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至尊).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자리 같지만 늘 위태위태하다.
바람 앞 등불처럼.
우리나라에서 사(士, 事, 師) 자 직업을 가진 청년은 여전히 사윗감으로는 최고로 친다.
사윗감의 지존이라 할 만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하지만 유교를 국시로 하고 문(文)을 숭상하였던 조선시대이래 산업화 이전까지 사농공상(士農工商)은 빼도 박도 못하는 직업 귀천의 순서였다.
직업 관점을 넘어 신분 그룹의 순서이기도 하였다.
현대에 들어 돈 잘 벌고 그 자리 인정받는 새로운 직업이 많이 생겨나 사(士, 事, 師) 자 지위도 위협받고 있다.
한민족에게 쌀은 식량자원의 지존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곡절이 많다. 수경이라 천기의 영향을 많이 받아 수확량이 일정치 않다 보니 옛날에는 백성의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늘 모자랐다. 수확량이 수요량을 따르지 못했던 필자의 학창 시절에 만해도 각기병의 원흉으로 지탄받으며 보리쌀이나 잡곡과 혼식해야 하는 체면을 구기기도 하였다.
현재는 식생활의 변화와 빵이나 고기 같은 대체재가 풍부해져 쌀이 남아도는 실정이다.
지존의 체면이 많이 구겨졌다.
앞으로도 구겨진 체면은 펴질 것 같지 않다.
인간이 불을 다스리며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효용성 측면에서 원자력발전을 따라갈 만한 에너지 자원은 지금까지는 없다.
번개는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에너지 효율은 따라갈 자 없지만 아직 인간의 힘으로는 다스리지 못해 효용성은 없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축적된 원자력발전 기술과 경쟁력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한다. 지진에 대비해야 하지만 인간의 지식과 기술로 안정적인 통제도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안전을 갈구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태양광, 풍력, 조력 등 자연 친화적 에너지원이 부상하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탈원전은 과학 영역에 정치적 담론이 많이 개입된 듯하다.
과학은 과학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데 아쉽다.
원자력, 에너지원으로써의 그 지존의 위치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불 수단으로써의 오랜 지존이었던 지폐.
체면이 말이 아니다.
신용카드에 밀린 지 오래고 전자화폐에 밀려 박물관에 가야 할 처지로 전락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경조사 축. 부의금, 설날 세뱃돈같이 면전 체면을 세우는 데는 여전히 지존이지만, 멀잖은 설날에 "할아버지, 세뱃돈 제 계좌로 이체해 주세요. 누가 촌스럽게 지폐를 지갑에 넣고 다녀요"라는 말을 손자로부터 들을지 모를 일이다.
금속으로써의 금(金, 원소기호 Au, 원자번호 79).
연성, 전성, 전도성이 금속 중에서는 최고라지만 물러 빠져 금속으로써의 용도와 효용성은 여타 금속과 비교해서 그다지 뛰어나다 할 수 없다.
하지만,
교환가치로써의 금.
당연 지존이다.
정세가 불안하고, 경제가 불투명하고, 기축통화가 불안할 때처럼 모든 상황이 최악일 때를 가정하여 비축하는 것이 금이다.
사람도 돈도 세상도 다 믿을 수 없을 때를 대비할 때 찾는다.
지존무상(至尊無上).
과연 지존의 끝판 왕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에도,
그랬고.
동서미래(東西未來)에도,
. . . . .
(주)
ㆍ무상(無常): '경험계에서 영원불변하는 것은 없다'라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 진리의 개념입니다.
ㆍ무상(無上): 사전적 의미로 '그 위에 더할 수 없이 좋고 높음'이란 뜻으로 지존, 영어 Supreme과 궤를 같이 합니다.
ㆍ필자는 무상(無常), 무상(無上) 동음이의어(중국어 발음은 다름)를 지존무상(至尊無常), 지존무상(至尊無上)으로 대비시켜 글을 써보았습니다.
ㆍ글의 마지막 줄 점 다섯 개는 '그럴 것이다'는 말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럴 것이다'라고 확신하지만 점으로 여운을 남긴 것은 아무리 금이라지만 감히 무상(無常)의 진리를 거역하기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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