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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1. 프롤로그
기자명 정승환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1.11. 지면 9면
석탄산업 과거 지나 휴양·힐링 미래로 가는 173㎞ 고원 길
영월, 정선, 태백, 삼척을 아우르는 폐광지역 걷는 길, 운탄고도 1330이 올해 전 구간 개통된다. 폐광지역인 태백시와 삼척시·영월군·정선군 등 4개 지역의 예술·역사·문화가 살아있는 길을 표방하는 운탄고도는 과거 석탄을 나르던 산업로였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유산이자 역사문화, 힐링의 길로 탈바꿈됐다. 지난해 10월 개통한 운탄고도는 개통 첫 해인 2022년 한국관광공사와 전국관광기관협의회가 공동 주관한 ‘친환경 추천 여행지’에 선정되는 등 ‘한국의 산티아고길’이라 불리며 많은 트레킹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강원도민일보는 운탄고도를 중심으로 이 일대의 인문, 사회, 경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시리즈를 시작한다.
1. 프롤로그
■ 조성배경과 현황
영월~정선~태백~삼척 등 폐광지역 4개 시군, 173㎞를 잇는 운탄고도1330은 폐광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코스 개발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추진됐다. 2020년 9월 강원형 산티아고길(가칭) 조성사업 계획 수립으로 시작했으며, 운탄고도라는 명칭은 4개 시군의 의견수렴을 거쳐 12월 ‘운탄고도’로 확정됐다.
자연길을 최대한 원형보존하고, 인공데크길을 최소화해 기존 길을 연결한다는 ‘3대 원칙’ 아래 운탄고도 길은 사라진 옛길을 복원하고, 영월 와이너리, 정선 만항재, 태백 매봉산, 삼척 미인폭포 등 지역의 주요관광지를 중심으로 조성계획을 수립해 영월 청령포 인근이 시작점으로, 삼척의 삼척항이 종착지로 계획돼 추진됐다. 시작점은 산간내륙, 종착지는 바다인 한국판 산티아고다.
이 가운데 2021년 영월~정선~태백 구간 1단계 사업 착공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한 운탄고도는 2022년 10월 운탄고도1330 걷기 행사 및 개통식을 통해 착공후 1년 여 만에 정식 개통했다. 미개통 구간인 삼척구간 9길 일부노선과 삼척항 종착지 등이 올해 상반기 준공되면 전 구간이 개통될 예정이다.
■ 운탄고도1330의 의미
운탄고도(運炭高道)는 석탄(炭)을 나르던(運) 높은(高) 길(道)이라는 뜻이다.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고원의 길(雲坦高道)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과거 운탄고도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림지역에 석탄을 실어나르기 위해 만든 길로, 출퇴근하는 탄부를 태우거나 탄더미를 실은 트럭들이 달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과거 노동과 산업의 길은 현재 휴양과 힐링의 길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1330’은 운탄고도 전체 구간 중 해발이 가장 높은 곳인 만항재의 높이에서 따온 것으로, 만항재는 정선과 태백, 영월로 갈라지는 운탄고도 길의 핵심지역이다.
▲ 한국의 산티아고 운탄고도 트레킹 코스
1.성찰과 여유, 이해와 치유의 트레킹 코스
운탄고도 1330 통합안내센터~각동리
△거리=15.60㎞ △소요시간=5시간 30분 △고도=186~637m
2.김삿갓 느린 걸음 굽이굽이 길
영월 각동리~모운동
△거리=18.80㎞ △소요시간=6시간 45분 △고도=171~643m
3.광부의 삶을 돌아보며 걷는 길
영월 모운동~정선 예미역
△거리=16.83㎞ △소요시간=5시간 50분 △고도=358~1010m
4.과거에 묻어둔 미래를 찾아가는 길
정선 예미역~화절령(꽃꺼끼재)
△거리=28.76㎞(9길 중 최장코스) △소요시간=9시간 26분 △고도=403~1197m
5.광부와 광부 아내의 높고 애틋한 사랑의 길
정선 화절령~함백산 소공원(만항재)
△거리=15.70㎞ △소요시간=5시간 15분 △고도=1067~1330m
6.장쾌한 풍경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길
함백산 소공원~순직산업전사위령탑
△거리=16.79㎞ △소요시간=5시간 34분 △고도=621~1330m
7.영서와 영동이 고갯마루에서 만나는 길
순직산업전사위령탑~삼척 도계
△거리=18.07㎞ △소요시간=7시간 40분 △고도=247~925m
8.간이역을 만나러 가는 길
삼척 도계역~신기역
△거리=17.73㎞ △소요시간=5시간 38분 △고도=91~247m
9.오십천을 건너고 또 건너 바다에 이르는 길
삼척 신기역~소망의탑
△거리=25.15㎞ △소요시간=8시간 23분 △고도=3~104m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2. 애잔함 너머 성찰 전하는 말소리 닮은 길
기자명 방기준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2.23. 지면 20면
단종 삶 담긴 영월 청령포서 출발
김삿갓면 각동리까지 15.6㎞ 구간
역사가 전하는 성찰 고스란히 담겨
폐역으로 남은 청령포역 맞닿아
두물머리 풍경·시가지 조망 가능
100대 명산 태화강 등반 포함
고씨동굴·동굴생태관 관광지 인접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운탄고도 1길은 열일곱 살 어린 나이로 비운의 생을 마감한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애절한 삶이 담긴 영월읍 청령포에서 시작된다. 이어 도도하게 흐르는 동강을 따라 걸으며 여유를 찾고, 산길 인근 천연기념물 제219호 고씨동굴에서는 4억년 전 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시간으로 회귀하게 만든다. 때문에 오랜 역사가 우리에게 속삭여 주는 말소리를 통해 여유를 되찾고 치유에 이르는 길이다.
■ 운탄고도 1330 1길= 성찰과 여유, 이해와 치유의 트레킹코스
운탄고도 전체 440리길의 첫 발을 단종의 애절한 삶이 담긴 영월 청령포에서 떼어놓는 것은 운탄고도에 어린 애잔한 정서를 미묘하게 자극한다. 불과 17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고 갔으나 단종의 삶은 정치와 권력의 허망함을 넘어 인생의 덧없음까지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다. 그 힘을 압도하는 것은 분명 슬픔이지만, 청령포를 돌아 보노라면 슬픔 너머의 무엇, 슬픔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뭔가와 만나게 된다.
만약 이것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단종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리고 우리의 오랜 역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속삭여 주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 이 속삭임 안에는 분명 경제도약의 시기 ‘검은 다이아몬드’를 캐내며 청춘을 바쳤던 우리 아버지들의 목소리 또한 담겨 있을 것이다.
청령포를 떠난 발길이 그리 가파르지 않은 언덕 산길을 넘으면 아름다운 숲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곧이어 태백선 청령포역이 나타난다. 역의 이름은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를 빌어 지어졌다. 1978년 1월 1일 여객은 취급하지 않고 열차의 교차 운행과 대피를 위해 설치한 신호장(信號場)으로만 처음 문을 연 뒤 1995년 8월 10일에 역무원이 배치됐으나 2005년 4월 1일에 역무원이 철수하며 현재까지 폐역으로 남아 있다.
청령포역과 세경대 정문을 지나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풍경과 영월읍 시가지 전경을 감상한 뒤에 남한강을 따라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다 보면 수변공원에 조성된 팔괴2리 태화산카누마을이 보인다.
겨울철을 제외한 봄과 여름·가을에 길을 걷게 된다면 잔잔한 수면 위에서 카누·카약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여기서 강촌 풍경을 구경하며 숨을 돌려야 한다. 한국 100대 명산의 하나인 태화산으로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평균 해발 630여m의 산길 4㎞ 구간은 크고 낮은 언덕과 바윗길로 이어져 있어 자신의 체력을 확인하는 에너지 충전소다. 트레킹 보다는 등산에 더 가깝다고 느낄 수 있다.
또 이 구간은 외씨버선길 13구간과 겹치는 곳이기도 해서 걷는 동안 두가지 안내리본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2시간여 동안 숨가쁘게 걷는 산길은 비록 힘은 들지만 도착 지점인 김삿갓면 각동리마을에 내려서는 순간 시골과 강촌풍경이 어우러진 아늑한 분위기 속에 상쾌함이 찾아 온다.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동강과 남한강을 따라 걸으며 여유를 되찾고, 그렇게 찾아진 여유로운 걸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미래에 닿는 이해를 통해 치유에 이르는 운탄고도 1길은 영월읍 청령포∼김삿갓면 각동리 15.6㎞ 구간에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1길 주변의 명소들
△청령포
영월을 다녀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 청령포라고 한다. 강물이 둘러싸고 있는 듯해서 섬과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런 고립감이 자연스럽게 단종과 연결돼 애잔함을 준다. 동쪽과 남쪽·북쪽 3면은 강으로, 서쪽은 가파른 암벽인 육육봉으로 막혀 있어 걸어서는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천혜의 유배지 형국이다. 현재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가 유일한 출입 수단이며 많은 관광객을 한꺼번에 실어 나르는 데는 유용하지만 운치는 그다지 없다.
△고씨동굴
석회암 동굴의 진면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천연기념물 제219호이다. 영월 10경(景)가운데 하나이며 폭염이 지속되는 한여름에도 동굴 안은 시원해서 이 때가 피크를 이루지만, 사철 내내 영월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1966년에 처음 알려졌을 당시에는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만 입구에 닿을 수 있었는데, 현재는 동굴 입구까지 널따란 다리가 놓여 있다. 동굴의 전체 길이는 3㎞가 넘지만 관람객에게 개방된 지역은 500여m에 이른다. 종유석과 종유관·석순·석주·유석·동굴산호 등 동굴을 생성하고 있는 매우 다양한 형태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트레킹을 잠시 멈추고 타임머신에 훌쩍 올라 지질시대로 날아가 보는 것은 재미만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을 잊고 살아온 우리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영월동굴생태관
고씨동굴을 탐방하기 전에 관람할 수 있는, 동굴의 생태를 알아보는 데 유용한 곳이다. 고씨동굴 입구로 이어지는 널따란 다리의 안쪽 주차장 인근에 있어서 방문이 편리하며, 동굴에 대한 전문 연구자들의 자료로 채워져 있어 학습효과도 높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여러 가지 동굴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아프리카미술박물관
고씨동굴 주변에 있어서 고씨동굴 탐방과 연계할 수 있다. 아프리카 20여개국에서 수집한 다채로운 미술품들이 전시돼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아프리카 부족들의 생활과 그들의 종교를 바탕으로 한 그림과 조각·생활도구·장신구는 물론 아프리카의 현대미술도 상설 전시를 하고 있다. 목재와 청동·토기·상아 등을 활용해 만든 작품들이 가진 토속적이고 원시적인 분위기는 고씨동굴이 가진 과거와 묘하게 맞물리기도 한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3. 구불구불 물길따라 천천히, 쉼표가 필요한 당신에게
기자명 방기준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3.09. 지면 10면
김삿갓 시 음미하며 남한강 풍경 감상
삼국시대 축조 대야산성 역사 고스란히
‘슬로시티’ 옥동늘보마을 향토음식 식사
친환경 농법 재배 ‘예밀와인 로제’ 우수
와인 특가 구매·족욕체험 등 힐링 만끽
운탄고도 1330 2길= 김삿갓 느린 걸음 굽이굽이 길
운탄고도 2길은 방랑으로 평생을 살았던 조선 후기 천재 해학시인 난고 김삿갓(본명 김병연 1807~1863)과 함께 걷는 길이다. 전형적인 ‘길 위의 인생’의 대명사인 김삿갓이 죽장에 삿갓을 쓰고 슬며시 나타나 함께 걷노라면 운탄고도 1길에서 얻어온 성찰과 여유가 더 풍부해진다.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 좋으니(倦馬看山好), 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세(執鞭故不加)”라는 김삿갓의 시를 음미하며 1길 종착지인 김삿갓면 각동리를 출발해 남한강 풍광을 구경하면서 가재골로 오르다 보면 운탄고도 2길과 외씨버선길이 겹치는 안내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에서 조금 힘들게 산을 오르면 해발 400.8m 정상 가파른 비탈에 높이 5m 내외의 대야산성(大野山城)이 비바람을 견뎌오며 삼국시대의 생생한 역사를 들려준다.
대야산성은 5세기 말∼6세기 초 영월을 중심으로 삼국 간의 항쟁과 영토확장 전투가 치열했던 시기에 마치 산에 테를 두른 듯한 모양으로 둘레 400여m 정도로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 3곳만 남아 있다.
능선을 따라 50여분 정도 걷다가 내려와 대야마을을 거쳐 다시 산에 올라 비교적 쉽게 1시간 정도의 걷는 길 왼쪽으로는 자연이 수억년 세월동안 빚어낸 아름다운 옥동천 감상이 가능하다.
산 아래 슬로시티의 본향 옥동늘보마을에서 느림의 미학을 느끼며 보리밥 등 향토음식으로 식사를 하거나 간단히 요기를 한 뒤 걸음을 재촉해 김삿갓포도마을을 지나면 잘 숙성된 와인 향기가 솔솔 풍겨나는 예밀촌마을이다.
예밀2리영농조합법인(대표 정정근)이 생산하는 ‘예밀와인 로제’는 진한 장밋빛의 아름다운 색과 특유의 산미가 조화를 이루는 화사한 향에다 적당한 보디감을 느낄 수 있어 한국와인 부문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 등 여러 와인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으며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았다.
와인 생산에 사용되는 포도는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큰 데다 배수가 잘되고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토양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된다. 좋은 와인이 좋은 포도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애주가들은 와인 맛을 볼 수도 있고, 예밀와인 힐링족욕체험센터에서 전문자격의 체험사무장 해설 아래 품격있는 족욕체험으로 피로를 풀 수도 있다. 자연스레 세상에 대한 욕심과 번뇌·아쉬움·슬픔·화·걱정 등을 저절로 내려놓게 된다.
“삶이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진리를 되새기며 걸음을 옮기면 맑은 샘물이 흘러나오는 출향인공원 정자에서 갈증을 해소한 뒤 바쁘게 장재터까지 2.74㎞를 올라야 한다.
장재터를 지나서 닿게되는 만경대산 7부 능선 자락 해발 700m의 분지에 형성된 ‘구름이 모여드는’ 모운동(暮雲洞) 마을은 운탄고도 2길의 마지막 발길이 멈춰지는 곳으로 비교적 편한 길이다. 경사도가 심한 산에 인간의 편리를 위한 찻길을 만들다 보니 완전 굽이길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은 우리의 굴곡진 인생사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오르다가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면 숲에 가린 길도 언뜻언뜻 만나고, 더 멀리 눈길을 두면 산 아래 예밀촌마을의 풍경에 저절로 걸음이 멎는다. 바삐 치고 오르는 것보다는 느림의 미학을 즐기며 걷는 길이다. 김삿갓면 각동리에서 시작해 주문리 모운동에 이르는 운탄고도 1330 2길은 총 길이 18.8㎞에 7시간 정도 걸린다.
■ 2길 주변 명소
△대야동굴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에 퇴적된 암회색 석회암으로 이뤄진 표고 190m에 위치한 동굴이다. 1980년 강원도기념물 제32호로 지정됐다. 옥동천변 절벽에 폭 5m 높이 10m 가량의 동굴 입구에는 많은 양의 지하수가 쉼 없이 흘러 나온다. 동굴 안은 전체 길이 500여m에 거의 굴곡이 없는 터널 형태로, 몇 개의 폭포를 지난 후 점차 좁아지다가 끝은 수면과 맞닿아 있는데 화려한 종유석과 석순·석주 등이 발달해 있다. 대야동굴에서 발견된 25종의 동물들 가운데 ‘긴넓3적다리삼당노래기’ 등 3종은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외씨버선길
조지훈의 명시 ‘승무’에 등장하는 외씨버선의 날렵한 모양을 닮았다는 길이다. 경상북도 청송∼영양∼봉화를 지나 영월로 이어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정지역을 잇는 길이다. 외양은 ‘오이씨처럼 볼이 조붓하고 갸름해 맵시가 있는 버선’을 가리키는 외씨버선을 닮았지만, 모두 15개 코스 240㎞에 이르는 이 길은 2013년에 모두 완성됐으며 영월 김삿갓면 구간 일부를 운탄고도 2길과 공유한다.
△예밀와인 힐링족욕체험센터
예밀촌 와이너리 인근에 2020년 4월에 준공돼 족욕을 하면서 심신에 쌓인 피로를 풀며 와인 시음도 하고, 특별한 가격에 와인을 구입할 수도 있다. 다녀간 사람들의 입소문과 개인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알려져 인기가 유지되고 있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녹여낼 수 있는, 말 그대로 ‘힐링의 표상’이다. 체험료는 1인당 1만5000원, 체험 시간은 20분이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4. 모두가 떠나도 마르지 않는 황금빛 광부의 샘
기자명 방기준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3.16. 지면 18면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구름 모여드는 모운동 마을서 시작
광업소·삭도 등 폐광 흔적 고스란히
철분 품은 전망대 황금폭포 이색 풍경
폐열차 ‘석항트레인스테이’ 로 추억 여행
광업소와 삭도·동발 등 폐광 흔적과 탄광산업의 주역이었던 광부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걷는, 말 그대로 ‘광부의 길’이다. 구름이 모여드는 최대의 광산도시 모운동(暮雲洞)마을에서 운탄고도 3길의 첫 발을 떼면, 광부들의 땅을 딛는 작업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영월의 탄광들 가운데 가장 질 좋은 무연탄이 생산된 것으로 알려졌던 옛 옥동광업소가 멀지 않다.
■ 운탄고도 3길= 광부의 삶을 돌아보며 걷는 길
광부들은 갑번과 을번·병번 하루 3교대로 나눠 검은 다이아몬드를 캐냈다. ‘땅속 깊이 개미굴처럼 이어진 갱도로 흩어져 그들이 파고 또 팠던 것은 시꺼먼 탄 뿐이었을까, 그들의 운명이거나 팍팍한 삶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말 그대로 광부의 길을 걷게 된다.
머지 않아 보이는 전망대에선 폐갱도 안에서 불그레한 물이 쉼 없이 흘러 나와 물줄기를 쏟아내는 황금폭포를 만나게 된다. 광산의 철분 때문에 황금색으로 보인다는 것을, 이제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안다.
또 광부들의 공중목욕탕으로 슬그머니 들어서면 누가 썼는지 모르는 낙서들이 어지럽다. 탄광가는 숲길로 들어서기 전, 한 광부가 무연히 나타난다. ‘휴식’이라는 제목이 붙은 조각상이다. 그곳을 그냥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그의 곁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래도 그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삭도(索道)와 동발 등도 탄광산업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삭도는 자동차로 접근이 어려울 때 석탄을 운반하던 중요한 수단이었다. 공중에 매달린 밧줄에 운반기를 설치해 여객이나 화물을 운송하는 수단을 보통 삭도라 불렀다. 2㎞ 넘게 갱도를 뚫어 망경대산을 관통하며 캐낸 석탄은 소래기바가지 삭도를 이용해 석항역까지 보내졌다. 삭도는 탄을 운송하는 것 말고도 장마철이나 겨울철 폭설이 내려 길이 끊기면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데도 쓰였다.
원래 ‘지게 몸체의 맨 아랫부분에 있는 양쪽 다리’를 가리키는 동발은 땅을 팔 때 갱이 무너지지 않게 만들어 세워졌다.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졌다가 차츰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지었다. 동발제작소임을 알리는 누런 표지판에는 실제 동발이 세워진 모습이 찍힌 흑백사진 2장이 박혀 있는데,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광부의 길을 지나면 해발 1088m의 영월 산솔면과 김삿갓면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우뚝 솟은 운탄고도 3길의 두번째 기항지인 망경대산(望景臺山)과 만난다. 시간이 흐르며 많이 가려지긴 했지만 산자락에 흩어진 광산의 흔적들을 통해 석탄산업 호황기였던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탄광 개발이 얼마나 맹렬하게 이뤄졌는지를 짐작케 해준다.
탄광들이 차례차례 폐광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멈춘 숲은 점점 우거지고 자연은 빠르게 복원되고 있으나 광부들의 숨 가빴던 삶과 애틋한 사연은 고요히 묻혀 버렸다.
비포장의 망경대산 임도를 따라가면 왼편으로 고랭지 채소밭에 닿는데, 바위가 거의 없는 초목으로 넓게 이뤄진 육산의 특징을 보여준다. 산 아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철컹철컹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 소리가 들릴 즈음 운탄고도 3길 종점을 향한 마지막 기항지 석항역이 아스라이 보인다. 길을 내려가면 석항역 부지에 폐열차를 활용해 추억여행을 즐길 수 있는 노스탤지어 체험시설인 석항트레인스테이의 이국적인 풍경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정선 경계를 훌쩍 넘으면 운탄고도 3길의 종착지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禮)와 아름다움(美)’이 가득한 예미마을의 자그마한 역에 도착한다. 트레킹을 하며 운탄고도의 의미와 가치, 광부의 삶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운탄고도 3길은 모운동에서 정선 신동읍 예미역까지 총 길이 16.83㎞이다.
■ 3길 주변의 명소들
△망경대산
운탄고도 1길의 출발지인 영월읍 청령포에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애절한 삶이 어려 있다면, 망경대산에는 단종의 충직한 신하 추익한(1383-1457)의 간절한 기원이 깃들어 있다. 추익한은 홍문관부수찬·호조정랑·한성부윤 등을 거친 뒤 1433년(세종 15년) 관직에서 물러나 영월로 낙향해 망경대산 아랫녘인 당시 상동면 화원리에서 시를 짓고 책을 읽으며 조용히 살았다.
그러던 중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사육신의 한 사람인 형조참판 박팽년으로부터 단종을 잘 보필해 달라는 서신을 받는다. 산에서 머루와 다래를 따서 바치는 등 단종을 정성껏 보살폈는데 어느 날 곤룡포를 입고 백마를 탄 단종이 태백산으로 가는 꿈을 꾸게 된다. 급히 청령포로 달려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사약을 받은 단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였다. 단종의 폐위 소식을 들은 추익한이 산 위에 올라 한양 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애절한 사연을 품고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의 멋진 능선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월군이 운영하는 망경대산자연휴양림은 트레킹 후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석항트레인스테이
석항역은 1991년 소화물 취급이 중지되고, 1995년에 설치됐던 승차권 단말기가 2004년에 철거된 후 2009년 여객 취급마저 중단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이에 영월군이 코레일에서 지원된 폐열차 9량을 활용, 68명 수용 객실 9실과 식당·카페·샤워실 등 편의시설을 갖춘 뒤 2013년에 문을 열고 여행객들을 맞으며 사람들의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와 소소하지만 여유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객실은 4인실, 6인실의 가족실과 12인실로 운영되는 도미토리가 있다.
대도시의 소음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곳의 조용함에 놀랄지도 모른다. 해질 무렵 방문하면 양쪽에 늘어선 기차 사이로 지는 해를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다. 민간위탁업체가 지난해 4월 운영을 포기해 현재는 손님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5. 검은먼지 낀 구절양장 지나니 푸른 희망 새긴 하늘이
기자명 유주현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3.23. 지면 20면
정선 예미역 출발 철로와 나란히 걷는 길
꽃꺼끼재까지 28.76㎞ 9시간 가량 소요
운탄고도 만든 강제징집의 아픈 사연
석탄산업 호황기 열차·광부 이야기 서려
새가 날아가는 형상 ‘새비재’ 이국적 풍경
타임캡슐공원 과거-미래 희망 연결
산등성이 폐석·굽이굽이 고갯길 인상
운탄고도 4길은 정선 신동읍 예미리 예미역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미리는 일제 강점기시대 광산 개발로 많은 일본인들이 몰려들어 일본 이름을 단 술집과 병원 등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이다. 해방이후에는 태백산맥 일대에 엄청난 무연탄이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1993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주변 광산들이 모두 폐광하면서 이 지역의 경기도 휘청거렸지만 예미농공단지를 비롯한 생태탐방로, MTB코스, 타임캡슐공원, 동강전망자연휴양림 조성 등을 통한 상경기 회복에 나서면서 안정을 되찾고 있다.
운탄고도 4길=과거에 묻어 둔 미래를 찾아가는 길
신동읍 예미리에 위치한 예미역에서 출발해 철로와 나란히 난 국도 421호선 인도를 따라 걸으며 마주치는 풍경은 예전 석탄산업 호황기때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석탄을 운송하던 열차의 기관사가 보았던 그 길과 크게 변함이 없다.
철로를 뒤로 하고 예미농공단지를 거쳐 가다보면 함백역 가는 길과 타임캡슐공원으로 가는 갈래길이 만난다. 이 곳 갈래길 초입에는 백반전문집인 양지식당이 손님들을 반긴다. 포장된 타임캡슐공원 진입로가 바로 새비재로 가는 길이다. 고개를 이룬 산의 형상이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화전민(火田民)들이 정착해 터를 일구고 살아왔으나 1970년 초 정부의 독가촌 정비 사업으로 지금은 고랭지 채소 등을 재배하는 사람들만이 살고 있다. 새비재 능선에서 바라본 넓은 채소밭은 여름철 초록으로 뒤덮인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상케 한다.
이 길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있다. 바로 타임캡슐공원이 조성돼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배우 전지현과 차태현이 2년 후를 약속하고 타임캡슐을 묻었던 장소다. 타임캡슐과 소나무는 고원의 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을 기다리고, 찾아온 이들의 소망과 함께 그들의 과거가 되고 미래를 연결해준다.
석탄을 캐며 미래의 삶을 얘기했던 광부와 가족들의 슬픈 이야기, 생사의 갈림길에서 운탄고도를 만들었던 강제징집자들의 아픈 사연, 배고픔을 잊기 위해 꽃을 꺾어 먹었던 주민들의 눈물겨운 인생사들이 길따라 스며있는 듯 하다.
어느 전설 속 수도승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고, 잠시 떠났던 세상에 돌아왔을 때 그곳은 이미 그가 살던 세상이 아니었다고 했다. 지금이 과거의 현재, 미래의 현재, 아니면 시간 밖의 어떤 시간에 속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연을 꼭꼭 눌러담은 타임캡슐이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켜주듯, 소망을 되뇌며 걷는 길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공간을 이어준다.
새비재를 지나 꽃꺼끼재까지 첩첩산중으로 꼬불꼬불 난 도로는 석탄산업이 호황을 이룰때 석탄을 실은 지무시(트럭)가 오가며 검은 먼지를 날리던 길이었다. 지무시는 하루 3교대로 캐낸 석탄을 싣고 동쪽 만항재에서 올라와 정암산, 백운산, 두위봉, 질운산 산허리를 거쳐 새비재에 이르러서야 함백역을 향해 고개 밑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석탄을 캐내기 이전 이 길은 수많은 야생화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었다. 보릿고개처럼 어려운 시절 이 길을 이용했던 사람들은 진달래 꽃잎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 힘든 고갯길을 넘으며 아이들은 학교에 다녔고, 청년들은 꽃을 꺾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운탄고도 4길의 종착지점인 화절령(花절嶺), 바로 꽃꺼끼재다.
이 길은 석탄생산 활황기에 석탄을 운반하던 운탄고도 길이 됐다. 한국 근대산업의 근간을 이뤘던 운탄고도를 따라 걷다 보면 산 등성이로 보이는 수많은 폐석과 아름다운 꽃들, 도로 옆 아찔한 낭떠러지, 저 멀리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산들의 모습은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때와 다름이 없다.
이 운탄고도 4길은 440리 운탄고도 길 가운데 가장 긴 코스다. 예미역에서 출발, 예미랩, 타임캡슐공원, 새비재, 사동골을 거쳐 화절령까지 28.76㎞ 구간으로, 소요시간만 9시간이 넘는다.
운탄고도 4길 주변 명소들
△예미역=운탄고도 4길의 시작점인 예미역은 신동읍 예미리에 위치한 태백선과 함백선의 철도역이다. 1977년 역사가 준공됐다. 함백역을 경유해 조동역까지 우회하는 함백선과 본선인 태백선이 이곳 예미역에서 나눠진다.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12회 정차한다. 2015년 1월 22일부터 정선아리랑열차(A-Train)가 운행을 시작했고, 2020년 3월 2일 무궁화호로 전환해 영동선 누리로(청량리~동해) 운행을 개시했다.
△타임캡슐공원=신동읍 엽기소나무길에 있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로 알려진 공원이다. 영화에서 차태현과 전지현이 2년 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타임캡슐을 소나무 밑에 묻었던 곳이다. 그 소나무에 ‘엽기소나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 곳을 중심으로 12개월을 의미하는 12개의 방사형 원형블록이 설치돼 있고, 블록 당 400여개의 타임캡슐 설치가 가능하다.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함백역=운탄고도 4길에 포함되지 않지만 꼭 한번 들러보기를 권하고 싶은 역이다. 1957년 3월 영월~함백을 잇는 함백선의 개통과 함께 문을 열었다. 고한의 삼탄, 사북의 동원탄좌, 신동의 함백광업소는 정선에서 규모가 컸던 탄광이었다. 그러다 1993년 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함백역도 기능을 잃었다. 2006년 10월 철도시설공단이 역사가 낡았다는 이유로 주민들 몰래 허물자 주민들은 힘을 모아 다시 역사를 짓기 시작해 2년 뒤 옛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예미랩=우주 구성 물질 ‘암흑 물질’을 연구하기 위한 ‘지하 연구실’인 예미랩이 신동읍 예미산 지하 1000m에 고심도 지하실험시설로 조성됐다. 예미랩이 완공됨에 따라 본격적인 암흑물질 탐색과 중성미자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6. 가파른 오르막 없어도 광부들 고단함 느껴지는 길
기자명 유주현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3.30. 지면 18면
탄광 속 남편 무사안전 기원 도롱이연못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최초 개발 1177 갱
그 시절 광부 가족 절박함 가득 삶의 터전
우리나라 가장 높은 곳 조성 하이원 하늘길
화절령~함백산소공원 15.7㎞ 5시간 소요
4길이 과거와 미래의 만남의 길이라면 5길은 광부와 광부가족들의 애틋한 사랑의 길이다. 특히 이 길은 한국 산업 근대화에 크게 이바지한 산업전사들의 삶이 그대로 노정돼 있다. 구름이 펼쳐진 고원길도, 석탄을 실어 나르던 높은 길도 모두 석탄을 실은 트럭이 운행을 멈춘 후에 얻은 이름이다. 운탄고도는 이름만 들으면 꽤 낭만적이지만 석탄을 캐던 그 시절은 절박함이 가득했던 삶의 터전이었다.
■ 운탄고도 5길= 광부와 광부 아내의 높고 애틋한 사랑의 길
4길의 종착지점이자 5길의 시작인 화절령(花折嶺)은 사북에서 영월군 상동으로 통하는 험한 준령이기도 하다. 옛날부터 진달래꽃이 만발해 절경을 이루던 곳으로, 봄에는 여인네들이 각처에서 모여들어 진달래꽃을 꺾었다고 해 ‘꽃꺼끼재’라고도 부른다. 5길은 석탄산업이 활황을 누리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로다. 사북읍과 고한읍은 지금은 폐광지역이지만 당시 대한민국의 석탄산업을 주도하던 지역이었다. 지역이 넓지 않아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에 땅이 부족, 산비탈에 판잣집이나 다름없는 집들이 지어졌다.
옛날 탄광촌 시절에는 이웃집과 합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야만 할 정도로 주거환경이 열악했다. 그러나 광부가족들의 교육열은 그 어느 곳보다 높았다. 대부분 아이들을 대도시로 유학보냈다고 한다. 폐광이후 강원랜드와 하이원리조트, 하이원스키장 등이 들어섰다. 화절령 근처 도롱이 연못에 얽힌 이야기는 마음을 짠하게 한다. 광부를 남편으로 둔 아내들의 애타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게 도롱이 연못이라면 뒤이어 마주치게 되는 1177갱은 동원탄좌의 광부들이 막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광부의 아내들은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며 도롱뇽을 발견하면 무사고의 표시로 알고 기뻐했다고 한다.
“우리 아빠 굴속에서 나올 때쯤 되면/우리 엄마 앉았다 일어섰다/ 가만있지를 못합니다/…/해 저물어 저만큼 캄캄한 굴속에서/ 새까만 얼굴의 광부 아저씨들이 나오면/…/ 우리 엄마 나를 꼭 껴안고 길게 한숨을 쉽니다”
(화절령에 조성된 김남주 시인의 ‘검은 눈물’ 시)
이 곳에는 하이원리조트가 만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원 트레킹 코스인 하늘길도 조성돼 있다. 도롱이연못을 조금지나면 민영탄광으로 최대생산량을 기록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인 1177갱도가 있다. 고한 사북지역 탄광개발의 시발점이 된 의미있는 갱도다. 이 갱이 개발되면서 화절령 주변에 약 10곳의 군소탄광이 생겨났고, 채탄된 석탄은 트럭으로 인근 함백역으로 운송됐다. 이때 만들어진 길이 지금의 운탄고도다. 당시 탄광을 개발하면서 나온 침출수를 정화시켜주는 시설도 존재한다.
함백산소공원 만항재로 이동하는 길은 평온하다. 가파른 오르막이나 험한 바윗길은 없다. 점점 정암풍력발전단지가 위치한 만항재로 접어들수록 풍력발전기의 위용이 과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고한읍 일원 해발 1400m 고지대에 위치한 풍력발전단지는 2.3㎽급 풍력발전기 14기로 총 32.2㎽의 발전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운탄고도 5길의 종착지점인 함백산소공원이 지척임을 미리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운탄고도 5길은 화절령에서 출발, 도롱이연못~1177갱~운탄고도쉼터~하이원CC갈림길~약수터~만항재~함백산소공원까지 15.70㎞ 구간으로, 소요시간만 5시간15분이다.
■ 5길 주변의 명소들
△ 도롱이 연못
1970년대 탄광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이다. 이곳에는 도롱뇽이 서식하고 있다. 화절령 일대에서 살고 있던 광부의 아내들은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연못에 살고 있던 도롱뇽에게 오고 가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일찍 위험을 감지한 도롱뇽이 사라지면 연못의 물이 얼마 후 땅속으로 들어갈 테고, 그러면 갱도가 다시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광부의 아내들은 생각했다. 그 기도들이 모이고 모여 도롱이 연못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 연못은 고라니, 산토끼,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의 샘터이고 특히 봄철에는 도롱뇽이 알을 낳는 곳이기도 하다. 연못 주변의 낙엽송 숲에서 피어나는 야생화들은 그 시절 광부의 아내들을 닮아 수수하기 이를 데 없다.
△ 하늘길
하이원리조트 일대에 조성되어 있는 트레킹 코스다.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원 길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자 일상생활의 필수품과도 같은 석탄을 캐내 기차역까지 실어 나르던 운반도로와 백운산 주변의 산책로를 다시 잘 탐사해 나이든 어른과 아이들도 함께 걷기 좋게 정비한 길이다. 해발 1200m 고원에 위치한 천혜의 자연 생태환경과 이제는 잊혀가는 옛 탄광의 자취를 느린 걸음 속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하이원 하늘길은 봄부터 가을까지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350종의 야생화가 능선의 트레킹 코스를 따라 군락지어 피어나는 천상의 야생화 화원으로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반긴다.
△ 1177갱 입구
1177갱은 민영탄광으로 최대생산량을 기록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로 고한 사북지역 탄광개발의 시발점이 된 의미있는 갱도이다. 이 갱이 개발되면서 화절령 주변에 약 10여곳의 군소탄광이 생겨났으며 채탄된 석탄은 트럭으로 인근 함백역까지 운송됐다. 이때 만들어진 길이 지금의 운탄고도다. 2015년 12월 강원랜드에서는 이 길이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체험교육장으로 활용되길 기대하며 산림청의 협조를 얻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이 갱의 일부를 원형 복원했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7. 막장의 땀·눈물 스민 땅, 야생화 뒤덮인 천상의 화원으로
기자명 유주현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4.06. 지면 20면
7. 운탄고도 1330 길 만항재
정선 고한읍 함백산 자락 위치한 만항재
운탄고도 통해 석탄 나르던 트럭 이동로
1962년 국토건설단 부랑아 등 강제 징집
고원 산길 40㎞ 삽·곡괭이로 길 만들어
애환 서린 야생화 군락 봄·여름 환상적
매년 8월 숲 속 힐링체험 등 야생화축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소원을 빌었던 곳이 있다. 바로 정선 고한읍 고한리 함백산 자락에 위치한 만항재가 그 곳이다. 해발고도 1330m 로, 한국에서 차량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고려말 또는 조선초 개풍군 광덕면에 위치한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에서 살던 주민 일부가 정선으로 옮겨와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이곳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만항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해 만항재로 불리고 있다. ‘운탄고도 1330’은 바로 만항재의 높이로, 이주 주민의 역사와 탄광지역 주민들의 삶의 노정이 깃든 장소이자 운탄고도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 운탄고도의 시발점 ‘만항재’
만항재는 천상의 화원으로 불린다. 봄부터 여름까지 다양한 야생화가 만항재를 뒤덮기 때문이다. 해발고도가 높아 야생화가 늦게 꽃을 피우지만 화려함은 그 어떤 야생화 군락지보다 빼어나다. 고원 함백산야생화축제위원회는 해마다 8월 중에 야생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함백산 산신제를 시작으로 숲속 힐링체험, 정암사 산사음악회, 자장율사 순례길 탐방, 고한 골목길정원박람회 등 만항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만항재는 생태산업유산 탐방로인 광부의 길과 새비재길, 즉 운탄고도의 시작점이다. 만항재를 시작으로 혜선사~하이원CC~화절령 사거리~새비재~타임캡슐공원~안경다리마을~함백역~자미원역~민둥산역~사북읍~고한읍~정암사~삼탄아트마인~만항야생화마을을 거쳐 다시 만항재로 이어진다. 이 구간은 운탄고도를 통해 석탄을 나르던 트럭의 이동로이다. 석탄산업이 활황세일 당시 트럭은 하루 삼교대로 캐낸 석탄을 싣고 동쪽 만항재에서 올라와 정암산, 백운산, 두이봉, 질운산 산허리를 지나 새비재에 이르러서야 함백역으로 향했다. 이 도로는 하루에도 수백 대의 트럭이 오가며 검은 먼지를 날리던 길이었다.
운탄고도에 얽힌 이야기는 낭만적이지만 만들어진 과정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운탄고도는 1962년 국토건설본부를 개편해 발족한 국토건설단에서 개설했다. 국토건설단은 불량배나 부랑아들을 강제 징집해 군대식 편제와 규율 아래 노역을 시키는 형식으로 운영됐다. 운탄고도는 그 시절에 조성됐다. 정선지역에 산재해 있는 300여개의 탄광에서 역까지 석탄을 실어 날라야 하는데 산중에 제대로 된 길이 없었다.
만항재에서 함백역까지 평균 해발고도 1100m의 고원 산길 40㎞가 넘는 구간을 2000여명이 삽과 곡괭이 만으로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로 만들었다. 또한 1948년부터 2004년까지 정선의 88개 석탄광과 지하 막장에서 목숨 걸고 일했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도 운탄고도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지난 시절 국토건설단의 땀과 눈물 위로 검은 먼지를 날리며 트럭들이 오갔던 운탄고도는 구름이 머무는 아름다운 길, 사람들이 찾아와 쉼을 얻는 치유의 길, 과거의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게 넘었던 고난의 길이었다는 것을 운탄고도는 기억할 것이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향기를 뿜어 낼 때마다. 신동읍 새비재에서 고한읍 만항재까지 24㎞의 운탄고도는 자전거 여행자들의 힐링 코스로도 주목받고 있다.
운탄고도 만항재 주변 명소들
△ 함백산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소도동에 걸친 높이 1573m의 산이다. 금대봉(1418m)과 대덕산(1307m)으로 둘러싸여 있다. 1993년 환경부가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함백산은 황지의 진산으로 알려진 산이다. 야생화 군락지로 유명하며, 정상에 서면 백두대간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멀리 동해바다 해돋이도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주목 군락이 형성돼 있다.
△ 정암사
신라시대의 천년고찰이다. 신라의 고승인 자장율사가 태백산에 석남원을 세운 뒤 그곳에서 입적했는데, 마지막 생애를 보낸 태백산의 석남원이 지금의 정암사다. 자장율사가 절을 다 짓고 난 뒤에 자신이 갖고 있던 주장자(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이 주장자가 다시 살아나 큰 나무로 자라 지금 정암사 적멸보궁 앞에 서 있는 주목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경내에는 국보 제332호인 수마노탑이 있다. 높이 9m. 석탑은 정암사 적멸보궁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급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평평한 대지를 만들고 석탑을 세웠다. 벽돌처럼 돌을 다듬어 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 삼탄아트마인
1962년 고한읍에 설립된 삼척탄좌는 국내에서 가장 큰 민영탄광으로 유명했다. 1988년 석탄산업합리화법이 제정되고 2001년 삼척탄좌는 폐광했다. 삼척탄좌가 문을 닫은 자리에 2011년 들어선 것이 대한민국 문화예술광산 1호인 정선삼탄아트마인이다. 삼척탄좌를 의미하는 삼탄과 예술을 의미하는 아트, 그리고 광산을 의미하는 마인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이곳에는 과거 탄부들이 석탄을 캐던 탄광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또한 삼척탄좌로 사용됐던 장소들을 활용해 예술전시장을 꾸몄다.
△ 마을호텔 18번가
고한읍 고한리에 들어선 우리나라 최초의 마을호텔이다. 호텔 주인은 마을주민이다. 기존 호텔이 고층 건물 안에 객실과 레스토랑, 편의시설 등이 층별로 자리한다면, 고한 18번가 마을호텔은 마을골목이 호텔의 로비이다. 골목은 지역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리고 주민들이 LED야생화를 만들어 배치해 마치 동화 속 같다. 객실은 마을의 빈 가게를 개조해 꾸몄다. 더블침대와 싱글침대를 갖춘 꽃방, 싱글침대를 갖춘 빛방, 온돌방인 별방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8. 장쾌한 풍경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길
기자명 김우열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5.04. 지면 18면
검은 막장 피땀 위에 푸른 나무 피어나다
함백산 소공원~상장동벽화마을~산업전사위령탑 16.77㎞
함백산 남동쪽 함태탄광 있던 자리 자작나무 힐링숲 조성
계절별 야생화·탄광촌 벽화·황지연못 등 태백 볼거리 풍성
운탄고도 5길이 ‘광부와 광부 아내의 높고 애틋한 사랑의 길’이라면 6길은 ‘장쾌한 풍경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길’이다. 피어나는 봄꽃과 시원한 여름, 붉게 물든 가을 단풍, 순백의 겨울 설경 등 함백산의 아름다운 사계를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을 벗삼아 산길을 내려오면 탄광촌 마을이 그때 그 시절 희로애락의 삶을 안내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막장에서 ‘검은 노다지’ 석탄을 캤던 광부들이 아름다운 자연과 사랑하는 가족(집)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운 ‘치유·안식의 길’이다.
광부들은 집을 나서 일터에 도착한 순간부터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폭발과 사고 등 위험이 어디에든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일터에서 탈출해야 경직된 몸이 풀리고 자유의 몸이 된다. 이들에게 있어 최고의 보물은 가족, 유일한 낙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가족이 있는 보금자리로 향하는 길은 한결 가볍고 따뜻하다. 일터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자연은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하고 희망을 샘솟게 한다. 자연·가족과 조우하는 길이 바로 6길이다.
6길은 가장 먼저 함백산(1572.9m)과 마주한다. 태백시와 정선군 사이에 우뚝 솟은 산으로 태백산과 일월산, 백운산, 가리왕산을 조망할 수 있다. 6길의 가장 큰 매력은 함백산의 사계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따라 발산하는 신비로움도 한가득이다. 구름 한점 없이 맑다가 갑자기 안개로 뒤덮이거나 구름 위를 걷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운해가 펼쳐지기도 한다. 야생화도 계절별로 피어난다. ‘장쾌한 풍경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길’이 운탄고도 6길 함백산 구간이다.
함백산 남동쪽 기슭에는 지난 1993년 폐광된 함태탄광이 있다. 지지리골로 내려가는 길이 함태탄광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던 운탄 도로다. 광산이나 탄광 갱도 막다른 곳을 뜻하는 ‘막장’. 사회에서 ‘막장’은 ‘갈데까지 간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절망의 의미로 해석하지만 조관일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숭고한 산업현장이자 진지한 삶의 터전, 계속 전진해야 하는 희망의 상징’이라고 규정했다. 탄광이 있던 자리는 자작나무숲이 됐다.
함백산을 다 내려오면 보고싶은 가족이 있는 집(함태탄광 사택촌)이 나타난다. 1970년대 호황기에는 4000여명이 거주했다. 탄광은 벌써 문을 닫았지만,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은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사택촌에서 옛 추억을 회상하며 살아가고 있다. 만원 지폐를 물고 있는 강아지 만복이 등 그때 그 시절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각양각색 벽화도 눈길을 끈다.
태백역을 떠난 기차는 황지 시가지를 통과한 뒤 문곡역을 지나 동백산역으로 향한다. 여기서 기차는 산맥 아래 삼척 도계로 내려가기 위해 긴 터널로 들어간다. 태백과 도계의 고도차가 워낙 커 똬리굴(솔안터널)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굴이 자리한 곳이 연화산이다. 6길의 도착지인 산업전사위령탑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굴을 품고 있는 연화산의 서쪽, 낙동강 1300리의 시작인 황지천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태백의 중심인 황지동은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다. 황지연못을 중심으로 전통시장인 황지자유시장 등의 공간은 외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아기자기하고 흥미진진하다. 운탄고도 트레킹의 메인 도시로 손색 없다.
6길은 함백산 소공원에서 국가대표 고지훈련장, 오투리조트, 임도, 자작나무 힐링숲, 지지리골 쉼터, 상장동 벽화마을, 연화폭포, 산업전사위령탑으로 이어지는 16.77㎞(소요시간 5시간 34분) 코스이다.
■6길 주변의 명소들
△지지리골= 옛날 사냥꾼들이 골짜기 안쪽에서 멧돼지를 사냥해 현장에서 돌을 불에 달궈 고기를 구워 먹었다. 돌을 구들처럼 길게 만들어놓고 아래에서 불을 때면 돌이 달궈지게 된다. 그 위에다 고기를 얹어 굽는 방법인데 요즘의 돌 구이와 비슷하다. 이것을 지지리라 한다.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잡아 지지리를 자주 해먹던 골짜기여서 지지리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설에는 이 골짜기에 화전민들이 살았는데 지지리도 못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과거 지지리골에는 40여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화전을 일구거나 탄광 일에 종사했다고 한다.
△상장동 벽화마을=탄광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이야기마을이다. 함태탄광의 사택촌으로 그 시절 기억들을 간직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길, 어머니의 길, 만복이의 길, 곰배리 이야기 등 총 4개의 길로 구성돼 있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마을 안길 담장과 벽화에서 목숨을 걸고 일했던 광부와 가족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벽화에는 그 시절 금기들도 있다. 출근할 때 다녀오겠다고 인사하지 않기, 집에서 나설 때 뒤돌아보지 않기, 사나운 꿈을 꾼 날이면 출근하지 않거나 일 나가기 전까지 꿈 이야기 하지 않기 등이다. 여자가 그릇을 깨도 출근하지 않았다. 출근할 때 머리 위로 까마귀가 지나가도 두려워했고, 남편이 출근할 때 아내는 앞길을 가로질러 가서도 안됐다.
△함태탄광=삼척탄전의 황지지구에 속하는 무연탄 광산으로 1954년에 개광했다. 1956년 영동선이 개통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1973년까지 약 600만t의 무연탄을 생산했다. 이후에도 매년 60만t씩 무연탄을 생산하며 번성했다. 한때 2200여명의 직원을 둘 정도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으나, 1989년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에 따라 1993년 12월 21일 폐광됐다. 이후 2001년부터 폐광시설을 활용해 탄광을 체험할 수 있는 테마공원이 조성돼 현장학습관, 탄광사택촌, 시민공원 등의 시설을 갖춘 태백체험공원이 개장했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9. 영서와 영동이 만나는 고갯마루
김우열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 5. 11. 05:01
높이 가려거든 뒷걸음, 다시 한걸음…인생을 배우는 길
운탄고도 7길 18.63㎞ 코스
철길 따라 걷는 길 하이라이트
고도 이긴 ‘스위치백’ 철도 명물
석탄산업 저물며 철로도 폐쇄
첩첩산중 제1의 교통수단 기차
석탄·광부가 되려 온 사람 운반
태백 통리역-삼척 도계역 연결
‘들리나요, 칙칙폭폭 희망의 기적 소리를’, ‘아시나요, 탄광촌 기차역 광부의 숨결을’.
운탄고도 6길의 주인공이 ‘광부와 자연’이었다면 7길은 ‘기차’다. 기차는 탄광촌 희로애락의 삶에 있어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석탄과 가족, 삶과 주민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기차역은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꿈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 청춘·가장들로 항시 북적였다. ‘만남의 광장’이었다. 그 옛날 첩첩산중 오지에서는 기차가 제1의 교통수단이었다. 그렇다면 기차는 어떻게 험준한 고갯길을 넘었을까.
고속철도가 익숙한 지금이지만 탄광 전성기 시절 고개 위 태백 통리역, 고개 아래 삼척 심포리역에서는 경사를 극복하기 위해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는 ‘스위치백(switchback)
철도’, 객차를 쇠줄로 끌어올리는 ‘인클라인 철도(강삭철도)’가 당시 최첨단 신기술로 획기적으로 운행됐다. 이 길이 바로 ‘운탄철마길’이다.
■운탄고도 7길
경적을 울리고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며 칙칙폭폭 내달리던 증기기관차. 탄광촌 기차는 1940년대부터 청운의 꿈을 품은 수많은 청춘과 석탄을 실어날랐다.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이자 광부 인생의 출발점이다. 그래서인지 삶의 애환과 사연의 무게가 유독 묵직하다. 검은 탄가루가 묻은 기차역은 석탄산업 붕괴로 간이역, 달리지 않는 폐역의 아픔을 겪었지만, 역사(驛舍)는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잔뜩 머금고 있다.
운탄고도 7길은 표고차가 심한 평균 해발고도 900m의 태백과 600m의 삼척 도계를 연결한다. 그래서 영서와 영동이 고갯마루에서 만나는 길이다. 구름이 손에 잡힐 듯 높은 해발고도를 뽐낸다.
산업전사위령탑을 출발해 동쪽으로 향하면서 골짜기(바람부리마을, 송이재, 흥정골)와 대조봉(1135m), 연화산(1172m), 산맥 아래 영동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옛 탄광촌인 통리 등 아기자기한 마을과 대자연이 파노라마처럼 줄지어 펼쳐진다. 저 멀리 보이는 기차는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뤄 또다른 세상을 펼친다. 그 옛날 기차에 탄 승객들은 어른이든, 어린이든, 남자든, 여자든 간에 대부분 ‘탄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이라이트는 태백과 삼척 경계를 지나 마을 아래 쪽으로 난 철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태백 통리역(680m)과 삼척 도계역(245m)의 해발고도이다. 그럼 어떻게 고갯길을 넘었을까. 심포리역과 통리역 구간은 남한 유일의 강삭철도가 1940년대부터 1963년 5월까지 약 20년간 운행됐다. 고갯길이 가팔라 기차가 올라갈 수 없어 쇠밧줄로 석탄 등을 실은 기차를 끌어올렸다. 안전과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승객들은 객차가 끌어올려지는 동안 인클라인 철도 옆으로 난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갔다. 흥전역과 나한정역의 명물은 1963년 당시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switchback)’이다. 인클라인 철도를 업그레이드 해 탄생했다. 고도차가 큰 지역에서 사용하는 ‘Z’자형 철도 체계이다.
태백 통리와 삼척 도계는 석탄산업이 활황을 누리던 시절에 가장 번창했던 도시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고갯길을 사이에 두고 통리는 고개 바로 위에, 도계는 고개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 지역을 이어주는 철길이 오랜 세월 동반자처럼 살아왔다. 통리역이 폐쇄됐고, 동백산역에서부터 도계역 직전까지 긴 터널이 뚫렸다. 인클라인, 산골터널, 스위치백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고개 위 통리와 고개 아래 도계는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역사이기 때문에 발전과 변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운탄고도 7길은 태백 순직산업전사위령탑에서 통동, 통리재, 미인폭포, 통리협곡, 인클라인철도, 추추파크, 심포리역, 스위치백, 도계역으로 이어지는 18.63㎞ 코스다.
■ 7길 주변 명소들
△산업전사 위령탑=산업전사 위령탑은 1950∼1980년대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유일한 에너지 자원인 석탄생산을 위해 안전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열악한 채탄현장에서 정부 석탄증산 정책인 생산목표량 달성을 위해 헌신하다 순직한 산업전사들의 위패를 안치하고 있는 추모공원이다. 어두운 땅속에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피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전쟁터 장병들과 같다고 해 산업전사로 이름 붙여졌다.
△통리=태백시 동쪽 끝에 자리한 마을로 예로부터 내륙과 바다의 산물이 만나는 곳이다. 통리역은 이 두 지역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이지만 석탄산업 퇴조와 철로 변경 등으로 급격히 쇠락했다. 과거 통리에는 경동탄광과 한보탄광이 있었지만 이곳 역시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의 여파를 벗어날 수 없었다. 관광시설인 탄탄파크와 오로라파크가 있다.
△추추파크(사진)=폐선이 된 영동선 스위치백 구간을 활용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철도 체험형 기차 테마파크다. 추억의 증기기관차인 스위치백 트레인, 국내 최고 속도의 레일바이크, 이색 미니트레인 등 철도 체험시설과 북유럽풍의 독채형 객실, 오토캠핑장 등의 숙박시설로 꾸며져 있다. 증기기관차의 소리를 표현할 때 칙칙폭폭이라고 하는데 외국에서는 그것을 추추(choo-choo)라고 한다.
△심포리역=추추파크에서 운탄고도 7길의 철길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첫번째 역이다. 폐역이 된지 오래된 자그마한 역이다. 역 건물은 1969년에 준공됐다. 인클라인 철도 시절 이 역에 열차가 도착하면 승객들은 모두 객차에서 내려 짐을 들고 고갯길 정상 통리역까지 걸어서 갔다. 통리역까지 일직선으로 산을 올라가는 철로가 인상적이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10. 자연과 광부의 삶 공존하는 귀한 존재
기자명 김우열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5.18. 지면 9면
인생의 오르내림도 산을 타고 오가네
태백-정선 경계 백두대간 중간지점 위치
사계절 다르게 피는 야생화 장관 연출
동서남북 탄광 즐비·사택촌 이어져
일터-집 오가는 산 광부 희로애락 품어
통리 5일장Ⅰ10일 간격 산·바다 산물 만나는 진풍경
오로라파크Ⅰ통리역·철도 부지 ‘밤하늘’ 테마파크로
탄탄파크Ⅰ한보탄광광업소 유산 디지털콘텐츠 구현
아름다운 사계를 자랑하는 함백산(1573m)은 광부들에게 있어 힘든 하루를 위로 받는 최대 ‘안식처’다. 동서남북으로 석탄이 많이 묻혀 있는 국내 유수의 탄전(炭田)지대여서 자연과 광부의 희로애락 삶이 공존한다. 일터(탄광)와 가족(사택촌)을 이어주는 꿈과 사랑의 ‘오작교’이면서 장쾌한 풍경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낭만산’이기도 하다.
■일터와 자연, 가족을 잇는 길 ‘함백산’
탄광도시에서 아버지의 얼굴은 ‘광부’다. 탄탄한 어깨와 두껍고 바짝 마른 입술, 시커먼 얼굴, 거친 손으로 볼썽사납고 부끄럽던 아버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듬직했던 당신의 모습을. 생사를 넘나드는 ‘막장’에서 ‘검은 노다지’ 석탄을 캤던 아버지는 고도성장을 일궈낸 영웅이었다.
함백산은 오래 전부터 광부들과 동고동락했다. 일터와 가족(집)을 만나기 위해서는 함백산을 거쳐야 했다. 그렇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광부들은 함백산을 ‘싫은길, 좋은길’로 구분했다. 일터로 가기 위해 함백산을 오를 때는 자연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폭발 등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함백산을 내려올 때는 발걸음이 가볍고, 오를 때 놓쳤던 자연을 맘껏 만끽한다. 퇴근길 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함백산은 태백지역 광부들의 삶에 있어 가장 의미 있고 귀한 존재다.
태백시와 정선군의 경계를 이루며 아름다운 사계를 자랑하는 함백산은 대덕산에서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대표적인 고갯길로는 만항재와 두문동재가 남쪽과 북쪽에 있다.
함백산은 태백의 진산으로 불린다. 태백의 지명유래를 보면 대산(大山)이자 신산(神山)이며 세계의 중심이 되는 산이라고 했다. 삼국유사에는 상함백산, 중함백산, 하함백산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가장 큰 매력은 사계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생화도 계절별로 피어난다.
무연탄 생산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 옛날 어룡광업소, 함태탄광, 사북광업소, 정암광업소, 삼덕탄광 등 동서남북으로 탄광이 즐비한데다 큰 호황을 누렸다.
남쪽 기슭에는 자작나무숲이 있다. 1993년 폐광된 함태탄광 자리다. 지지리골로 내려가는 길이 함태탄광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던 운탄 도로다. 지지리골을 거쳐 함백산을 다 내려오면 가족이 있는 집(함태탄광 사택촌)이 나타난다. 지금은 상장동 벽화마을로 유명하다.
정선 고한과 태백을 연결하는 태백선의 정암터널 공사는 우리나라 철도건설 사상 난공사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정암터널을 빠져나온 열차는 남한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추전역(해발 855m)을 통과해 황지로 향한다. 추전역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갯길인 대관령(832m) 보다도 23m 높다. 그렇다 보니 연평균 기온이 우리나라 기차역 가운데 가장 낮고, 한겨울에는 영하 30도에 달할 정도로 몹시 추웠다.
함백산길은 함백산 소공원에서 국가대표 고지훈련장, 오투리조트, 임도, 자작나무 힐링숲, 지지리골 쉼터, 상장동 벽화마을로 이어진다.
■ 운탄고도 함백산 주변의 명소들
사람 냄새가 정겹다. 1998년 12월 개설된 이후 동해와 삼척, 영월, 정선, 경북 울진과 봉화 등 전국 각지에서 장꾼이 온다. 장이 서는 날은 5일, 15일, 25일이다. 5일 간격으로 열리는 타 시골마을의 장과 달리 10일마다 열리는 장이다. 옛날에는 장사꾼들이 동해시 묵호·북평에서 비둘기호 열차에 해산물을 싣고 올라와 팔았다. 산속·바다의 산물과 만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수산물과 함께 국밥, 통닭, 족발, 떡, 부침개, 메밀묵 등 산해진미로 배를 불릴 수 있다.
2012년 폐쇄된 통리역과 철도 부지를 활용해 철도와 별을 주제로 태백의 아름다운 밤하늘을 이야기하기 위해 조성된 테마파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추전역을 모티브로 해 세계 5개국(한국·미국·스위스·호주·일본)의 고원 역사를 캐릭터 하우스로 만나볼 수 있다. 눈꽃전망대에서는 태백의 푸른 하늘과 힘차게 뻗은 낙동정맥, 백두대간과 동해안지역의 아름다운 산세를 조망할 수 있다.
통리 지역의 석탄산업을 대표했던 한보탄광 광업소의 폐광유산(폐광부지와 폐갱도)을 활용해 조성된 테마파크다. 최신 IT콘텐츠기술을 접목해 새롭고 독특한 동굴 디지털콘텐츠를 구현했다. 기존 ‘태양의 후예’ 세트장과 드라마 속 건축양식을 구현한 건축물은 아름다운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뤄 이색적이고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탄광 속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관람객들의 방문을 통해 빛으로 깨어나 어두운 갱도에서 세상으로 퍼져나가 빛과 온기를 연출한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11. 기적소리 같은 인생의 의미를 곱씹다
기자명 구정민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05.25. 지면 20면
구불구불 오십천 따라 폐역에 깃든 옛 광부의 까만 추억
석탄시대 흥망성쇠 함께한 옛 역사들
길따라 삼척시민 생명수 오십천 흘러
첫 관문 영동선 석탄수송 핵심 도계역
1975년까지 파독 광부 훈련소 역할도
국내 유일 주민 직접 만든 하고사리역
목구조로 현재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 삼척 8길 = 간이역을 만나러 가는 길
아직도 검은 석탄가루를 날리는 도계역 까막동네를 지나면 만나게 되는 작은 역들이 있다. 삼척 도계와 신기를 잇는 운탄고도 8길에는 짧은 거리에 비해 많은 수의 기차역이 있다. 고작 17㎞ 정도에 불과한 이 구간에만 심포리역~흥전역~나한정역~도계역~하고사리역~마차리역~신기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 중에는 현재도 운영중인 역도 있지만 대부분 문을 닫아 옛사람들의 오래된 채취만 남아있다. 8길의 출발지인 도계역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8월 1일 보통역으로 운행을 시작한 영동선 석탄수송의 핵심 역사이다. 도계역이 위치한 도계리는 세 갈래 길의 분기점에 있다고 해 ‘길가말’이라 불리던 이름이 와전됐으며, 시외버스터미널과 철도역이 위치한 도계읍 중심 마을이다. 광복 이후 대한석탄공사로 이관된 인근 탄광 규모가 커지자 1951년 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로 분리 운영됐다.
당시 도계는 강원도내 전체 석탄 생산량의 32%가 생산되는 중요한 석탄 산지였을 뿐 아니라 1975년까지 서독으로 파견되는 광부들의 훈련소 역할을 했다. 바로 이 곳 도계에서 생산된 무연탄을 묵호항과 국내 여러 도시로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역이 도계역이다. 근처 도계농협 건물 앞 도로변에 ‘석탄산업전사 안녕기념비’가 있다. 태백과 영월, 화순 등 다른 지역 석탄산업전사기념비 등은 모두 순직 광부들의 넋을 기리지만, 이 곳 도계 석탄산업전사 안녕기원비는 살아있는 광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8길은 석탄을 실어나르는 숱한 간이역을 품고 있으면서 지금도 깊은 갱 속에서 석탄을 캐고 있는 석탄산업 전사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것이 색다르다.
구사리 백산골에서 발원한 오십천과 함께 길동무가 돼 걷는 길이기도 하다. 오십천은 삼척시민들의 생명수이다. 발원지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장장 50㎞가 이어진 하천이다. 오십천이라는 이름은 하류에서 상류까지 가려면 물을 오십번 정도 건너야 한다는 데서 붙여진 것으로, 하천의 곡류가 그 만큼 심하다. 도계 시내를 벗어나면 늑구리 삼마광업소 사택과 그 반대편 공설운동장이 보인다. 공설운동장 쪽으로 석공 도계광업소 점리항을 비롯해 대방, 삼마, 거마 등 몇 곳의 탄광이 자리했던 곳이라 지금도 폐갱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골짜기로 들어가면 ‘하늘아래 신주 빚는 마을’이라 불리는 점리 마을이 나온다. 이 곳에서는 주민들의 농가소득 등을 위해 전통주 체험이 가능하다.
운탄고도 8길에 위치한 간이역 가운데 고사리역은 1940년 7월 3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도계지역 석탄산업이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역사다. 2007년 6월 여객 취급이 중단되고 이듬해 12월 간이역으로 격하됐다. 지금은 모든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고사리역은 수많은 화차들이 드나들었던 석탄수송 역사답게 경내가 무척 넓고 선로가 복잡하게 놓여있다. 여기까지가 석탄산업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사리역은 1966년 건립돼 1967년 영동선 간이역으로 운영된 역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한 정식역사다. 국내 등록된 간이역 가운데 팔당역과 함께 규모가 가장 작은 역으로, 건축면적 36㎡규모에 1동, 1층으로 이뤄져 있다. 목구조에 맞배지붕 형태로, 과거에는 황토로 마감한 지붕에 비닐판 벽체를 가지고 있어 다른 역들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주민들이 직접 지었기 때문이다. 또 승객이 역사를 거쳐 철로로 가는 다른 역들과는 다르게 철로를 따라 역사 옆면으로 출입하도록 돼 있다. 현재는 리모델링 후 나무 집 모양의 역사로 꾸며져 있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차리역은 1940년 7월 31일 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역 건너편에 석회석 광산이 있었다. 1967년 7월 1일 보통역으로 승격됐다가, 1997년 6월 1일 배치간이역으로 다시 격하됐다. 2004년 역사를 신축·이전했으나, 2008년부터 여객 취급이 중지됐다. 현재는 모든 열차가 통과하는 무배치 간이역이다. 이어서 신기면에서 가장 너른 들을 갖고 있다고 해 이름 붙여진 대평리를 지나 오십천의 아름다운 물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어느 새 신기역을 만나게 된다. 신기역은 1934년 4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신기는 여산 송씨가 새로 개척한 터전이라 하여 ‘새터’라 했는데 이를 한자로 하면 신기가 된다. 무궁화호가 운행되는 곳으로, 예전에는 석회석 화물을 취급했으나 지금은 여객 업무만 하고 있다.
운탄고도 8길에 자리한 도계역과 고사리역, 하고사리역, 마차리역 등은 모두 사람들로 북적이며 옛날에는 흥했으나, 지금은 모두 폐역이 됐다. 이처럼 역에서 시작해 역에서 걸음을 멈추는 8길은 여행자들에게 기적소리 같은 인생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간이역은 말 그대로 잠깐 섰다 가는 역이다. 운탄고도 8길의 간이역은 어떤 사람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선물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도 절실한 교통수단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의 상징이자 수탈의 공간이기도 했다. 또 근·현대 산업화와 흥망성쇠를 함께한 생활의 현장이기도 하다.
■ 8길 주변 명소
△하고사리역(下古士里驛)
고사리역에서 소달초교 쪽으로 가다보면 거의 끝자락에 하고사리역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07년 6월부터 여객 취급이 중단돼 여객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하고사리역 건물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건축하는 등 그 특수성을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최근에 리모델링 과정을 거쳤다. 원래 고사리역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석탄 채굴과 운반을 쉽게 하겠다고 지금의 위치에 고사리역을 옮겨버리면서 고사리역과 고사리의 관계가 끊어지게 됐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은 이쪽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이 직접 역을 지었다. 수㎞ 떨어진 곳의 황토를 나르고, 산에서 목재를 벌목한 뒤 설계도도 없이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여해 역사를 지었다. 이 역은 백양리역과 팔당역과 달리 1면 1선의 단선 승강장이다.
△삼척을 대표하는 명소, 환선굴과 대금굴
삼척하면 떠오르는 관광 명소는 단연 환선굴과 대금굴이다. 5억3000만년 전에 생성된 대이리동굴지대는 지난 1966년 6월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고 이듬해 환선굴이 개장했으니 벌써 56년이 지났다. 국내 최대 석회동굴이라는 명성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그 스케일도 웅장하다. 동굴 입구 폭이 14m, 높이가 10m이고 내부는 폭 20~100m 높이가 20~30m에 이른다. 주굴 길이만 3.3㎞(총길이 6.5㎞)이다. 내부에는 도깨비 방망이, 미인상, 거북이, 옥좌대, 꿈의 궁전 등 다양한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이 고대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동굴은 대체로 북향으로 펼쳐져 있고 안쪽 80m 지점에서 둘레 20여m의 거대한 석주가 서 있으며, 그 곳에서 북굴과 북서굴, 중앙굴, 남굴 등 4갈래로 갈라진다. 지난 2010년부터 모노레일이 운행하고 있어 예전에 비해 오르기가 한결 나아졌다. 인근의 대금굴은 환선굴과 관음굴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동굴로, 동굴 조사 4년, 시설물 설치 3년 등 모두 7년간의 준비기간 끝에 지난 2007년 개방됐다. 대금굴은 동굴입구 140m 지점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들어가는 환상적인 체험과 에그프라이 석순, 곡석, 종유석, 동굴진주, 호수, 폭포, 동굴생성물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동굴 주변에 펼쳐진 덕항산과 생태공원, 전나무 숲의 아름다운 절경은 여행의 덤으로 얻을 수 있다.
[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12. 오십천 물길 따라 바다로
구정민
강원도민일보 기사 입력 : 2023. 6. 1. 00:05
유적·꽃·풍류 즐기다 보면 어느새 드넓은 동해 품 안에
삼척 신기역~소망의 탑 25.15㎞ 구간
죽서루·장미공원·이사부길 곳곳 명소
오분항 일대서 역사적 의미 되새기기도
활기리 소나무 군락지 산행·체험 선사
■ 삼척 9길 = 오십천을 건너고 또 건너 바다에 이르는 길
영월에서 시작해 정선과 태백을 거쳐 삼척으로 이어지는 장장 172.64㎞에 달하는 운탄고도의 마지막 구간인 9길(25.15㎞)은 삼척 신기역에서 동해바다 소망의 탑으로 이어진다. 오십천 구불구불한 물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 바다까지 이르는 길, 산과 들이 물길을 막아서며 이제 천천히 가라고~ 쉬었다 가도 된다고 속삭이는 길, 느림과 쉼의 미학을 온몸으로 직접 겪는 길이다. 산자락 아래로 터널을 빠져나온 영동선 열차가 시원하게 지나가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새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드넓은 동해바다를 만나게 된다. 이른바 ‘오십천을 건너 바다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운탄고도 1330길은 ‘성찰과 여유, 이해와 치유의 길’(1길·15.60㎞)과 ‘김삿갓 느린 걸음 굽이굽이 길’(2길·18.80㎞), ‘광부의 삶을 돌아보며 걷는 길’(3일·16.83㎞), ‘과거에 묻어둔 미래를 찾아가는 길’(4길·28.76㎞), ‘광부와 광부 아내의 애틋한 사랑의 길’(5길·15.70㎞) 등 이름만 들어도 감성이 충만하다. 이어 ‘장쾌한 풍경과 소박함이 공존하는 길’(6길·16.79㎞)과 ‘영서와 영동이 고갯마루에서 만나는 길’(7길·18.07㎞), ‘간이역을 만나러 가는 길’(8길·16.94㎞) 등에서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운탄고도의 마지막 구간인 9길은 이름 그대로 오십천을 따라 동해바다를 만나러 가는 여정으로 쉼없이 이어진다. 오십천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어름치를 비롯해 황쏘가리와 철갑상어, 쉬리, 꺽지, 산천어, 숭어 등 다양한 물고기가 자란다. 겨울에는 바다빙어가 산란을 위해 모여들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물고기가 오십천을 따라 바다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으니, 삼척사람들의 천렵 사랑은 이미 옛날부터 유명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석탄산업이 호황기일 때에는 탄광이 쉬는 날이면 삼척 신기와 미로 구간 오십천으로 광부와 가족들이 몰리면서 물고기보다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다고 한다.
신기에서부터 오십천을 따라 흘러 내려오다 보면 시립박물관 건너 편으로 죽서루를 만나게 된다. 오십천과 죽서루가 절묘하게 조화되는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관동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강가에 자리한 죽서루, 전망대에 서서 죽서루를 감상하는 시간은 필수다. 겸재 정선이나 단원 김홍도의 죽서루 그림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나마 조선시대의 풍류를 음미해 보는 것도 좋다. 시내를 감돌아 흐르던 오십천 물길은 수로변경 공사로 인해 이제는 곧장 장미공원으로 내달린다. 삼척 장미공원은 지난 2014년 오십천 둔치 부지에 장미 222종, 15만9000그루를 가꿔 동해안 최대 장미꽃 단지로 자리잡았다. 2016년부터 열린 장미축제에는 매년 40만~50만명이 찾을 정도로 대표 꽃 축제로 유명하다. 각양각색 천만 송이 장미의 향연을 4~9월까지 만끽할 수 있다.
이어 오십천이 바다와 만나는 오분항 쪽에는 우산국(울릉도, 독도)을 우리 영토로 만든 신라 명장 이사부장군의 ‘우산국 복속 출항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장미공원에서 삼척항으로 가는 길에 육향산이라는 작은 봉우리 하나가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동해안 수군사령부 격인 삼척포진성이 자리하고 있던 곳이다. 육향산에는 하단부에 역대 영장(營將)들의 불망비가 서 있고, 산 정상부에 척주동해비·대한평수토찬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는 삼척포진성을 헐어버리고 그 돌로 삼척항을 만드는데 활용했다. 대한제국의 유적을 파괴해 자원수탈을 위한 항구 건설에 사용한 것이다. 삼척포진성 유허지에서 삼척항~소망의 탑 구간은 삼척시가 지정한 ‘이사부길’이기도 하다.
이 길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독도 침탈 야욕을 드러내고 강제징용 사실을 부정하는 일본을 생각하며 이사부의 해양개척정신을 되새기게 된다. 소망의 탑은 9길의 종점이면서 운탄고도 종착지이다. 탁 트인 바다 전경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수많은 계곡에서 흘러 내려온 물을 모두 포용하는 바다, 아무리 더러운 물이라도 기꺼이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바다, 우리 모두에게 바다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소망의 탑에서 빌어본다.
■ 9길 주변 명소
△조선 왕조 발상지 삼척 준경묘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는 풍수상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조선 태조의 5대조이며 목조의 아버지인 양무장군의 묘가 있다. 고종 3년(1899년) 준경묘 제각과 비각을 건축하고 17㎞ 남짓 떨어져 있는 ‘흑악사’를 원당사찰로 지정하면서 천은사로 사명을 개명한 인연을 갖고 있다. 활기리(活耆里)라는 지명은 황제가 나왔다는 ‘황기(皇基)’에서 유래했다. 조선왕조의 태동을 예언한 백우금관의 전설(백마리 소 대신 흰 소, 금관 대신 귀리 짚으로 관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내용)이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양무장군과 4대조 목조대왕(이안사)이 살던 곳이다.
양무장군 묘역인 준경묘 주변으로 울창한 황장목 숲이 우거져 있어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산림욕을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활기리에서 준경묘로 가는 길목은 가파른 산길로, 숨이 턱에 차오를 무렵 탁 트인 평지가 나타나고 아름다운 금강송 숲길이 시작된다. 하늘로 곧게 뻗어있는 금강송은 속이 누렇고 단단해 황장목이라 불린다.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재목으로 썼다고 하며, 지난 2008년 화재로 소실된 국보 1호 숭례문과 광화문을 복원할 때도 사용될 정도로 아름드리를 자랑한다. 준경묘 입구에 있는 ‘미인송’은 2001년 충북 보은의 정이품 소나무와 혼례를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활기 치유의 숲
삼척시는 미로면 활기리 일원 65㏊ 규모의 황장목 군락지를 중심으로 50억원을 들여 대규모 치유의 숲을 조성했다. 치유센터와 방문자센터, 트리하우스(4동), 숲 체험장(10곳), 물 치유장(1곳), 치유 숲길(40㎞) 등이 한데 어우러져 사람들의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다. 특히 청소년과 가족, 어르신, 직장인들을 위한 다양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주목을 끌고 있다. 갱년기 여성을 대상으로 건강측정 및 쑥차 시음, 다도체험, 돌다리 걷기, 족욕테라피 체험 프로그램을 비롯해 청소년을 위한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나무 잎을 이용한 배 띄우기 등이 운영되고 있다. 또 직장인 등을 위해 건강측정과 스트레칭, 뇌 훈련 체조, 맨발걷기, 명상, 족욕 등 프로그램은 숲속 힐링의 진수를 보여준다.
주변 황장목 군락지에 펼쳐진 다양한 치유 숲길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흉고직경 70㎝ 이상의 아름드리 황장목 1000여그루가 빽빽이 들어선 치유숲길은 모두 15코스로 구성돼 있다. 해발 300m부터 시작돼 500m 정도에 이르는 숲길로 하늘바람길(3.3㎞·1시간30분·난이도 중)과 풍경소리길(1.09㎞·25분·난이도 하), 물소리길(3.76㎞·1시간20분·난이도 하), 백두송길(6.8㎞·3시간8분·난이도 상) 등 자신에게 맞는 코스를 정해 편안한 마음으로 트레킹 할 수 있다. 또 치유의 숲을 지나 활기치유센터부터 덕항산~황장산~두타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후와 식생, 계절별 경관을 경험할 수 있고, 임도는 넓은 노폭과 안정적인 경사도를 유지하고 있어 산행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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