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변 양 섭
십 오륙 년 전만 해도 우리 집엔 시계가 많지 않았다. 지금은 너무 흔해
서 방, 부엌, 심지어 욕실까지 벽시계며 앉은뱅이 시계까지 없는 곳이 없
다. 한 곳에 두세 개까지, 그것도 농 위에 얹혀 쉬고 있는 것 도 있고, 서
랍 속엔 또 손목시계가 몇 개씩 주인을 기다리며 들어 있다. 내가 산 것은
아니고 어찌 하다 내 손, 우리 집에 까지 온 걸 보면 아무튼 흔하긴 한가
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있는 집 아이들이나 몇 명 손목시계가 있
었고 난 겨우 대학 합격했다고 입학 축하 선물로 받을 수 있었는데 말이
다.
어느 날부터 인지 시계가 하나씩 잠을 자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각자 자기의 사회생활로 내 곁을 떠나고 어쩌다 토요일 오후에 와서 일요
일 밤이면 떠나곤 하다 보니, 시계가 잠을 자고 있어도 별 관심을 갖지 않
고 있었다. 하나, 둘, 잠재우다 보니 제 기능을 상실하고 거실과 나 쓰는
방에서만 시계는 하염없이 돌아가고 있다. 끝없이 돌아가는 세월을 대변
이라도 하듯 결코 시간은 멈추지 않음을 일깨워 주듯 재깍재깍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때로는 이 세상 모두가 잠든 고요 속에 시계소리는 내가 살아 있음을 일깨
워 주면서 그렇게 하염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벌써 잠자는 시계가 늘기 시
작한지 꽤나 오래 되었고 잠 든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버린 것 같다, 아
마 그 동안 나의 생활은 이 시계의 멈춤처럼 나태 해 지고 생의 향기를 잃
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무관심하기만 했던 멈춘 시계가 오늘 아침, 갑자
기 눈에 들어와 내 마음을 잡아끄는 건 잠자는 나를 흔들어 깨우듯 나를
깨워주고 있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잘 못 된 시간을 맞추며 정석대로 맞추기도 하지만 때로는 역으로
돌려 맞추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세월의 뒷걸음질을 생각 해 보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다.
세상 부러운 것 없이 꿈 많고 희망으로 가득 찼던 학창 시절엔 어서 어
른 공부에서 벗어났으면 좋았었고, 마음껏 놀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희망 사항이었다. 교복에 억 매인 자유보다는 사회인이 되어 자유로운 모
습으로 서 있는 내 앞의 선배님들이 언제나 부럽기만 했었다. 그 들의 거
리낌 없는 자유와 성공 여러 가지 것들이
점점 나이를 먹으며, 나의 생각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선배님
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아주 먼 학창 시절이 그립다. 그냥 부모님께 나의
모든 걸 맡기듯이 돈이 필요하면 주세요, 하면 됐었고, 때 되면 해 주시는
밥 먹으면 되었으니 얼마나 편했었던가? 아니, 학창시절 까진 아니어도
좋다. 단 몇 년, 한 십 년이라도 뒤돌아 젊었더라면 나는 뭔가를 해 볼 수
도 있을 텐데, 란 막연한 생각도 해 보게 되고,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되
돌아가게 되면 그렇게 하기 싫었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다, 란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가는 세월 붙잡히지 않을 뿐 더러 되
돌려 지지는 더더욱 않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비단 나 뿐 아니라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는 말한다. 나이
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 생각은 더 한 것 같다. 지난날의 아쉬움 때문에,
난 그 나이에 무얼 하고.... 아쉽고 허송세월을 보낸 듯 가슴아파하게 된
다.
아! 있구나, 내가 얻은 뚜렷한 결과 아이들 모두 공부를 마치고 사회의 일
원으로 건실하게 내 보냈으니 얼마나 큰 성과인가? 어느 날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 내 손에 용돈 쥐어주며 “어머니 기분 좋으시죠?
부자 된 기분이시죠?”줘 놓고 기뻐하는 아이들 보며 너희들은 알까? 내
가 부자인 것은 너희들이 준 용돈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인 것을, 너희들이
나의 보배인 것을......
언제나 내가 주었던 용돈을 너희들에게 받고 있으니 아마 세상엔 공짜란
없는 모양이다. 그런 걸 보면 누구에게 던 내가 능력 있고 있을 때 열
심히 도와주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어떤 일이던지 봉사의
일이던 희생을 요구하던 일이건 아낌없이 주어야 하겠다. 꼭이 받기 위해
서 라기 보다는 누군가의 호의를 받을 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
다.
이루어 질 수 없는 허황한 생각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학생 때처럼 선배
님들을 보자, 아마 네 나이만 되었어도 라며 선배님들은 또 날 부러워들
하시겠지? 이제 선배님들을 보며 위안을 삼자, 그리고 선배님들의 아름다
움을 보자, 곱게 늙어 온화하고 품위 있으신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아
름답게 연륜 쌓아 남들이 느끼기 인자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거부감 느
끼지 않게 나의 삶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꾸며 나가자, 십 년 후 나의 모습
이 행여 남들 앞에 꼴사나운 모습으로 초라해 지지나 않을까? 어떻게 하
면 나도 저렇게 깨끗하게 늙어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 갈 수 있을 까? 걱정
도 해 가면서 말이다. 벌써부터 늙어 가는 모습에 생각이 끌려가다니, 할
일이 어지간히도 없나보다. 순리대로 돌아가야 할 시계 굶겨 놓고 이게 무
슨 푸념이람?
안되겠다. 오늘은 화장기 풍기며 멋진 옷으로 몸단장하고 시계의 먹이를
좀 사다 주어야 하겠다. 그래서 어느 방 어느 곳을 가던 정겹게 재깍거리
며 내게 시간을 일깨워 주도록 만들어야 하겠다. 나의 활기찬 모습처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지만 말고
환하고 넉넉한 얼굴, 편안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부드러움과
평화를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나로 꾸미어 나가야 하겠다.
주인을 기다리며 서랍에 있는 시계는 필요 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2002/ 14집
첫댓글 어느 방 어느 곳을 가던 정겹게 재깍거리
며 내게 시간을 일깨워 주도록 만들어야 하겠다. 나의 활기찬 모습처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지만 말고
환하고 넉넉한 얼굴, 편안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부드러움과
평화를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나로 꾸미어 나가야 하겠다.
어느 방 어느 곳을 가던 정겹게 재깍거리
며 내게 시간을 일깨워 주도록 만들어야 하겠다. 나의 활기찬 모습처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지만 말고
환하고 넉넉한 얼굴, 편안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부드러움과
평화를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나로 꾸미어 나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