두도 못 냈다.”
김유택의 설명도 비슷했다.
“한번은 (한)기범이 형과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같은 엘리베이터에 중국의 무태추와 일본의 오까야마도 탔다. 우리도 꽤 키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 선수들은 아예 머리가 엘리베이터 천장에 닿아 고개를 숙이더라.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나고야에서 열린 1979년 아시아선수권대회(당시는 ABC대회)에서는 중국을 상대로 88-94로 제법 선전했다. 포 코너 오펜스로 공격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찬스를 봤고, 상황에 따라 속공을 전개했다. 수비에서는 경기 내내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벤치의 국제경험 부족이 작전 수행의 아킬레스건이 됐다는 평이다. 인사이드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도 결과론 적으로는 패인이 됐다.
2007년에 이 이슈를 두고, 당시 태릉선수촌장을 맡고 있던 김인건 선생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김인건 선생은 그나마 1979년 경기가 무태추와의 맞대결 중에서는 가장 제대로 싸워본 경기라고 회고했다. “경기가 끝난 후 기록지를 봤다. 우리는 안쪽에서 메이드(성공)시킨 것이 겨우 3개뿐이었는데, 중국은 반대로 안에서 넣은 것이 거의 전부였다. 한마디로 극과 극이었다. 우리는 리바운드를 지키기 위해 정말 안간힘을 다했는데, 작은 팀이 선전한 덕분인지 현지에서 우리 인기가 좋았다.”
Q. 1981년에 은퇴하고 바레인에 코치로 갔습니다. 그때 우리 지도자들의 중동 진출이 활발했던 시기였는데, 지금의 중동 농구와는 수준에서 차이가 있었나요? (김동광 감독은 1981년 12월에 은퇴하고 이듬해 바레인 대표팀 코치로 부임했다.)
그때는 제가 코치이긴 했지만, 선수로 뛰어도 그 선수들보다 월등할 때였어요. 한국 코치들이 쿠웨이트, 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로 가서 기반을 잘 닦았죠. 기초에 있어서는 한국 코치들이 잘 가르친다는 평가였으니까요.
Q. 대표선수 시절에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면?
저는 현역 때 대표팀에서 우승을 못 해봤어요. 지는 걸 정말 싫어하는 스타일인데, 무태추와는 악연이었던 것 같아요. 1981년에 우승을 실패한 뒤에는 “이 선수가 있는 이상은 죽어도 우승 못 하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래서 대표팀에서 물러났는데,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때는 무태추가 안 나왔어요. 우리 대표팀이 그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었죠. 우리에게 져서 그런지, 무태추가 1983년 ABC대회에는 다시 출전을 했는데, 우리 대표팀이 그 대회에서 혼이 났습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63-92로 완패했다.)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도 기억이 납니다. 북한 선수들과 경기를 했는데, 분단 이래 처음으로 북한과 치른 경기였어요. 센터 서클에 딱 섰는데, 제 옆에 있는 선수가 귀에다 대고 “이 애미나이, 오늘 너 죽이 갔어!”라고 그러더라고요. 머리털이 서는 경험을 그때 해봤어요. 그런데 후반 7분여 남기고 북한 선수들이 경기를 포기하고 나가더라고요. 우리가 점수를 좀 앞서는 상황이었거든요. 신기한 게, 그 친구들은 우리를 다 알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그쪽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데, 그쪽은 우리에 대한 정보가 다 있었죠.
Q. 그 시기에 오까야마 선수도 있었죠? 224cm의….
일본에 오까야마란 선수는 순한 선수였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들어올 수 있게 피해주기도 하고요. 무태추와는 좀 달랐어요. 높이는 같았지만, 풍기는 분위기나 힘에서는 무태추가 더 대단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두 선수가 맞붙으면 얼추 비슷하게 갔어요. 아무래도 두 선수 모두 기술보다는 키로 농구를 하는 선수들이니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태추가 더 무서웠죠.
Q. 1997년 아시아선수권대회(사우디아라비아 개최)는 분위기가 어땠나요? 본의 아니게 역대 최약체라고도 평가가 됐는데.
사실, 가기 전까지는 괜찮았어요. 가기 전날에 현주엽 선수가 연습경기 중에 코뼈가 부러졌어요. 그리고 현장에서는 서장훈 선수가 갑자기 귀에 이상이 오면서 중심을 못 잡더라고요. 그래서 못 뛰었고요. 결국 우리 팀 센터는 정재근, 전희철 정도였어요. 우리 예선 첫 경기가 일본전이었는데, 그 경기에서 일본에게 83-89로 졌어요. 이란은 이겼지만, 대만전에서 지면 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됐죠. 그래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생일대의 경기다. 만약 진다면 예선 탈락이다. 우리는 예선에서 탈락해본 적이 없었다. 너희 선수 생활에 있어 최악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선수들도 자극을 받았는지 그때부터는 손발이 잘 맞고, 잘 뭉치더라고요. 덕분에 대만 전은 크게(96-71) 이겼어요.
준결승에서도 중국을 만나 우리 페이스대로 경기를 잘 가져갔어요. 결승에서도 일본이랑 다시 만났는데 그때 일본 멤버가 굉장히 좋을 때였습니다. 일본도 우리를 너무 잘 아니까, 문경은(SK 감독), 이상민(삼성 감독) 모두 묶여서 득점이 안 됐어요. 그때 우리 팀 히든카드가 김승기(현 KGC인삼공사 코치)였는데, 정말 잘 해줬어요. 이 선수가 대회 기간 내내 몸 관리를 잘 했거든요. ‘준비가 항상 되어있구나’라고 느꼈죠. 그래서 결승전에 투입했는데 그게 적중됐습니다. 벤치에서 출격해서 17득점을 올려줬죠.
막판에 일본이 자유투 2개를 넣으면 연장에 가는 상황이었는데, 초구가 안 들어가면 분명 고의로 2구를 놓치고 리바운드를 노릴 것 같았습니다. 마침 초구가 안 들어갔고, 리바운드 격전이 벌어졌죠. 결국 그 리바운드를 강동희가 잡으면서 끝났어요. 그래서 우승을 했어요. 당시 돌아가신 정광석 감독님께서 제게 훈련을 맡기셨는데, 덕분에 그 대회에서 감독상을 제가 받았어요.
Q. ‘만약’에 말이죠. 지금 대표팀에 감독님 현역시절에 함께 뛰던 역대 국가대표 선수 2명을 포함시킬 수 있다면 누구를 데려가고 싶으신가요?
이충희를 데려가야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슈터잖아요. 이충희-김현준 콤비도 좋은데, 높이가 약간 아쉬워요. 그러니 이충희와 신동파 씨를 데려가고 싶습니다. 신동파 씨는 대단히 정적이면서도 높이가 있는 슈터이고, 이충희는 동적인 슈터입니다. 포스트는 지금이 더 나은 것 같아요.
Q. 지금이 더 낫나요?
그렇죠. 제가 뛸 때는 신장 190cm 넘는 선수가 많지 않았어요. 저희 때는 신선우 총재(WKBL)가 무태추를 맡았어요. 190cm도 안 되는 선수가 230cm이 넘는 선수들을 막던 시절이었으니, 포스트는 지금 세대가 훨씬 낫죠.
▲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
“선수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해주셨나요?”
“똑같습니다. 대표선수로서 가져야 할 자긍심이 중요합니다. 이왕 대표선수로 뽑혀서 왔다면 최선을 다해봐야죠.”
겉으로는 ‘부담이 없다’곤 하지만, 그는 나름대로 충실히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력분석원도 없고, 매니저도 없는 상황. 손수 정보 챙기기에도 나섰다. 이미 중국에서는 27일부터 이란과 일본 등을 초청해 존스컵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친선 토너먼트도 개최하고 있다. 귀화선수를 영입하는가 하면 해외 전지훈련 계획을 발표한 나라도 있었다. 김동광 감독은 손수 유로바스켓(www.eurobasket.com) 등의 사이트를 찾아가며 이러한 소식을 찾고 있었다.
“좋은 소식 부탁합니다”라 운을 띄우자 특유의 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Q. 올 여름 프로농구에서는 스킬 트레이닝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훈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기 것으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 연습이 중요합니다. 남이 가르쳐준 걸 그대로 흉내만 내려하지 말고 부단한 연습을 통해 자기 기술로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요즘에는 선수들이 개인 훈련 시간에 슛 연습만 합니다. 그런데도 슛 성공률은 떨어져요. 예전에 대표팀 슈터들은 20개 던져 20개 다 넣는 선수들도 많았습니다. 김현준 코치 같은 경우는 자유투 90개를 내리 넣은 적도 있었어요. 최근에는 그렇지가 않죠. 백보드 자유투도 늘고 있고요. 그런데 그게 정확한 게 아니거든요. 박찬희에게도 그런 부분을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Q. 농구계가 흉흉합니다. 아무래도 대표팀 성적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될 텐데, 부담은 없으세요?
알고 들어왔잖아요. 성적이 안 날 거라는 주변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고,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자긍심을 갖고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평생을 농구장에서 살아왔으니 이번에도 해보자는 생각입니다. 아이들과 한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 BONUS ONE SHOT +
지난 2007년, 점프볼이 한국농구 100주년 기획기사를 준비할 당시, 김동광 감독에게 받았던 사진들이 있었다. (지면 관계로 점프볼 잡지에 다 싣지는 못했다.) 진천을 방문할 때 그때 사진들을 휴대폰에 담아갔다. (사진 제공= 김동광 감독)
이거는 1979년 나고야 ABC 대회에서 찍은 거예요. 인도랑 경기할 때인데, 제 옆에 4번이 신선우 총재입니다. 그때는 장발이었죠. (웃음)
그때는 바지는 짧고, 양말 길게 올려신고 뛸 때였어요. 상의도 타이트했고... 불편한 걸 몰랐어요. 그때는 다 이렇게 입었을 때니까. 이 경기가 아마 파키스탄하고 할 때였을 겁니다.
1980년 미국 전지훈련 때였을 거예요. 인디애나 대학과의 경기 사진이죠. 아이재아 토마스가 상대팀에 있었어요. 이 팀도 그렇고, 미국애들은 190cm가 넘는 선수들이 앞선에서부터 달라붙으니까 고전을 많이 했죠. 토마스 앞에서 백 드리블을 해서 레이업을 넣었는데, 바로 토마스가 더 화려한 동작으로 레이업으로 응수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네가 감히 내 앞에서?"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1980년 10월, 대표팀은 인디애나, 일리노이, 위치타 주립대 등과 평가전을 가졌다.)
기업은행에서 뛰던 시절이네요. 기운 좋을 때(웃음). 삼성전인데, 이 시절에는 제가 리바운드를 도맡아 했죠. 다 장발이네.
2015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강화훈련대상
감독 | 김동광(대한농구협회)
코치 | 김상식(대한농구협회) 조상현(오리온스)
트레이너 | 김보규(대한농구협회) 오페라(대한농구협회)
선수
가드 |양동근(모비스) 김선형(SK) 박찬희(인삼공사) 김태술(KCC) 조성민(케이티)
포워드 | 윤호영(동부) 양희종(인삼공사) 문태영(삼성) 한희원(경희대) 문성곤(고려대) 이승현(오리온스) 최준용(연세대)
센터 | 오세근(인삼공사)* 김종규(LG) 하승진(KCC) 이종현(고려대)
* 오세근은 부상으로 교체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