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입시준비를 시작합니다.
수업은 문제풀이 위주로 진행합니다. 매달 모의고사와 일제고사를 반복해서 치릅니다. 시험성적이 좋은 아이는 당연히 선생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지요. 학교의 목표는 일류 중학교에 많은 아이들을 진학시키기로 고정됩니다.
고학년의 담임은 실력이 뛰어난 교사가 당연히 담당합니다. 비싼 과외비를 감당할 수 있는 집의 아이들은 담임과외에 들어갑니다. 그 과외에서 모의고사 시험문제도 알 수 있고 상세한 중학입시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6학년이 되면 학교는 아이들을 분류합니다. 최고 성적의 아이들을 경남중학교나 부산중학교로 진학시키기 위한 작전을 짭니다.(저는 부산에서 살았습니다) 그 아래 급수의 아이들은 동아중학교, 동래중학교로 진학해야 합니다. 그 외의 나머지들은 관심 밖입니다. 2류, 3류 등등 알아서들 가겠지요.
부산중학교, 경남중학교로 진학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특급대우를 받습니다. 다음 급수 아이들은 최소한 방치 당하지는 않습니다. 이 그룹에 끼이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 아이들의 뒤에서 그림자놀이를 합니다. 나중에 2류, 3류 중학교에 가서 분골쇄신, 개천의 용으로 거듭나지 않는 이상 이 아이들의 삶은 늘 그림자가 될 겁니다.
이제 겨우 12, 13살 된 아이들이 시험에 찌들려, 이미 결정된 계급을 익히느라 작은 어른들이 되어갑니다. 인문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인간을 차별하는 방식을 체화하는 거지요. 부모들은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한 돈을 과외비로 쏟아냅니다. 1류 중학교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입니다.
간혹 나타나는 개천의 용은 이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용이 많으면 용이 아니지요. 대부분의 지렁이들은 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 비용을 벌기 위해 아버지들은 직장에서 지위를 이용하여 뒷돈을 챙깁니다.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입니다.
이 비용치르기가 너무나 힘들어 민심이 흉흉해지자 입시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다 못해 내리는 결정이라는 핑계를 대고 결국 중학교 무시험 진학이란 혁명과도 같은 제도가 실시됩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1969년의 풍경입니다.
중학교를 진학하면 본격적인 대학입시 전쟁에 돌입합니다. 학습 성적이 우수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구분해서 반을 나누고 우수한 아이들이 모인 반은 특별반,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모인 반은 열등반이라 부릅니다. 그 외의 나머지는 일반반이죠.
이제부터 아이들을 관리하는 방법이 국민학교 때와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수반 아이들은 모든 교사들의 관심과 정성이 집중됩니다. 일반반 아이들은 그저 그렇게, 열등반 아이들은 잠재적 사고자 관리체제로 들어갑니다.
열등반 담임은 주로 체육교사나 훈육담당교사가 맡습니다. 아이들은 사고치기와 사고수습에 점점 길들여집니다. 우수반 아이들과 열등반 아이들이 서로 교류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나중에 우수반 아이들은 판검사로, 열등반 아이들은 폭력배나 사기꾼이나 절도범 등등의 자격으로 마주칠 일은 있겠지요.
일반반 아이들은 부모들의 닦달에 시달리면서 어떤 아이는 우수반의 성적에 근접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열등반으로 추락하기도 합니다. 우수반 아이들은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학원과 과외를 다니고 일반반 아이들은 어떻게든 우수반으로 올라가기 위해 학원이다, 과외다 이리저리 시달립니다.
과외망국병이란 말이 돌고 성적과 시험에 내몰린 아이들의 누렇게 뜬 얼굴들이 불쌍해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길 없지만 학교별 개별 입시를 중지하고 고입연합고사제와 고등학교 추첨배당입학제가 실시됩니다.
학군을 나누고 그 학군에 속한 중학교는 그 학군 내의 고등학교를 추첨으로 진학하되 진학자격은 일제히 치르는 연합고사에 합격한 아이로 제한합니다. 이 연합고사에서 떨어진 아이들은 전수학교나 미처 학군배정을 받지 못한 신설학교로 진학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계급이 이미 자잘하게 쪼개지긴 합니다만 죽음의 행진과도 같았던 고입전쟁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것이 1973년부터 시행된 고등학교평준화시책입니다.
새로운 소식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세요
[초중등교육 `정부 손뗀다'…전면 자율화]
오호라, 바야흐로 40년 전의 풍경이 되살아나는 순간입니다.
아니, 40년 전의 풍경보다 훨씬 찐한 모습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학교마다 우수반, 일반반, 열등반이 생길 것이고, 우수반에 가지 못해 '쪽팔린' 아이들의 일탈은 더욱 쎄질겁니다. 쪽팔리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우수반 들어갈 거라구요?
에이, 농담마세요. 그 때 여러분들은 그랬어요? 정말 쪽 팔려서 공부 열심히 했어요? 쪽 팔려서 에이 씨팔 몰라! 안 했구요?
예전에는 에이 씨팔 몰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갈 곳은 뻔했습니다. 만화방, 당구장, 뒷산. 또 어디 있어요? 정말 용기 바짝 낸 애들이 시장 뒷골목 교외지도반이 잘 안 들이닥치는 시장 뒷골목의 할매집에 모여서 소주 빨거나 중국집 골방에 모여서 담배 피거나 그 정도였죠.
요즘 쪽팔린 애들은 어디로 가는지 알고나 계세요?
유흥가의 술집들, 피시방, 댄스클럽, 나이트클럽, 노래방, DVD방, 모텔, 공원, 쪽방......
새벽녘에 잠시 중심가로 나가보세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노리는 어른들, 짧은 치마에 진한 화장을 했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우리의 아이들이 컴컴한 밤거리에 가득합니다.
다 공부를 잘 못해서 쪽팔린 아이들입니다. 대 놓고 우열반을 안 해도 이 정도입니다.
이제 대 놓고 우열반을 편성하면 쪽팔린 아이들은 어디로들 갈까요? 혹시 이 쪽팔린 아이들을 받기 위해서 각 업소들이 영업확장을 계획하고나 있지는 않을까요?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쪽팔림을 감수하리라고는 생각들 안하시죠? 학부모들은 아이가 열등반에 들어가는 쪽팔림을 피하기 위해 학원비다 과외비다 그거 대느라 정신 쑥 빠지겠죠? 그런다고 우수반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수반이 괜히 우수반이겠어요? 우수란 말에는 소수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구요.
아, 그리고, 아이 사교육비에 돈 얼마나 쓸 수 있으세요? 뭐든지 강남이 기준이니까 이번에도 강남기준을 찾아봤습니다.
2007년에 강남구청이 실시한 '강남 사회통계조사'를 보겠습니다.
[강남구, ‘2007 사회통계조사’ 결과 발표]
이걸 본 많은 이들이 코웃음을 쳤습니다.
웃기고 있네. 이 정도라면 애 하나 더 낳겠다. 였죠.
그렇죠? 아이 하나당 사교육비가 평균 70만원이라면 해볼 만한 게임이죠? 이런 공식적인 발표 뒤의 암암리에 도는 말은 아이 하나당 250만원입니다.
제기랄!
어쩌죠? 이 돈을 어떻게 벌죠? 이 돈 못 벌면 이제 우리 쪽팔리는 아이들은 어쩌죠? 이제부터 계속 쪽팔리는 인생을 살아야 할까요?
정말 쪽팔리는 부모가 될 판인데, 이 노릇을 어쩌죠? 도둑질이라도 할까요?
이 조치로 인한 교육의 파행, 시험 성적이 좋은 아이든 나쁜 아이든 앞으로 그들이 겪어야 할 사회의 모습, 점점 깊어지고 있는 학벌사회의 해체, 후기자본주의의 분석과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삶의 모습 등등 거대담론은 여기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 건지, 쪽 팔려 죽겠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 건지,
우리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를 생각해봐요.
싸울까요? 제발 그러지 말라고 피켓 들고 정부종합청사나 청와대 앞에 가서 드러누울까요?
애들 붙잡고 우수반 안 들어가면 엄마아빠 쪽팔리니까 공부하라고 달달달 볶을까요?
애들 과외비, 학원비 만들기 위해 집 다 비우고 돈벌이에 몰두할까요?
그 시간에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뭘 하고 있는지 알 필요는 없구요?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우리 열혈 부모님들.
아이들의 장래가 어떻길 바라세요?
근사한 사자 직업 갖고 떵떵거리고 잘 사는 장래를 바라세요?
아파트 굴리고 땅 굴리고 주식, 펀드 굴려서 한 밑천 잡은 후에 외제차에, 해외골프 여행에, 럭셔리하게 사는 장래를 바라세요?
그러면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행복해질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정말 화가 치밉니다.
정말 이따위 학교라도 우리 아이들을 보내야 해요?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활기차고 밝고 건강하게 살게 하는 학교는 없나요? 왜 세상이 이 지경으로 지랄 맞아져요?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주려 했는데, 세상은 왜 이따위로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우리는 점점 더 수렁에 빠지는 더러운 기분으로 살아야 해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예요?
이제 본격적으로 40년 전보다 더 살벌하고 빡빡한 풍경이 재현되려는 지금,
우리, 정말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답... 아세요?
출처 에듀코빌리지 홈페이지 http://educovillage.com/
첫댓글 독재자를 몰아내거나 독재자밑에서 빌빌 기거나..아니면 밖에 나가서 살아야죠ㅎ전 쫓아낼래요
나라의 근본이 바로 서려면 정신교육, 민족사관 교육이 필요한 법인데 교육자율화라...나라꼴이 우습게 되겠군요.
난 교복 자율화로 잘못봤어요... '교복자율화가 되면 좋은 점도 많은데'라고 생각함
독재자 'ㅅ'ㅗ
끔찍하군요...
요즘 모든 상황들... 타임머신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