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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정책론 43 쌀직불제와 까데기
2008. 12. 5. 나락 매상 까데기를 했다
이날 느낀 바를 여기에 기술한다. 6일 새벽에 잠은 깨어났으나 몸이 일어날 낌새가 없고 어제의 일을 기술해야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쉽지 않다. 어제의 일들이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현장의 생생함은 엷어져 갈 것이고 그러면 현장의 생동감은 없어지겠지, 이를 미루지 말고 조지자, 그래서 억지로 일어나 컴퓨터에 앉았다. 사이트를 열어보니 5일 눈이 많이 왔네, TV 아침뉴스에서는 서울지역 영하12도 체감온도 19도, 쌀직불제 부당 수령 고위공직자 122명이라는 뉴스가 나온다.
<사이트에 5일 날씨를 말하는데 다음과 같군.
5일 새벽부터 내리고 있는 눈으로 전북 대부분 지역에 대설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6일 오전까지 최고 15cm의 눈이 더 내릴 것으로 보여 빙판길 교통안전과 시설물 관리에 주의가 요구된다.
전주기상대에 따르면 5일 오후 9시 현재 부안 21.8cm를 비롯해 고창 20.2cm, 군산 16.7cm, 정읍 13.0cm, 전주 4.2cm의 적설량을 기록하고 있다.
기온도 크게 떨어져 장수 영하 9.6도, 임실 영하 7.8도, 익산 영하 6.7도, 전주 영하 6.5도의 분포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강한 바람이 불고 있어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다......
전북도교육청은 고창 20개 초등학교와 5개 중학교, 정읍 14개 초등학교, 김제 5개 초등학교, 부안 4개 초등학교 등 많은 눈이 내리고 있는 서해안 4개 시.군 48개 초.중학교에 대해 6일 하루 임시휴교 조치했다.....>
본 글의 제목부터.
본 글의 제목을 어떻게 정할까, 고심했는데 적절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것 할까, 저걸 할까, 어떤 제목을 정해야 한명이라도 더 볼까, 농업정책론은 네티젼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이니까,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농사를 생각하고 농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좀 더, 본 글에 접촉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 본 글의 제목을 쌀 직불제와 까데기라고 정했다.
1. 까데기 동기
휴대폰 전화기에 벨이 울린다, 아침 일찍 무슨 전화인고 싶어 전화번호를 보니 아는 번호 같은데, 목소리가 다른 사람인 것 같다. /누군교/ 내다. 이발소다/ 와요/ 오늘 뭐하노/ 비 올 것 같아서... 할 것이 있는교/ 비는 무슨 비 날씨가 좋은데/ 그런데 아침 일찍 와 카는교/ 한 건 해라/ 무신데요/ 태원이 하고 매상창고 해라/ 그라마 마누라한테 물어보고/ 전화해라 / 야/ 창고 일하러 갈까/ 야, 가보소, (마누라는 창고 일하러 간다니 아주 좋아 한다, 내가 죽는 줄도 모르고 )/ 내구매, 일은 일직 끝나는가, 얼마 안된다나 오후 일찍 마칠끼라/ 그라마 해보지/ 밥 문나/ 안 무심더/ 빨리 묵고 오너라/ 야/
마누라는 창고 일하러가는 것이 그리 좋은 모양이다. 창고 일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창고일의 세계도 모르고, 창고 일하는 인간들이 어떤 인간인지도 더더욱 모르지,
마누라는 아침밥을 훌딱 치리 준다. 찬거리야 있나, 김치하고 묵으면 되지, 작업복을 찾으니 어제 빨아서 마르지도 않았다, 헤어드라이기로 대충 말리고, 장갑과 모자를 준비하고, 가고 있는 중에 빨리 안온다고 독촉 전화가 2번이나 온다. 용역회사에 가니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용역회사라고 하지만 조그마한 사무실에 항상 5~6명 일꾼이 전부이다. 필요하면 일꾼을 더 구하겠지만 , 도시와 같은 그런 용역회사도 아니다. 쉽게 말하면 잡부들을 알선하는 청도의 유일한 일꾼 알선 업체다. 본 회사 사장은 동갑내기로 평소 잘 알고 있는 사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연락을 하지 않고 이발소 사장을 시켜 연락했고 그래서 까데기를 했다. <참고로 까데기 어원은 잘 모르겠다, 일본 말인지, 경상도 사투리인지, 지금까지 이런 사투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까닥 까닥 메고 올라가니까, 까데기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2. 매상 농협창고 현황
5일이 청도군 벼 수매 마지막 매상이라고 한다. 장소가 청도군 이서면 농협 창고다. 매상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농민들이 나락가마니를 쌓아 놓고 우두커니 기다린다. 창고 마당과 도로에 나락가마니로 꽉 찼다. kimsunbee가 70년대에 나락 매상되고는 지금까지 매상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뭔가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했지만 다를 바가 없더라. 다른 것이 있다면 70년대에 막걸리 판이 지금은 소주나 커피, 오뎅과 오뎅국물과 그릇이 일회용기구로 바뀌어 있더라.
콤베어를 준비하는데 잠바를 입은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한다. 뭔가 지시를 하는지, 관심을 보인다. 마치 멧돼지 같은 사람인데 안면이 있다. 나중에 보니 사람들이 조합장이라고 하더라. 전에 청도농협에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안면이 있다. 까데기 주제에 조합장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할려니 그렇고 또 인사할 마음이 내키지도 않더라. 조합장이라는 높고 높은 존재인데 人生 파치 까데기가 손을 내밀면서 인사하면 안되지. 선천적으로 인사성이 없는 사람인지, 까데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그러니까 아침 현장에서 여러 번 부딪힌는데도, 전혀 아는 기색이 없다. 정말 모르는 것인지, 98년부터 2005년 12월 사이에 조합장은 청도에 근무했는 것 같은데, 사람은 보통 낮설은 사람이라도 눈이 마주치면 목례를 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조합장은 전혀 그런 것이 없더라. 이것은 까데기 kimsunbee에게는 아주 마음 편한 것이다. 나를 안다는 것은 아주 불편한데, 몰라주니까 얼마나 좋은가. 하루 종일 일하는 과정에 kimsunbee를 알아주는 사람은 단 한사람이 있더라, 이 퇴직 공무원은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다. kimsunbee가 까데기 하는 것을 알아 봤는 모양인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인사를 안 할 수는 없고, 목례로 답했다. 그러자 그분도 목례로 답한다. 평소 같으면 김사장 왔나 하면서 반갑게 인사할 사이인데 이게 뭐고. 인사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이것이 人間 死角地帶에 사는 삶의 현장이다.
3. 入庫 方法
70년대에는 검사원이 검사한 나락을 동네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락 나락을 입고시키는데, 어께로 일일이 메고 시킨다. 창고 높이가 아주 높은데 나중에는 다리가 떨려서 잘 올라가지 못한다. 그랬는 것이 지금은 콤베아로 올린다. 이것이 30여 년 동안에 변했는 것이다.
5일 우리 까데기들이 하는 일은 조합 마당에 있는 나락을 콤베아로 옮기고, 콤베어 담당자는 나락포대기를 콤베어에 올리면, 나락을 쌓는 까데기는 차곡차곡 쌓는다. 그러니까 6인이 필요하다. 6인이 필요한데 오늘 한 사람이 빠졌다. 그래서 kimsunbee가 보충되었다. 까데기도 아무나 하나, 자기 밥통이 있는데, 운좋게 kimsunbee가 하루 일자리를 구했지...
나와 가장 나이가 많은 한분이 한조가 되어 조합 마당에 있는 나락포대기를 콤베어 까지 운반하는 것이 이날 임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장 힘드는 일이였다.
4. 벼 검사(나락 검사)
건량검사 중량검사를 마치고 등급판정 검사를 하고, 倉庫長의 入庫 검사(싸인)이 떨어지면 입고를 시킨다. 검사원이 싸시를 찌르고 등급 판증을 하면 보조원이 등급 도장을 찍는다. 이날 등급 도장 찍는 사람이 여자분이더라,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하는 것인데 추곡수매현장에 女子라.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그러니까 女人天下라했는가!
나중에 보니, 이 검사보조원 여자 분이 소나타 흰색 승용차, 새 차를 몰고 퇴근하더라. 내가 보기엔 새 차이더라. 어느 까데기가 하는 말이, /검사 보조원이 여자인데 쏘나타 승용차 몰고 다닌데이/, 빽이 있군만,/ 보통 사람이 하나,/ 신랑은 뭐하는고,/ 직장에 다닌다고 하던데,/ 야 대단하다./ 쏘나타 몰고 다니면서 돈벌이 하고 보통사람들은(농촌에서는) 상상도 못하는데,/ 까데기들은 부러워한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아니 청도군수라도 되면, 아니 군의원이라도 되면 이런 아줌마보다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검사 보조원으로 시키겠다, 다만 한 푼이라도 가난하고, 없는 사람이 벌어먹게 하는 것이 좋지 않나?. 검사원 따라 다니면서 나락 PP포대기에 도장 찍으면 되는데, 여기에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또 검사는 오전 중에 끝이 난다, 간혹 오후에 마친다고 하더라도 1시 2시면 마친다. 그리고 수당이 5만원인지 6만원인지 모르지만 오전에 PP포대기에 도장 찍고 5만원이면 괜찮지 않나.
5. 벼 검사 방법을 수정하라.
현재 벼 수매 검사하는 방법은, 농가의 수매 물량을 농협공판장 마당에 진열하고 검사를 한다. 이것은 일제시대부터 시행한 방법이다. 일제시대에는 공출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 당시도 농협창고나 일정한 장소에 모아 놓고 공출 했다. 일제시대부터 시행한 벼 수거 방법이 아직까지 개선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행하고 있다. 세상이 얼마나 변했나. 그런데도 농촌은 이지경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본 자가 있을까.
한 가지 건을 예를 들어 볼까.
11시쯤이 되었을까 2.5t 트럭에 한 차가 들어왔다. 이 때 입고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 차의 나락 포대를 하차하여 검사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농가도 불편하고 까데기들도 불편하고 모두가 어렵다. 그러므로 차상에서 검사를 하고, 바로 하차 하면서 콤베어에 올리면 서로가 아주 편리한데 이게 되지가 않는다. 그래서 농가에게 검사원에서 차상으로 검사를 해주도록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워낙 오랜 관습이 불문율처럼 굳어져 있어서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타 지역에서는 수년 전부터 수매량이 많으면 검사원이 농가에 방문해서 검사를 하고 그 후에 창고에 입고를 시킨다. 이것은 수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청도는 이렇게 하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6. 벼 등급 검사는 공정한가.
농민들은 자신의 벼(나락)이 공정하게 검사가 되는지 궁금할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는 공정하게 검사되고 있더라. 그러나 청도군 농산물 검사소에서 나온 검사원은 공정하고 정확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검사원이 젊은 사람인데, 검사원은 상당한 오랜 경험이 요해진다. 하루에 수천 가마니를 검사하는데 정확하게 하겠나 하는 우려가 있다. 물론 교육도 많이 받았겠지만. 요사이 수매 등급이 특, 1등 2등, 뿐이니 검사하긴 수월하다. 과거는 1등, 2등, 3등, 등외 이였는데,
7. 까데기들의 일하는 모습은
나락 가마니가 멀리 있으면 구루마에 끌고 온다지만 가까이 10m 이내 것은 어께에 울러메고 콤베어에 올리도 되는데 고집스레이 구루마로 이동을 한다. kimsunbee가 답답해서 나락가마니를 들고 다녔다. 그러자 다른 까데기들도 따라한다. 조그만 떨어져 있어도 구루마로 이동을 시키는 오늘날의 까데기를 보니 타성에 젖어 일은 한다. 40kg 나락가마니 정도는 어께로 메면 아주 수월한데, 농사일은 어께로 메거나 등으로 짊어지면 일하기가 수월하다. 그 옛날의 까데기들은 지금 나이가 70대 80대들이다. 세월이 가니 그때 까데기들은 죽거나 나이가 많아서 까데기 노가다 장에서 사라졌고 이제 그 후계자 까데기들이 일을 한다. 선배 까데기들이 현재의 까데기 들을 보고 뭐라 하겠나. 요사이 까데기 일은 일도 아니다고 하겠지. 사실상 옛날보다가 수월하다.
8. 쌀직불제와 매상
정국은 쌀직불제도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 고위직 공직자 122명이 부당수령했다. 이명박 정부는 이들에게 철퇴를 내릴 결정을 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명박 정부로서는 철퇴를 내리지 않을 수 없고, 또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다. 그러나 그 파장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농민들은 부당 쌀 직불금 수령자들을 죽일 놈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에게 동정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부당수령자들도 다 사정이 있겠지, 얼토당토 않게 수령했겠나. 고로 부당하게 수령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자!, 공직자들이 아닌 자영업자나 도시의 돈 있는 자들이 쌀 직불금을 수령한 것에 대하여는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남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빼앗아 오기가 어려울 텐데, 이명박 정부의 솜씨가 기대 되는군.
9. 농가의 벼 매상 수입
농협창고 마당에 쌓아놓은 벼 가마니(PP포대기)는 농가 마다 수입이 얼마나 될까. 가마니 수는 농가마다 몇 가마니일까. 가마니 수가 농가 수입이다. 대강 보니 10가마니 20가마니는 잘 없고, 50~100 가마니가 대부분인 것 같다. 한 사람은 5t 차에 싣고 왔는데 대관절 몇 가마니인지, 가장 많이 가지고 왔다. 아마 300~400가마니는 될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실제로 계산해보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다. 이 양반은 이 지역에서는 유지인데 소도 많이 먹인다.
우리 농촌은 어렵다, 우리 농민은 불쌍하다라고 하지만, 추곡매상 현장을 보라 농민들 호주머니에 돈이 철철 넘친다. 매상 나온 농민들 춥고 가난한 사람 있는가 찾아 봐라 단 한사람도 없다. 이것은 사실이다. 본 글을 읽는 분은 믿지를 못하겠지. 이 분야에 대하여 언젠가 자세히 기술 할 날이 있을 것이다. 지금 농민들은 부자다, 도시의 근로자들이 부럽지 않다. 이런 농민들을 도시에 가라고 하면 가지 않는다. 왜냐고 농촌에 사는 것이 더 좋은데 왜 도시에 가나.
나락 100 가마니이면 한가마당 5만원으로 계산하면 5백만원이다. 200가마니이면 1,000만원이다. 400가마니이면 2,000만원이다. 이것이 적은 돈인가. 또 농가가 이것 밖에 농가 수입이 없는가. 지역마다 나락 이외 수입이 있다. 청도군의 경우는 복숭아, 감이 주요 농산물이고 콩, 팥, 고추, 참께, 하우스 작물, 등등 부속 농산물이 있다. 그러니까 농촌에 자가용이 없는 농가가 없다. 자가용이 없는 농가는 나이가 많아서 운전면허가 없기 때문에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정부가 쌀소득 보전 운운 하지만 농민들은 소득 직불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경작 면적 확대가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 하면 농민 1인당 쌀 경작면적을 많이 확대시켜 주겠나하는 것에 농업정책을 세워야 한다. 농산물은 경작 면적이 국제경쟁력을 좌우한다.
10. 이명박 대통령은 산물 수매를 확대 하라.
산물 수매를 확대 하면 까데기들이 일자리는 없어지겠지만 농민들은 아주 좋다. 2008년도 산물 수매량이 대폭 줄고 건조매상이 늘었다고 한다. 산물수매는 매상가격도 적다고 한다. 그러니까 농가에서는 가격이 좋은 건조매상을 선호 한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는 산물 수매 가격을 건조 수매 가격으로 인상하고, 농가 희망 수매 물량, 전량을 산물 수매하라. 이것이 쌀소득직불제도 보다 훨씬 좋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농림부 미곡정책담당자나 건조매상이 농민들에게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조금이라도 농민의 고충을 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반드시 산물 수매를 해야 한다.
산물수매를 모르는 독자를 위하여 간단한 설명
산물 수매는 논에서 콤바인으로 타작한 즉시 바로 미곡 창고에 입고시킨다. 그 창고는 거대한 벌커인데 여기서 마르지도 않은 벼를 건조시킨다. 선진국에서는 모두 이렇게 곡물을 보관 처리 한다. 산물수매는 농민들에게 아주 편리한 것이다. 농민들의 말에 의하면 쌀 소득 직불제가 나오고 건조매상과 산물매상과 가격차이가 있다고 한다. 쌀소득 직불제 이전에도 건조와 산물의 가격 차이는 있었는데 그 가격 폭이 크지 않았다. 또 쌀직불제 실시 이후 산물 수매량도 줄었다고 한다.
건조 수매를 하면 일손이 많이 간다.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서는 아주 힘드는 것이다. 최근에 농가에 벼 건조기가 보급되어 있는데, 건조기가 있는 농가는 대농가들이고 대부분 소농가들은 벼 건조기가 없다. 1년에 한번 사용하는 벼건조기를 구입하는 것도 농가로서는 무리다.
11. 나락가마니에 농민의 精誠이 있다.
수천가마니를 만져 보니, 가마니마다 농민의 성격과 정성이 묻어 있더라,
1) 인상적인 가마니는 쥐구멍이 있는 부분을 헝겊을 대고 기웠다.
수천가마니 중에 유일한 단 한 개의 가마니다. 기운 솜씨도 촘촘하게 기웠다. 이 정도 솜씨라면 70대 후반이나 80대 할머니 솜씨가 아니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솜씨다. 지난날 어머님이 이렇게 하셨는데 나는 당시 불만이 많았다. 왜 이렇게 하느냐고 새 포대기를 사용하면 되지, 당시는 이러한 포대기가 종종 매상에 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포대기는 없는데, 이 집은 어떤 사정이 있는지 이런 가마니가 출시되었다. 이 날 매상포대기에 “본 PP 포대기는 청도군에서 무상으로 지급한 것입니다” 라고 기록 되어 있었는데 본 농가에서는 이런 혜택을 받지 못했는지, 이날 매상 포대기를 보면 청도군에서 무상으로 지급한다고 기록된 포대기도 있고 그렇지 않은 포대기도 있더라, 그러나 청도군에서 무상으로 지급한다고 기록된 포대기가 많더라. 이 무상 포대기는 어떻게 해서 공급되었으며, 왜 모든 매상가마니는 청도군에서는 지급된 PP포대기가 아닌지 모르겠다.
2) 벼 품종이 화영 벼인데 하연 벼라고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을 초등학교 1학년 글씨체도 있다.
이것은 농가의 어려운 점을 말해주는데 이웃에서 도와 줄 수도 있는데 농촌의 인심이 말이 아니다. 이웃에 부탁하려니 힘이 들고, 못 쓰도 내가 쓰자. 도시인들이 잘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그것 정도는 하시겠지. 그러나 농촌의 사정은 다르다, 글자 한자 부탁하는 것도 어렵다.
3) 명필도 있었다.
포대기에 쓰여져 있는 글 솜씨는 먹물을 좀 많이 먹은 솜씨다. 포대기에 몇 자 적는 것이지만 예쁘게 쓰려면 정성스럽게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씨가 흐트려 진다.
4) 이름을 꼼꼼하게 쓴 글씨,
자신이 직접 쓴 글씨인지 자녀분들이 쓴 글인지 모르지만 글씨체가 가늘고 꼼꼼하게 쓰여 있다. 이분은 매상가마니를 가장 많이 가져 나와 까데기를 골빙들게 했다?
청도군에서 가장 대농가이신 분의 성격이 이러 하신 모양이다. 본인이 썼든지 자녀분이 썼든지, 일꾼이 썼든지. 누가 썼든지 세심하다. kimsunbee가 생각하기론 본인이 썼다고 생각된다.
가마니 이름을 보니, 아는 사람이름이 많이 눈에 뛴다.
12. 벼 수매 가마니 하차에 농협은 인부를 동원하라.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인이 소형 화물차로 세 번이나 나락가마니를 실어 나르는데 아무도 하차를 도와주지 않는다. 나도 손이 아파 일하기도 어려운데 사정이 딱하여 하차에 도와주었다. 일면식도 없지만 그냥 있을 수가 없더군, 오늘날의 인심이 왜이런지. 소형화물차 노인이 인심을 잃었나, 이 지역 농민들이 각박한가.
노인이 혼자 하차하는 것과 같이 농가에서는 농협창고 마당까지 운반 하는 것도 어렵지만, 농협창고 마당에 하차하는 것도 어렵다. 예컨대 가마니를 200~300가마니를 가지고 오는 대농가는 대농가대로 어렵고 20,30가마니를 가지고 오는 소농가는 소농가대로 어려움이 있다. 또 농협창고에 많은 경운기와 화물차가 들어오면 교통도 혼잡하다. 그러므로 농협창고 정리하는 인부가 필요하다.
이 날 매상가마니가 3000여 가마니인데 농협창고 정리 인부 4명이면 충분하다. 농가 하주가 도와주므로 5인이 되는데 이 정도 인부라면 충분하다. 그러면 농가에서는 아주 수월하다. 인부 4명 인건비는 6~7만원이면 된다. 창고마당 정리는 보통 오전 12시에 대부분 마친다. 이 날 매상은 오후 2시경까지 들어 왔지만, 간혹 2시까지 수매물량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인건비 6.7만원은 괜찮은 보수다.
4명의 인건비가 24~28만원인데 농협에서 이 정도 돈도 없는가. 농협이라는 곳은 오랜 타성이 젖어서 개혁이라는 것은 모른다. 관행적으로 내려오는 그대로 답습할 뿐이다. 조합장 연봉이 1억~1억2천만 원이라고 하는데, 조합장은 이런 곳에 돈 좀 쓰지, 술집에 가서 술판이나 벌이지 말고, 아가씨한테 팁 주는 것은 아깝지 않제, 조합장 정도 되면 술값이나 내나, 얻어먹기나 하지. 천지비까리가 공짜 술이니까. 농민들은 뭐하는지 모르겠다. 조합에서 이 정도 인건비를 보조 하라고 말도 못하나. 그것도 그렇겠지 조합장 선거 할 때 마다 10만원씩이나 받고 꼭꼭 찍어 주었으니까 할 말이 있나.
아이고 답답한 농민들아!!!
마치면서
날씨가 너무 차다.
아침에 눈이 내려 나락가마니위에 쌓였다. 쌓여 있는 눈을 치워 가면서 입고시킨다. 눈이 오락 가락한다. 눈이 오지 않으니 바람이 차다. 오후에는 눈이 멎었는데 차가운 바람을 막아줄 방패막이도 없는 허허 벌판이다. 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갖을 찢어낸다. 이야 오늘 죽었구나, 하루 일을 끝마치겠나. 걱정이 앞선다. 아침에 차를 가지고 오려다. 까데기가 차를 2대나 가면 뭐하나 기름만 축네지 하며 그냥 가자고 해서 왔는데, 이제 오도 가도 못하고 잡혀 있을 수밖에, 아침에 마누라한테 차비를 받아 왔는데 도저히 못하겠으면 차타고 오란다. 그러나 차를 타려고 해도 차타는 곳에 가려면 걸어 가야하고 도시 같이 차량을 쉽게 잡지 못한다. kimsunbee는 죽었데이~~~.
창고 마당에 널려있는 나락가마니는 까마득하고 해는 서산으로 넘어간다. 바람은 더욱더 차다. 창고 마당에 아직도 1,000여 가마니가 있는데 이것을 언제 다 入庫 할꼬. 해가 서산에 넘어갈려니 저녁참이 왔다. 저녁이라야 잠뽕 곱빼기다. 다 퍼져 버린 짬봉 한 그릇을 먹고 쉴 틈도 없이 일을 한다.
손가락이 자그랍다. 오후 3시 경부터 지게차가 왔는데 장비가 오니 더 바쁘다. 빠렛트에 나락가마니를 얹져 놓으려니 죽겠다. 장비가 오니 쉴 틈도 없다. 등골이 아프기 시작하고 해가 넘어가니 엉침이도 아프다. 차가 있다면 너거들이 하거나 말거나 가버릴 것인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지게차는 쉴세 없이 삑익삐익 하면서 들어 닥치제 여기에 따라가려니까 죽겠다.
콤베어 조정한다고 잠시 시간이 있었다.
/어르신 집이 어덴교/ 관하이구메 상방천, 나도 이런 일 처음인데 와보니 다시는 안 할란다./ 아, 그런교, 나이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62이다, 부산에 있다가 고향왔다, 오늘 일찍 끝난다 하길레 왔는데, 일마치고 부산에 갈려고 했는데 잡혔다, 이 사람들은 원래 일이 쉽다고 한다./ 그럼 여기에 혼자 사는교/야, 마누라가 청도에 오지 않으려 한다, 와 봤자, 친구도 없다, 다 노인들 뿐이니/ 그르시겠지, 도시에 살다가 촌에 살라 하겠십니꺼/ 이사람들(까데기들) 말이야 노가다 맛을 보지 않아서 그렇지 노가다 맛을 보면 이런 일 안한다. 이것도 돈 이가. 이토록 중노동은 요사이 없다, 모두 장비로 한다, 이토록 늦께하면 최소란 20만 원 이상이고 경우에 따라 30만원 준다. 내가 시내에서 철근을 했는데 일도 수월하다./ 그렇지요, 평소 하는 일은 쉽겠지만 하지 않은 일을 하려면 얼마나 힘듭니까, 내야 죽겠십더, 우리 가버릴까요 저들이 하거나 말거나, 이미 해는 떨어졌고,/ 앞으로 안 볼 사람도 아니고, 시간이 있어서 푼돈 벌일려고 왔더니 무슨 일이 이런노/
나는 이 노인이 나이가 아주 많은 줄 알았다. 철근 노가다 출신이라서 그런지 나이가 많이 보였다. 나이로 봐서는 어르신이라고 하기 보다가는 형님이라고 불러야 적당하겠다. 그러나 아직 情이 덜 들어서 다소 거리감은 있다. 자주 만나면 변하겠지.
하늘에 별이 보이고 길에는 인적이 끊겨버렸다. 창고 마당의 가로등은 차가운 겨울날씨에 웅크리고 떨고 있는 나를 비출 뿐이다. 창고마당에 퍼져 버린 나의 초라한 모습, 뭐라 묘사할까. 밤은 점점 깊어가고 사방이 조용하다, 학생 하나가 지나간다. 공부하고 집으로 가는 것이다. 나에게도 학창 시절이 있었지. 저 때가 얼마나 좋았나. 다 지나간 시절의 옛 이야기지.
매상가마니를 다 입고시키니 밤 9시 36분이다. 창고 정리를 하니 10시다. 오늘 하루 우리가 한 일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나 싶어 창고에 들어가 보니 나락가마니가 창고 지붕까지 까마득하게 쌓여 있다. 3층 높이다. 우린 이것을 위해 하루 종일 일했다. 매상 마지막 날이라서 일이 더디다고 한다. 처음 매상 입고 할 때는 창고가 비어 있으니까, 入庫 하기가 쉬운데 마지막 매상은 입고하기가 힘든다고 한다, 벼 품종별로 입고를 시킬려니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오늘 입고란 량은 3,328 가마니, 이것 모두kimsunbee 손을 거쳐 갔다.
일을 마친 후에 마누라가 전화 왔다, / 아직 일 안 마친는교/ 인자 마쳤다/ 언제 오는교/ 좀 있어야 한다. 정리 좀하고/ 아이들도 기다리는데, 아빠가 돈 벌이로 갔다고 좋아 하는데, 어른도 그렇고, 돼지고기 싸났으니 빨리오소/ 오야/ 마누라가 일하러 갔다고 돼지고기 쌌단다.
집에 오니 10시 30분이다. 마누라한테 일한 갈고리를 선물로 주었다.
6일, 7일, 이틀 동안 방안에 틀어 밖혀 있다.
어디 갈 곳도 없고, 오라고 하는데도 없다.
2008. 12. 7.
人間 死角地帶에 사는 까데기 kimsunbee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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