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 기도
주님...
이 고요한 시간에 주님께 나아갑니다.
나의 온 맘을 다하여 주님을 찾는 것은 오늘도 주님의 양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위하여서는 끼니를 굶지 않으면서 영을 위하여서는 양식을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다툼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죄의 세력의 지배를 받는 옛 사람을 주의 힘으로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온전히 나를 주장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보혈로 나를 씻어 오늘 하루도 정결함이 나의 힘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민 33:38-56
제목 : 나는 오아시스가 넘치는 엘림에 머무르고 싶으나 주님은 가나안으로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38.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0년째 5월1일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39.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던 때의 나이는 123세였더라.
40. 가나안 땅 남방에 살고 있는 가나안 사람 아랏 왕은 이스라엘 자손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더라.
41. 그들이 호르 산을 떠나 살로나에 진을 치고
42. 살모나를 떠나 부논에 진을 치고
43. 부논을 떠나 오봇에 진을 치고
44. 오봇을 떠나 모압 변경 이예아바림에 진을 치고
45. 이임을 떠나 디본갓에 진을 치고
46. 디본갓을 떠나 알론디블라다임에 진을 치고
47. 알몬디블라다임을 떠나 느보 앞 아바림 산에 진을 치고
48. 아바림 산을 떠나 여리고 맞은 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49.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의 진영이 벧여시못에서부터 아벨싯딤에 이르렀더라.
50.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51.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52.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53.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54. 너희의 종족을 따라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은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조상의 자파를 따라 기업을 받을 것이니라.
55.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56.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 나의 묵상
어제 본문에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여정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출애굽 한 지 40년 5개월이 되던 첫 날에 모세와 함께 지도자였던 아론이 123세의 나이로 호르산에서 죽는다.
이들은 이제 가나안 땅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다.
호르산을 출발하여 그들이 현재 진을 치고 있는 모압 평지까지는 불과 몇 번의 진을 친 후에 도착하게 된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첫 성인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에 사는 원주민들을 다 몰아낼 것이며 또한 그들이 만든 모든 우상을 깨트리고 산당을 헐어야 한다.
그리고 그 땅을 취하여 거기 살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땅을 이스라엘의 소유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종족을 따라 땅을 제비 뽑아서 분배할 것인데 수가 많은 지파는 많이 주고 수가 적은 지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다.
그런데 만일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그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에게 눈에 가시나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어 이스라엘이 사는 동안 그들을 괴롭게 할 것이다.
내가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벌을 내리기로 작정했던 것처럼 너희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 라암셋을 출발하여 민수기 33장에 나오는 진을 친 곳만 40곳이다.
물론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그들이 진을 친 곳을 100% 다 기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기록된 40곳 보다 훨씬 많다는 말이다.
그들이 이처럼 많은 곳에 진을 치면서 어떤 곳은 정말 숙영하기가 힘든 곳도 있었을 것이고 또 어떤 곳은 이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빨리 떠나고 싶다고 해서 그들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고, 그들이 더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고 해서 더 오래 머물 수도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야 물이 있고 양식이 있고 그런대로 살 만 한 곳이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지나온 어떤 곳도 그들이 머물러 살 곳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까지 가야만 했다.
어제 본문에서 보았던 것처럼 마라 르비딤 기브롯핫다아와 가데스와 같은 곳은 생각도 하기 싫은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림이나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어 먹게 해주신 신 광야와 같은 곳은 제법 괜찮은 곳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통과 고난의 여정이라고 빨리 지나가고 싶고 괜찮은 곳이니까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그곳은 그들의 완전한 정착지가 아니라 통과해야 하는 장소에 불과하다.
그들의 가야 할 곳은 오직 한 곳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인생의 여정 속에서 수많은 고난의 자리를 만나기도 하고 또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최고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또한 아무리 좋을지라도 그 시간은 지나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온전히 머물러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온전히 머물러야 하는 자리는 영적 가난안인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곳이야 말로 우리의 완전한 처소요 거할 성읍이며 아버지 집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곳은 가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땅에서부터 영생의 맛을 보는 자들이 가는 곳이다.
이 땅에서는 자기 맘과 뜻대로 살면서 죽어서는 반드시 천국에 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생각일 뿐 결코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 그 가나안을 온전히 소유하며 누릴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벌하기로 작정하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런 벌을 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56)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뜻은 영생이다.
그 뜻은 변함이 없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영생은 곧 죽어서만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며 아는 것은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을 말한다(요일 1:1-4).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이란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사귐과 교제를 갖는 것을 말한다.
주님과의 사귐이 곧 영생이며 그 영생이란 거듭남이요 이는 아담의 생명에서 아들의 생명으로 바뀌는 것을 말하며 이는 곧 위로부터 태어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런 거듭남은 오직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하다.
이 말씀이 곧 사도 베드로의 말처럼 그가 전하는 복음이다(벧전 1:23-25).
나는 정말 영생의 의미를 오해한 자였다.
죽어서 천국에 가지 못하면 지옥에 가야 하는데 그 지옥에 가는 것은 정말이지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영생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교회에 나가기만 하면 천국에 가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빨리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는 일이 잘 되고 생각대로 진행이 되며 괜찮은 시간들은 그 곳이 나의 천국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이 좀 영원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내 생각일 뿐 고통도 지나가고 꽤 괜찮은 시간도 다 지나가고 말았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물질이 많은 곳,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리, 명예 꽤나 얻을 수 있었던 자리가 아니라. 진정한 영생의 자리였다.
그 자리는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누려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영생인 것이다.
영생은 과거적 미래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로 누리는 하늘의 기쁨이다.
이 기쁨은 돈이 있다고 살 수 있고, 돈이 없다고 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물질의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늘에 속한 말씀이 있는 자리에 참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요일 1:3-4)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곳이 바로 영적 가나안이요, 이 자리가 바로 영생의 기쁨이 있는 자리이며, 이런 자에게 죽음 이후에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 나라의 기쁨을 누리고자 이 자리에서 말씀으로 주님과 사귐을 갖는다.
그것이 나에게 영생이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와 같은 자에게도 이런 영생의 기쁨을 주시다니 이게 웬 은혜요 웬 사랑인지요?
너무나 분에 넘치는 은혜와 사랑 앞에서 그저 머리를 조아리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라서 영생을 누리지 못했던 이 죄인을 주님께서 용납하시고 받아주셨으니 이제 나도 나를 용납하여 주님의 품에서 말씀으로 사귀며 놀기 원합니다.
죽어서 반드시 가기를 원했던 천국이 지금 이 자리에서 누려진다니 꿈만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 실재가 되니 나도 믿어지지 않지만 주님이 함께하시는 영광의 빛으로 임재하심을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고 부인할 수 없나이다.
오늘도 이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이들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