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제2사단 2여단 전투단이 동두천을 떠났다.
이번에 한국을 영구히 떠나는 2여단은 주한미군뿐 아니라
전 세계 미군 가운데 최상의 전력을 자랑하는
‘공격 여단(strike brigade)’이다.
3600명이라는 규모는 주한미군의 10%에 불과하지만,
한반도 주둔 미 지상군의 핵심 전력이 빠져나간 것이다.
지난 2일 환송식 행사장에서 배포된 자료에는 2여단과
예하 부대의 역사가 소상히 적혀 있었다.
한국전을 전후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2여단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인계철선(引繫鐵線) 역할을 해왔다.
군인 상당수는 한국인과 결혼하기도 했다.
여단 본부 및 중대와 예하 10개 부대들 가운데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화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실제 부대인 506보병연대 1대대,
한국전 당시 평양 땅을 처음 밟은 유엔군이었던 2헌병중대,
미 육군 최고(最古) 정예부대인 9보병연대 1대대가 포함돼 있다.
또한 44공병대대는 인천상륙작전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이래로 도로·교량 건설, 정비 및 기계화 임무를 담당했으며
이들이 건설한 수많은 교량들은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그들은 한반도의 안보를 지킴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가장
먼저 목도하고 한국이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 되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폭염 속에서도 수천 명의 군인과 함께 젖먹이 어린아이까지
동반한 가족들이 무려 2시간여 동안 환송 행사장을 지켰다.
1950년 미국 정부가 국민 50% 이상이 한국전 파병을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미군을 한국에 급파했을 때 우리는 남녀노소가
태극기를 흔들며 그들을 환영했다.
그러나 50년간의 전쟁 억지(抑止) 임무를 마치고 떠나는 날,
대한민국 중앙정부에서는 물론 경기도 지사조차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조촐하고 서글프게 환송식은 끝나고 말았다.
물론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크고 작은 사건·
사고도 많았다. 그러나 한국의 안보를 위해 10만여명의
사상(死傷)을 감수한 미군의 도움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재배치는 1차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전략(GPR)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미 간의 치밀한 전략적 검토하에 주한미군 감축
시기와 규모를 적절히 조정하고,
이를 대북 협상 카드로 활용하여 북한이 전방 배치한 공세
전력을 후방으로 배치하게 하는 문제와 연계했더라면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환송식에서 리언 러포트 연합사사령관은 110억달러 상당의
주한미군 현대화를 재차 약속했지만, 비무장지대를 누비던 미군은
공군과 해군력으로 한국군을 측면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주한미군 철수 이후 시대’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따른 새로운 국방정책을 수립하고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감내해야 한다.
진정한 자주국방의 길이 열렸다고 자축하기 전에,
이라크 파병 찬반론에 매몰되기 전에,
갑작스러운 미군 감축이 북한을 오판하게 할 위험은 없는지,
다자간 안보체제나 집단 방위기구가 없는 동북아에서 대한민국의
안위를 어떻게 지킬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저절로 유지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한·미동맹을 관리해야만 한다.
지금은 정치적인 구호가 아니라 전략적인 사고가 아쉬운 때다.
강박인(mixan)
132 1 "중앙정부에서는 물론 경기도 지사조차도
참석하지 않았다"//참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이러고도 사람의 도리를 말 할 수 있겠나? 이러고도 한미 외교를
말 할 수 있겠는가?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정부의 눈에는
한반도에서 보이는 것이 주한미군밖에 없을 것인데...
자주국방은 평양의 위협에만 대비하는 것이 아닐텐데...
(08/06/2004 20:16:46)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