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서, 퇴근하는 길에 분위기 좋게 소주한잔 마실 수 있는 닭매운탕 잘하는 강남의 '고려삼계탕'이 오늘 소개드릴 집이다.
어느정도 사회생활을 한 직장인이라면 피하고 싶은 시끌벅적한 호프집이나 소주방 분위기를 벗어난 술자리는 대부분 삼겹살집이나 포장마차 정도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강남이지만, 맛있는 집이 많다고 여기저기 많이도 등장했던 집들이 강남역에 많다지만 정작 필자가 느끼기에는 모두 빵점이다. 임대료 때문에라도 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가격대비 성능이 나빠질 수 밖에 없는데다가 뜨내기 손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구수한 맛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이 여성을 겨냥한 '롤' 이라든지 '31'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 무도회장 앞의 기능성(?) 식당들 정도만이 떠오른다.
솔직한 말로, 강남역 한가운데 있어도 무인도에 떨어져버린 느낌이랄까. 음식점은 많지만 갈데가 없다. 하지만, 강남역에도 희망이 있었다. 사실 강남역이라고 하기엔 좀 미안한 위치지만 강남에서 유일하게 적당히 조용하고 맛도 훌륭한 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찾아낸 '고려 삼계탕'이 그곳이다.
내부로 진입하면, 적당히 비좁은 실내와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나 궁서체로 휘갈겨쓴 청결과 정성에 대한 선서와도 같은 문구는 강하게 각인된다.
기본 제공되는 반찬류는 삼계탕에 적절하게 어울릴 정도의 숙성정도, 신김치 싫어하는 사람이 딱 싫어할 만큼 익었다. 그리고 젓갈이 조금 많이 들어간 느낌이다. (물론 때에따라 익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어쨌든, 처음에 가장 감동을 받았던 것은 시원한 옥수수차가 나왔다는 점이었다.
예전에야 옥수수차나 보리차 한잔이 음식점의 기본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정수기에서 뽑아낸 물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양을 만들어내거나 인건비가 빠지는 부분을 무시할 수 없는 음식점들 사정이 있으니... 하지만 고려삼계탕의 옥수수차는 음식을 먹기 전에 주는 작은 감동이다. 게다가 티백에서 우려낸 맛이 아니라 직접 끓여낸 옥수수차이기에 오랜만에 옛스러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잠시후 15,000원 짜리 닭매운탕(중)이 등장했다. 각도가 애매해서 작은 양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웅장(?) 하지는 않더라도 만족스러울 정도의 양이 아닐까 싶다. 물론 20,000원짜리 대짜도 있다.
맛 자체를 놓고 보면, 가마솥에 푹 삭힌 삼청동 '성너머집'의 닭매운탕과는 다른 느낌의 탱탱한 육질이 살아있지만 양념은 충분히 머금은 맛이 좋고, 약간은 당황스럽기도 한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 시스템은 약간의 온도를 포기하는 대신 국물이 졸아붙는 귀찮음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이 좋은 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15,000원에 이만큼 이라면 많은 양은 아니다. 하지만 강남역 인근에서 이런 종로스러움, 뒷골목스러운 장소에서 처음처럼, 이슬에 젖을 수 있다는 것이 더 기쁜 일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필자는 강남에서 조용히 술 마실 수 있다는 집이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80점 이상은 주고 싶을 정도다. 적어도 술자리라는 것은 서로의 얘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는 그런 맛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 찾아가는 길
대충 말하면 강남역 신한은행 뒷골목쯤에 위치하고 있다. 번화가랑은 제법 거리가 있는 편. 지리에 어둡다면 강남역 점프 밀라노 건물 뒷편으로 가서 신사동 방향으로 하염없이 걸으며 오른쪽을 유심히 지켜보자. '독불장군' 이라는 집이 보였다면 거의 다 온 셈이다. 조금만 더 걸어가자.
▶ 전화번호 02)562-5736
▶ 알아두면 좋은 얘기들
사진을 잘못찍었는지 아니면 세로샷에 익숙해졌을때 찍어서인지 양이 상당히 작아 보이는데 보이는 만큼 작은 것은 아니다.
지나는 길에 목격했을 '독불장군'의 우삼겹은 차돌박이와 등심 사이의 살을 간장양념해서 구워먹는 요리다. 생각보다 특별한 맛이 아니라는 점에 당황했다.
점심때는 제법 사람이 많은 편이라 자리잡기가 힘들다고 한다. 추천메뉴는 닭곰탕(5000원), 닭죽(4000원). 참고로 삼계탕은 8000원 이다.
전국에 가장 많이 퍼져있는 삼계탕집 이름이 '고려삼계탕'이 아닐까 한다. 서울신문 뒤, 시청앞에도 있고 구석구석에 산재하고 있다. 하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고려삼계탕' 이름 달고 맛없는 집을 아직 못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