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사람들과 연합하라
고든 맥도날드는 [영적성장의 길]에서 ‘우리 부부는 행복한 소수에 어울릴 만한 사람들을 찾아나섰다’고 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한 사람은 평생 150명 정도의 사람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커피숍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아무 부담 없이 커피 한잔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이 150명 집단 안에 ‘공감집단’이라는 또 다른 집단이 있습니다.
이 집단의 규모는 10-15명 정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정말 가슴 깊이 슬퍼하면서 장례식에 참석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같은 일을 당할 때 우리도 같은 심정이 될 것입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20년 전, 내 장례식에서 정말 가슴 깊이 슬퍼할 사람이 누구일지 떠올리기가 어려웠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소수에 어울릴 만한 사람들을 찾아나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사람들을 만드시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행복한 소수가 되길 바라셨기에 십자가에 달리기 얼마 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예수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이런 사람들과의 연합이 필요합니다.
제가 선한목자교회에서 부목사들과 동행일기 나눔을 시작했던 이유는 부목사들을 예수님과 동행하도록 돕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저 자신이 지속적으로 주님과 동행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에 공동체가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되면 우리는 모일 때마다 더 이상 개인적인 능력이나 자질, 목회 환경이나 여건에 관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서로에게서 주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저 목사님 안에 역사하시는구나!”
“예수님께서 저 목사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구나!”
그리고 동행일기 나눔방에서 그의 삶의 자리, 가정과 사역 현장에서 주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싶고, 그렇게 결단하여도 흩어졌다가 다시 모일 때 패잔병처럼 모이게 될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서로 서로가 필요합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살 힘을 얻고, 그렇게 서기까지 서로 돕고 지탱해 주는 이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공동체와의 연합을 작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위로받고 교제하기 위하여 모이지 않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으로 살기 위하여 모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