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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흘리기 (미15)
찬송 :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성경 : 미6:6-8 <유튜브에서 ‘변방목사’를 치면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
오늘 내 마음의 간절함을 담아내는 찬양의 가사다. 진실로 주님 마음을 주셔서 이 길을 걸어가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주님, 오늘도 주의 성령을 채워주셔서 주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여러 소중한 만남이 있는 날이다. 내게 주어진 사명을 향해 하나님이 열어주신 만남을 가진다. 한 번도 만나 뵌 적 없는 분이지만 주님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대하며 만남을 가진다. 진실로 주님의 마음으로 오늘도 이 만남이 복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나의 삶을 인도하실까?
미가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이다. 6-8절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 말씀에는 당시 성도들의 심각한 문제가 전제되어 있다. 당시 이스라엘의 타락은 심각했다. 사회 전반에 불의와 폭력, 거짓과 무관심, 우상숭배와 인신매매, 사기꾼들로 가득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잡아야 할 지도자들도 죄악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당시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제물을 드리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으리라 착각했다는 사실이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송아지를 가지고 번제를 드릴까 라는 말은 그렇게 하면 죄가 사해진다고 생각했던 당시 신앙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한 주간의 죄악을 한 번의 제사를 드림으로 씻어버리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제물을 잘 드리면 죄가 사해진다는 착각이다. 이런 엄청난 착각은 안타깝지만 오늘에도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란 근본적인 삶의 변화 없이 제사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미가 선지자를 통해 8절에서 3가지로 밝히시고 계신다.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본문 미가 6장 8절은 구약의 황금률이라고도 부르는 구절이다. 오늘 아침 구약의 황금률을 묵상하며 오늘은 특히 정의를 행하며 라는 이 구절이 나를 멈춰서게 한다.
‘정의’는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정의를 실현하시기 위해 악인과 의인 모두에게 오늘도 비와 눈을 내리시며 그 권리를 보장해주시고 계시며 더 나아가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죽이시는 사랑으로 이 정의를 행하시고 계신다. 이처럼 모든 사람의 권리가 그 어떤 이유로도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하는 것이 정의다.
오늘 주목되는 단어는 특히 ‘행하며’란 단어다. 정의는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어느 시대다 이 정의가 다 있지만 실제로 정의를 행하는 이들은 적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미가 선지자는 이미도 앞에서 밝히고 있다. 미3:1-3절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분명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권세를 주신 것은 정의를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도리어 악을 행하고, 탐욕을 채우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여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학대했다. 그들은 정의를 행하지 않고 오히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 미가 선지자는 <악을 기뻐하여>라는 말로 인간 존재의 참상을 드러낸다.
그렇다. 정의란 말을 다 좋아함에도 어느 시대다 정의가 훼손되는 이유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 악을 기뻐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권리를 누리며, 더 큰 힘을 행사하는 것을 기뻐하기에 정의를 다른 사람을 정죄할 때 이용할 뿐 행하지는 못한다.
그 어떤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정의를 지켜가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신 것처럼 자신의 것을 내어주어야 하기에 이 땅에 수많은 제도가 생겨나고 경찰이 있고, 군대가 있지만, 정의는 행해지지 못한다. 정의는 오직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져야 가능한 것임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주님 이 종에게 주님의 마음을 부어주소서.
그렇다. 정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니 리디머 장로교회의 담임목사였던 팀 켈레가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외친 말이 생각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를 더 중시하고 정의를 부수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은혜와 정의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정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초점이다.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 진리가 그저 값싼 은혜로 여겨져서 정의가 없는 거짓으로 충만한, 세상을 얻는 수단의 종교로 전락한다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죄악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온 세상을 지켜보고 계신다.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로 불의한 자에게 임할 심판을 당신의 아들로 갚으시고 나의 잃어버린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음을 안다면 나 또한 그렇게 잃어버린 권리로 힘겨워 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정의를 행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진정 정의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이제는 나만을 생각하고 더 더 더 하는 죄악을 거부하고 그 은혜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기 위해 겸손히 진정한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닐까?
정의를 묵상하며 ‘은혜 흘리기’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은 은혜를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또한 은혜를 받았다면 받은 은혜를 가지고 정의가 깨진 삶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더 가지기 위해 은혜를 이용하라는 유혹이 있지만, 그것을 넘어 은혜를 흘리는 삶으로 나가는 것이 정의를 행하는 삶이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 바로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나같이 불의함으로 마땅히 모든 권리를 빼앗겨 버려야 할 자를 살리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죽이시고 내게 다시 그 권리를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나도 오늘 권리를 잃어버린 자들을 향해 그들의 아픔을 대신 감당해 주며 그들에게 은혜의 권리를 흘려서 일어서게 하는 것이란 것이다.
나는 하늘부흥의 권리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신문지 한 장의 정신으로 다가가 이 권리를 회복시키는 일에 부름을 받았다. 은혜를 흘리는 삶이다.
주여, 이 종이 주님의 마음으로 이 정의 은혜흘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온전히 정의를 행함으로 하늘부흥의 권리를 잃어버린 자들이 다시 권리를 찾고 일어서는 기쁨이 충만케 하소서. 주여, 오늘도 이 정의를 행하는 자로 내게 주어진 자리를 살아가게 하소서. 내 권리를 포기하며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먼저 생각할 수 있게 하소서.
라마나욧선교회를 위한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
1. 50일간의 영적전쟁에서 돈이 주인이 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주인되도록
2. 젊은 세대를 품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으로 세워져 가도록
3. 모든 상황과 변수에도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드러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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