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前, 朝鮮의 讀音은?
漢語上古音
潘悟云 : p-lew朝 slen鮮 廟 : mbrews 祥sɢlaŋ 姜kaŋ, 羊 [g]laŋ, 馬mra
本人 : m-la朝 鮮q-lan (based on 燕方言)
1. 馬韓mragara 단지 異表記 of 朝鮮.
최근까지 潘悟云's 解聲原則은 現代上古漢語학자들중에서 가장 믿을만하다는 것이 위의 사실에 의해서 증좌되고 있다.
潘悟云: 辰bljɯn 厂 qhaanʔ, khljaŋs
本人 : 辰 : qhaanʔ 當代人的音寫 for qara 樂浪,安邪(國), 拘邪(國), あや
卞韓=卞辰 韓王=辰王
왜 변한과 변진이 병칭될 수 있는 지 위의 언어학적 사실이 증좌하고 있다.
《三国志》辰韩者,古之辰国也 이란 辰韓이 樂浪으로부터 온것임을, 古之辰国이란 樂浪이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後漢書》; 魏略曰初右渠未破時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 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
衛滿朝鮮之王險城 was 遼東郡險瀆.(應劭注 地理志遼東險瀆縣 朝鮮王舊(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 臣瓚云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也)
險瀆縣城으로 추정되는 新開河鎭李家窯村孫城子古城에서 秦代靑銅器物和漢代鐵武器등이 발굴되었다. 險瀆縣城은 秦代에 이미 축성되었을 것이다. 이는 險犢封泥의 발견으로 알 수 있다. 衛滿朝鮮집단은 險瀆縣城을 王儉城으로 삼고 주변족속들의 통관을 좌지우지 하였던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衛滿朝鮮이 朝鮮在地系와 燕濟流移民의 연합정권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상 秦代靑銅武器和漢代鐵武器로 무장한 燕系亡命集團에 지나지 않으며 朝鮮지역에서 패권을 휘두르고 교역의 독점과 灣夷를 방어하기 위한 중국계 유이민 집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집단의 성격을 모른채 이들이 세형동검으로 무장하였을 것이란 망상은 지워버려야 한다.
최근까지 秦代靑銅武器와漢代鐵武器등은 平壤에서 紀元前 1 世期 이전에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또 하나의 오해.
고조선proper는 평양樂浪지역과는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古朝鮮의 중심지역이 조선현이 있는 곳 樂浪지역일 것이라는 오해. 右渠敗亡후 많은 朝鮮系流民 과 衛滿系流民들이 요동 古朝鮮 으로부터 樂浪=辰國으로 몰려들었던 것이기에 진개동점이후 진대에 요동에는 중국계 유이민을 통제하기 위한 요동군의 골격이 이미 짜여져 있었던 것이고 우거의패망이후 요동지역의 古朝鮮계는 일부는 낙랑=辰國으로 일부는 길림으로(부여) 일부는 眞番(현도군)으로 피해가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따라서 낙랑을 조선의 중심지역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해하기 때문에 역사의 실타래를 못 풀고 있는 것이다.
潘悟云 : 眞 kljin 眞番은 곧 忽本을 의미하면서도 바로 句麗族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험독성이 백랑수와 대요수 사이에 위치에 있었으며 현재에는 사라졌지만 서기전후에는 대능하가 의무려산에서 다른 한 지류가 갈라져나와 요동군의 방현 위쪽에서 요하와 합류한다고 적어놓은 수경주를 인용한 것이다. 이처럼 험독은 당시에 응소의말처럼 依水險故曰險瀆이라 했던 것이다.
水經注云
大遼水(遼河)出塞外衛白平山 東南入海 過遼東襄平縣西 遼水亦言出砥石山 自塞外遼東直遼東之望平縣西 屈而西南流逕襄平縣故城西 又南逕遼隧縣故城西 又東南過房縣西遼水又會白浪水 水出右北平白狼縣東南 北流西北屈 逕廣城縣城南 又西北 石城川水注之......
水東北出塞爲白狼水 又東南流至房縣注于遼 <魏土地記>曰白狼水下入遼也
又東過安市縣西 南入于海 <13州志>曰大遼水自塞外 西南至安市入于海
大遼水(遼河).....又東南過房縣西遼水又會白浪水
浿水: phreeds(潘悟云) 白浪水 : 洌水:[b]reds
應劭注 地理志遼東險瀆縣 朝鮮王舊(滿)都也依水險故曰險瀆
史記云 眞番旁衆國欲上書見天子又擁閼不通元封二年...其秋
遣樓船將軍楊僕從齊浮渤海兵五萬人左將軍荀彘出遼東
討右渠 右渠發兵距險.......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未能破自前.....方渡浿水...左將軍破浿水上軍
백랑수가 패수였음을 알게 되면 위의 패수상군이나 패수서군을 포함한 사기의 전쟁 묘사와 擁閼不通 역시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개동정 이전에는 朝鮮 proper는?
바로 대능하~심양 지구 였다. 왜냐 이곳이 점토대토기와 토광목관묘와 세형동검문화의 원주지이기 때문에.
진개의 동정이후 기원전 300년무렵 대능하지역의 사람들이 바다를 통해 금강유역으로 들어와 세형동검과 토광목관묘를 조성하기 시작하고 이들의 세력 확대에 따라 반도남부의 개석식지석묘집단은 열도로 넘어가 야요이 문화를 개창한다. 후대에 이들은 馬韓으로 불리게 되는 것인데 사실상 mragara즉 朝鮮의 실제 발음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조선 준왕도 100년후에 같은 경로로 이 지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고조선 準王의 都邑은? 원래 대능하지역에 있었을 것은 확실한데 왜냐하면 항상 燕 동쪽에 조선이 나오니 당연한 얘기인데 진개 동정이후 어디에 도읍을 정했는지가 아직 오리무중이다. 요동지역 발굴결과를 기다려 보아야 할 테고. 다만 동천왕이 천도한 平壤이 先人王儉都라 하였으니 요동의 요양 인근이 아닌가 추정할 뿐....
이렇게 역사의 실타래를 고고학과 언어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풀어보았는데 결국 부여~고구려~마한~조선~세형동검문화~예맥이 다 연결되는데 어째서 삼국사기지리지에는 중부지역에 일본어계 어사가 다량 존재하느냐?
결국 弁辰韓 집단 즉 평양의 개석식지석묘집단 辰國=樂浪=なら은 중국계,고조선계와 융합하여 독특한 언어가 태동했던 것 같다. 삼국지에서 변진한어가 마한어와 다르다고 한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마한인들이야말로 고조선지역에서 남하한 세형동검집단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변진한어는 원래 왜어(평양 진국의 개석식지석묘집단)의 저층을 많이 갖게 되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변진한어를 계승한 신라어 또한 이러한 저층이 많이 남아 있게 되어 삼국사기지리지 권37에 나오는 一云... 이들 한자의 훈은 신라의 훈으로 보아야 하기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물론 隋書에는 마한과 백제의 언어가 다르다고 하면서 그 예를 들고 있지만 이는 다른사서에 적혀있는 언어묘사와는 달리 그저 피상적인 관찰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하겠다. 요서에서 같은 족속이 거의 500년 이후에 다시 부닥친 두 집단의 언어에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임은 당연한 것이고. 최근에 최근에 李丞宰 교수의 논문< 彌勒寺址 木簡에서 찾은 古代語 數詞>에서 백제의 수사를 재구하였는데 이것이 정론으로 확정되면 백제의 수사는 고려말 수사와 같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조선어-고구려어-백제어-마한어-예맥어가 모두 같았음을 알 수 있다. 오직 신라어만이 왜어의 저층을 많이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어째서 초기세형검집단도 그렇고 준왕도 그렇고 평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다를 통해 금강유역으로 이주했는가? 이것은 이 지역 평양지역이 팽이형토기문화라는 매우 이질적인 辰國=樂浪세력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역계상은 중국계로서 燕濟流移民(만여명)을 중심으로 우수한 진한대 병기를 바탕으로 사실상 辰國=樂浪지역에 외번하겠다고 하고 곧 辰國=樂浪을 접수하였으리라 본다. 평양지역에서 최고의 목곽묘는 기원전 2세기 중반을 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절대년대가 정해지면 BC 2세기 중반에 辰國=樂浪지역 역시 위만조선의 중국계 유이민에 의해 접수되었을 것이다.
첫댓글 유사역사학의 정의는?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네가 하면 불륜.
자기의 도그마에 자기를 가두고 그 외의 논설과 논리에 대해 이유없이 상대방을 매김하는 것은 기본자세에 문제 있는 것으로 보임.
적어도 유사역사학이라는 매김을 하려면 어느 논리에서 그런건지 분석을 하고 그러기에 나는 ..한다라고 주장해야지.
처음보는 사람한테 무슨....
유사역사학이란..
1. 사서에 기록된 각종 기록을 모두 통괄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선형회귀선만 긋고자 한다.
2. 최소한 고고학적 자료를 근거로 하나 이 해석 또한 매우 자의적이다.
이런 유사역사학의 정의에 따르면 바로 자네가 유사역사학의 신봉자요.
유사역사학에서 벗어나려면
언어학이나 인구유전학 등 새로운 자료들로 검증하여야 하는 것이
필요하고...
적어도 삼종의 증거를 가지고 뭘 논해야지.. 달랑 2가지를 들고서 이것을 믿으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는 것이야..
그래서 현재의 문헌역사학은 전형적인 유사역사학일 수 밖에 없어....
도대체 문헌역사학위주인 부류는 확률개념이 없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설체계가 겨우 신뢰도가 50%에도 미치지 못함을 모르고 있어..
이런 확률개념이 없으니 대부분 사람들은 50%도 신뢰 안하는데
왜 안 믿냐고 떼를 쓰니 그저 한심할 지경임.
그리고 보다 믿을만하다고 하는 가설을 내놓으면 시기심이 생겨 엉뚱하게 상대방을 유사역사학 어쩌구저쩌구..
원 한심한 짓거리 같으니라구..
궁금해서 그러는데 고조선의 음운은 어디서 어떻게 연구했나요? 하다못해 삼국시대 음운도 한자를 현대식으로 발음한것을 그대로 읽는 것인데 말이죠. 그시기 미추홀을 뭐라 발음했는지 알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이 답글은 탈퇴를 당한 bacclia 님이 내게 부탁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먼저 이점 양지해주시 바랍니다.
현재 중국의 漢語학계는 상고漢어와 중고漢어에 대해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졌답니다. 대체로 기원1세기까지 중국어에는 복성모(중세조선의 ㅄ같은)가 존재하였다는데 이견이 거의 없읍니다. 또한 중고중어에는 4等이란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중 2等자에 -r- 개음이 있었다는데 대해서도 이견이 없읍니다. 하나 실제로 한자의 解聲이란 예를 들어 廟에 朝의 聲部가 들어 있는데 이 해성원칙을 어떻게 세우냐에 대해서 학자마다 解聲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어서 학자마다 특정한자의 상고음가에 대한 재구음이 차이가 있어 합의를 보지
지 못하고 있읍니다.
예를 들어 馬는 2等자이기에 mra로 재구하는데 이견이 없답니다.
浿 역시 2等자 이기에 phreeds로 재구하는데 이견이 없답니다.
본인은 潘悟云 교수의 상고재구음을 가장 신뢰하는 편입니다.
www.eastling.org는 潘悟云 교수가 운영하는 사이트인데 여기에는 현재 최고의 중어학자들의 상고재구음을 확인할 수 있읍니다.
난 한국 사학계를 호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어학계를 호구로 보는 것 뿐이야.
난 역사학계의 예맥설을 신뢰하는데 왜 국어학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거냐 하는 것이야!
설명해봐 왜 삼국사기지리지 권37에 왜어계 낱말이 등장하는지 설명해봐!
송호정이든 노태돈이던 이종옥의 신라정통론의 합리적 체계를 깰만한 언어학적 근거가 있는 것인가?
왜 조선 예맥 진한 신라가 다 예맥인데 권37에는 황당뢔어가 버젓하냐고?
도망가지 말고 설명해 봐!
역시 도망가는구나. 그렇게 너희들이 망상하는 동안애 세계사람들은 Becwith의 가설을 신뢰하지.
송국리문화나 예맥문화 심지어 고조선까지 왜어계 문화로 대서특필되고 있는데!
뭐야 고작 이종옥처럼 도망하는 것이냐!
Beckwith said that 농경과 청동기문명은 왜어계 곧 예맥계 문화이다. 반도 토착인 삼한은 미개한 종족으로 예맥과는 어떤 관련도 없다. 그저 당과예맥의 투쟁에 어부지리를 얻은 것 뿐이다.
이.아 대답해봐!
우리는 모두 예맥의 후손이야!
니말이 통할 것 같냐!
모르는 ..은 할 수 없어!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지 않으면 안 돼.
물론 많은 고민과 가설을 검토 또 검토하였겠지만 21 세기 이 즈음 제발 빗장을 풀어봐..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이야!
하지만 학문은 사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중단없는 노력이고.
정차적 고려꺼지 하니(물론 일찌기 짤리게ㅛ지만) 어떤 새로운 방법론도 정립하지 못하고 그저 먹고사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거야!!
제발 치열한 예맥이 되기를 바랄 뿐..
토론은 상호존중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하대하는 듯한 반말로 토론에 임하시는 것은 자제 바랍니다. 차후에도 이런 태도를 유지하신다면 그에 따른 제제를 가할수 밖에 없으니 양해 바랍니다.
정말 글쓰기가 difficult.
토론의 적당한 어말은 무엇인지!!
토론문화를 활성화 시키려면 요 놈의 어말을 중성자화 해야 되는데..
아직도 방안을 have not found.
토론은 계급짱 띄고 해야 하는데 비사인은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이상한 어말을 강요하니 원참..
어렵고 풀지 못한 숙제야!!
물론 인터넷에서 앞서가는 것이 있어.
가만히 있으면 학계도 보다 보폭이 클지는 몰라..
그러나 책을 내거나 논문을 발표하지 않는 한 인터넷상의 주장에는 어떤 저작권도 없어..
스티브잡스를 보아.
온갖 것을 베꼈지만 그 놈을 뭐라하는 놈이 있냐고!!
주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치열한 논리를 만드느냐가 바로 인문학도의 창조성이야!
어짜피 아이디어는 곳곳에 숨어 있어..
이런 생각들이 널려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엄밀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정립해서 폼을 내보라구.. 엉뚱한 데 와서 비비 꼬지 말고....
하 얼마나 더 가르쳐야 하는거냐!!!
운영진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 가당찮다는 듯한 태도는 더이상 카페 내에서 토론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원하시는대로 조치를 해 드리겠으니 양해 바랍니다.
님의 유사역사학 입장에는 어느정도 동의합니다만 조선의 음가는 주신쪽으로 보는 설에 더 동의해 주고 싶습니다.
일단 시간이 없어 본문을 다 보지 못했다는 점을 먼저 밝혀 둡니다. 글을 볼 때 댓글 먼저 보는 습관이 있어서... ^^/
그런데 삼한님, 불사조님이 상대의 주장을 '유사역사학' 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 좋은 태도로 보이진 않습니다. 유사역사학이라는 말은 이미 그 자체가 '네 주장은 얼핏 보기엔 학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상호존중이 있을 수 있을까요?
baaclia 님이 오래 활동한 분이 아니라 굉장히 최근에 활동하신 분으로 보이므로, 설사 상대 글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 있더라도 일단은 한두 번 상호존중하는 질문/반론을 하여 보고 상대방의 재반론을 기다려 도저히 논쟁이 불가능한 인물로 보이면 그 때 논쟁의 포기를 선언하는 발언(유사역사학이든 다른 표현이든)을 하여도 늦지는 않다고 봅니다.
인터넷 댓글을 보면 대개 '첫 댓글' 이 이후 댓글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만약 첫 댓글이 다른 형태였다면 baaclia 님의 반응도 좀 달랐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운영진께서도 이 점 참작하셔서 제재에 조금 신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제 댓글에서 지적한 분은 삼한님과 baaclia님이었습니다. 삼한님이야 이에 대해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나, baaclia님께서는 그에 대해서 바로 부정적인 반응을 하면서 오히려 냉소적인 태도로 나오셨죠. 그때문에 제제가 들어간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게 나오셨으면 애초에 제제를 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리고 원인제공이라는 점에서 삼한님 또한 문제를 야기시킨 부분이 있으니 1차 경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차후에도 비슷한 일로 문제가 생기면 삼한님께도 제제가 있을테니 이 점 유의하시고 활동해주시길 바랍니다.
요즘 어르신들이 이러니 존경을 못할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