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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리,또는 관계시작. (The Beautiful Day.)
정태준. 그가 없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무미건조한 나날들의 반복이였다.
그는 빠르게 내 생활을 잠식해갔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너무 깊은 사랑에 빠진 뒤였다.
따사로운 가을날. 나는 수면을 유도하는 수업을 하고있는 선생의 눈길을 피해 창밖을 향해 엎드렸다.
단조로운 일상, 무엇하나 부족 한 거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 지겨워 …
당신이 보고싶어 …
그리고 손에서 놀고있는 두 장의 쪽지를 번갈아 만졌다.
당신의 메세지가 담겨있는 쪽지와, 당신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전화번호가 담긴 쪽지.
그 날 귀가한 날부터 수백번은 고민했을 것이다.
이 번호로 연락을 해도 좋을까? 하지만 무슨 이유를 핑계로 그에게 전화해서 불러내야 좋을까?
이 두가지 고민으로 아침을 시작해 저녁 때까지 …
" 아직도 그 생각 중이냐? "
"..... "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성준의 눈길을 피해서 나는 쪽지에 더 집중했다.
"그럴 거면 전화를 하던지 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려? "
"그게 쉬운게 아니니까 그렇지. "
"병신 "
그래, 네 말대로 난 정말 병신일지도 몰라.
이유없는 일로 그를 불러 낼만큼 자존심을 꺾는 타입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를 잊을 수 있는 타입도 아니야.
한번도 뭔가를 이렇게 간절히 원해본 적이 없어.
"오늘 너희 아버지 돌아오신다며, 그 앞에서도 또 죽을상 해봐라 너희 아버지 니 걱정으로 10년 더 늙으신다. "
"아, 오늘 아버지 오는 날이였냐? "
".... 참.. 나 "
"아버지는 주기적으로 보잖아. 이 사람은 다신 못볼지도 모르는데 "
"뭐하는 사람인데? 정태준이라는 이름 석자랑 전화번호만 알고 ... "
성준은 내 손에서 그의 전화번호를 낚아채 진지하게 들여다봤다.
철없는18살 소년의 열병에 녀석이 혀를 끌끌, 거린다.
".... 킬러래 "
"뭐?!! "
"조용히 해 멍청아... !! "
우리 쪽을 바라보는 선생의 눈이 심상치 않게 번뜩인다. 하마터면 쫓겨날 뻔 했어,
우두커니 복도에 다리 아프게 서있는 건 싫다고, 이 바보야. 그리고 내 대답에 놀란 성준이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 직업도 세상에 존재해? "
"내가 직접..... 봤으니까. "
"뭘? "
"사람 죽이는 거 "
"..... 살인자잖아 .. !!! "
아니, 그는 킬러지 살인자가 아니야.
저절로 정태준을 보호하게 된다. 그는 분명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다. 그게 타의건 자의건 변하지 못할 사실이지만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그 날밤 춥다는 나를 두 팔로 감싸안고 자는 그의 손길이 살인을 했다곤 믿어지지 않을만큼 다정했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눈빛은 한없이 선한 사람이였어. 조건 없이 나의 투정을 받아주고 철부지 어린애의 도발에도 꼼짝하지 않은 진짜 어른이였어.
" 그런 사람 신고 안해도 괜찮아? 살인자랑 같이 있다가 너 살해당하면 어쩔려고 "
"그런 사람 아니야. 네 멋대로 단정짓지 마 "
곤란한 듯, 눈살을 찌푸리는 성준을 애써 무시했다. 그런 사람 아니야. 내가 사랑하게 되어버린 사람은 살인자가 아니야.
네가뭘 안다고 그래, 사랑은 아름다움을 가장한 정신병이다.
미친듯이 사랑에 빠져 상대만을 알고 상대의 잘못은 모두다 용서가 되는 정신병.
사회에선 용납할 수 없는 어떠한 것도 사랑에 빠진 둘만은 서로 용서가 된다.
그래, 그럴 수도 있는거지. 저럴 수도 있는거지, 변함없는 건 상대가 나를 사랑하니까. 혹은 내가 상대를 사랑하니까.
하지만 그 사랑이 점차 흐려지고 눈을 가득 덮고있던 콩깍지가 벗겨지는 그 순간.
사랑으로 바라봤던 용서와 자비는 모두 배신이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성준이 보기엔 나 또한 지금 그 정신병을 앓고있는 한 사람일 뿐이였다.
타인이보기에 태준은 살인자이고, 나는 그 살인자를 묵과하는 인간일 뿐이니까.
.
.
.
.
" 네가 너무 깊게 빠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
지루했던 4개의 수업이 끝나고 우린 옥상으로 올라왔다. 높다란 푸른 하늘 위로 잿빛 연기가 허공에서 흩어진다.
성준은 옥상 난간에 기대서 길게 담배 한모금을 빨곤, 난간에 기대어 앉아있는 내게 자신이 피고있던 담배를 건내준다.
" 펴봐 "
"... 니가 친구냐? "
"답답할 땐 최고의 명약이지 "
"..... "
새하얀 담배필터와 성준의 얼굴을 번갈아보다 결국 필터를 잡았다.
담배를 안핀 적은 없지만 최근에서야 끊게 되었는데, 저 녀석이 결국 내 금연결심을 깨트리는구나.
가느다란 두 손가락에 끼워진 담배를 한모금 빠는 것 만으로도 아까의 고민이 싹 날라가 버릴 것 같아.
"어떠냐? "
"... 최고..야 "
내 대답에 성준이 만족스럽게 웃는다.
" 남자랑 자면 어떤 느낌이 들어? "
"... 그런건 왜 물어봐? "
" 그냥 궁금해서 "
".... 글쎄, 나는 괜찮아. "
별 싱거운 놈이다. 내 대답에 그저, ' 그래? ' 라고만 대답하곤 시선을 애써 피한다.
그러고보니 성준은 내가 남성취향을 알았을 때도 별로 놀라는 기색없이 나를 받아주었던 유일한 친구였다.
원래 내 성격상 친구도 없었지만 2살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의 허물과 타인에게 받을 매서운 눈총을 걱정한 나를 비웃는 것처럼
'그래서 어쩌라고? '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였다.
내가 믿는 유일한 녀석의 안색이 오늘따라 좋지 못하다는게 마음에 좀 걸려.
** *
"형?! 언제왔어?! "
"잘 지냈니? 우리 막내! "
"어린애 취급 하지 말어! "
"하하, 그런건가? 1년 전에는 완전 애기였는데 지금은 조금.. 분위기도 변한 것 같고? "
형이 돌아왔다. 연락도 없이 한 귀국이라 어머니도 나도 그리고 아버지도 놀라셨다.
들어오는길에 함께 왔다며 아버지와 형은 일단 나부터 찾았다.
현관 앞에 마중나와 있는 귀여운 막내아들에게 쏟아지는 무한한애정에 기분이 좋아졌다.
형은 더 멋있는 신사가 되어있었고 몇주만에 돌아오신 아버지도 더 좋아보이셨다.
단지어머니는 아버지보단 형에게서 더 눈길을 때지 않으셨다.
" 런던은 어땠어? "
" 어떻긴 하루종일 우중충하지. 여기 가을하늘 보고싶어서 빨리 귀국했어. 곧 돌아가봐야하지만 "
" 형은 여자친구 안만들어? 어떻게 된게 만년 솔로야? 별로 매력 없는 타입도 아닌데 "
더 키가 커진 준호형의 모습을 천천히 뜯어보며 말했다.
여자에게 인기가 있으면 있지, 없는 타입은 아닐건데 분명. 아이러니하게도 형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론 여자친구가 없다.
애인이 있나?
주인 잃은 방은 오랜만에 불이 켜졌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우리 둘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준호형의 방은 여전히 깔끔했다.아주머니가 매일 치운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였나보네. 형이 두고간 나와 함께 찍은 액자라던가.
하늘색 침대시트도 여전했지만 정작 주인이 없어서 쓸쓸했던 방이 형이 들어가자마자 환하게 빛이난다.
역시 뭐든 제자리에 있어야 해.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나? "
" 벌써라니? 아직 7시야 "
" 오랜만에 한국 들어온 거잖냐. 집에만 있으면 섭섭하지 약속도 있는데 "
" 아, 나가게?.. "
돌아온지 몇시간이나 지났다고 바로 나갈려고, 나는 아쉽게 형을 바라봤다.
어릴적부터 형은 이런 내 표정에 쥐약이였지. 오랜만에 북적거리는 집안으로 겨우 그를 잊고있었는데.
형이 나간다면 다시 그가 떠올라 하루종일 날 괴롭힐게 분명해.
".. 같이 나갈래? "
"... 진짜?! .. 나야 좋지만 형 친구가 불편하면 .. 그리고 어머니가 허락 안해주실껄? "
"둘이 산책 같다온다고 하면 괜찮아, 옷 챙겨 나가자 "
"역시 형 밖에 없어. 내가 바람 쐬고 싶은 건 또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가지고 런던에서 독심술 배워온거 아니야? "
아, 정말 오랜만에 활기가 생긴다. 답답했던 집안 공기가 탁 트이는 느낌이야.
우리가 한 형제는 맞는가봐. 강아지처럼 방방 뛰며 2층을 돌아다니는 내 뒤로 형은 조용히 웃었다.
외출허락을 찜찜해 하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형과 아버지 덕에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그동안 좀 사고를 쳐놨어야 어머니가 의심을 안하지.
나는 추워진 밤공기에 조금 두툼한 가디건을 걸치고 형의 차에 올라탔다.
"벤츠..다! 왜 이 차를 못봤지?! "
"집 주차장에 있는 걸 어떻게 봐, 안전벨트하고 "
"우와우와, 죽인다 - 이거 누가 뽑아준거야?! 어머니?! 나도 나중에 이것보다 더 비싼걸로 뽑아달라고 해야지 치사하다.. "
"어련히 알아서 해주시겠지, 너 때문에 11시 전에는 들어와야 겠다. "
형은 능숙하게 핸들을 돌리며 큰길로 차를 몰았다.
정말 어른이구나. 운전도 할 줄 알고, 나도 주민등록증이 나오자마자 면허를 따야겠어.
"근데 그 친구가 누군데? "
"내가 소개 안시켜줬었나? "
"형이 언제 형 친구 소개시켜줬냐? "
"가보면 알겠지, 넌 술 마시지마라. 어머니한테 형 혼난다. "
"알았어 알았어. 운전이나 하시지요. 김기사님 "
.
.
.
"인사해, 준수야. "
"... .... "
"형 친구인 정태준. 내 동생이다. 김준수, 처음보지? "
전혀, 아니야. 우리가 어떻게 처음이야?
당신과 내가 어떻게 처음이야.
몽환적인 바 안에선 부드러운 재즈선율과 그가 서있었다. 이렇게 만날 줄은 ..
킬러인 당신이 우리 형의 친구일 줄은 ...
그는 정말 태연한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
.
" 만나서 반갑다. 편하게 태준 형이라고 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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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이 없습니다.. 작가의 뻔한 설정 (좌절) 결국 형친구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원래 이렇게 소설을 하나씩 연재하다보면은 하루종일 소설이 제 머릿속을 지배해요;
모든 작가분들이 다 그럴거에요 아마, 저는 그날 올려야 될 분량은 거의 그날 바로 쓰는 편인데.
그럼 하루종일 어떤 색다른게 필요한가, 어떤 전개가 좋을까. 극적인 만남은 어떤게 좋을까..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댓글로 응원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항상 너무 고맙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즐겁게 읽어주세요~ ;ㅅ;
첫댓글 ...... 불쌍한 준수.... 결국 형으로 돌아오는구나...........
ㅋㅋ 준수과 과연 형이라고 부를까요. 호락호락하게..
헉 형의 친구였군요!!! 태준은 알고있었을까요..??!궁금,, 다음편 기대★!!
몰랐겠죠?.. 아, 알았나?.. ... 작가도 모르는 저 인물의 속마음! 꼬릿말 감사합니다 ㅋ
ㅜㅜㅜ.. 그래도^^ 잼잇게 써주세요 ㅋㅋ오늘은 음악이 다 끝나니까 ㅋㅋ 나도 다 읽어버렷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_ㅠ 넵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음악이 다 끝나고 또 리플레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 되니까 끊기더군요ㅋㅋ;;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이에요!
태준이... 너무 태연한데요;; ㅋㅋ 재밌게 잘봤습니다!
태준이가 뭔가 있는것 같은느낌? 준수를 알고있었던것 같아요~ 어떻게될지 굼금하네,ㅋㅋㅋ
컥...머야머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