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네가 시를 쓸 때 / 정희성
친구여, 네가 비시적(非詩的)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곳에 뜨겁게 으스러진 나의
삶이 있고, 굶주린 식구가 있고
노동이 있고
그리고 억센 팔뚝뿐이다
삽과 망치뿐이다
아니다 친구여, 너의 정의(正義)가 사는 곳
이 푸른 하늘 아래
뜨거운 태양이 있고, 땅이 있고
너와 나 그리고
햇빛 뒤에 패어진 그늘도 있다
친구여,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
침묵 뒤의 소란이,
정신 뒤의 육체가,
우정 뒤의 적의(敵意)가,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한때는 너와 내가 만나
시(詩)를 말하고 인생을 논하고
정치(政治)를 말하고 자유(自由)를 말했지만
친구여, 30을 넘어 이제는
나이보다 더 많은 것이
우리를 가로막는구나
친구여, 네가 시(詩)를 쓸 때
나는 굶는 식구를 생각했고
네가 시(詩)를 쓸 때
나는 죽음을 생각했다
네가 천국(天國)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나는 죽음 뒤에 오는 것을 생각하며
네가 내민 손수건을 눈에 대고
울며 너더러 개새끼라 했구나
내가 너더러 개새끼라 했구나
카페 게시글
┌………┃추☆천☆시┃
친구여 네가 시를 쓸 때 / 정희성
빗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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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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