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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선원’ 동안거
모든 존재들이 한 몸 한 생명의 존재임을 돌아보며 절을 올립니다. ‘생명평화 백대서원 절명상’ 중에서
도법 스님의 또렷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무릎을 구부려 절을 하고, 목소리가 끝나면 다시 그 내용을 되새긴다. 다음 절을 알리는 목소리가 시작되면 천천히 일어선다. 집중하여 듣고, 들은 내용을 다시 음미하며 천천히 100배 절을 하자면 분주했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내 모든 존재를 바닥으로 내리고 또 내리기를 거듭하는 30분 동안 나의 그물코로부터 평화로움이 온 그물로 퍼져나간다. 지리산 성지화를 위한 불교연대(준)의 ‘움직이는 선원’ 동안거의 하루가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작년 12월 1일(음력 10월 15일) 동안거 입제를 하던 날 오후, 실상사에서는 또 다른 동안거 입제식이 열렸다. 지리산 성지화를 위한 불교연대(준)가 시행하는 움직이는 선원 동안거가 시작된 것이다. 겨울 안거 90일 동안 지리산 800리길을 발로 걸으면서 화두를 참구하는 움직이는 선원 동안거는 도법 스님을 열중(순례단장)으로 하고 실상사 화엄학림 연구과정인 화림원의 호선, 일과, 혜진, 효광, 효진 스님과 필자까지 7명이 걷는 수행을 함께 하고 있으며, 인드라망 마을대학 준비팀이 실무를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달 반 동안 지리산 둘레를 한 바퀴 반 정도 걸었으며, 동안거 기간 동안 세 바퀴 정도 순례를 할 듯하다.
지리산 문제를 다루는 방식의 전환을 모색한다 지리산 성지화란 지리산을 거룩한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거룩한 분으로 불리는가? 역대 조사, 아라한, 이웃 종교의 성자들은 무엇 때문에 거룩한 분이라고 불리는가? 그 분들은 온 존재를 다 바쳐 진리대로 살고자 했으며, 그리하여 나타나는 모습은 사랑과 자비, 진실함과 성실함이었다.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진리에 맞게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며 그 삶이 진실하고 성실하게 이루어지는 현장이 거룩한 곳이지, 이런 것을 떠나서 달리 거룩함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지리산을 성지화하자고 나섰을까? 무엇보다도 지리산은 불교계가 천 수백년 동안 지키고 가꾸어온 곳이기 때문이다. 중국 선종의 법맥을 계승한다는 조계종단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 가람인 남원 실상사는 모태와도 같은 곳이며, 조선시대 쇠미해진 교단을 다시 일으키는 중요한 근거지였던 함양 벽송사, 신라 화엄십찰에 빛나는 구례 화엄사, 우리 소리의 고향 하동 쌍계사 등을 보면 지리산을 근거로 하여 한국 불교가 찬란한 꽃을 피워왔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지리산이 위기에 처했다. 곳곳에서 케이블카를 만들고자 하고,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지리산댐을 만들고자 한다. 그 이유를 보면 모두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한다.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기준으로 지리산을 판단할 수 없을까? 지리산 사람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지리산이 생태계의 보고로, 민족사의 아픔을 끌어안는 상생의 현장으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안식처가 되도록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이런 고민을 집약한 것이 ‘지리산 성지’이다. 댐 만들자니까 ‘댐 반대’, 케이블카 만들자니까 ‘케이블카 반대’를 외치는 운동이 아니라 지자체와 마을 주민, 불교계가 함께 지리산의 가치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찾자는 것이 지리산 성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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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수행 방식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지리산 성지화를 추진하는 방법론으로 지리산 팔백리를 걷는 순례를 선택한 것은 새로운 수행법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남방불교의 전승을 보면 불교의 선수행은 좌선과 행선을 균등하게 겸하도록 하는데, 지금 우리 선방은 지나치게 좌선 위주로 가고 있다. 걸으면서 화두를 참구하는 이점은 무엇보다 졸음에 빠지지 않고 항상 성성하게 깨어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좌선일변도의 수행이 환자를 양산하는 데 비해 걷는 수행은 몸을 건강하게 한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곬로 치닫는 스님들의 습벽이 건강하지 않은 수행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봄직하다.
수행과 교화가 불일불이의 관계로 통일 이렇게 움직이는 선원은 걸으면서 화두를 참구하는 자기 수행이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수행이 그 자체로 사회에 청량한 목탁 소리를 울리는 것이 된다. 최근 조계종단에서는 종단의 미래를 염려해서 출가를 권유하는 광고를 계획한다고 하는데, 언 발에 오줌 누기는 될지언정 근원적 처방이 아니다. 사회에는 이미 불교가 없다. 심지어 불자님들조차도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서 명상을 하고 계율을 지키며, 이웃에게 삶의 모범이 되고 자비행과 보시를 실천하며 바른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등 불교적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별로 없다. 사회에 불교가 없는데 어떻게 사회인들이 출가를 인생의 행로로 고민할 수 있겠는가. 움직이는 선원 동안거와 같이 불교가 사회에 청량한 감로수 역할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불법을 만대에 보전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곱 수행자들의 지리산 지신밟기, 때로는 눈이 쌓여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길을 걷고, 대형 트럭이 질주하는 국도변을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섬진강 세찬 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할퀴어도 한 걸음 한 걸음 화두 잡은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얻어 먹고 얻어 자는 탁발행자가 되어 지리산 지역 사찰과 하나라도 더 인연을 맺음으로써 지리산권 불교계가 결속하고 도약하는 기틀을 만들고자 한다. 이 걸음으로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실현하는 지리산 큰 도량이 이루어지기를 발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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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묵 스님 ː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에서 근무했다. 이후 2000년 출가하여, 현재 실상사 화엄학림 연구과정(화림원)에서 연구원으로 공부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