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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3
스 2:55-63
55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
56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57 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
58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 삼백구십이 명이었더라
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선조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밝힐 수 없었더라
60 그들은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모두 육백오십이 명이요
61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62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63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라 2:55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들 중에서는 다음의 10 가문이 돌아왔다. 소대, 소베렛, 브루다, 야알라, 다르곤, 깃델, 스바댜, 핫딜, 보게렛하스바임, 아미.
15라 2:56 (55절과 같음)
15라 2:57 (55절과 같음)
15라 2:58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 왕궁의 노예는 모두 392명이었다.
15라 2:59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 지역에서는 들라야 가문과 도비야 가문과 느고다 가문에서 652명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인지는 증명할 수가 없었다.
15라 2:60 (59절과 같음)
15라 2:61 제사장들 중에는 족보에서 자기들의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하바야 가문과 학고스 가문과 바르실래 가문이 그러하였고 이 세 가문에서 귀환한 사람들의 수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바르실래 가문의 원조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과 결혼을 하고 자기 처가의 성을 따라 새로운 가문을 세운 자였다. 앞의 세 가문들은 자기들의 혈통을 제사장 계열로 입증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부정한 사람들로 판정을 하고 제사장 직책을 맡지 못하게 하였다.
15라 2:62 (61절과 같음)
15라 2:63 유다 백성의 지도자는 그들에게 우선 거룩한 제물을 먹지 못하도록 금지시켜 놓고 대제사장이 임명되어 우림과 둠밈으로 그들의 문제를 판결해 줄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였다.
바사에서 돌아온 자들의 명단은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거룩한 소망을 품고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그들의 귀환은 약속의 성취였으며 이스라엘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명단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이 의미하는 바와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55-60) 이스라엘은 혈통과 가문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선택된 민족 그리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민족, 그것은 이방 민족과 혈통적으로 혼합될 수 없고 신앙적으로도 섞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이방의 땅에서 살게 되었지만, 그들은 순수한 그들의 혈통과 신앙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이라면 순수한 이스라엘의 혈통을 가진 자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비록 혈통적으로는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할 수 없었으나 신앙적으로는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거대한 제국의 그늘 아래에서 제국에 충성하면 그들의 삶은 오히려 기회의 땅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에 이스라엘의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분명히 멸망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주셨지만 듣지 않았고 들었지만 믿지 않았으며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제 회복될 이스라엘은 말씀에 기초한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통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직 부정한 제사장(61-6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돌아온 믿음의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하나님의 비전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믿음은 오직 언약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며 그 말씀의 실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결하게 이루어 가야 했습니다. 제사장들에게는 혈통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명하게 정결한 제사장들로 세우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결은 태생적 정결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법에 따라 부정한 자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적용 : 사람은 능력과 배경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결단하는 신앙을 보십니다. 당신에게 능력과 배경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주님께 신앙의 결단과 믿음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친구는 루터를 ‘기도의 사람이다’라고 표현합니다. 루터는 하루에 3시간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몇 시간을 기도했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늘 기도했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그 말은 기도 아니면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염려를 선택하지 말고 기도를 선택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두려움의 장막이 벗겨집니다. 우리 인생에 드리워 있는 어려움과 두려움과 암담함의 장막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설 교 >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3
스 2:55-63 / 구성교회
작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민 한 사람이 1년간 책을 얼마나 읽는지 조사했습니다. 교과서, 잡지, 만화와 같은 것은 제외하고 전자책, 오디오북, 종이책이 대상이었습니다. 2013년에는 72%가 1년에 책 한 권은 읽었는데 작년에는 43%로 줄었다는 통계입니다. 대신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의 사용이 폭증했다고 합니다. 30년 전 목사님들은 성경 1독을 강조했습니다. 성경 묵상을 강조했던 대형교회에서 설문조하를 하니 매일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사람의 비율이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30년 전의 신앙생활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예배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내 신앙을 전수하고, 가르치고, 증명하기 보다는 자기 편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온라인 예배가 일반화 되면서 이런 현상은 가속화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장, 단점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변화하지 않는 것도 존재합니다. 미국 아마존 창업자이자 2023년 기준 세계 부자 순위 1위인 “제프 베이조스(Jeffrey Preston Bezo)”는 “앞으로 10년간 변하지 않을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수익을 극대화하는 사업 아이템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평생 변하지 않아야 할 신앙 자세가 있습니다. 예배 형식은 얼마든 바뀔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며 말씀이 나를 이끌도록 만드는 일은 포기할 수 없는 일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 삶을 읽어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나의 연약함, 실수, 어리석음, 잘못, 죄,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 반대로 즐거움, 기쁨, 은혜, 감사, 성실, 정직, 거룩함과 같은 모습을 성경은 판단(분별)해주고 있습니다. 설교는 설교자를 거치게 되지만, 묵상은 말씀이 직접 나에게 다가오는 일입니다. 이 일이 왜 중요할까요? 제사장 나라를 꿈꾸는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55~58절은 솔로몬 신하와 느디님 사람의 숫자가 얼마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솔로몬 신하까지 느디님 사람에 포함하여 생각합니다. 이들은 모두 성전 봉사자들로 레위인의 보조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59~63절에는 가문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족보를 살펴봐도 조상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문제는 조상이 확인되지 않은 제사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16장 40절에는 “아론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은 여호와 앞에 분향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함이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역대하 26장에는 웃시야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왕이었습니다(대하 26:4). 그런 그가 교만하게 되어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려 합니다. 이것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 일로 문둥병에 걸리고 맙니다(대하 26:19). 느헤미야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성전으로 피신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느 6:10~13).
누군가는 제사장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야 할 모습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알지 못하면 삶의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단정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성경을 통해 지금도 우리와 소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우리가 제사장 나라를 세울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주님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묵상입니다. 본문 61절에 하바야, 학고스, 바르실래 자손은 그들이 어느 출신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들을 부정하게 여깁니다. 여기서 부정하다(la;G', 가알)는 말은 “더럽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더럽힐 수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단순히 가문을 찾지 못해서 그럴까요? 그들의 삶이 제사장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분별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자기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과 마음을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듭니다.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갈 때,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성취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세상에서의 성공, 풍요, 권력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형상의 회복입니다. 이 은혜를 향해 달려가는 하나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화이트리스트...
스 2:55-70 / 오륜교회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스 2:62)"
'화이트 리스트'는 ‘블랙리스트’의 반대말로, 특별히 선별된 대상의 목록을 뜻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도 하나님의 화이트리스트가 등장합니다. 바벨론 식민지 70년의 생활을 마치고 1차 귀환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 재건에 헌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삶을 헌신한 자들입니다.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인 심장인 성전이 재건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따로 구별하여 이름을 기록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리스트에 기록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무너진 민족과 개인의 신앙 회복을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이들의 믿음으로 신앙의 위기를 극복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들의 결단으로 죄악의 사슬을 끊어냅니다. 이스라엘은 이들의 기도로 은혜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화이트리스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화이트리스트’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화이트리스트 기준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화이트리스트의 기준은 ‘자기부인’입니다. 화이트리스트를 ‘거룩한 무리’, ‘구별된 성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말씀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아멘! 하나님이 찾으시는 거룩한 성도는, 공동체를 살리는 구별된 성도는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은 하나님의 화이트리스트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을 통해, 공동체의 잠든 영혼들이 깨어나고,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공동체의 꺼져가는 기도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두번째로, 그렇다면, 어떠한 사람이 하나님의 화이트 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특별히 오늘의 본문 59절로 63절의 말씀에 집중하길 원합니다. 62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이들은 유다의 종족과 계보가 불확실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 유다 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만한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유대 사회는 가문의 기업을 족보를 기준으로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럴 법적 근거가 없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런 경우를 2가지로 추측합니다. 우선, 바벨론에서 유다백성이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출생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족보에서 배제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족보가 분실된 경우로 추정됩니다. 이것은 제사장 가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유다 사회는 제사장들의 경우 이를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제사장 직분을 박탈하고 지성물을 금지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 역시 1차 귀환자 명단에 포함시키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900km 이상의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 내 영혼의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했기에 하나님은 인간의 계보에 비록 없어도 하나님은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하나님의 화이트리스트입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국을 사모하는 자, 인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완성하실 하나님의 나라를 열망하는 자,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자! 그러한 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화이트리스트인 줄로 믿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 하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의 화이트리스트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큐티 말씀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화이트리스트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붙들고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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