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뒤섞여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생각나는 것이 바로 올 가을인 것 같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범벅스러운 가을!이라 규정하고 싶은 것이 바로 올 가을이 보여주는 생태모습입니다. 우리나라 기후의 특징은 사계절이 뚜렷함인데 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 같습니다. 가을 하면 여름의 빛을 서서히 벗겨내다. 절정의 시기가 도래하면 불타오르듯 울긋불긋 온 산을 물들이며 만산을 홍엽으로 치장하다. 모질어진 가을바람에 떨어져 낙엽이 되는 것이 가을의 일상이었는데... 종전의 일상적인 가을 풍경을 만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고 여름 기온이 절기를 넘어 가을을 탐하고 겨울이 성급하게 가을의 꽁무니를 말아 버려 가을의 형상을 축소하여 생긴 현상이기도 하지만 결국 지구의 온난화의 영향이 빗어낸 자연현상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자연과 인간, 공생의 진리를 저버린다면 인간은 큰 재앙에 고통받으며 생존의 가치 또한 무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자연을 보존, 즉 창조적 질서를 위해하는 악습을 당장 멈춰야 합니다.
원래는 자작나무 숲을 찾을 계획이었으나 동선을 간추려 보니 치악이 마음에 다가섰습니다.
이른 새벽 전일, 꾸려 놓은 knap -sack을 등에 지고 집을 나서면서 걸음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미리 짜 놓은 동선 따라 타고 걸어 도착한 출발역, 아직은 한산하였습니다. 첫차의 매력은 딱 두 가지입니다. 혼잡하지 않다. 그리고 일정을 빨리 시작함으로 하루에 일정을 원활하고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여행자에게 이런 형태는 오후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횡성 역에 도착한 후 버스가 들어오기에 화급하게 접근하여 기사에게 묻자 아니란다. 기다리면 온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믿고 있다 게시된 운행시간표를 보니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였습니다. 아니다 싶어 택시를 이용하여 이동한 후 맑고 건강한 된장찌개를 아침으로 선택하여 해결하고 걸음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雉岳(치악)의 유래는 꿩과 구렁이의 설화에서 시작됩니다.
원래 치악산의 이름은 적악산(赤岳山)이었습니다. 단풍이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치악산 남대봉 동사면에 위치한 상원사에 상주하시던 스님께서 탁발을 끝내시고 산중으로 되돌아오시다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는 것을 발견하고 지팡이로 내려쳐 죽였습니다. 이후 어느 날 오수를 즐기는데 구렁이가 스님의 몸을 감고 조이며 말합니다. 네 놈이 죽인 내 남편의 복수다. 하며 구렁이 부인이 스님을 칭칭 감은 것입니다. 원래 우리도 사람이었지만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려 그 죗값으로 구렁이가 된 부부다. 오늘날이 새기 전에 절에 종소리가 세 번 울리면 너를 풀어 주겠다. 또한 나도 그동안 죗값을 치러 종소리가 들리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러한 기적은 불가능하다 하며 포기하려는 순간 종소리가 세 번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자 구렁이가 사라지고 자유의 몸이 된 스님이 종루로 다가 가자 꿩 세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스님에게 은혜를 입은 꿩들이 날아와 종을 치고 땅에 떨어져 죽은 것이다. 은혜를 보답한 꿩 때문에 꿩 치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산 이름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설화의 내용이 상원사 벽화로 그려져 세상에 널리 알려집니다. 이 보은 설화의 주인공으로 스님 대신 젊은 선비의 모습으로 구전되면서 원주라는 도시를 보은 도시로 표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름이 바뀐 것은 산 이름만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치악산의 정상 비로봉 아래 구룡계곡이 휘돌아나가는 곳에 들어 선 절 집, 구룡사는 조계종 제4 교구 본사인 오대산 월정사 말사입니다. 서기 668년(문무왕 8) 창건되었으며, 창건에 얽힌 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절터를 비롯하여 그 부근 맑고 깊은 소(沼) 있는데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답니다. 의상대사께서 절을 지으려 하자 용들이 이를 막기 위하여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를 내려 온산을 물로 채워 버려 도저히 절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의상대사께서는 고심 끝에 부적을 적어 용이 살고 있는 연못에 던져 놓자 연못이 마르면서 여덟 마리의 용은 몸부림치며 주변 산을 여덟 조각으로 갈라놓고 사라지고 한 마리의 용은 눈이 멀게 하여 절을 지을 수 있었다는 설화가 내려옵니다. 용 아홉 마리를 뜻하는 구룡사(九龍寺)라 절 이름 지었으나 절이 쇠락하는 시기를 경험하게 되면서 절 이름을 주변에 거북이 모양의 바위를 본떠 구룡사(龜龍寺)로 바꾸게 됩니다.
이러한 뜻에서 구룡계곡을 넘어 가 일주문으로 들어서려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에 용머리로 치장하고 거북바위 위에 다리 한 부분을 뚫고 유리창을 만들어 그 아래 거북이 형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선계와 속계를 구분 짓는 일주문, 구룡사에서는 원통 문이라 합니다.
절 집의 첫 문을 일주문이라 하는데 속계에서 묻은 모든 번뇌를 씻으라는 의미에서 물이 흐르는 계곡물 옆에 세워집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해탈을 뜻하는 천왕문이 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불이의 경지인 불이문이 나옵니다. 이곳부터는 완전한 불법의 세계이며, 부처님의 나라가 됩니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며, 있는 것과 없는 것도 둘이 아니며 현재와 미래가 둘이 아니어서 하나의 불법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불이문이라 합니다. 불이의 진리로써 모든 번뇌를 벗어버리면 해탈을 이루어 부처가 된다고 하여 불이문을 해탈문 또는 원통 문이라고 부른답니다. 불이문이나 원통 문을 분리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불이문이나 원통 문은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면 부도탑이 나옵니다. 여러 개의 부도탑 중에 개인적으로 제일 많이 눈 길이 가는 부도입니다. 절제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여백의 미를 통해 선지자의 선함을 느끼게 되어 그런 것 같습니다.
절 서편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는 은행나무, 용문사의 은행나무와 함께 거목입니다. 수령 200여 년,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순경까지는 절의 규모는 영웅을 모신다는 대웅전과 작은 요사채 정도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화재로 소실되는 아픔도 겪었던 구룡사였지만 지속적으로 중창불사가 이어져 현재의 모습 대가람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특히 종루에
걸려 있는 동종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주한 범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옛적 가람 배치대로 재현되는 구룡사 중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는 아픔 경험을 겪습니다. 폐사가 되었던 경험도 있는 절 집이었습니다. 이러한 연유가 결국 장수 무명을 상징하는 거북이를 상징화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 매점 곁을 지나 조금 계곡 쪽으로 꺽어들면 용소가 나옵니다. 오래전에는 계곡 밑으로 다녔는데, 지금은 출렁다리를 설치하여 용소를 구경하며 건너갈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용소를 다리 초입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용소 상부에서 흐르는 바위 사이 물줄기가 꼭 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아직도 눈이 멀어 떠나지 못한 용이 살고 있는 모습 같습니다.
다리를 건너 줄곧 오르면 공원관리공단에서 만들어 놓은 야생화 밭에서 계절마다 금강초롱을 대표주자로 야생화 꽃이 아름답게 피는 곳이 나옵니다. 마지막 화장실도 있으며 잠시 쉬어 갈 의자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물을 마시거나 옷과 신발이 오염되었을 때 씻어낼 장소도 준비되어 있는 곳입니다. 안내소도 있고... 이곳에서 길은 두 개의 길로 갈라집니다. 계곡 따라 걸을 수 있는 계곡길과 숲 길이 이어지는 평범한 탐방로가 있습니다. 여름과 가을에는 계곡길이 아름답습니다. 계곡길 마지막 부분에 화전민터를 이용하여 임간학교가 있고 화전민들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시설물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갈수록 단풍이 초라해지는 환경.. 그것은 부근에 있는 도시들이 커지면서 생기는 환경오염 영향도 있다는 것이 저에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임간학교가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행동식 나눔을 갖었습니다.
계곡, 바위 옷 이끼들이 침묵의 바위 모습을 챙기고 흐르는 물소리는 오히려 깊은 계곡의 숨을 토하며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물안개 사이로 찾아들기 시작한 빛은 몽한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바라만 보아도 붉은 낙엽 한 장이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시각각 빛의 변화가 주는 영향으로 파사체의 모습 또한 수시로 속성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빛은 색의 마술사입니다.
오늘도 카메라 구도 놀이에 열중하시는 데레사 자매님 좁은 사각 파인더 안에 조금 더 좋은 위치에 좋은 모습으로 비추게 하기 위하여 거의 필사적으로 들이대는 모습을 부근에서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선은 없으나 각자 조정당하는 선에 묶여 조정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놀이~~~ 그래도 즐겁습니다..
잠시 쉼을 멈추고 다시 길을 이어나갔습니다.
오르는 길에서 계곡 건너 북사면 양지바른 곳은 곱게 물든 단풍들이 제법 보였습니다.
단풍 그늘을 걷고 쉬며 가을을 줄곧 따라 다니다 사하촌으로 되돌아 가기 위하여 서둘렀습니다.
가을 고운 오후 빛을 어깨에 걸치며 소나무 숲을 차근차근 천천히 걷고 하루를 정리하며 잔여 걸음으로 여행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가을 숲, 예전 같은 풍광은 아니었지만 가을은 가을이었습니다. 새롭게 주어졌던 한 해의 삶, 벌써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코로나 19라는 괴물에 시달리며 살아온지도 어느덧 두 해가 다가옵니다. 시간 따라 흐르는 생의 시간, 소중한 현실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한 명색은 변함없을 것입니다. 자연을 통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하루의 삶이었습니다. 다시 이러한 꿈의 실현을 생각하며 열차에 올랐습니다. 좋은 것들은 늘 꿈결에서 흐르는 음악과도 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시 또~~ 기회를 준비해 보겠습니다.
첫댓글 +찬미 예수님
쌤님최고 입니다
가을단풍보다 더 아름다운 가을빛이네요
치료는 잘 받으셨는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감사합니다!