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7월 허허벌판의 포항에 신화는 시작되었다.
1968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세계은행 IBRD조사단 방문후
"한국의 철강산업은 시기상조다."
"외화부채가 너무많아 머지않아 부실기업이 될꺼다."
"건설부지 마련을 위해 바다를 메우는 일은 환경파괴하는 행위다."
KISA-세계은행(IBRD)으로부터 차관제공과 기술이전의 거부통보.
야당들 또한 이와같은 논리로 반대하였다.
"철은 산업의 쌀이다" 이라며 반대를 무릎쓰고 강력히 추진.
1969년 12월3일포항제철 건설 자금을 위해 체결한 한일협약.
대일청구권자금의 잔금(8,000만달러)
우리 조상들의 피로써 받아낸 자금 8000만달러.
1970년 4월1일 역사적인 포항제철 1기 설비공사가 시적된다.
맨왼쪽에 박태준 중앙에 박정희
허허벌판뿐인 포항 영일만... 차라곤 달랑 버스 한대뿐인 살골오지
포항제철의 진두지휘를 맡은 롬멜하우스에서 박정희. 롬멜하우스라는것은 사막에서
기적의 승리를 일으킨 세계2차대전때의 명장 롬멜의 이름을따서 우리도 허허벌판인 포항
영일만에서 기적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명명된 이름이다.
조상들의 피로 얻은 돈...... 조상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기위해 실패하면 우측방향의
영일만으로 뛰어 들자던 우향우정신.......
1973년 6월9일 숱한 난관끝에 제1고로 완성..
1973년 7월3일 첫 출선식때 환호를 부르는 포항제철 직원들..
1979년 5월31일 제2고로 때 회입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현포스코 명예회장.
영일만의 포항제철은 우리나라의 산업혁명의 본산지가 되었다. 영일만의 기적이라 할 수
있다. 현대건설로 시작한 정주영 회창의 철의 신화도 포항제철로 부터 시작된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한국의 산업혁명의 도도한 물줄기는 울산의 화학, 조선, 자동차,
거제의 조선, 창원의 종합기계, 광양의 제철, 여천의 화학 등 굴뚝을 높이 세움으로써 이곳
동남해안공업벨트는 철을 이용하는 중공업과 화학공업의 본산지가 되었다.
1986년 포항제철(posco)과 정부에서는 이공대 우대정책의 일환으로 POSTECH(포항공대)
를 설립힌다. POSCO의 POS와 TECHNOLOGY의 TECH를 합쳐서 POSTECH으로 명명지었
으며 박태준 명예회장의 업적을 기르기 위해 그의 호 "청암"을딴 청암도서관을 지었다.
현대 포항공대는 서울대, 카이스트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공과대학으로 우리나라 이공계를
책임지는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1988년 6월10일 일제치하의 피의 댓가로 얻은 포항제철은 그 설립과정을
존중하면서 정부주식을 국민에게 파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민주1호로 상장되었다. 모든주식은 개인들에게 공모되었다.
1992년 10월2일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일관제철소 4반세기만에 달성..
2010년 현재 삼성전자에 이은 우리나라 2번째로 큰기업
분기별 영업이익 안정적인 1조원을 달성한 수 있는 기업
워렌 버핏도 투자한 기업
세계5위의 종합체철기업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
포항제철 명예회장 청암 박태준.
포항제철 역사를 만든박태준(박정희대통령 영전드리는글)
각하!
불초(不肖) 박태준, 각하의 명을 받은 지 25년만에 포항제철 건설의대역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삼가 각하의 영전에 보고를 드립니다.포항제철은 '빈곤타파(貧困打破)와 경제부흥(經濟復興)'을 위해서는 일관제철소 건설이 필수 적이라는 각하의 의지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그 포항제철이 바로 어제, 포항, 광양의 양대 제철소에 조강생산 2,100만톤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4반세기에 걸친 대장정(大長征)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몸 희생활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말고 맡아!' 1967년 9월 어느 날, 영국출장 도중 각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온 제게 특명(特命)을 내리 시던 그 카랑카랑한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그 말씀 한마디에, 25년이란 긴 세월 을 철(鐵)에 미쳐, 참으로 용케도 견뎌왔구나 생각하니 솟구치는 감회를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형극과도 같은 길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일이 없는39명의 창업요원 을 이끌고 포항의 모래사장을 밟았을 때는 각하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자본과 기술을 독점한 선진철강국의 냉대 속에서 국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한숨짓기도 했습 니다. 터무니없는 모략과 질시와 수모를 받으면서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 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각하의 불같은 집념, 그리고 열세 차 례에 걸쳐 건설현장을 찾아주신 지극한 관심과 격려였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립니다.
포항제철소 4기 완공을 1년여 앞두고 각하께서 졸지에 유명(幽明)을 달리하셨을 때는 '2,000만톤 철강생산국'의 꿈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가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철강입국(鐵鋼立國)'의 유지를 받들어 흔들림없이 오늘까지 일해 왔습니다. 그 결과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거대 철강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우리 나라는 6대 철강대 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각하를 모시고 첫삽을 뜬 이래 지난 4반세기 동안 연 인원 4천만명이 땀흘려 이룩한 포항 제철은 이제 세계의 철강업계와 언론으로부터'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기업으로 평가받 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제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필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이순간, 각하에 대한 추모의 정만이 더욱 새로울 뿐입니 다.
"임자 뒤에는 내가 있어. 소신껏 밀어 붙여봐"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신 각하의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생각하면서 다만 머리숙여 감사드릴 따 름입니다.
각하!
염원하시던 '철강 2,000만톤 생산국'의 완수를 보고드리는 이 자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던 근영·지만군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녀분들도 이 자리를 통해 오직 조국근대화만을 생각하시던 각하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 기며, 각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더욱 성실하게 살아갈것이라 맏습니다. 저 또한 옆에서 보살핌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
각하!
일찍이 각하께서 분부하셨고, 또 다짐드린 대로 저는 이제 대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잔정한 경제의 선진화를 이룩하기에는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 습니다. '하면 된다'는, 각하께서 불어넣어주신 국민정신의 결집이 절실히 요청되는 어려운 시기입니다. 혼령이라도 계신다면,불초 박태준이 결코 나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25년전의 그 마음으 로 돌아가 '잘 사는 나라' 건설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굳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불민한 탓으로, 각하 계신 곳을 자주 찾지 못한 허물을 용서해 주시기 업드려 바라오며, 삼가 각하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안면(安眠)하소서!
1992년 10월 3일 불초(不肖) 태준(泰俊)올림
<1992년 10월 3일 故 박정희 대통령 묘소
이짤을 널리......
카이스트.swf
첫댓글 ㅜㅜ 진짜 이런거 보면 박정희가 대단하긴하다...
살아있다면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 의외로 인간적인 면도 있을듯
ㅇㅇ 인간적이얌. 가카도 남자인지라 여대생들 맨날 만나서 고추질 함.
요즘 왜 훌천에 박정희 찬양자료들이 자꾸 올라오지?
가..가카!!
누가 이거좀 알싸 사진방에 퍼가주면 안되냐 나 아까 청계천 올려갖고 이번에 또 퍼가면 또 논란의 소지가 될듯
아 역시 댓글을 안달 수가 없습니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상징 포항제철.............. 이것마저 가....카게.......서 ................
박통은 진리
가카 ㅠㅠ 영일만에 빠져죽자던 저 각오 ㅠㅠ
근데 박정희는 양복 핏이 왜케 잘나오냐?
222222 진짜 키가 난쟁이 라ㅣ던데 양복핏 개쩜 ㅋㅋㅋㅋㅋㅋ
이거 노래 머에요?
마지막에 카이스트 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각카 까면 즉결사형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아오~ 짱
가카....
간지
휴... 진짜 인정!!
박정희 싫긴 하지만 인정할건 해야제.
박정희가 인간으로 못할짓도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 물건이긴해.
하지만 프리맨이 출동한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