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이재부
산다는 것이 시간의 분배과정이라면 성공과 실패는 시간의 효율성이 아닐까. 멍하니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다. 직장인이나 학생들은 아침시간이 부족하여 식사 할 겨를도 없는데 벌써 30분 가까이 기다렸으니 지루하고, 초조하다. 시 외곽으로 통학하는 학생들은 맘 조리는 듯 수선거리면서도 감각기관을 이용하여 젊음과 현재를 만끽하고 있다. 이어폰 끼고 음악을 감상하며, 문자메시지 보내고, 장난치며, 시계보고 차 기다리는 등 시간이용이 복합적이다.
나 역시 맥놓고 시간 보내는 것만은 아니다. 수 없이 달려오는 차들 속에서 내가 타야할 차를 헤아리며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본다. 흘러간 시간 속에서 내 모습을 찾다가, 후회로운 자각이 쓴 미소를 만들면, 대중 속으로 생각의 꼬리를 감춘다.
인간의 삶 속에 어떤 시간이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이냐고 묻는다면, 단적으로 똑 떼어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삶의 가치를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리라.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간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닌데 행복을 바라보며 산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삶의 목표를 행복에 두기보다는 가치에 두고 싶다. 가치 있는 삶의 선결조건은 무엇일까.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자기관리인가, 보시를 생활화하는 덕업(德業)의 축적인가, 경제적, 사회적 위상의 상승인가?……
현대사회는 교통수단이 계급의 일면을 나타낸다고 한다. 차를 몰고 호텔에 가면 주차 요원들은 무슨 차를 타고 왔느냐에 따라 안내 태도와 대우를 달리한단다. 자본주의의 허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좋은 차를 타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대중심리가 된지 오래다.
길게 늘어서서 시내버스를 탔다. 아침 출근시간만은 아직도 버스가 붐빈다. 나이 많은 탓에 자리에 앉게 되지만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학생이 등․하교시간만이라도 편해야 되는데, 우리 실정은 빈부에 따라 양극화되어 있다. 자가용 타고 학교 다닌다고 모두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서서 가는 학생이 힘들어 보인다. 빈부의 차는 행복까지 양극화시키지는 못할 것이지만. 편리와 불편의 차이에서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과 삶의 손익계산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리라.
버스 안에서 만남을 반가워하며 대화의 문을 열고 우정을 나누는 학생이 행복해 보인다.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끼고, 아침 겸 과자나, 김밥을 나누어 먹는 모습도 보인다. 끝없이 조잘거리는 대화 속에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행복에 가까이 가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껍데기 언어라면 그야말로 시간 낭비다.
차량으로 꽉 채워진 도로에서 숨막히는 차들의 헛기침소리가 시가지를 메운 듯 시내를 빠져나가기가 힘들다. 기름 값이 천정 부지인데도 나홀로 차량이나, 자녀를 등교시키는 자가용이 대부분이다. 운전대를 꽉 잡고 긴장한 모습이며, 감옥살이하는 듯 아무 말 없이 혼자 앉아 부모에 의존하는 학생이 오히려 불쌍해 보인다. 상대적 빈곤으로 움츠려지는 때가 많았는데, 행복을 골라내는 증빙의 생활상이 시내버스 창문에는 공짜로 비친다.
승강장마다 긴장하며 느린 듯, 빠른 듯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시내버스도 시 외곽을 달릴 때는 안면을 바꾼다. 날램을 들어내려는 듯 속도 경쟁에 끼어 들어 자기를 과시한다. 세월에 부닥친 상처가 덜컹거리지만 세속의 흐름에 눈총 받기 싫은 모양인지 유행(흐름)에 동조한다. 있는 자와 없는 자, 도시 사람과 시골사람이 처음부터 다른 것이 아니라는 듯 환경에 적응하는 시범을 보인다.
변화 빠른 시속(時俗)에도 민감하게 적응한다. 좌석, 순환, 마을, 일반버스 종류도 다양해지고, 돈 받는 시스템도 변화에 앞장서며, 요금 수준도 물가에 앞서서 달린다. 세상만사 잘도 변하는데 나만 시내버스 단골손님으로 남아 있으니 부귀의 편리함을 부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시내버스를 타고 자리를 잡으면 마음이 간결하고, 편해진다. 택시같이 거리와 시간을 병산(竝算)하는 요금체계도 아니니 신경 세울 이유도 없고, 주유소 기름 값 쳐다 볼 까닭 없으니 내릴 곳만 맘에 담고, 백치같이 앉아 세상만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세상이 확 바뀌어 돈 많은 사람들이 시내버스 탄다고 모여들면 값싼 자가용 타는 꿈을 꾸다가 말하지 않아도 내릴 곳에서 내린다.
어차피 흘러가는 시간이라면 버스 안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나 비행기 타고 잠자는 사람이나 인생의 목표지점에서 내리는 것은 같으련만 세상의 관심은 높고, 넓은 곳으로 몰려간다. 인생 길 종착점에서 내릴 때 입방아 찧는 소리 가 무엇을 증명하든지 개의치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함께 산다. 긴- 기다림이 숙명같이 따르는 시내버스가 내 인생의 무대인 듯 배우도 되고, 관객도 되어 덜컹덜컹 소리나는 삶의 길을 멍하니 바라보며 달려간다.
첫댓글 "시내버스를 타고 자리를 잡으면 마음이 간결하고, 편해진다.
택시같이 거리와 시간을 병산(竝算)하는 요금체계도 아니니 신경 세울 이유도 없고,
주유소 기름 값 쳐다 볼 까닭 없으니 내릴 곳만 맘에 담고, 백치같이 앉아 세상만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누구나 대중교통만 이용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저만해도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있으니요...
생활수준 향상을 실감합니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감상했습니다.
어차피 흘러가는 시간이라면 버스 안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나 비행기타고 잠자는 사람이나 인생의 목표 지점에서 내리는것은 같으련만 ....
같은 마음으로 잘 감상했습니다.
읽어주신 문우님께 감사드립니다.
"삶의 가치를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리라.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간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닌데 행복을 바라보며 산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삶의 목표를 행복에 두기보다는 가치에 두고 싶다. 가치 있는 삶의 선결조건은 무엇일까.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자기관리인가, 보시를 생활화하는 덕업(德業)의 축적인가, 경제적, 사회적 위상의 상승인가?……"
마음처럼 간사한 건 없다지만 가까운 거리도 자가용을 타고 다니니 말입니다. 언제부터 여유 있게 살았다고, 지난 삶을 뒤돌아보며 감상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