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세대 주택들이 즐비한 성북동 골목길 사이에 최순우 선생의 옛집이 있습니다. 우리의 옛 정취를 느껴보라 이야기하는 듯 대문을 활짝 펼치고 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가을 햇살 은은히 감싸던 오후 옛집의 향취를 따라 서울의 성북동으로 향합니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 2동 126-20번지에 자리잡은 '최순우 선생 옛집'은 굽이굽이 작은 골목길을 휘적휘적 걸어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의 저자로 더 잘 알려진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兮谷) 최순우(1916~84년) 선생께서 살다 가신 곳으로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고요한 산사에 들어 선 기분이 듭니다.
▲ 키 작은 우물과 소박한 앞뜰이 옛집의 신선함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합니다. 작지만 여유로운 그곳을 바라보며 세상에 찌든 탁한 눈을 씻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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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30여년전 최순우 선생이 사들여 펜을 놓으실 때까지 기거하셨던 이 집은 그의 대표적 저서인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를 집필했던 곳으로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는 외동딸이 거주해왔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 옛집의 은은함을 유지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 선생이 머무시던 안채에는 오늘도 소박한 검정고무신이 댓돌 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색하며 글을 쓴다는 것은 아마도 또 다른 기다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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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주변에 다세대 주택 건립이 추진되면서 헐릴 위기에 처하게 되자 2002년 12월경에 문화유산 보전운동 시민 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이 건물을 시민들의 작은 힘을 모아 매입함으로써 최순우 선생 옛집은 '시민 문화재 1호'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 두문즉시심산(杜門卽時深山)이라, 툇마루에 걸쳐있는 작은 편액에 선생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문만 닫으면 이곳이 곧 깊은 산중이라. 그 마음으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 서서>라는 책이 탄생되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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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흔히 근대이전 유물들의 가치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는 우리 동시대의 유물 또한 보전할 가치가 있다라는 뜻깊은 관심에서 이곳이 보존된 것입니다.
▲ 안채 마루에는 선생이 생전에 쓰시던 여러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나 하나 고운손때 묻어 더욱 정감이 갑니다. 거기에 자원봉사자들의 고운 손길이 더해 정겨운 사람의 향내가 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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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선생 옛집은 오색단청과 화려한 익공을 뽐내지 않지만 수수한 조선 산수화를 보듯 옛집의 여유로움이 깊이 배어있습니다. 특히 안채에 들어서면 자원봉사자들의 고운 손이 선생님이 사시던 때처럼 늘 가까이에 있어 어젯밤에도 누군가가 포근한 잠을 잔 것처럼 훈훈한 정이 감도는 듯합니다.
▲ 가을햇살에 더욱 포근하게 자리잡고 있는 안채의 방 모습입니다. 저 옆의 미닫이창을 열면 바로 가을이 소리 없이 다가옵니다. 고운 바람에 단풍 날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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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에 조심스레 발을 디뎌 보면 당시 살았던 선생의 마음을 조금은 엿볼 수 있습니다. 고개 흘긋 들어 창문을 바라보면 고운 가을햇살을 한바구니 담아 뿌려 주고 있는 이쁜 미닫이창이 있고, 수묵화의 여백미처럼 아무것도 없는 듯하나 작은 옛 장롱 하나에 온 마음을 담아 둘 수 있는 작은 마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 바깥채 처마에 매달리는 소방울은 세월의 향내를 고이 간직한 채 조용히 매달려 있습니다. 앞으로 오래도록 잘 보전되어 우리의 아이들도 이 고요함을 함께 느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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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최순우 선생이 생전에 쓰시던 자필 원고와 안경 등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어 책 속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우리 옛문화에 대한 선생의 넉넉한 미소를 함께 느끼실 수 있습니다.
▲ 안채 처마에는 현대와 과거가 조화롭게 공존합니다. 전깃불이 들어오는 전등이지만 결코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근대유산 또한 지금부터 보전해야 합니다.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향취는 또 다른 매력입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전체적으로 이곳을 넓게 살펴보면 'ㄱ' 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로 건물이 앉혀진 이른바 튼 'ㅁ' 자 형으로 집 안쪽의 중심부에 작은 뜰이 있고, 안채 바깥쪽으로 작은 장독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조금 넓은 뒤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뒤뜰에는 세월이 세월인지라 가을날의 정취를 가득 담은 단풍과 작은 석조물들이 바닥의 박석들을 따라 조심스레 펼쳐져있습니다. 그리고 장독대 옆에는 관람객들의 마음을 포근히 녹여줄 따뜻한 보리차가 기다리고 있어 선생의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듯했습니다. 거기에 하나 하나 꼼꼼하게 설명해 주시는 자원봉사자분들 덕에 그 고요한 마음이 선생의 옛집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가슴 푸근하게 해주었습니다.
▲ 가을이 잔뜩 내려앉은 뒤뜰의 모습입니다. 관람객들을 위하여 내놓은 소박한 보리차 한잔이 오히려 더욱 이 공간을 정겹게 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심미안의 소유자로 우리나라의 미에 대한 쉼 없는 탐구로 한 평생을 살다간 선생의 마음을 조금이나 함께 느껴보시려면 이곳 옛집으로 향하시길 권해드립니다.
▲ 산죽 너머로 선생이 살다간 그곳을 바라봅니다. 댓잎의 푸름처럼 학자로써 올곧게 그리고 우리문화에 대하여서는 대나무처럼 유연한 마음으로 좋은 글 남겨 주신 그분께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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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문화 지킴이, 환경 지킴이 우리 손으로료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란?
내셔널 트러스트운동은 국민의 자발적인 성금과 기부 등으로 조성된 재원을 이용하여 훼손이나 멸종위기에 처한 자연 및 문화유산을 확보한 후 이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영구히 지켜가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1895년 영국에서 출발, 협회가 설립된 이후 현재 전 세계 30여개 나라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세계적인 국민보전운동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0년에 한국 내셔널 트러스트가 결성되어 전국운동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21세기형 ‘자연과 문화의 지킴이’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02년 강화도에 서식하는 법정보호식물 매화마름 서식지 1천여평을 매입한 것이 시초이며 이후 지역주민을 포함한 회원들의 참여를 통해 이 곳을 자율적으로 보호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최순우 옛집, 동강 등이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으로 영구 보존이 가능케 됐었습니다./ 최형국
*최순우 선생 옛집 가는 길 : 지하철 4호선 한성대 6번 출구-->성북성당방향(약 10분거리)-->등촌칼국수집 뒷길 /관람시간 :매주 화요일 ~ 토요일 오전10시∼오후4시 (오후3시30분까지만 입장가능)
*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몸철학과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 http://muye24ki.com 입니다.
"늘 바뿌기만 해서 편지도 못씁니다. 파리는 이번 노엘에 눈이 잠간 왔고 그저 비만 오락가락 한 날씨입니다. 신춘에 드러서 더욱 건강하시고 일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파리는 날이 짧고 깜깜해서 일이 잘 않되는 것 같습니다. 빨리 봄이 와야겠습니다. 산중에 조용히 살면서 그림이나 그리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자꾸 일월(日月)이 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수화 김환기의 연하장(1957년)
최순우(1916∼1984·4대 국립박물관장,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의 저자) 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던 '최순우 옛집'에서 10월 18일부터 10월 31일까지 작은 전시회가 있었다. 최순우 옛집은 9월 4일 박물관으로 등록, '시민문화유산 제 1호 최순우 옛집'이란 이름과 '혜곡 최순우 기념관'이란 이름을 함께 얻었는데 이후 열린 첫 전시회여서 의미가 남다르다. 전시회 마지막 날 '최순우 옛집'을 찾았다.
최순우 선생이 지인들과 나누었던 정분
▲ 전시공간일부
ⓒ 김현자
▲ 천경자화백이 보낸 연하장 일부
ⓒ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아름다운 인연, 그리운 정분'이란 주제의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유명한 화가 4사람이 최순우 선생께 보낸 연하장들이 그 주인공이다.
천경자 화백은 봉투에 '받으시옵소서'라고 적고 있었고, 또 다른 봉투에는 낙관처럼 여인을 그렸다. 쥐가 그려진 연하장도 보였다. 쥐띠일까? 아니, 쥐띠 해를 앞둔 연하장이다. 그녀는 닭띠, 뱀띠 해에도 쥐띠 해처럼 삽화를 그린 연하장을 띄웠다고 한다.
"이번에 전시한 연하장들은 박수근, 김환기, 김기창, 천경자 화백이 보낸 연하장 일부입니다.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과 각별한 정을 나누었다고 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편지나 연하장을 나누셨고요. 이번에 공개된 것은 선생님이 지인들과 나누었던 연하장 중 아주 일부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차츰차츰 단계적으로 전시할 계획입니다" - 지숙화 인턴학예사
이름만으로도 주로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어지간한 사람들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워낙 유명한 화가들이다. 화가들이 보낸 연하장들이어서 그런지 연하장들마다 직접 그린 그림이 곁들여져 있었다. 그림으로만 만났던 화가들의 속내와 필체를 직접 볼 수 있어서 가슴 설렜다.
연하장 속 사연들을 읽는 것도 무척 설레는 일. 읽기는 다소 힘들지만 그림만큼이나 독특한 필체를 따라 읽다보니 주고받은 인연, 그 정분과 그리움이 어찌나 살가운지, 연애편지를 주고받던 옛 인연들이 속절없이 떠올랐다.
1957, 1971, 1975…, 연하장마다 쌓인 세월은 대략 30∼40년. 태극기 펄럭이는 파란색 10원짜리 우표와 크리스마스 때 찍던 소인 '축 성탄!'이 낯익다. 그러고 보면 그간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고, 이젠 예전처럼 연하장을 주고받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 김환기화백이 보낸 연하장
ⓒ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 읽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보았던 김환기화백이 보낸 연하장
ⓒ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눈이 내립니다. 서울 눈이 그립군요. 정말 외로움과 그리움에 살고 있어요. 뭣 때문에 이런 지독한 외로움 속에 살고 있는지, 나도 모를 일" - 김환기의 연하장 중에서
김환기 화백의 연하장들은 제일 많은 사연을 담고 있었다. 연하장마다 그림만큼 멋있는 필체가 술술 그리움을 휘감고 있었다. 이런 연하장을 받은 사람은 어떤 답장을 보냈을까? 몹시 궁금해졌다.
전시공간을 뒤로 하고 선생이 사랑채로 썼다는 안채로 향했다. 선생의 유품들이 전시된 곳이며 전통적인 한옥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곳이다. 안채의 격자문살 너머로 가을 햇살이 뒤뜰에 번지고 있었다. 뒤뜰은 갈참나무와 생강나무가 가을을 한껏 물들이고 있었다.
두 그루의 좀작살나무가 유난히 진한 보랏빛 열매를 쪼록쪼록 달고 있었다. 다른 나무들의 열매가 거의 바닥나는 초봄까지 좀작살나무는 오래 달려 있으면서 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 나무가 있는 곳에는 산새가 많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최순우 옛집'에도 산새들이 많았다.
목재가 아름다워 화초장처럼 예쁘고 앙증맞은 가구를 만드는데 주로 썼다는 모과나무 둥치가 유독 아름답다. 올려다보니 노랗게 익은 모과 몇 개가 탐스럽다. 감도 잘 익었다.
마음을 사로잡는 하얀 달 항아리 하나. 선생은 이 달 항아리를 뒤뜰에 두고 자주 들여다보고 아꼈다고 한다. 달 항아리를 보며, 혹은 산새들을 보며 선생도 예사로 앉았을 뒷마루에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부지런히 오고가고 나뭇잎들이 시나브로 떨어져 내리는 가을 오후 한때를 그렇게 보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편지와 연하장이 몹시 그리워진다. 그 연하장들을 주고받던 그 인연들도 새삼 그립다. 인터넷 접속과 함께 연하장 쓰는 일을 멈추었다. 해마다 연하장을 띄우던 은사님과도 이제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새해인사를 나누곤 한다. 편한 것이야 좋지만 그래도 해마다 연하장에 머물던 그리움이 늘 아쉽곤 했었다.
올해부터는 오랫동안 정분을 나누어 온 사람에게, 오랫동안 정분을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손으로 쓴 연하장을 보내야지. 꼭!
이렇게 다가온 최순우 선생
▲ 앞뜰의 우물
ⓒ 김현자
▲ 안채도 뒤뜰도...삼복 더위에도 가슴사이로 맑은 바람이 드나들 것만 같았다.
ⓒ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중에서
이 글을 처음 만난 것이 언제였던가. 1992년 가을이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학고재)가 처음 나온 것은 1992년 3월, 이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은 것은 책의 제목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책 속에도 나오는 '화엄사 사자석탑'에 대한 글 때문이기도 했다. 특별한 추억과 함께 기억되고 있던 부석사와 화엄사였기에.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대웅보전, 무량수전, 원통전 등의 전각들은 불자인 내게 기도가 우선 앞서던 곳이었다. 그리고 학술, 연구용 등으로 박물관에나 전시되는 존재로 멀찍이 느껴지던 우리의 문화재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면서 또 다른 시각으로 가까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후 <부처님 모시고 가는 당나귀>(이난영 지음·정우사)라는 책 등을 구해 읽을 만큼 한동안 우리 문화재 관련 책들을 즐겨 읽었었다. 지금은 박물관 나들이를 적극 즐기는 편.
평생을 '박물관인'으로 살면서 우리 문화 알리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선생이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에 실었던 마음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나처럼 문화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는 그런….
언제든 가보고 싶던 '최순우 옛집'. 마침 찾은 길에 하필 '아름다운 인연, 그리운 정분'을 만나서 다시, 특별한 추억 하나 남기게 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다.
P.S/'혜곡 최순우 기념관'으로 등록된 '최순우 옛집'
▲ 최순우 옛집
ⓒ김현자
최순우 옛집은 1976년 최순우 선생이 이사하여 돌아가시는 날까지 살았던, 1930년에 지어진 전통적인 한옥으로 조선말기 선비의 운치가 그대로 남아 있다. 안채와 사랑채 등으로 둘러싸인 ㅁ자형 안뜰에는 우물도 있고 오래된 향나무도 있다. 뒤뜰은 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참나무와 생강나무, 좀작살나무 등이 있으며 소나무 세 그루와 산수유 세 그루가 있다. 그리고 감나무, 모과나무, 밤나무, 산죽, 산국 등도 볼 수 있다.
뒤뜰에는 안채에 딸린 툇마루가 길게 있어서 한참 앉아 있으면 느낌이 사뭇 특별하다. 전체적인 느낌은 고풍스럽고 맑고 향기롭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를 저술한 곳이다.
최순우 옛집은 12월1일부터 이듬해 3월 31일까지는 동절기 휴관이다. 이 기간 외에는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최순우 옛집 전시회는 매년 가을 개최되며 이번에 열리는 전시는 세 번째다. 1회는 복원된 사랑방 전시회였으며 2회는 최순우 선생 소장 엽서전, 3회는 연하장전이었다. 이번이 그 첫 전시회. 하지만 평소에는 최순우 선생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안채나 최순우 옛집의 뒤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봄과 가을에 시민과 함께 하는 다양한 문화체험도 열 계획이다. 특히 문화유산과 환경 관련 소모임(15인 정도)일 경우, 한달에 한 번 넷째주 목요일 오수 4시~6시까지 회의실을 무료로 대여한다. 그 외 모임은 개관 시간 중 차를 마시며 이용할 수 있다고. 가는 방법은 지하철 한성대역에서 하차하여 5번 출구. 5번 출구를 등지고 5분 남짓 걸으면 '최순우 옛집'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 김현자
첫댓글 어느 곳, 어느 것하나 어울리는 않은 것이 없군요..두문즉시심산(杜門卽時深山)이라..안채 입구의 붉은 옻색 빛이 참 고와요 ... 단촐하면서도 정갈하고 세련된 주인장의 마음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가만히 사진을 통해 보이는 풍경들도 참 편안해요. 정갈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마음을 붙잡네요.
'생태적 사유와 문화적 삶'... 이는 우리 들꽃만남의 화두. 강물님이 [김금자의 문화산책]에 띄워준 '물푸레나무 우표' 로 한번 접한 바 있지만, 오늘도 또 참 잘 어울리는 빛깔의 편지글입니다.
오호! '물푸레나무 우표' 감동입니다. 편지글이 사라진 오늘날 늘사랑도 '물푸레나무우표하나 붙어 편지한장 동봉해야겠습니다. 이봄이 시작해서 멀어지기전에...
삼월 만남을 고운 봄옷 갈아 입고 이곳으로 가야겠네요 지천명 친구들과 함께 감사해요
사월 만남으로 해야겠네요 3월31까지 휴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