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2일연중23주간 목요일 (루카6.27-38)
♡죄인들도 그만큼은 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는 주님의 말씀을 가슴속에 담아봅니다. 주님의 말씀은 단순히 좋은 말씀이 아니라 내가 행할 때 살아있고 힘 있는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살아있는 말씀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서운함이 있다면 이 말씀을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발 더 나가십니다.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충고를 듣는 것도 힘이 든데 누가 나의 뺨을 때린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나도 상대방을 한 방 먹여야 속이 후련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뺨을 내주라고 하십니다. 겉옷뿐만이 아니라 속옷까지 내주라고 하십니다. 간 쓸개 다 빼주라고 하십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행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겉옷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사막지역에서 겉옷은 낮에는 천막이요, 밤에는 이불입니다. 그래서 겉옷을 담보로 잡았다 해도, 해가 지기 전에는 돌려줘야 하는 법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속옷까지 내주라 하시니 한마디로 상대방을 위해 간, 쓸개 다 빼주고 덤까지 주라는 말씀입니다. 상대를 위한 희생과 사랑을 다하기 위해 나를 포기하라는 요구입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가능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면’가능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 안에서 하시기 때문입니다.“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해도 해도 다할 수 없는 사랑의 의무에 충실하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도 이 사랑에 관한 말씀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범위를 뛰어넘습니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7)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학대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잘못된 사랑인 ‘집착’이란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기준을 뛰어넘는 사랑은 집착의 모습도, 욕심과 이기심이 담긴 모습도 없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안에서는 전혀 받을 것이 없을지 몰라도,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사랑하라고, 혹시 반대의 마음이 들 때라도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사랑에 가까워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