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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유인산악회(☎02-834-1777) 원문보기 글쓴이: 김영수
그림 1) 산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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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산행
오늘은 충북 영동군 추풍령의 금산을 들머리로 하여 용문산과 국수봉을 거쳐
경북 상주시 공성면의 큰재를 날머리로 하는 백두대간 16기의 11차 산행이다.
한 대장님께서 개인사정으로 불참하신 강대장님을 대신하여 주의 사항을 말씀하신다.
기억하기론, 상주지역은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는 지역특색과 “중화지구(?)”를
통과한다는 말씀이 남는다.
중화지구란, 경상북도 상주일대의 옛 이름으로 중모현과 화령현에 속하는
지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검색)
이번11차 구간과 다음구간은 백두대간에서 가장 낮은 맥 즉, 김천 황악산과
상주 속리산 사이의 구간으로써 고도가 300-400m의 중화지구다.
오늘 목적지는 “큰재”다.
큰재는 상주시 공성면이다. “상주”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경상도 지명이다.
내가 알기로는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를 일컫는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 경기도는 서울경(京)자를 써서,
서울을 중심으로 5백리 이내의 땅을 말한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백두는 백두산과 두류산(=지리산)을 합친 것이라고 하니 지명의
유래는 참으로 다양한 것 같다.
♥ 알바의 진수(眞髓)
“오늘 산행은 비교적 거리도 짧고 낮은 구간이지만 백두대간은 단 한 곳도
쉬운 구간이 없다며 오늘도 무슨 어려움이 있을지 모른다.“
한 대장님께서 다음 말씀을 이어가신다.
“대간 길을 벗어나 있지만 모두들 난함산을 다녀오라”는 말씀이다.
나는 체력의 한계로 백두대간 길에만 충실하고 싶었지만 모두들 가는 곳이니
인증 샷이라도 남기려면 뒤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선두 최대장님 및 전 기수에서 참석하시 모두가 난함산은 초행이라고 한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오르막과 숲을 뚫고 난함산에 올랐지만 철조망이 가로 막고 있다.
지도를 보니 정상임에는 틀림없지만 다른 곳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기 위하여
철조망을 통과하였다. 그것도 배낭 하나가 겨우 통과할 정도의 개구멍을...
1차 철조망과 2차 철조망을 거쳐 사방에 설치된 CCTV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을 밟았다.
♥ 역시 16기는 용감했다.
14기와 15기는 가지 않았던 길을 걸었다.
난함산 정상은 기상관측시설과 마이크로웨이브 통신시설이 있는 곳이다.
다시 백두대간길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올라갔던 길로 되돌아오는 것이 가장
빠르지만 길을 잘 못 들어서 한참을 헤매고 되돌아 왔다. 알바다.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내려오는 길은 더 힘들었다.
난함산을 돌아오는 길은 말 그대로 “난해한 산”이라는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주위 산에 메아리 쳤다.
산행 후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알~바 알~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난함산(卵含山)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아늑한 모습의 산이다.
우리가 오늘 산행 초반에 너무 고생한 것 같다.
지도를 봤을 때 임도를 따라갔으면 편했을 텐데,
그래도 대간꾼인데 산길 따라가야지....!!
♥ 평탄한 산행
따가운 햇살 속에 평온하게 진행된 오늘의 산행 후에는 앞으로 대간 길의 험난한
여정과 어려움을 헤쳐 나갈 16기 리더들도 선출되었다.
그 동안 약 10회에 걸쳐 서로가 겪어본 마음들을 토대로 선출된 회장님들과 고문, 총무, 감사님의 훌륭한 리더십이 기대된다.
□ 추풍령 출발(02:58)
그림 4) 추풍령 새벽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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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풍령은 지난 4월22일 6차 종주의 도착지로써 산행을 마친 골인지점에서
14기 최주명님이 이쁜 부인(?)과 함께 부침개를 지져서 막걸리와 함께
우리를 맞아주었던 따뜻한 기억이 남는 곳이다.
우리 16기도 차후에 이어질 기수에게 인간미 넘치는 전통을 넘겨 줄 수 있도록
여러모로 궁리 해봐야겠다.
추풍령 카리브모텔 앞에서 출발 전 스트레칭을 우용인님 리드로 마치고,
동네 도로, 그러나 농촌풍경이 아닌 콘크리트길의 개똥을 피해서 조금 걷고 나니,
등산안내도가 나타나고 그 좌측 계단 길을 따라 금산을 오른다.
♥ 금산
금산은 많은 애환을 갖고 있는 산이다.
사실상 금산의 한쪽은 채석장으로 잘려나간 산이다. 없어졌다고 봐야한다.
“금산은 한반도 호랑이의 허리부분 척추”라고 하는데 그걸 잘라버렸다고 하니
옛날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 기를 끊으려고 쇠말뚝을 박았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사실 금산은 일제 강점기부터 파내기 시작하여 이후 철도레일에 사용되는 자갈을
생산했다고 하니, 그 때부터 쇠말뚝과 병행했던 것이 아닐까?
지금은 철도레일을 콘크리트도상으로 하기 때문에 자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어찌하면 백두대간에 있는 산이 없어질 수 있는가 하며 검색해 보니 이해가
가는 사진들이 있어서 빌려다 붙여본다.
그림 7) 빌려온 금산사진
♥ 금산 절벽 낭떠러지 난간 쪽으로 잘 못 올라간 선두가 이어지는 길이 없어서 되돌아온다.
후미였던 내가 선두가 되었다.
금산을 멀리하고 나름 뒤쳐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걸었다.
♥ 사기점고개 도착(04:50)
사기점고개는 고개 “沙(모래사)” 남쪽의 김천시 봉산면 사기점리에서
옛날에 사기를 구워 팔았다고 하여 사기점 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선두에 있던 5명이 뒷사람들을 기다리며 모처럼 휴식을 취한다.
선두의 여유로움이다.
옅은 안개로 인하여 카메라 사진이 선명하지 못하다.
그림 8) 새벽 막걸리
♥ 특별한 이정표가 없어서 임도와 만나는 곳이 사기점고개라고 알고 있다.
국립공원내(덕유산 등)의 백두대간 길은 곳곳에 안내판과 표지판이 설치되어
등산객의 길잡이가 되고 있는데 이 곳은 아무 표식이 없어 차이가 많이 난다.
지자체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선두와 후미가 모두 만났다.
여기는 나지막한 백두대간 길과 난함산으로 갈라지는 일명 “난함산 삼거리”이다.
그림10) 곧 합류한 난함산 삼거리
□ 난함산(06:20)
난함산(卵含山)이 묘함산(卯含山)으로 잘못 알려진 것은 한자표기 때문이다.
알란(卵)을 “卯 넷째 지지묘(토끼상징=토끼묘)” 자로 지도에 잘 못 표기했기 때문에
생긴 착오다.
난함산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의 산이라는 의미다.
이산은 대간에서 비켜나 있는 산으로써 임도를 따라 걸으면 가장 오르기 쉽지만,
우리는 산길을 따라 걸었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무릎까지 빠지는
낙엽구간이 많았다. 엄청 힘든 고바이(오르막)로써 모두들 거친 숨을 몰아쉰다.
그림 11) 난함산철탑
그림 12) 난함산 용사들
♥ 난함산 정상은 더 이상 갈 수 없도록 철조망이 처져 있다.
철조망의 개구멍을 2개소나 통과했다.
좁은 구멍의 1차 철조망을 통과하면 약 3m 앞에 2차 철조망이 있고,
그 사이에는 얼기설기 감아놓은 장애물 철조망을 통과해야 하는데
앞선 사람이 뒷사람 배낭을 받아 줘야하는 아주 성가신 구간이었다.
그러나 어려웠던 난함산의 정상 맛을 보고 온 사람들은 우리 16기뿐일 것이다.
왜냐면 그 곳은 일반인 출입통제지역으로써 침입해서 들어간 꼴이었으니...
그림 13) 월계관 소녀
♥ 알바와 함께 우여곡절 끝에 하산할 수 있는 시멘트 길의 임도를 따라 작점고개로 행했다.
임도를 중간쯤 내려오니 삼거리가 나타나고 나무에 황금골이라고 걸린 표지판이 보인다.
난함산보다 그 황금골에 가보고 싶다.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대간길로 들어서는 숲길이 보인다.
올라서자 개망초 밭이 우리를 반긴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는가보다.
포토존에서 셔터를 사정없이 눌렀다.
그림 15) 난함산 임도
그림 17) 개망초 밭
□ 작점고개(08:16)
개망초 밭을 지나서 작점고개에 내려섰다.
계획대로라면 1시간30분전에 도착하여 식사를 마쳤어야 할 시간이다.
작점고개 도착 팀을 분류하면 3개 팀으로 나뉜다.
첫째 난함산을 가지 않고 대간길에 충실했던 경석씨는 05시50분경에 도착하였고,
둘째 난함산을 갔으나 철조망을 통과하지 않고 돌아온 고문님(박상욱)은 7시경 도착하셨고(정상산행),
셋째 난함산 철조망을 통과하여 정상을 탈환한 용사들은 너무 빨리 도착할까봐
구간을 연장하여(알바) 주변을 스케치하느라 8시16분에 도착하였다.
계획된 시간보다 약 1시간30분 정도가 늦었다.
그림 18) 작점고개
그림 19) 반상회 같은 아침식사
그림 20) 작점고개
♥ "작점고개<능치>: 충북 영동 추풍령면 작점리와 경북 김천 어모면 능치리 도계
에 있는 능치(能峙)는 ‘곰재, ’곰티,이다. 작점고개는 경북 쪽 사람들은 '성황데이
고개', 충북 사람들은 '여덟 마지기 고개'라고도 불렀다는데 충북 영동의 작점리
작점마을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충북 영동군 보다는 경북 김천시에서 더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식사를 세명의 부회장님과 돌 테이블에서 마치고 작점고개를 출발한다.
오르자마자 나타난, 오래만에 보는 이정표라서 한방..
그림21) 국립공원 비하면 옹색한 이정표
움막을 지나게 되는데 이 움막은 용문산 아래 기도원에서 올라와 이곳에서
기도를 한다는 인터넷 글들이 있어서 움막을 찍어본다.
그림 22) 기도움막
♥ 용문산 도착전 잠시 여유있는 힘자랑들이 있었다.
우리대원 중 가장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 변강쇠같은 경석씨!
"조금전에 보온병에서 꺼내준 아이스크림 잘 먹었습니다."
마라톤으로 단련된 채식주의 해피데이님!!
채식하는 사람이 힘이 세다고 하네요. 코끼리, 황소, 버팔로, 해피데이...
그런데 토끼는 아니라네요..~
"걷는다"님의 동영상을 빌려왔습니다.
그림 25) 열정 으로 걸었다.
♥ 『열정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운이 더 좋아진다.
한 걸음 한 걸음 열심히 걸으면 정상에 더 가까워진다.
인간은 무한한 열정을 쏟는 일에서는 거의 반드시 성공한다.
열정은 평범함과 훌륭함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백두대간을 열정으로 걷고 있는 16기는 아름답다.』
□ 용문산(10:55)
맷돌봉이라도 하는 용문산은 평평한 헬기장이다.
나의 용문산 기억은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1152m)” 이다.
산에 올라가지는 않고 입구에서 고스톱 치며 4시간이나 기다렸다가
뱀탕 한 종지 마시고 돌아왔던 30년이 다 되가는 기억이 새롭다.
그 때는 장가도 안 갔었으니 뱀탕마실 필요도 없었는데...
여기에서 국수봉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주의하라는 팻말이
여러 곳에 표식 되어 있다. 고도표를 보면 약 690m에서 600m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720m를 올라야 하는 이 구간은 경사가 심해서 내려가는 길이 어렵다.
무릎 때문에 걱정된다.
내려가는 길이 어려우니 올라오는 길은 전형적인 “깔딱고개”다.
여기서 국수봉까지는 2.3km 이니까 1시간정도 걸리지 않을까.
♥ 용문산을 뒤로 하고 조금 지나다보면 용문산 기도원으로 갈라지는
“안부(鞍部, 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가 나온다.
여기서 국수봉까지는 1.2km, 용문산까지는 1.1km 두 산의 딱 중간지점이다.
그림 28) 용문산정상 1.1km |
그림 29) 벤치에 누운 황정준 |
♥ 용문산 기도원
『용문산 기도원은 경북 김천시 어모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1950년 목사 나운몽이
건립한 한국 최초의 기도원으로 한국기독교 부흥의 원천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한다. 50여만평의 기도원에는 신학교, 신용협동조합. 구판장, 우체국, 애향원 등
5개의 촌락과 구국제단, 실버타운 등이 있어서 소왕국(小王國) 같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번창했었고, 정기 노선버스가 다닐 정도였으나 지금은 옛
명성을 잃은 지오래 되었고 비어있는 건물들이 많다고 한다. 』
국수봉을 1.2km 정도 남아있는 지점에 상주방향으로 가는 “기양지맥”으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있다.
기양지맥은, 백운산(629,8m)-기양산(706m)-수선산(683.6m)-형제봉(531m)-신산
9457m)을 거쳐 감천에서 그 소임을 다하는 46.2km의 산줄기를 말한다.
□ 국수봉(12:13)
♥ 국수(掬水)는,
국어사전에 “두 손을 오목하게 만들어 물을 뜸. 또는 그렇게 뜬 물”라고 되어있다.
내가 국수봉을 검색한 결과 많은 곳에서 국(掬)자를 한자로 표기할 때,
손수(扌)변을 빼고 국화국(菊)의 국수봉으로 표기한 곳이 많았다.
나의 생각은 기우제를 지낸 곳이고, 분수령이므로 물을 움켜쥐고 있다는 의미의
국수봉(掬水峰)이 맞을 것 같다.
♥ 국수봉의 최신정보는 이렇다.
『국토지리정보원 국가지명위원회에서는 공성면 국수봉 산 이름을 '웅이산(熊耳山)'
으로 최종 확정하고 5월 18일 고시했다.
이 산은 상주시 공성면 영오리와 김천시 어모면 웅북리,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사이에 소재하는 산으로 '국수봉'이라는 봉우리 지명은 있으나 산에 대해 고시된
지명은 없다. 김천에서는 이 산을 '용문산'이라고 부르고, 상주에서는 '곰실'이라
고 불렀으며, 정상에는 웅신당(熊神堂)이라는 대(臺)가 있고 가뭄 때 기우제를
지냈다고 하여 마을주민들은 '웅이산(熊耳山)'으로 불렀다.
상주시에서 국토지리정보원에 신청한 결과 이번에 최종 확정 고시되었다고 한다.
상주시장은 “앞으로 지역 내 잘못된 지명이나, 이름이 없는 산 등을 발굴해 상주시
이미지 제고는 물론 시민들의 자긍심 고취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지명으로 확정짓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더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기사를 읽어보면 지자체간의 이기주의적인 속내가
들여다보인다. 상주시장이 조금 발 빠르게 움직였다 기 보다는,
다른 두 지자체는 순진하게도 예부터 전해져온 “국수봉”이라는 명칭을 감히 누가
바꿀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미처 못 하고 국토지리정보원고시를 접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다. 기존에 고시된 이름은 없었지만 모든 지도와 많은 사람들이
국수봉이라 부르고 있으니 당연히 계속 그렇게 불릴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어느 지자체(장)에서 이름을 바꿔버렸으니 현재는 황당해 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처음 가보는 산이지만 이름을 바꿔버렸다니 아쉽다.
언젠가는 국수봉으로 환원하자는 민원이 분명 있을 것 같은 생각과,
그래서 상주시보다 “끗발” 좋은 인물이 나타나면 국토지리정보원에 환원 고시를
요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독도 영유권도 옛 고지도를 기준으로 주장하고 있다.
애플 스마트폰 지도에는 독도는 없고 “다케시마” 만 있다.
국수봉을 뺏겨버린 것 같은 허전한 느낌이 엄습(?)해 온다.
그림 31) 국수봉 단체
♥ 국수봉 정상석이 바로 옆에 여러 사람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과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있어서 오늘의 배낭떨이를 이 곳에서 열었다.
미지근한 물과 과일을 아무리 먹어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런데 강희숙님이 가져온 달콤시원한 수박 한 쪽과 박경석님의 아직 얼음덩어리
물통에서 갈증 나게 흘러나온 냉수가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그림 32) 고문님의 백두대간마스크
그림 33) 맛있는 수박 방울토마토 체리
♥ 그 쉬는 시간동안 고문님께서는 약국에서 산 “백두대간 마스크”를 자랑하신다.
최영순대장님은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답게 바로 반론으로 들어간다.
“약국에는 백두대간 마스크를 팔지 않습니다.“ ㅎ
저쪽에서는 “지하철표(브랜드)”다. 라는 여러 웅성거림에도 시연에 들어가는
고문님의 환한 미소를 뒤로 하고 오늘 마지막 봉우리였던 국수봉을 내려간다.
♥ 국수봉을 내려오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사진 왼쪽으로 잘린 국수봉, 용문산, 눌의산, 황악산의 모습이 파도치고 있다.
□ 큰재(13:45)
그림 35) 마지막을 장식하는 해피데이
그림 36) 편안해 보입니다.
큰재에 도착했다.
소나무 틈새로 붉은색 버스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백두대간 생태관이 보인다.
길가에는 가을코스모스를 연상케 하는 개망초가 활짝 피어있다.
오늘 새로 취임하신 감사님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 큰재
『산행이 시작되는 큰 재는 상주시 공성면과 모동면을 잇는 68번 지방도가 지나는
해발 320m의 고갯마루이다. 큰재 정상엔 백두대간 상의 유일한 학교였던 옥산 초
등학교 인성분교장이 있었으나 1997년 폐교되고 지금은 백두대간 생태관이 들어서
있다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판" 이 서 있고, 안내판엔 "남한 쪽 백두대간 684km,
북한 쪽 백두대간 716km, 합계 1,400km" 라고 적혀 있으며, "상주지역 대간
69km" 라고 적혀 있다.』_검색인용_
♥ 산을 왜 오르는가?
등산을 할 때는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고,
좀더 지혜로운 삶을 꿈꾸며 산에 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등산을 하다보면 아무생각이 없어진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눈감고 돌이켜보면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이 보람인가에 대한
대답 또한 백지와 같다.
그런데,
산에 오르면 원래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읽었던 책에 의하면 산에 가면 원래 무상무념이 된다.
『인간의 뇌파는 크게 알파파와 베타파로 나뉜다.
알파파는 근육이 이완되고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의식이 집중되고 있는 상태에서 발생하며,
베타파는 신경이 외부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활동 중에 긴장과 흥분 상태에서 생성된다.
그런데 산을 탈 때 발생하는 뇌파는 운동을 할 때의 베타파가 아니라 명상을 할 때 알파파라는 것이다.
“등산은 운동이 아니라 명상이다.” 긴장이 아니라 이완이다.』
따라서 등산은 잡다한 생각을 지우는 무념무상의 상태를 경험하러 가는 것이다.
꿈을 꾸지 않고 숙면을 취하고 나면 정신이 개운해진다.
아무런 생각 없이 파도치는 산하의 초록물결을 보고 온 것만으로도
등산의 성취감은 이루어 진 것이라고 이제는 고쳐 생각해야겠다.
그러나 돌아오는 텅~ 빈 머릿속에 무엇을 채워야 할까 벌써 고민된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계속된다. 끝.
김영수.
그림 64) 오늘의 산행을 마치고_큰재 김영수
힘찬님! 사진 감사합니다.
초이대장님, 자유로님, 해피데이님, 걷는다님 우리두리님, 개인산님의 사진도 활용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림 65) 용문산구간 지도 |
그림 66) 자유인 용문산 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